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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서설 - 기나 긴 사색의 출발(니련선하에서) 본문

고전/불경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서설 - 기나 긴 사색의 출발(니련선하에서)

건방진방랑자 2022. 3. 9.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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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 긴 사색의 출발

니련선하에서

 

 

뽀이얀 먼지 속에 서산에 이글이글 지는 해가 대탑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땅거미가 어둑어둑 대지를 엄습할 때, 내가 보드가야(Bodhgaya)에 도착한 것은 200218일의 일이었다. 우연히 나의 카메라에 잡힌 니련선하(尼連禪河)의 모습은 보는 이들에게 너무도 많은 묵언의 멧세지를 전해줄 것이다. 광활한 대지, 끝없이 펼쳐지는 지평선, 소리없이 유유히 흐르는 강물, 휘몰아치는 먼지 바람, 깡마른 다리를 휘감어대는 도포자락을 떨치며 무심하게 걸어가는 사나이, 터번 속에 가린 얼굴은 중생의 고뇌를 다 씹어 먹은 듯, 니련선하의 풍진에 자신의 풍운을 다 떠맡기고 있었다. 고타마 싯달타는 바로 이런 사람이었을까?

 

저 광막한 니련선하 건너로 희미하게 하늘을 가리운 산이 전정각산(前正覺山)이다. 그 전정각산 아래로 시타림(屍陀林)이라는 수풀이 있다. 고타마 싯달타는 바로 그 시타림에서 6년동안 뼈를 깎는 고행을 하였다. 지금은 파키스탄의 영토가 되어 있는 라호르(Lahore)라는 곳의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기원후 2세기 경에 제작된 간다라풍의 사실적 조각은 고타마 싯달타의 고행이 과연 어떠한 경지의 육체적 학대였는지를 잘 말해 줄 것이다. 싯달타는 하루에 쌀 한 톨과 깨 한 알로만 연명하며 오로지 정진에만 몰두하였다. 이를 악물고 혀를 입천장에 댄 채 마음을 비우고 숨을 죽였다. 온 몸에서는 삐질삐질 땀이 솟으며 뜨거운 열기가 피어올랐다. 안나반나(安那般那)라고 불리우는 지식선(止息禪)의 고행으로 어언 6년간, 그의 몸은 여위어만 갔다. 피골이 상접한 그의 가슴에는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났고 혈관이 거미줄처럼 뻗어갔다. 배를 만지면 등뼈가 만져지고 움푹 파인 동공 밑으로는 광대뼈가 치솟았다. 이 간다라 예술 걸작품의 작가는 당대의 고행자들의 모습을 실제로 예리하게 관찰하였을 것이다. 갈비뼈나 깡마른 팔뚝의 모습은 해부학적으로도 정확한 형태를 그리고 있다. 그러나 이 걸작품의 위대성은 그러한 사실성에 있는 것은 아니다.

 

신체가 이토록 수척하고 허기졌다면 분명 의식도 몽롱한 상태에 빠졌을 것이며, 등골은 굽어지고 자세도 허물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 조각 속의 싯달타의 모습에는 꼿꼿한 몸매와 야무진 입술, 광채 서린 예리한 눈길, 살가죽 위에 드러난 힘줄 한 오라기마다 무서운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고행 속에 피폐해져 가는 모습이 아니라, 신체적 고통과 구속에 맞서서 싸우고 있는 인간 달타의 살아있는 영혼의 생동감을 영웅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우리나라 예술의 전당 미술관에서 199971일부터 829일에 걸쳐 간다라미술에 관한 매우 훌륭한 전시(The Exhibition of Gandhara Art of Pakistan)가 있었다. 간다라미술의 역사적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하는 훌륭한 작품들이 다수 출품되었다. 여기 해설되고 있는 고행상도 출품 되었는데, 그것은 카라치국립박물관 소장의 석고 복제품이었으나 본품 못지 않게 정교한 작품이었다. 이 작품에 관한 나의 설명은 본전시의 도록에 실린 이주형교수의 도판해설을 참고한 것이다. 이 도록의 앞부분에 간다라미술이라는 제목의 이주형교수의 논문이 실려있는데, 우리말로 접할 수 있는 간다라미술에 관한 논설로서는 가장 포괄적이고 상세한 훌륭한 글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고행은 쾌락의 반성으로부터 출발한다. 전설적인 기술을 액면 그대로 따른다면 싯달타라는 사람은 카필라성의 왕자로서 엄청나게 부유하고 오복의 풍요로움을 구비한 생활을 향유했던 사람이었다. 싯달타에게 있어서 29세의 출가라는 사건의 이전과 이후를 가르마 짓는 사실은 쾌락과 고행이라는 양극적 상황일 것이다.

 

출 가 전 출 가 후
쾌락 고통

 

 

인간의 신체로서 도달할 수 있는 고행의 극점에서 인간 싯달타에게 퍼뜩 다가오는 어떤 영감, 아니 양심의 외침같은 것이 있었다.

 

야 임마! 도대체 넌 뭔 짓을 하고 있는 게냐?”

 

이 단순한 반문은 싯달타라는 한 인간에게 매우 근원적인 반성의 계기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고행의 근원적 의미가 무엇이었던가? 나는 도대체 왜 고행을 하고 있었던 것인가? 인간의 행위는 소기하는 목적이나 가치를 떠나서 고립될 수 없다. 도대체 무엇을 위하여 나 싯달타는 고행을 하고 있었던 것인가?

 

반문해볼 필요조차 없었던 반문을 고행의 정점에서 퍼뜩 하게 되었던 것이다.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고행의 극한점에서, 다시 말해서 고행의 고통을 초극할 수 있는 위대한 디시플린(discipline, 기강)의 고지에서 그는 고행의 무의미성을 되씹은 것이다. 나는 근원적으로 고행이 소기하는 바 의미나 목적을 상실한 채 고행을 위한 고행, 즉 나 자신의 육체를 스스로 괴롭히는 것에만 열중하는 고행에 빠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던가? 싯달타는 수단과 목적이 전도된 고행의 경쟁의 홍류 속에 휩쓸려가고 있었던 자신의 모습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인용

목차

금강경

반야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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