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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 서설, 1. 니련선하에서 본문

고전/불경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 서설, 1. 니련선하에서

건방진방랑자 2022. 3. 9.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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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 긴 사색의 출발

니련선하에서

 

 

뽀이얀 먼지 속에 서산에 이글이글 지는 해가 대탑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땅거미가 어둑어둑 대지를 엄습할 때, 내가 보드가야(Bodhgaya)에 도착한 것은 200218일의 일이었다. 우연히 나의 카메라에 잡힌 니련선하(尼連禪河)의 모습은 보는 이들에게 너무도 많은 묵언의 멧세지를 전해줄 것이다. 광활한 대지, 끝없이 펼쳐지는 지평선, 소리없이 유유히 흐르는 강물, 휘몰아치는 먼지 바람, 깡마른 다리를 휘감어대는 도포자락을 떨치며 무심하게 걸어가는 사나이, 터번 속에 가린 얼굴은 중생의 고뇌를 다 씹어 먹은 듯, 니련선하의 풍진에 자신의 풍운을 다 떠맡기고 있었다. 고타마 싯달타는 바로 이런 사람이었을까?

 

저 광막한 니련선하 건너로 희미하게 하늘을 가리운 산이 전정각산(前正覺山)이다. 그 전정각산 아래로 시타림(屍陀林)이라는 수풀이 있다. 고타마 싯달타는 바로 그 시타림에서 6년동안 뼈를 깎는 고행을 하였다. 지금은 파키스탄의 영토가 되어 있는 라호르(Lahore)라는 곳의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기원후 2세기 경에 제작된 간다라풍의 사실적 조각은 고타마 싯달타의 고행이 과연 어떠한 경지의 육체적 학대였는지를 잘 말해 줄 것이다. 싯달타는 하루에 쌀 한 톨과 깨 한 알로만 연명하며 오로지 정진에만 몰두하였다. 이를 악물고 혀를 입천장에 댄 채 마음을 비우고 숨을 죽였다. 온 몸에서는 삐질삐질 땀이 솟으며 뜨거운 열기가 피어올랐다. 안나반나(安那般那)라고 불리우는 지식선(止息禪)의 고행으로 어언 6년간, 그의 몸은 여위어만 갔다. 피골이 상접한 그의 가슴에는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났고 혈관이 거미줄처럼 뻗어갔다. 배를 만지면 등뼈가 만져지고 움푹 파인 동공 밑으로는 광대뼈가 치솟았다. 이 간다라 예술 걸작품의 작가는 당대의 고행자들의 모습을 실제로 예리하게 관찰하였을 것이다. 갈비뼈나 깡마른 팔뚝의 모습은 해부학적으로도 정확한 형태를 그리고 있다. 그러나 이 걸작품의 위대성은 그러한 사실성에 있는 것은 아니다.

 

신체가 이토록 수척하고 허기졌다면 분명 의식도 몽롱한 상태에 빠졌을 것이며, 등골은 굽어지고 자세도 허물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 조각 속의 싯달타의 모습에는 꼿꼿한 몸매와 야무진 입술, 광채 서린 예리한 눈길, 살가죽 위에 드러난 힘줄 한 오라기마다 무서운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고행 속에 피폐해져 가는 모습이 아니라, 신체적 고통과 구속에 맞서서 싸우고 있는 인간 달타의 살아있는 영혼의 생동감을 영웅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우리나라 예술의 전당 미술관에서 199971일부터 829일에 걸쳐 간다라미술에 관한 매우 훌륭한 전시(The Exhibition of Gandhara Art of Pakistan)가 있었다. 간다라미술의 역사적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하는 훌륭한 작품들이 다수 출품되었다. 여기 해설되고 있는 고행상도 출품 되었는데, 그것은 카라치국립박물관 소장의 석고 복제품이었으나 본품 못지 않게 정교한 작품이었다. 이 작품에 관한 나의 설명은 본전시의 도록에 실린 이주형교수의 도판해설을 참고한 것이다. 이 도록의 앞부분에 간다라미술이라는 제목의 이주형교수의 논문이 실려있는데, 우리말로 접할 수 있는 간다라미술에 관한 논설로서는 가장 포괄적이고 상세한 훌륭한 글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고행은 쾌락의 반성으로부터 출발한다. 전설적인 기술을 액면 그대로 따른다면 싯달타라는 사람은 카필라성의 왕자로서 엄청나게 부유하고 오복의 풍요로움을 구비한 생활을 향유했던 사람이었다. 싯달타에게 있어서 29세의 출가라는 사건의 이전과 이후를 가르마 짓는 사실은 쾌락과 고행이라는 양극적 상황일 것이다.

 

출 가 전 출 가 후
쾌락 고통

 

 

인간의 신체로서 도달할 수 있는 고행의 극점에서 인간 싯달타에게 퍼뜩 다가오는 어떤 영감, 아니 양심의 외침같은 것이 있었다.

 

야 임마! 도대체 넌 뭔 짓을 하고 있는 게냐?”

 

이 단순한 반문은 싯달타라는 한 인간에게 매우 근원적인 반성의 계기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고행의 근원적 의미가 무엇이었던가? 나는 도대체 왜 고행을 하고 있었던 것인가? 인간의 행위는 소기하는 목적이나 가치를 떠나서 고립될 수 없다. 도대체 무엇을 위하여 나 싯달타는 고행을 하고 있었던 것인가?

 

반문해볼 필요조차 없었던 반문을 고행의 정점에서 퍼뜩 하게 되었던 것이다.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고행의 극한점에서, 다시 말해서 고행의 고통을 초극할 수 있는 위대한 디시플린(discipline, 기강)의 고지에서 그는 고행의 무의미성을 되씹은 것이다. 나는 근원적으로 고행이 소기하는 바 의미나 목적을 상실한 채 고행을 위한 고행, 즉 나 자신의 육체를 스스로 괴롭히는 것에만 열중하는 고행에 빠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던가? 싯달타는 수단과 목적이 전도된 고행의 경쟁의 홍류 속에 휩쓸려가고 있었던 자신의 모습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고행과 해탈

 

 

신체적 고행이란 반드시 위대한 수행승의 전유물은 아니다. 우리 주변에서 우리는 성철스님과 같은 위대한 수행자보다도 더 치열한 용맹정진 속에 신체적 고행을 감행하고 있는 사람들을 수없이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올림픽 금메달을 따기 위해 태능선수촌에서 신체적 극기훈련에 열중하고 있는 청년들, 세계 챔피온의 꿈을 꾸며 시골 마찻길을 매일 질주하고 있는 권투선수, 월드컵의 함성에 보답하기 위해 사선을 뚫고 있는 축구선수들, 최소한 신체적 고행(physical penance)이라는 측면에서 이들이 감내하고 있는 용맹정진의 도수나 긴장감은 고승들의 고행을 무색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퍼뜩 한 운동선수에게 이런 생각이 들 수가 있을 것이다. 도대체 나는 왜 이런 짓을 하고 있는 것일까? 금메달을 따기 위해서? 금메달은 왜 따려 하는가? 일생을 보장받는 연금도 딸 수 있고 그래서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고, 또 금메달 수를 하나 늘임으로써 국익에 보탬이 되면 나는 애국자가 될 테니까. 과연 금메달을 하나 더 첨가한다는 것이 대한민국의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근원적으로 해결하는 어떤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까? 금메달은 과연 국익에 보탬이 되는가? 엘리트 스포츠의 과도한 경쟁 속으로 점점 국가를 타락시키는 데 보탬이 되는 행위를 내가 자행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연금을 탔다고 하자! 과도한 훈련으로, 연금을 탄 직후에 관절이 다 파열되어 걷지도 못하는 불구의 몸이 되었다고 하자! 격려의 환호성도 사라지고, 광고주들의 추근거림도 일시에 끊어지고, 친구들의 발길도 자취를 감추어 버리고…… 연금봉투만 걸머진 채 버림받은 고독한 한 인간으로 전락하였다고 하면 과연 젊은 날의 고행의 본질적 의미가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시타림에 있었던 싯달타라는 한 인간에게 퍼뜩 찾아온 생각은 이러한 운동선수의 반문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이었다. 싯달타라는 고행자에게는 고행의 매우 명료한 목적이 있었다. 그 목적은 인도말로 목샤(mokṣa)라고 하는 것인데 우리말로, 아니 정확하게는 중국말로 해탈(解脫)이라고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말의 해탈목샤의 한역(漢譯)에서 유래된 것이다. 해탈이란 풀 해, 벗을 탈, 문자 그대로 풀고 벗는 것이다. ‘벗어버림이란 반드시 벗는 대상을 가지고 있다. 벗음이란 무엇 무엇으로부터의 벗음이다. 그 벗음의 대상을 우리는 윤회(輪廻)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인도말로 삼사라’(saṃsāra)라고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윤회는 삼사라라는 고대 인도어, 산스크리트 어휘의 한역인 것이다. 이것은 영어로 보통 트랜스마이그레이 션’(transmigration), 혹은 휠 어브 리버쓰’(wheel of rebirth)라는 식으로 표현되고 있다.

