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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서설 - 사문과 소피스트 본문

고전/불경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서설 - 사문과 소피스트

건방진방랑자 2022. 3. 16. 0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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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과 소피스트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 힘입어 당시에는 자유로운 사상가들이 난립하였다. 팔리장경 장부니까야(Dīgha-Nikāya)에 속하는 사문과경(沙門果經, Sāmaññaphala-sutta)에는 소위 6사외도(六師外道)라고 불리우는 당시의 자유로운 사상가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어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불교의 입장에서 정리한 것이기 때문에 그들 자체의 사상을 아는 데 충분한 자료라 할 수는 없다.

 

여기 사문(沙門, śrāmaṇa, samaṇa)이라 하는 것은 종래의 전통적 바라문과 대립되는 개념으로서, 일정한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촌락이나 도시를 전전하면서, 걸식에 의해 생계를 유지하고, 수행과 포교에 전념하는 새로운 형태의 종교 지도자, 출가자들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이들은 대개 박식한 인물들이었으며 자유로운 사유의 소유자들이었으며, 강력한 시대의식과 비판의식을 소유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한결같이 베다의 권위나 제사를 거부했다. 이들은 이단자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새롭게 형성된 자유로운 상공계급의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리고 그들의 주변에는 자연히 그들의 교설을 따르고 실천하는 무리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승가(僧伽, saṁgha)라는 생활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이들 공동체들은 사회적 계급적 신분의 차별이 없이 누구나 다 참여할 수 있는 개방적 성격을 띤 집단이었다. 이러한 승가의 유지를 위하여 사문들은 보다 참신하고 설득력 있는 이론들을 창출해내야만 했다.

 

우리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Man is the measure of all things.)라고 외쳤던 아테네의 소피스트(sophist), 프로타고라스(Protagoras, 485~410 BC)를 기억한다. 기원전 6세기말에서 기원전 5세기까지는 희랍의 도시국가들, 폴리스의 격동기였다. 페르샤전쟁의 승리는 아테네의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의 각 방면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마라톤의 승리는 주로 농민보병에 의한 것이었으며, 사라미스의 해전은 수공업노동자들에 의한 승리였다. 이들은 마침내 귀족의 특권을 빼앗아 민주제(democratia)를 확립하였고, 민중의 위대한 지도자 페리클레스(Pericles, 495~429 BC)의 출현은 고대 민주주의의 황금시대를 가져왔다. 전쟁 후 델로스동맹의 맹주로서 그레시아의 패권을 잡은 아테네는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인도여행에서 나의 가슴에 감동을 새겨 놓은 것은 학교의 모습이었다. 대부분의 수업이 야외 마당에서 이루어진다. 학생들을 수용할 건물이 부족하기도 하겠지만 실내가 너무 답답한 것이다. 그리고 외부인들에 대한 거부반응이 전혀 없었다. 이들 중에서 사문이나 소피스트가 배출될 것일까? 시인 타고르의 고뇌를 나는 생각해 보았다. 바이샬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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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금강경

반야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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