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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서설 - 인과성을 철저히 긍정하다 본문

고전/불경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서설 - 인과성을 철저히 긍정하다

건방진방랑자 2022. 3. 16. 0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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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성을 철저히 긍정하다

 

 

이 때에 등장한 것소피스트(sophist). 우리가 보통 소피스트를 궤변론자라고 부르지만, 그러한 인상은 대체로 이들이 기존의 가치관을 거부하고 인간의 세계인식의 극단적 상대성을 조장하고, 인간의 감각이나 이성적 논리가 모두 궁극적으로 실재의 기준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며, 모든 종교적 독단에 대하여 매우 회의적인 판단 유보를 가지고 있다고 하는 그러한 성향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다. 그렇지만 소피스트들은 모두가 박학다식한 사람들이었으며 대부분이 심오한 경지의 석학들이었다. 그들은 무엇에나 의문을 품었으며 종교나 정치상의 모든 핫잇슈들을 거침없이 이성의 심판대 위에 올려놓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폴리스의 유지기반이었던 노예제도를 거부했다.

 

우리는 보통 소피스트들과 소크라테스를 구분해서 말하지만, 소크라테스 역시 소피스트 중의 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은 누구나 쉽게 수긍할 수 있는 사실이다. 여기 붓다시대의 슈라마나 즉 사문(沙門) 또한 소피스트가 등장하는 헬라스의 시대배경, 사회분위기, 그리고 사상적 성향과 일치하는 맥락 속에서 규정되는 사람들이다. 사문들도 대체적으로 현실주의적 인간관, 유물론적 우주관, 상대주의적 가치관을 지니고 있었으며, 모든 도덕주의적 명제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그리고 우파니샤드(Upanisad)에서 말하는 아트만(ātman)이나 브라흐만(Brahman)의 개념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러한 것들을 대체적으로 물질의 집적(ārambha-vāda)으로써 설명했으며, 업이나 윤회 같은 것마저도 부정했다. 챠르바카(Cārvāka)는 인간의 추론의 확실성을 인정치 않으며, 귀납적 추리와 인과법칙의 타당성을 거부했다.

 

그리고 신의 존재, 영혼의 존재, 생전이나 사후의 존재를 부정했다. 따라서 업의 도덕성이 전적으로 부정되는 것이다. 이따위 것들은 모두 브라흐만 사제계급들이 무지한 대중들을 속여 자기들의 이익을 챙기고자 하는 의도에서 만들어낸 이론들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인간의 존재이유는 쾌락(kāma)의 추구에 있을 뿐이라고 역설한다. 이러한 챠르바카의 이론은 비판이나 옹호의 대상이기에 앞서, 오늘날 현대를 사는 인간이 제기할 수 있는 모든 극단적ㆍ합리적 사유를 이미 제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극히 소중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향후의 모든 철학은 이러한 도전에 대하여 대답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상황을 껴안게 되는 것이다.

 

기실 소크라테스가 소피스트(sophist)의 한 사람이었듯이, 역사적인 붓다 또한 이러한 슈라마나(사문) 중의 한 사람이었다. 헬라스의 폴리스의 소피스트들이나, 간지스강 중류지역 도시국가들의 슈라마나들이나, 춘추전국시대의 제후국을 방황하는 유세객들인 사()나 기실 야스퍼스가 지적한 바 아흐센차이트(Achsenzeit, 인류의 주축문명시대)의 동일한 시대정신에서 배출된 사상가들이었다.

 

싯달타는 결코 이러한 래디칼리즘에 만족할 수가 없었다. 모든 래디칼리즘은 인간의 문제에 대하여 자극적인 도전을 제기할 수는 있으나, 근원적인 문제해결에 대한 총체적인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당시 파쿠다 카차야나(Pakudha Kaccāyana)라는 육사외도의 한 사문은 다음과 같은 문제를 제기했다. 인간은 지()ㆍ수()ㆍ화()ㆍ풍()ㆍ고()ㆍ락()ㆍ생명(生命)의 일곱 요소의 집적태일 뿐이며 행위의 주체가 되는 존재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들 요소 그 자체는 불변이며 창조되지도 않았고, 서로를 생성하지도 않는다. 이러한 집적태인 한 인간을 어떤 사람이 예리한 칼로 배때기를 콱 쑤셨다고 하자! 그래도 그것은 전혀 윤리적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칼은 단지 일곱 요소 사이의 간격을 좀 벌려놓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칼을 쑤신 주체도 존재하지 않고 칼 쑤심을 당한 주체도 존재하지 않는다. 행위와 사건을 철저히 비인격적인 과정으로 설명하는 유물론적 세계관인 것이다. 자아! 여기에 대하여 독자들은 어떠한 답변을 내릴 것인가?

 

나는 일찍이 말했다. 싯달타의 사유의 알파와 오메가는 연기 그 하나라고, 연기란 인과성의 철저한 긍정이다.

 

 

 개방적인 바이샬리의 여인, 순다르헤. 저녁반찬으로 바나나를 딴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일행을 자기집으로 초대했다. 위 사진은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바나나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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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

반야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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