 

윤회라는 말을 들으면 우리는 금방, ‘내가 고양이가 되었다가 소가 되었다가 개미가 되곤 한다지?’하고, 사후의 세계에 관한 매우 비과학적인 논설로 오해하기가 쉽다. 허긴 황하(黃河)문명의 매우 현실적이고 상식적인 세계관의 훈도를 받은 우리들에겐 이 윤회라는 생각은 얼핏 보기에 매우 생소한 것이다. 세계문명사의 지도를 펼쳐놓고 본다면 이 윤회라는 생각은 파미르고원의 동쪽의 사람들에게는 비교적 생소한 것이었지만, 파미르고원의 서남쪽으로 펼쳐지는 모든 거대한 문명권에는 공통된 인간 삶의 이해방식의 기저였다.

 

사람이 죽어서 천당간다든가, 지옥간다든가 하는 이야기는 우리주변에서 구태여 기독교를 들먹이지 않아도, 쉽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다. 즉 사후에, 인간의 영혼이 되었든 기()가 되었든 그 무엇이 지속된다는 것은 모든 고대인의 세계관, 우리가 흔히 무속(巫俗, 샤마니즘)이라고 부르는 원초적 세계관의 공통된 기저였다. 그런데 윤회의 가장 큰 문제는, 사자의 존재의 지속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바로 그 죽은 사람이 또 죽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죽은 사람이 야마(Yama, 閻魔) 신의 세계나 천당에서 타 사자의 영혼들과 재회하고 그곳에서 영원한 복락을 누리고 살면 좋겠는데, 그 사자의 복락조차 영속이 보장될 수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죽은 사람이 또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것이다. 죽은 사람이 또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그는 또 다시 인간세의 다른 생명체로 환생하게 되는가?

 

이러한 신비롭고 환상적인 이야기에 대한 끊임없는 상상의 논의는 지금 우리 과학적 세계관의 상식구조에 세뇌된 사람들에게는 최소한 명료한 해답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은 너무도 명백한 사실이다. 그래서 신앙적으로 불교관을 수용한 신도들에게는 스님들의 법어가 그냥 먹힐 수 있을지 몰라도, 최소한 상식적 대중들에게는 윤회 운운하는 스님들의 법문은 예수부활 운운하는 목사님의 설교 못지않게 설득력이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황하문명권의 사람들은 사후의 세계를 전제하지 않고서도 몇천년을 건강하게 살아온 위대한 경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의 시골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양치기의 모습. 이 평범한 사진은 인도문명의 복합적 성격을 잘 말해준다. 이 할아버지의 얼굴에서도 목자 예수의 모습을 읽을 수 있다면, 유목문화와 농경문화의 이분적 이해방식은 때로 허구적인 것일 수 있다.

 

 

생명의 원리로서의 물

 

 

그런데 한번 이렇게 생각해보자!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방앞의 정원에 나는 조그만 채마밭을 하나 가꾸고 있다. 봄이면 글을 쓰다 나가서 무우씨나 깻잎씨를 뿌리고 가꾸어 먹는다. 그런데 이것들은 왕성하게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자라지만 가을이 되면 결실을 맺고 씨를 맺는다. 그래서 내년 봄이 되면 또 그 씨를 뿌리게 된다. 최소한 내가 올해 우리집 정원 채마밭에 뿌린 씨와 내년에 뿌리는 씨 사이에는 분명한 공통점이 있다. 이것을 같은 씨라고 한다면, 그리고 그 씨를 보다 추상화시켜서 동일한 DNA구조의 지속이라고 생각한다면, 분명 이 씨는 윤회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즉 씨는 같은 씨이지만 매년 다른 모습으로, 다른 환경의 기후 조건에서 다른 체험을 향유하면서 윤회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식물의 윤회는 너무도 쉽게 과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동물의 윤회의 경우, 개체의 존속과 소멸, 그리고 지속을 어떠한 방식으로 설정하냐는 데는 제각기 문명마다 다른 세계관 속에서 설명이 가능하겠지마는, 인간의 윤회라는 것도 크게 말하면 이러한 대자연의 순환이라는 에코시스템(eco-system)의 틀에서 설명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윤회의 사상은 우파니샤드’(Upanisad, 비밀 모임이라는 뜻)라고 불리우는 일련의 문헌군, 그리고 마하바라타라는 대 서사시 등에 이미 명료하게 정착되어 있는 것이다. 이 문헌이 쓰여진 것은 반드시 불교의 발생 이전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대강 불교가 발생되기 이전 기원전 7~5세기에는 이미 정착된 내용이라고 간주되는 것이다.

 

인간의 출생과 죽음, 그리고 가을에 지는 낙엽과 봄철의 소생, 그런 것들을 고대인들은 분리해서 생각치를 않았다. 그들에게 중요했던 것은 이러한 잡다한 사상(事象)을 통괄하는 가장 기초적인 개념이나 추상적 속성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그 공통된 속성을 생명이라고 한번 이름지어 보자! 그러나 고대인들은 생명을 어떤 추상적 개념으로 생각하지를 않았다. 대자연의 온갖 모습을 지어내고 있는 어떤 물리적 기저, 질료 같은 것으로 생각했다. 생명 현상과 관련하여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질료로서 우리는 같은 것을 쉽게 생각해볼 수 있다. 여름의 뙤약볕에 말라죽은 초목에 비가 내리면 다시 생명이 움트고 초목은 무성하게 소생한다. 사막에서 말라 죽어가는 인간에게도 오아시스의 물 한모금은 생명을 가져다 준다. 즉 물은 생명 그 자체로서 인식될 수밖에 없었다.

 

생명원리로서의 수분은 식물과 더불어 인간에게 섭취되면 그것은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는 영양이 되는가 하면, 그것은 정자가 되어 모태로 들어가 새로운 생명을 잉태시킨다. 우리말의 ’()이라는 글자를 살펴보면 그 속에는 쌀()이 들어 있는 것이다. 쌀은 식물의 생명의 정화이며, 그것은 곧 인간의 몸에 들어와 또 다시 정자ㆍ정액이라는 새로운 생명의 정화를 만들어낸다. 즉 그것은 생명의 씨(bīja)로서 윤회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고대인도인들은 그것을 물이라는 생명의 변용(transfommation)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이 죽어 시체가 화장되면 수분은 연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게 된다. 이렇게 끊임없는 순환의 경로를 더듬어 가는 물은 달[]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달이 기울고 차는 것을 고대인들은 매우 신비롭게 생각하였고, 달을 천상의 물을 담는 용기로 파악하였다. 달에 물이 가득 찰 때가 만월이고, 찬 물이 다 흘러내리면 그믐이 된다고 해석하였던 것이다. 베다제식에 빼어놓을 수 없는 신적인 술[神酒] 소마(蘇摩, soma)가 달을 신격화한 월천(月天), 즉 소마데바(蘇摩提婆, Soma-deva)와 동일시된 것도, 바로 달이 신들이 마시는 소마를 담고 있는 용기라는 생각에서 유래된 것이다.

 

생명의 원리로서의 물은 달로부터 유출되어 지상으로 내려오고, 또 다시 지상에서 달로 되돌아가는 윤회를 되풀이하는 것이다. 사자의 영의 타계로의 편력, 그리고 타계에 있어서의 다시 죽음[再死]은 이와 같이 생명의 순환의 원리와 결합되어 갔다. 야마의 나라에서 다시 죽은 사자의 영은, 연기가 되어 하늘나라의 달에 도달한 물이 또 다시 비가 되어 지상에 강림하듯이, 다시 지상으로 귀환하게 되는 것이다. 차안의 삶과 피안의 삶이 순환적으로 교체하고, 삶과 죽음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이렇게 해서 윤회관은 형성되었던 것이다上山春平梶山雄一 編, 佛敎思想(東京 : 中央公論社, 1980), 中公新書 364, pp.135~138, ‘윤회와 업이라는 장을 참고했다.

