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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만나기까지 - 담마의 정치 본문

고전/불경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만나기까지 - 담마의 정치

건방진방랑자 2022. 3. 17.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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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마의 정치

 

 

불교사에서는 아쇼카를 싯달타의 수호자로서, 싯달타의 종교적 이상을 세속적으로 구현시킨 성왕으로서 그린다. 그러니까 붓다가 먼저고 최상이며, 붓다의 충실한 추종자, 불법의 구현자로서의 종속적인 이미지로서만 아쇼카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잘못된 이해방식이다.

 

내가 생각키에 싯달타나 아쇼카나 모두 인도역사에 등장한 각자(覺者)들이다. 깨달음의 방식과 위대함의 영역이 다를 뿐, 그들은 동등한 깨달음에 도달한 인도의 청년들이었다. 싯달타라는 청년은 보리수 밑에서의 정좌 속에서 냉철한 사유로써 깨달음을 얻었고, 아쇼카라는 청년은 피비린내 나는 인간욕망의 극한적 상황에서 몸서리치는 떨림의 체험으로써 깨달음을 얻었다. 양자는 모두 자신의 깨달음의 실천에 충실했다. 그러니까 결코 아쇼카는 싯달타의 추종자로서 이해될 수는 없다김형준 엮음, 이야기 인도사(서울 : 청아출판사, 2000), pp.157~160, 인도의 역사에 관하여 기초적인 지식을 얻고 싶은 사람들에게 상기의 책을 권한다. 비교적 간결하고 명료하게 잘 서술하였다..

 

 

칼링가를 정복하면서 나는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그들의 영토가 수많은 시체로 덮인 처참한 광경을 바라보면서 나의 가슴은 온통 찢어지고 말았다. 이유없이 죽거나 부상당해 고통받는 모습을 바라보던 나의 가슴에는 온통 후회와 슬픔밖에 남지 않았다. 이제부터는 비록 칼링가가 정복되면서 살해당하고 부상당했던 사람들의 백분의 일, 아니 천분의 일만이 비슷한 고통을 겪는다 할지라도 나의 가슴은 무거운 슬픔으로 짓눌릴 것이다. 앞으로 나는 오직 진리에 맞는 법만을 실천하고 가르칠 것이다. 신들에게 헌신하는 나는 진리의 법에 의한 승리만이 최상의 승리라고 생각한다.

 

 

아쇼카는 힘에 의한 지배를 포기하고 법에 의한 정치를 표방했다. 여기 법이라는 것은 담마(팔리어, dhamma) 즉 다르마(산스크리트어, dharma)라는 것인데, 희랍어로 쓰여진 칸다하르(Kandahar)의 아쇼카 비문에는 유세베이아(eusebeia, εσέβεια)라는 말로 표현되고 있다. 이것은 신이나 부모에 대한 경건한 마음, 라틴어의 피에타스(pietas), 영어의 파이어티(piety)에 해당되는 말이며, 유가에서 말하는 ’()라는 의미까지 포함하고 있다. 이것은 모든 존재하는 생명에 대하여 경건한 마음을 지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회적 책임이나, 관용, 비폭력의 의미를 포함한다. ‘담마의 정치라는 아쇼카의 슬로건 때문에 불자들은 이것을 곧 불법을 구현하는 정치로 표현하지만, 아쇼카가 표방한 담마의 정치는 결코 특정적으로 불교적인 다르마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전륜성왕이라는 이상 자체가 불교를 초월하는 것이며, 불교에서 생겨난 개념이 아닌 것이다.

 

아쇼카의 담마는 불타의 시대로부터 출발한 어떤 새로운 차이트 가이스트(Zeitgeist), 즉 근본적 사회변동이 가져온 새로운 시대정신의 정치적 표현인 것이다. 붓다의 담마나 아쇼카의 담마나 모두 이 같은 차이트 가이스트의 다른 표현이다. 아쇼카는 담마를 구현하는 특별한 관료(dhamma-mahāmatta) 제도를 따로 신설했으며 이들을 황제의 직할로서 지방관들의 우위에 두었다. 이들은 다양한 계층의 다양한 신념과 다양한 관념들을 포용적으로 수용하였으며 카스트와 무관하게 자비를 베풀었다. 여기서 말하는 자비란 요즈음 말로는 사회복지(social welfare)를 의미하는 것이다. 아쇼카는 동물의 희생을 금지했으며 채식주의를 장려했으며, 불필요한 제식이나 브라흐만(Brahman) 계급의 우월 의식을 거부했다.

 

 

위의 사진은 인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양의 하나로서 끼르띠무카(kirtimukha or kirttimurti)라고 한다. 사원 입구의 문 꼭대기에 있으면서 잡귀를 쫓는다. 우리나라 귀면기와 문양의 프로토타입을 보는 듯하다. 지금 이것은 비석의 꼭대기에 있는 것이다. Prince of Wales Museum. 아래의 사진은 우리나라 통일신라 귀면기와이다. 국립경주박물관

 

 

비슈누의 영원한 잠(Vishnu on Sesha). 7세기, 웨일즈 박물관, 불교의 도전으로 힌두교가 조직화되어 가면서 다채로운 베다의 신들도 브라흐만(Brahman), 비슈누, 시바의 삼신(the Hindu Triad)체제로 정비된다. 브라흐만은 우주의 창조를, 비슈누는 유지를, 시바는 파괴를 담당한다. 비슈누는 우주의 현재를 유지하기 때문에 걱정없이 편안히 잠을 잔다. 우주를 스스로에게 맡기는 것이다. 그의 손은 4개며 칭칭 휘감은 뱀(Sesha)을 침대삼아 물위에 떠서 잠을 잔다. 공포의 대상이라기 보다는 헌신과 평화의 상징이다. 부인 락슈미(Lakshmi)도 행운의 여신.

 

 

시바의 결혼식(Uma-Imahesvara), 7세기. 웨일즈 박물관, 인도인에게 가장 인기가 높은 신은 시바다. 후대로 내려오면 시바는 결국 브라흐만과 비슈누를 누르고 최고의 신으로 격상된다. 이 부조는 시바와 그의 부인 파르바티 모습을 그리고 있다. 시바는 항상 바람을 피우며 부인에게 무관심하다. 파르바티는 뾰루퉁 항상 앙탈을 부린다. 이 둘의 관계는 모든 남녀관계의 한 아키타입을 나타내고 있다. 시바의 한손에 잘룩한 허리가 휘감긴 파르바티의 애교넘치는 요염한 자세는 가관이다. 시바 옆에는 그가 항상 타고 다니는 황소 난디가 무덤덤하게 지켜보고 있다.

 

 

인용

목차

금강경

반야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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