 

 

 인도대륙은 거대한 평원이다. 인도의 농촌은 우리의 상상과는 달리 풍요롭고 아름답다. 이 허수아비는 생명의 윤회의 한 상징일까?

  

 

생명의 원리로서의 불과 기와 숨

 

 

윤회의 주체로서의 생명의 상징을 불[]로 볼 수도 있다. 한의학적 인체관에서 다루는 화()의 개념도 이러한 우주론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싸늘한 것은 죽음이다. 우리 몸이 살아있다는 것, 즉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체온 즉 불[]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불이 어떤 상태로 인체내에서 배분되어 있느냐에 따라 건강과 불건강이 결정된다. 모든 생명의 불은 결국 태양과 관련된다. 생명의 원리로서의 불은 태양으로부터 광선ㆍ맥관을 거쳐 인체내로 들어 갔다가, 사람이 죽게 되면 역의 경로를 거쳐 태양으로 환귀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불의 윤회사상도 인도인의 신체관이나 우주관에는 일찍 정착되었다. 이슬람 이전의 순수 페르시아 사상인 배화교(Zoroastrianism)의 불의 숭배의 제식의 배면에도 비슷한 세계관이 도사리고 있다.

 

윤회의 주체를 기()로 볼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기철학적 우주관이 형성될 것이다. 그러나 기철학적 우주관에서는 윤회의 주체에 대하여 일정한 아이덴티티(동일성)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전제가 있다.

 

윤회의 주체를 바람[]이나 숨[]으로 설정할 수도 있다. 우파니샤드의 중심개념인 아트만(ātman, )도 본시 ’(氣息)의 뜻에서 왔다. 신약성서에서 말하는 프뉴마(pneuma)도 바람, , 성령을 동시에 뜻한다. 이 아트만이나 프뉴마가 윤회의 주체로서 영원한 동일성을 유지한다는 생각은 불교의 무아(anātman)의 이론이 생겨나기 이전의 종교적 세계관을 지배하는 공통된 사유방식이었다. 이 세계는 끊임없이 생멸하지만 불사의 아트만은 존속하는 것이다. 마치 사마귀가 한 풀잎의 벼랑끝에서 다른 풀잎으로 옮겨가듯, 아트만은 하나의 신체를 버리고 또 하나의 신체로 끊임 없는 여행을 계속하게 되는 것이다上山春平梶山雄一 編, 佛敎思想(東京 : 中央公論社, 1980), 中公新書 364, pp. 141.에 비슷한 논의가 있다.

 

 

 인도인의 가장 성스러운 곳, 바라나시의 간지스 강의 석양, 윤회와 해탈이 모두 이 강물과 함께 흘러간다.

 

 

윤회란 무엇인가?

 

 

그런데 윤회는 고대인의 우주관(cosmology)을 이해하기 위한 과학적 논설이 아니다. 우리는 너무 종교와 과학을, 철학과 종교를, 그리고 신앙과 이성을 적대적으로 파악하는 데 익숙하여 있다. 이것은 후대의 서구 계몽주의 정신에 의하여 파악된 왜곡된 희랍정신에 그 원류를 두고 있다. 그러나 전 인류문명사에 있어서 이 한 조류를 제외하면, 모든 사상에 있어서 종교, 과학, 철학, 이런 것들은 대립을 일으키지 않는다. 결국 모든 과학적 성취도 그 궁극적 배면이나 그 최초의 동기에는 반드시 종교적 통찰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인도인들이 인간의 삶을 윤회하는 것으로 파악한 이유는 대체적으로 윤리적인 동기나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을 단순하게 그들이 우주의 과학적 실상을 추구한 결과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들의 윤리적 요청에 의하여 신화적으로 구성된 세계관의 산물이라고 보는 것이 보다 정당할 것이다. 물론 윤리적 요청은 해탈이라고 하는 종교적 목적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윤회의 사상이 본시 정복자인 아리안족 계통의 사상이었는지, 피정복자인 토착민인 드라비다족 계통의 사상이었는지도 사계의 분분한 논의가 있으나 확실치 않다. 그러나 윤회의 사상은 정복자인 아리안들의 구미에 매우 잘 맞는 것이었다. 즉 윤회의 사상은 피지배인의 고통스러운 삶을 숙명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데 일정한 효과를 발휘했을 것이다. 윤회의 사상은 염세론이나 숙명론 같은 세계관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내가 생각하기에, 윤회는 고()라는 개념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윤회하는 삶이 곧 고라는 것이다. 즉 고통스럽다는 것이다. 윤회하는 삶이 매우 즐겁고, 복락의 영원한 행복을 준다면 윤회를 벗어날려고 발버둥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다시 말해서 윤회 그 자체가 고통스러운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벗어나려는 해탈’(목샤)의 노력을 기울이게 되는 것이다. 윤회하는 삶이 고통스럽기 때문에 해탈이라고 하는 종교적 이상이 성립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우리가 흔히 불교의 제일명제처럼 외치는 일체개고(一切皆苦)라는 말은 하등의 불교적 창안일 수 없다. 지금 우리가 금과옥조처럼 받들고 있는 삼법인과 같은 고정문구는 초기불교문헌에서 찾아볼 수가 없다. 그것은 윤회를 설정하는 세계관에 있어서는 필연적으로 도출되는 지극히 평범한 언사일 뿐이다. 일체개고라는 말은 구체적으로 말하면 윤회의 굴레에 속해 있는 모든 삶이 고통스럽다는 뜻이다.

 

여기 우리가 싯달타의 세계인식을 지배한 주요한 개념으로서, 목샤(해탈), 삼사라(윤회)와 더불어 꼭 추가해야 할 말이 있다. 까르마(karma), 즉 업()이라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업이란 아주 간단히 말하면 인간의 행위(action)를 뜻한다. 중성 명사 까르만의 단수주격형인 까르마는 한다라는 의미의 어근으로부터 파생된 명사로서, 행위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 행위라는 것은 공간적으로 독립되거나 시간적으로 단절될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말에 보통 업을 업만으로 말하지 않고 꼭 업보’(業報)라고 말하는데, 이 업보라는 말에 있어서 보(), (action)은 반드시 일정한 결과(fruits)를 남긴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보만을 말할 때는 과보(果報)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즉 업이라는 개념은 행위가 남기는 여력이나 과보의 개념과 밀착되어 있기 때문에, 업을 업이라고만 말하지 않고 업보라고 말하는 것이다. 선업은 반드시 선보를 낳고, 악업은 반드시 악보를 낳는다는 생각은 싯달타 개인의 생각이 아니라 싯달타의 사유에 깔려있는 인도인 전체의 생각을 반영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오늘의 나의 삶의 고()ㆍ락()은 나의 지난 업의 보일 뿐이다.

 

그런데 내가 존속하는 한에 있어서 오늘의 나는 또 끊임없이 업을 짓고 있다. 행위를 아니하고 살 수가 없는 것이니까. 그렇다면 오늘의 나의 행위는 반드시 나의 미래의 존재방식을 결정하는 업보를 수반하게 될 것이다. 나의 현재의 선업은 미래의 낙과(樂果), 나의 현재의 악업은 미래의 고과(苦果)를 수반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칼하게도 나의 선업에 대하여 고과가 수반되고, 나의 악업에 대하여 낙과가 수반되는 현실의 세태를 우리는 종종 목격할 수가 있다. 이렇게 되면 선업-낙과, 악업-고과의 필연적 인과의 고리가 무너져 버릴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인과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나의 현존재를 과거존재나 미래존재로부터 분리하지 않는 전체적 연속성이 필요하게 된다. 바로 이 전체적 연속성이 나의 아트만의 윤회이다. 나의 선업의 보장은 반드시 언젠가 윤회의 굴레 속의 미래세(未來世)에서라도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티벹 말로 인과를 모르는 놈’(ley day sam mi shi khen)이라고 하면 아주 상스러운 욕설이 된다고 한다. 나의 현존재의 모습을 순간순간 과거와 미래의 전체적 인과의 고리 속에서 파악할 수 없는 인간에게는 구원이란 영원히 있을 수 없다는 뜻일 것이다.

 

 

 인도인은 간지스 강변에서 죽으면 해탈이 보장된다고 믿는다.

 

 

업에 대한 최대의 왜곡

 

 

그런데 주역(周易)이라는 중국경전의 곤괘(坤卦) 문언(文言)에 보면 이런 말이 있다.

 

 

선행을 쌓는 집에는 반드시 훗날에 경사가 있고

악행을 쌓는 집에는 반드시 훗날에 재앙이 있다.

積善之家, 必有餘慶;

積不善之家, 必有餘殃.

 

 

주역』 「문언의 말은 불교와는 전혀 다른 세계관에서 성립한, 윤회와는 전혀 관계없이 이루어진 고대중국인의 역사의식을 나타내는 윤리적 명제이다. 그렇지만 이 유명한 주역의 말은 곧 불교의 업보론을 나타내는 중국적 명제로서 중국대승불교의 역사를 통하여 줄곧 인용되어 왔다.

 

()
必有
여경(餘慶)
불선(不善)
必有
여앙(餘殃)

 

 

-여경, 불선-여앙이 반드시’()라는 부사로 연결되어 있다는 이 명제의 사실은 그것이 어떠한 시공에서 일어나든지 간에 불교적 업보론과 동일한 연쇄를 나타내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 이 주역의 세계관은 전혀 36도와 같은 윤회적 타계(他界)를 전제하고 있지 않다. 이것은 윤회를 전제로 하지 않은 역사적 시공간의 연속성만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중국인들은 실제로 인도인의 까르마사상을 이 주역의 한 구절 속에서 이해하고 용해하고 또 곡해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놓쳐서는 아니 될 하나의 단어는 적선지가’(積善之家)’()라는 단어다. 즉 적선ㆍ적불선의 주체가 라는 집단으로 되어있는 것이다. 즉 우리말로 집안이라는 의미가 되어있는 것이다. 영어로 말하면 업보나 업보로 인한 윤회의 주체가 인디비쥬알(individual)이 아닌 패밀리(family)가 되어있는 것이다. 이것은 중국의 대승불학에서 일어난 인도의 까르마사상에 대한 최대의 왜곡이다. 나의 행위는 철저히 나 개인에 속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의 업에 대한 나의 보도 철저히 나 개인의 책임이다. 그러나 우리 동아시아 문명권의 사람들은, 특히 중국인과 한국인들은 업을 집안덕을 보는 것으로 생각했다. 즉 부모가 공덕을 잘 쌓으면 자연히 그 공덕의 덕택을 자식이 볼 수 있게 되고, 또 자식이 공덕을 잘 쌓으면 부모의 공덕 또한 덩달아 높아진다. 그리고 이러한 공덕의 범주는 형제자매간, 일가친척, 사돈의 팔촌까지 확대되어 나간다. 즉 한 업의 보에 수 없는 꼽사리꾼들이 끼어 들게 되는 것이다. 지금도 대학입시철이 되면 자식의 합격을 빌기 위해 절깐에 적선을 하고 공덕을 쌓으러 오는 보살님들의 발길로 절문턱이 닳아 빠진다. 그렇지만 자식의 합격은 오로지 그 자식 개인의 업의 과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며 부모님의 보시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심청전의 이야기도 대강 이러한 업에 대한 오류적 발상에서 생겨난 문학적 상상이다. 심청이가 임당수(臨塘水)에 빠진 것과 심봉사의 개안(開眼)은 전혀 무관한 사태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발상은 윤회의 주체를 가()로 설정하고 그 가 속에서 이루어지는 효()를 자비행으로 생각한 동양인의 사유체계에서는 전혀 어색한 것이 아니다.

 

 

 

 

체념적인 전생의 업보

 

 

업의 사상이 얼마나 치열하고 무서운 개인의 윤리를 요구하는가에 대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예로써 새삼 새로운 각성을 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슈퍼마켓에 갔다가 선반에 있는 물건을 슬쩍 했다고 한번 가정해보자! 그런데 운좋게도 폐쇄회로 텔레비젼에 걸리지도 않았고, 아무도 본 사람도 없을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 완벽하게 들키지 않았다. ‘물건을 슬쩍 했다는 사태는 사실 하나의 무형의 이벤트이며, 들키지만 않는다면, 파도가 일었다가 잔잔해진 물처럼 전혀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그리고 영원히 망각될 수도 있다.

 

그러나 물건을 슬쩍 했다는 사태는 분명한 나의 행위다. 즉 나의 까르마다. 그런데 이 까르마는 앞에서 말했지만 반드시 보()를 수반한다. 이미 저질러진 나의 까르마는 누가 보든지 안 보든지, 들키든지 안 들키든지, 하나님께서 지켜보시든지 안 보시든지를 불문하고, 반드시 그 자체로 과보를 동반한다. 그리고 이 과보는 당대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윤회의 생을 통하여 영속되는 것이다.

 

똑같이 운좋게, 아무도 모르게 살인을 했다고 하자! 결국 아무도 모르는 전혀 일어난 적이 없었던 사건이 되었다! 그러나 그 당사자의 업은 기나긴 억겁 년의 윤회를 통하여 그 당사자 개인의 과보로 영원히 따라다닐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식스 센스(The Sixth Sense)의 꼬마(오스먼트 분)에게 나타나든지, 누구에게 나타나든지 반드시 그 업보는 드러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인도사상이 말하는 업보의 철칙이다.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아리따운 여인의 몸매를 투시하며, 샅샅이 훑어내리고 빨개 벗기고 음탕한 생각을 잠깐 했다고 해보자! 이것은 아무도 듣도 보도 못한 오로지 나 개인의 상상 속에서 일어난 까르마이지만, 벌써 나는 의업(意業)을 저지른 것이다. 업이란 몸으로 저지르는 신업(身業), 말로 저지르는 구업(口業)ㆍ어업(語業), 그리고 생각으로 저지르는 의업(意業), 이 모두가 나에게 보를 수반하는 까르마인 것이다. 그리고 겉으로 드러나는 표업(表業)만이 업이 아니라,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무표업(無表業)도 다 업인 것이다.

 

윤회는 왜 있게 되는가? 윤회는 바로 우리의 업 때문에 있게 되는 것이다. 윤회의 소이연이 바로 업인 것이다. 나는 앞서 말했다. 윤회는 윤리적인 동기나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윤회는 업 때문에 있다. 아트만은 업의 기억을 가지고 끝도 없는 지루한 여행을 떠난다. 오늘 나의 현세의 윤회의 현실은 나의 과거의 업 때문이다. 우리는 이 업의 사상을 과거와 연결시켜 생하면 결정론이나 숙명론적인 사유에 함몰되기 쉽다. 한국인의 일상언어 속에서 업보라는 말은 그러한 숙명론적, 즉 체념적 냄새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불가항력적인 어려운 일이나 비극적인 상황에 휘몰렸을 때 흔히 이와 같이 말하곤 한다.

 

이게 다 내 전생의 업보일세!”

 

까르마는 과연 이러한 체념을 위한 수단일까?

 

 

 보드가야 쪽에서 본 나이란쟈나 강과 그 건너 우뚝 서있는 전정각산

 

 

업의 새로운 이해

 

 

싯달타라는 청년의 사유의 혁명은 바로 이러한 숙명론적이고 결정론적인 까르마를 자유의지론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것으로 전환시켰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서 까르마를 윤리적 주체로서의 나의 자각의 계기로서 심화시킨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업의 전환은 최소한 윤리적 측면에서는 싯달타 뿐만 아니라, 챠르바카(Cārvāka 斫婆迦, 順世派) 쾌락주의자나 쟈이나교의 마하비라와 같은, 싯달타 당대의 모든 사상가들의 공통된 견해였다. 현세에 있어서의 나의 업이 나의 미래의 생존의 모습을 결정한다고 한다면, 나는 주체적으로 윤리적 행위, 즉 선업을 통하여 나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오늘의 나의 생존이 과거의 업의 결과라 해도, 그것은 체념이 아닌 끊임없는 자각과 반성의 계기를 심화시키는 것이며, 우리는 나의 업으로 인하여 생겨날 미래의 모습에 대한 희망 속에서 오늘의 나의 행동을 주체적으로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즉 업이 있기에 인간은 선해질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업은 구원한 미래에 대한 기대 속에서 내가 현세적으로 윤리적 행위를 할 수 있게 만드는 윤리적 근거이다. 이것은 뭐 대단한 지식인에 대한 멧세지가 아니라, 윤회를 믿는 평범한 선남선녀에게 던지는 희망이다. 미혹[]과 번뇌에 기초한 업() 때문에 고통[]스러운 생존이 반복된다. 이 혹()과 업()과 고()의 순환적 인과고리를 불교용어로 업감연기(業感緣起)라고 부른다. 우리는 바로 업으로 인한 끊임없는 고통스러운 생존이 있기 때문에 바로 이 고통스러운 생존을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으로부터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바로 업을 통하는 길밖에는 없다.

 

오늘의 나의 윤리적 결단으로 나의 미래를 개척해나가는 것이다. 비록 수드라(sūdra)나 불가촉천민(untouchables, harijan)으로 태어났다 할지라도 선업을 쌓음으로써 미래에는 더 훌륭한 인간으로 태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업으로 인해 윤회가 있고, 윤회가 있기에 해탈이 있을 수 있다. 해탈의 본래적 의미는 업의 윤리적 맥락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내가 200218일 나이란쟈나(Nairañjanā, 尼連禪河, 니련선하 혹은 니련하로 한역됨) 강을 처음 쳐다보았을 때 나의 머리를 스치는 단상들은 이러한 것들이었다. 내가 지금 말한 목샤, 삼사라, 까르마라는 세 개의 기둥은 이 강에서 목욕을 했을 35세의 청년 싯달타에게 주어진 일상적 가치였다. 그것은 그 인도청년에게 선택된 가치가 아니라, 그가 단순히 인도인이었기에 주어져 있던 가치였다. 다시 말해서 그러한 그의 삶의 가치는 주체적인 선택을 통해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문화적으로 주어진 매우 일상적인, 보편적인 가치였다.

 

우리는 인도라는 문화적 맥락을 빼놓고, 고타마 싯달타가 마가다말을 했으며, 산스크리트어나 팔리어를 이해했을 역사적 인물이라는 사실을 빼놓고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이 그의 창안이며, 불교 고유의 것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그에게 있어서 해탈의 지향이나, 고행의 감내는 당대의 뜻있는 청년들이 행했던 일상적 체험이었던 것이다. 싯달타라는 청년은 이러한 일상적 체험에 만족할 수 없었다. 그는 그에게 주어진 일상적 가치를 전혀 새롭게 해석해내야만 했다. 싯달타를 통한 불교라는 새로운 종교운동의 출발은 바로 인도라는 문화적 가치의 혁명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혁명은 오늘날까지도 인도사회에 수용이 되고 있질 않은 것이다. 싯달타의 역사는 끊임없는 혁명과 좌절, 영광과 오욕의 역사였다.

 

이러한 혁명의 최초의 계기가 바로 고행의 극단에서 깨달은 중도(中道)의 자각이었다

 

 

 싯달타의 대각의 땅, 보드가야로 가는 길

 

 

부록 1.1. 암송작업의 체계화

 

 

붓다의 생애에 붓다의 입에서 나온 말들을 경전에서 추적하는 작업은 지극히 어렵다. 예수가 아람어(Aramaic language)라는 당대 팔레스타인 지역의 토속말을 한 사람이라면, 붓다 또한 지금의 비하르 지역(간지스강 중류지역)의 통속어인 마가다어(Magadha language)를 말했던 사람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예수의 아람어 이야기가 최초로 기록된 것은 코이네(κοινὴ)라는, 고전 희랍어가 대중화되고 보편화되면서 생겨난 공공언어였다. 마찬가지로 붓다의 이야기가 기록된 것은 산스크리트어나 서북인도의 팔리어, 그리고 다양한 쁘라끄리뜨어(Prākrit languages, 통속어)로 전승된 것이다. 그리고 고대인도는 양피지나 종이와 같은 필기도구가 발달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애초에 인간의 언어를 문서로 남기는 것에 대한 의식이나 전통이 없었다. 그것은 인간의 앎의 대부분이 종교적 비전의 지식의 성격을 지닌 것이었으며 따라서 그것은 인간의 두뇌작용인 암송이라는 기능에 의하여 전승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그리고 이러한 전승은 그들의 계급의식, 선민의식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따라서 불타의 이야기가 결집(結集)되었다 하는 것은 모두 암송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암송작업을 체계화하고 정리하고 종합하는 것이었다. 대체적으로 불타의 사후 사오백 년 간은 문자화되는 작업은 별로 없었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그러나 암송의 전승도 우리가 생각하는 문헌의 전승 못지 않게 정확도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예수를 알려면 우리가 신약성서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듯이, 붓다를 알려면 우리는 붓다의 말을 기록한 성경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붓다의 성경은 암송자들의 기억을 시각화한 것인데, 이것은 대체적으로 세 가지 종류로 대별된다. 그 하나는 스리랑카로 전수된 팔리어삼장이며, 하나는 중국으로 전수된 한역대장경이며, 또 하나는 티벹으로 전수된 티벹장경이다.

 

암송자들이 시각화한 붓다의 성경
스리랑카에 전수 중국에 전수 티벹에 전수
팔리어삼장 한역대장경 티벹장경

 

 

우리는 불교성전이라 하면 무조건 팔만대장경을 연상하기 쉽지만, 이 대장경이라고 하는 것은 후한말에서 시작하여 위진남북조시대, 수ㆍ당대를 통하여 성립한 것이며 그것은 이미 출발 자체가 불교의 역사에서 보자면 매우 후대의 것이며, 최소한 대승불교의 성립이후의 사건이다. 게다가 한역(漢譯)이라고 하는 무지막지하게 난해한 작업, 전혀 다른 두 언어 사이의 전사작업(傳寫作業)은 엄청난 왜곡을 수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우리가 한문으로 된 불전을 읽을 때는 그것이 이미 중국인들의 마음 속에서 중국화된 중국불교의 결실이라는 전제 하에서 세심한 문헌비평(text criticism)의 작업을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 소승ㆍ대승이라고 하는 매우 혼동스러운 용어 때문에 불교의 역사적 실상이 왜곡되기 쉽고, 소승비불설(小乘非佛說)이니 대승비불설(大乘非佛說)이니 하는 잡론까지 횡행하기 쉬우나, 내가 생각하기에는 소승불교는 초기부파불교 정도로, 대승불교는 보살운동 이후에 생겨난 대중불교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보다 역사적 실상에 접근한다고 판단되는 것이다. 일본학자들에 의하여 근본불교, 원시불교, 초기불교 등의 말이 쓰여지고, 영어로는 fundamental Buddhism, primitive Buddhism, original Buddhism, early Buddhism, sectarian Buddhism 등의 말이 쓰여지는데, 이것은 기독교교회사의 초기시대를 규정하는 개념적 논의와 비슷한 것이다. 이것은 사도 바울의 선교활동시대로부터 AD 4세기의 알렉산드리아 27서 결집 이전의 시대를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느냐는 문제와 상통하는 것이다.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기독교 공인 이후의 로마기독교를 대승기독교라고 한다면, 그 이전의 소아시아 초기기독교를 소승기독교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좀 더 정밀한 논의가 필요하다.

 

 

 

 

부록 1.2. 초기불교의 흐름

 

 

붓다의 사후 100년경 바이샬리(Vaiśalī)에서 소위 2차결집이 이루어지는데, 이때 불교교단 내의 사소한 규칙의 해석의 문제, 예를 들면 구걸해온 소금을 좀 축적해두어도 되느냐? 밥 먹는 시간을 좀 느슨하게 해도 되지 않느냐? 또는 깨달은 자라 해도 무지가 완전히 소멸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등등의 문제를 두고 보수적인 정통성을 그대로 고집하려는 상좌부(上座部)그 회의에서 위에 앉은 원로들이었을 것이다. 팔리어로 Theravādins, 산스크리트어로 Sthaviravādins라고 한다와 보다 대중적인 입장에서 느슨하게 해석하려는 승가내 진보적인 성향의 사람들인 대중부(人衆部, Mahāsāṃghikas) 사이에서 의견의 차이가 생겨나, 교단이 분열하게 되는데, 이 분열을 우리는 근본분열이라고 부른다. 이 근본분열 이후 불교는 많은 지파분열을 거듭하면서 부파불교시대로 진입하게 되는 것이다.

 

20세기초 일본학자들에 의하여 초기불교사를 바라보는 시각에 관한 여러 명칭이 생겨나서 혼동이 있을 수가 있는데, 그 명칭들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역사적 싯달타가 득도 후에 설법한 시기를 45년간으로 잡는다면, 이 붓다 살아 생전의 시기의 불교를 보통 개념적으로 근본불교’(根本佛敎)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근본불교는 가장 순수한 붓다 자신의 입에서 나온 가르침의 불교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불타 자신의 시대에는 정확하게 승가의 개념이 성립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불타의 가르침은 그냥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 당시는 정확하게 불교도라는 말이 성립할 수 없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순수하게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붓다의 교설은 별로 남아있지 않다. 현존하는 모든 경전은 이미 종단적 성격이 가미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불타의 사후로부터 근본분열을 거쳐 부파불교가 성립하기까지의 시기를 보통 원시불교’(原始佛敎)라고 부른다. 부파불교의 성립시기를 보통 아쇼카왕시대 전후, 그러니까 제3차 파탈리푸트라 결집시점을 중심으로 생각한다면, 원시불교는 아쇼카왕 이전까지의 불교에 해당된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그러나 실상 근본불교와 원시불교는 정확하게 구분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근본불교든지 원시불교든지 모두 그 자료가 부파불교시대에 성립한 자료를 통해서 추적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근본불교이고 저것이 원시불교라 할 수 있는 기준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숫타니파타는 아쇼카 결집 이전에 성립한 것이 확실시되는 희유의 경전이다. 따라서 통상 근본불교는 원시불교개념 속에 포섭되는 것이다. 우리가 이 원시불교를 추적하는 자료는 팔리어삼장 중, 경장(經藏)과 율장(律藏)이다.

 

붓다가 입멸(入滅)한 직후에 붓다를 생전에 모신 뛰어난 제자들 500명이 모여 ()과 율()’을 편집했다고 하는데, 이 중 법(, dhamma)은 아함경이 된 것이고, (, vinaya)은 율장(律藏)이 된 것이다. 이 전승이 부파불교 상좌부로 계승되어 있던 것이 오늘날 팔리어삼장 중 경장과 율장 부분이 된 것이다.

 

그리고 부파불교가 완성된 시기, 그러니까 북전(北傳)불교에서 말하는 소승이십부(小乘二十部)가 성립된 시기를 기원전후경으로 잡는데, 이 부파불교는 삼장 중에서 경ㆍ율을 제외한 논장(論藏)에 그 특색이 드러나 있다. 원칙적으로 경ㆍ율은 모든 부파에 공통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한 붓다의 법(산스크리트어 dharma, 팔리어 dhamma)에 대한(abhi) 설명주석을 아비달마(阿毘達磨)라 하는데 이 아비달마가 논장이며, 이 논장의 성립은 부파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부파가 완성되어가는 시기는 또 보살 중심의 대중운동이 드러나는 시기와 겹치게 된다. 그리고 대승불교운동은 이 부파불교와의 공방 속에서 자라난 것이며, 부파불교는 대승운동으로써 종료되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발전해나간 것이다. 따라서 부파불교와 대승불교는 시기적으로 엄밀하게 나눌 수는 없다. 우리가 보통 소승이라고 부르는 것은 대승불교의 입장에서 본 부파불교를 지칭한 것이다.

 

나는 거칠게 대승불교출현 이전의 불교를 총괄하여 초기불교(Early Buddhism)라 칭한다. 물론 이 초기불교의 개념 속에는 근본불교, 원시불교, 부파불교, 소승불교의 개념이다 포괄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하위적 구분개념도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초기불교
근본불교 원시불교 부파불교= 소승불교

붓다의 성도
 
붓다의 죽음
 
아쇼카 결집

삼장의 완성

 

 

 

부록 1.3. 팔리어삼장에 대해

 

 

소승의 상좌부계열에서 성립한 결집장경으로 삼장(三藏)을 갖춘 유일한 경전이 소위 팔리어삼장인 것이다. 보통 우리가 대장경을 영어로 트라이피타카’(Tripitaka)라고 하는데 이것은 세 개의 바구니라는 팔리어에서 유래된 것이다. 세 개의 바구니란 무엇인가? 그것은 율()과 경()과 논()을 말하는 것이다. 율이란 승가를 유지하면서 생겨나는 여러 규칙이나 계율에 관한 부처님의 말씀이다. 경이란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리를 설파한 내용들을 담아놓은 것이다. 논이란 부파불교시대로 들어가면서 이 부처님의 말씀에 대하여 후대의 제자들이 논구한 주석이나 독립논설이다. 물론 논은 경이나 율에 비해 그 권위가 떨어질 것이지만, 팔리경전의 특징은 삼장의 체제를 정확하게 유지했다는 것과 후대에 성립한 대승경전이 일체 삽입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완벽하게 소승부파불교시대의 언어만을 담아놓은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체제로서 문자화된 그 원형의 성립은 BC 29년경 스리랑카의 밧타가마니 아바야왕의 통치시기로 추정하는데, 물론 그 삼장의 내용 자체는 매우 초기로부터 축적적으로 성립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우리가 보통 불교의 성전하면, 한역대장경을 생각하기 쉬우나, 그것은 후대의 잡설이 심하게 찬효된 것이며, 사실 진짜 초기불교의 성경(the Bible)팔리어삼장밖에는 없다.

 

팔리어삼장(Tripitaka)
() () ()
승가를 유지하면서 생겨나는 여러 규칙이나 계율에 관한 부처님의 말씀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리를 설파한 내용들을 담아놓은 것 부파불교시대로 들어가면서 이 부처님의 말씀에 대하여 후대의 제자들이 논구한 주석이나 독립논설

 

 

중국이나 조선에서 인도로 경전을 구하러 간 수행승(入竺僧)들을 삼장법사’(三藏法師, 현장玄奘과 같은 사람들)라고 부르는 것도, 이들이 구하고자 한 것이 바로 팔리어삼장이기 때문인 것이다. 이 팔리어삼장이 오늘날까지 완벽하게 보존되어 우리가 그 원전형태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기적과도 같은 사실이다.

 

팔리어삼장중 핵심부분인 경장(經藏)다섯 부()로 되어 있는데, 모음집이라는 뜻을 지니는 부를 팔리어로는 니까야(nikāya)라고 부른다. 이 니까야는 장부(長部, Dighanikāya), 중부(中部, Majjhimanikāya), 상응부(相應部, Saṁyuttanikāya), 증지부(增支部, Aṅguttaranikāya), 소부(小部, Khuddakanikāya)의 다섯 니까야로 되어있는데, 바로 이 다섯 니까야에 해당되는 대장경 부분이 산스크리트에서 한역으로 전승된 소위 아함이라고 하는 것이다.

 

아함을 보통 중국에서 아함경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우리는 아함경이 한 권의 책이름인 것처럼 알고 있지만, 아함이란 본시 아가마(āgama)의 음사일 뿐이며, 그것은 우리에게 전해져 내려온 것혹은 그러한 가르침의 모음이란 뜻이다. 즉 아함이란 말은 전승(傳承)의 뜻으로, 고타마 싯달타의 직설(直說)로 여겨지는 경전이라는 뜻이다.

 

사실 순수한 초기불교의 경장은 대장경에서 長阿含』 『中阿含』 『雜阿含』 『增一阿含四部四阿含밖에 없다. 이 네 아함이 팔리어 경전의 다섯 니까야에 상응되는 것이다. 그러나 현존하는 다섯 니까야는 남방상좌부에서 성립한 것이며, 한 부파의 경장(經藏) 전승이 고스란히 보존된 것으로는 유일한 것이다. 산스크리트원전은 사라지고 한역된 것만 남은 44아함은 남방상좌부 외의 법장부(法藏部, 장아함), 유부(有部) 계열(중아함, 잡아함), 대중부(大衆部) 계열(증일아함)에서 성립한 것으로 분명히 그 전승의 루트가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이 양자를 대조해보면 동일한 모태적 자료의 공통성을 지니고 있다. 동아시아문명권에서는 아함을 하찮은 소승경전이라 하여 대승불교의 입장에서 폄하했을 뿐 아니라, 중요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에 걸쳐서 팔리어삼장이 남전대장경으로서 소개되면서 비로소 아함의 진가가 드러났을 뿐 아니라 이 44아함과 5니까야의 양전(兩傳)을 대조연구함으로써 원시불교의 진의를 파악하는 데 혁명적인 전기를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이다.

 

 

 

 

부록 1.4. 한역대장경과 티벹장경

 

 

팔리삼장, 한역대장경, 티벹장경은 제각기 특색이 있다. 팔리삼장의 오리지날 한 가치는 아무리 부언하여도 그 위대성을 다 드러내기에 부족하다. 이 팔리삼장의 간결성과 오리지날리티에 비한다면 중국의 한역대장경은 초기불교를 넘어서서 대승경, 대승률, 대승론 등 그 외로도 잡다한 형식을 다 포괄했을 뿐 아니라 인도인의 저작뿐이 아닌 중국인, 한국인의 저작까지 포함하여 매우 잡다하고 번쇄하고 방대하다. 전기, 목록, 여행기 등의 장르까지 다 들어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2세기로부터 1천여 년에 걸친 번역이 중복되는 상황에도 개의치 않고 있는 그대로 고스란히 들어가 있으므로 그 역사적 전개를 파악하는 데는 매우 중요하다.

 

대장경의 편찬자들은 엄밀한 의미에서 삼장(三藏)의 체계를 고수할 수 없기 때문에 삼장이라는 말을 못 쓰고 대장경’(大藏經), 혹은 일체경’(一切經)이라는 말을 사용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대장경은 중국의 독자적 불교를 이해하는 데 불가결의 자료일 뿐 아니라 잡동사니가 모조리 들어가 있는 쓰레기 바구니 같은 것이라서 들쑤셔 내면 낼수록 무궁한 자료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러나 그 번쇄함과 장황설은 때로 선종이 왜 불립문자를 외쳐야만 했는지를 깨닫게 해준다. 한역장경 중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신빙성이 높고 체계가 짜임새 있는 것이 바로 우리나라 합천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는 고려판 대장경이다. 일본의 大正新修大藏經은 이 고려판을 저본으로 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티벹장경은 우선 삼장의 체제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칸규르(Kanjur, 甘殊爾)와 텐규르(Tanjur, 丹殊爾)라는 2大部로 구성되어 있다. 전자를 불설부(佛說部), 후자를 논소부(論疏部)라 보통 명하는데, 불부(佛部)ㆍ조사부(祖師部)라 역하기도 한다. 대체적으로 칸규르는 경장(經藏)에 텐규르는 논장(論藏)에 해당된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러한 개념규정에 정확히 대응되지는 않는다. 율장(律藏)은 칸규르와 텐규르에 분속되어 있다. 칸규르에는 율()의 기본 전적이 들어가 있고, 텐규르에는 그것에 관한 주석류들이 수록되어 있는 것이다. 티벹장경은 내용성립시기 자체가 팔리삼장이나 한역대장경에 비해 매우 늦으며 따라서 후대의 사라진 인도인의 논서들이 상당수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 그것은 대부분 산스크리트어로부터 번역된 것인데, 7세기경부터 시작하여 9세기에는 대부분이 번역되었으며, 13세기에 칸규르ㆍ텐규르 2의 체계로 처음 목판인쇄되었다(나르탕古版, Snarthaṅ). 한역과 공통된 경론(經論)551에 지나지 않으며 그 나머지 부분 중 3,000이상이 밀교(密敎) 관계이다. 이것은 인도불교의 후대변천양상을 잘 말해주는 것이다. 한역이 의역이라면 티벹역은 산스크리트어에 대응하는 축어적 직역의 성격을 지닌다. 티벹고전문자 자체가 불전번역을 위하여 산스크리트를 모방하여 만들어진 것이며, 또한 티벹은 중국과는 달리 자기자신의 고전문화전통을 가지고 있질 않았다. 그래서 티벹어역으로부터 산스크리트원전을 복원하는 작업은 상당한 정확성을 과시한다. 따라서 산스크리트원전이 유실된 경론의 연구에 티벹장경은 매우 유용하다. 그리고 티벹장경에는 원칙적으로 티벹인들의 저작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텐규르에는 티벹인의 저작이 약간 포함되어 있기는 하다.)

 

붓다의 전기자료로서 가장 신빙성이 높은 것은 역시 팔리어삼장 중에서 경장과 율장에 수록되어 있는 파편들일 것이다. 그런데 학자들 간에 이견이 있으나 대체적으로 율장계열의 전기파편(biographic fragments)이 경장계열의 전기 파편보다 더 오리지날하다고 간주되고 있다. 왜냐하면 경장에 나타나는 전기 파편은 특정한 교설을 설명하기 위하여 자유롭게 전기적 사실을 날조하거나 그 맥락에서 변조시키는 욕구가 강하게 노출되어 있는 반면, 율장에 나타나는 전기파편은 계율을 가르치기 위하여 관련된 붓다의 삶의 체험이 설하여지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자상한 교사로서, 초전법륜으로부터의 붓다의 목회의 초기체험과 그 속에 반영되어 있는 대각과 관련된 사건들이 담담하게 설하여 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경장의 전기파편은 붓다의 전생애(前生愛)의 이야기인 본생담, 자타카(jātaka)에 많은 강조점이 놓여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팔리삼장 중 율장 속에 붓다전기자료를 많이 포함하고 있는 경전이, 바로 건도부(犍度部, Khandhaka) 속에 편집되어 있는 마하박가(Mahāvagga), 대품(大品)이다. 마하박가는 붓다의 전기자료로서 비록 완정한 것은 아니지만, 붓다의 입에서 나온 말을 추정하는데 있어서 최고(最古)층대의 자료를 제공하는 문헌임에는 틀림이 없다.

 

 

 

 

부록 1.5. 중도에 관한 인용부분

 

 

여기 중도’(中道)에 관하여 인용된 부분은 붓다가 사르나트에 와서 다섯 비구를 만나 설법한 초전법륜 중에서 과거를 회상하며 중도의 자각을 설명하고 있는 부분이다.

 

팔리어삼장은 근세에 불교남전지역에 유럽인들의 제국주의적 손길이 뻗치면서 그들 유럽인학자들의 손에 의하여 새롭게 정리되고 그 유니크한 가치가 세계에 소개되기 시작했다. 1824년 클러프(B, Clough)에 의하여 최초의 팔리어문전이 출판되었고, 1826년 뷔르누프(E. Burnouf)와 랏센(Ch. Lassen)이 공동으로 팔리어연구를 출판하였다. 그리고 1855년 파우스뵐(V. Fausböll)이 학술적 가치가 있는 최초의 원전으로서 법구경(法句經)(Dhammapada)을 출판함으로써 세계 학술계에 일대 충격을 던졌다. 법구경(法句經)은 팔리삼장 중 경장에 분류되어 있는 다섯 번째 니까야인 소부(小部) 속에 들어있는 것이다.

 

1870년대 불후의 노작인 팔리어사전(A Dictionary of the Pali Language, 187073)이 칠더즈(R. C. Childers)에 의하여 간행되고, 1881년에는 리즈 데이비즈(T. W. Rhys Davids)가 런던에 팔리성전협회(Pali Text Society)를 설립하여 팔리어 삼장의 원전출판에 착수하기 시작하였다. 우리가 보통 ‘PTA이라고 하는 것은 이 런던의 팔리성전협회 판본을 지칭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팔리어삼장은 1935년부터 1941년까지 남전대장경(南傳大藏經)이라는 이름으로 일본학자들(高楠博士功績記念會纂譯)에 의하여 번역ㆍ출간되었다. 6570책의 방대한 분량에 이르고 있는데 팔리어삼장과 약간의 장외전적(藏外典籍)의 완역이다. 사계의 대석학들의 매우 치밀한 작업이다. 그래서 우리는 현재 팔리어를 모를지라도 일본어를 통하여 손쉽게 이 팔리어삼장의 문을 두드릴 수 있다.

 

그런데 이 삼장 중 마하박가는 우리나라에서도 최봉수선생에 의하여 완역되었다. 일본어 번역에 의존치 않은 팔리어 직역이며 그 명쾌함과 유려함이 일역에 비해 손색이 없을 뿐 아니라 우리 가슴에 훨씬 잘 와 닿는다. 나는 남전역과 최봉수역, 이 양자를 절충하여 인용하였다. 내가 인용한 부분은 大品第一大犍度, 初誦品의 여섯 번째 初轉法輪중 제17단락이다.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간략히 인용하겠다. 대품1-6-17, 남전대장경3-18(318). 그런데 최봉수 선생의 마하박가는 번호가 좀 다르다. 남전대장경PTA본에 근거한 반면, 최봉수의 마하박가1961년 인도에서 나온 NDP(Nalanda Devanagari Pali Grantamala)에 근거했기 때문이다. NDP본은 미얀마본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PTA본과 내용상의 대차는 없다. 최봉수 옮김, 마하박가1-7-1(서울 : 시공사, 1998), 1, p.59.

 

그리고 특기할 사실은 한국에도 한국빠알리성전협회(Korea Pali Text Society)1997년에 설립되어 지속적으로 팔리어삼장의 번역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국대학교ㆍ독일 본대학에서 학위과정을 마치고 스리랑카 빠알리 불교대학 교수까지 역임한 전재성박사에 의하여 잡아함경에 해당되는 쌍윳따 니까야(Sanṃyutta-Nikāya) 전체가 11권으로 번역, 이미 출간되었다. 전재성 역주, 빠알리대장경, 쌍윳따 니까야, 11, 서울 : 한국빠알리성전협회, 1999~2002. 텍스트는 PTA본을 썼다. 정확한 원전지식의 기초 위에서 착실한 번역을 시도하고 있는 전재성박사의 고독한 작업에 경의를 표한다. 의식있는 독자들의 성원을 빈다. 쌍윳따 니까야5부 니까야 중에서도 가장 고층대의 모음집이며 역사적 붓다의 리얼한 모습이 생생하게 드러나 있다. 아카누마 치젠(赤沼智善)은 그 소박한 내용의 느낌이 공자의 논어와도 같다고 평했는데 적중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중도와 뉴 웨이

 

 

중도란 무엇인가? 가운데 길인가? 가운데 길이란 무엇인가? 고통을 위한 고통은 결국 목샤(mokṣa, 解脫)라고 하는 자신의 출가의 본연의 목적을 망각한 어리석은 소치였다. 고행이 나를 벗어버리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윤회의 미궁 속으로 빠져 들어가게 만드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관능이 이끄는 대로 애욕의 기쁨에 탐닉하여 욕망과 쾌락의 늪으로 빠져 들어갈 것인가?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두 가지 극단이 있으니 출가자들은 이를 가까이 해서는 아니 된다. 그 두 가지란 무엇이뇨? 하나는 모든 애욕에 탐착하는 것을 일삼는 것이니, 그것은 열등하고 세속적인 범부의 짓이다.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되는 바가 없다. 다른 하나는 스스로를 괴롭히는 짓을 일삼아 고통스러워 하는 것이니, 이것 또한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되는 바가 없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이 두 가지 극단을 버리고 중도(中道)를 원만히 잘 깨달았다. 중도는 눈을 뜨게 하고, ()을 일으킨다. 그리고 고요함과 뛰어난 앎, 바른 깨달음과 열반에 도움이 된다.

 

 

우리는 이 중도(中道, majjhima paṭipadā)라는 표현 때문에, 싯달타의 최초의 깨달음의 계기를 제공한 이 어마어마한 사건을 매우 일상적인 맥락에서 이해해버리기 쉽다. 소위 비고비락(非苦非樂)의 중도(中道)라 하는 것을 고도 아니고 낙도 아닌 그 가운데라는 식으로 이해하기가 쉬운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중()이란 가운데(middle)가 아니다.

 

    X    

고통
 
가운데
 
쾌락
   

 

 

붓다 자신의 표현, ‘이 두 가지 극단을 버리고에서 우리는 이 버림이라는 사태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버림은 곧 부정이다. ()이란 즉 고통과 쾌락이 완벽하게 부정되는 사태인 것이다. 즉 그것은 고통과 쾌락의 가운데 눈금이 아니라, 고통이나 쾌락으로는 도저히 도달될 수 없는 완전히 새로운 길인 것이다. ()이란 가운데가 아니요, 새로움이다. 붓다가 깨달은 중도란 미들 패쓰(Middle Path)가 아니요, 완벽하게 새로운 뉴 웨이(a completely New Way)인 것이다.

 

       
       
           

고통
   
쾌락
  aufheben  

 

 

그렇다면 이 고도 아니고 낙도 아닌 전혀 새로운 길이란 과연 무엇인가? 우리는 중도를 이해함에 있어 후기 논사들의 난해한 논리학을 연상할 수도 있다. 나가르쥬나(Nāgārjuna. 龍樹)중송(中頌, Madhyamaka-kārikā)의 난해한 부정의 논리를 따라 가느라고 낑낑댈 수도 있다.

 

 

 미르 뿌르 카스(Mirpur Khās), 파키스탄 신드지역(Sind Province, Pakistan)에서 발견되는 굽타시대(AD 4~6세기)의 불상, 눈물이 그렁그렁 고인 듯한 인간적인 눈매가 이 지역 불상의 공통된 특징이다. 프린스 어브 웨일즈 박물관 소장(Prince of Wales Museum, Mumbai).

 

 

선정지상주의

 

 

그러나 이 중도란 것은 매우 단순한 일상적 통찰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우리나라의 선정(禪定)에 빠져있는 불자들, 특히 좌선을 적통으로 삼는 선불교(Zen Buddhism) 전통 속에서는 중도를 깨달음으로써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고 보리수 밑에서 대각ㆍ성도를 했다는 싯달타의 모습을 생각할 때, 항상 가부좌 틀고 눈을 지긋이 감고 등을 꼿꼿이 세우고 앉아있는 요가수행자적인 선정의 성자의 모습만을 중도의 요체의 구현태로 생각하기 쉽다. 이것은 후기 대승 불교의 아이코노그라피(iconography, 圖像學)가 만들어놓은 매우 불행한 오류 중의 하나이다. 즉 대각이라는 것은 반드시 그렇게 가부좌 틀고 앉아있으면서 한()ㆍ서()를 인종(忍從)하고 버티어 내기만 하면 어느 결엔가 후딱 찾아오는 어떤 황홀경이 아닌 것이다. 가부좌란 인도인들이 앉는 일상적 습관의 하나일 뿐이며, 그것은 실로 붓다의 대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다. 대각이란 책상다리로도 가능한 것이요, 똥 눗는 자세로도 가능한 것이요, 드러누워서도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꼭 보리수나무 밑이어야만 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그냥 싯달타라는 한 인도 청년의 삶의 역정에서 주어진 하나의 우연한 세팅이었을 뿐이다.

 

특히 선정주의나 고행주의는 당시 인도 출가수행자들에게 매우 유행하던 수행방법이었으며, 이미 고타마 싯달타는 그 방법을 6년이나 마스터한 터였다. 그런데 어찌 새삼 그러한 고행을 부정한 그에게 또 다시 보리수나무 밑에서의 선정(禪定)이 싯달타에게 대각의 계기를 마련했다고 하는 망언이 있을 수 있겠는가?

 

여기서 우리는 뉴우 웨이로서의 중도를 다시 한번 심도 있게 고찰할 필요가 있다. 선정(禪定)이란 중국의 선종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고, 원래 산스크리트어의 다나(dhyāna)라는 말의 음역인 선()현재 중국발음은 츠안인데, 그 옛 발음은 댜나와 상통하는 그 무엇이었을 것이다. 그 중고음은 ‘dziæn’으로 재구된다과 그 선의 뜻을 중국말로 풀은 ’()이라는 의역을 합친 말일 뿐이다. 즉 음역과 의역을 합쳐서() 한 단어로 만든 것이다. 장충동 동국대학교 앞에서 많이 파는 돼지족발의 족발’(+)과 같은 용례와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다. 중국인이 이해한 선()은 곧 ()인 것이다. 정신을 한군데로 정()하여 동요가 없게 하고 고요히 하여 잡념을 없애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의 상태를 위하여 인도인들은 요가수행의 자세들을 고안해낸 것이다. 그것은 인도의 오래된 문화적 관습에서 유래된 것이다. 싯달타는 오랫동안 이 선정주의에 몸을 의탁하여 보았다.

 

과연 선정의 삼매(三昧, 산스크리트어 samādhi의 음사, 三摩地라고도 쓴다)에 들어가게 되면 마음이 고요해지고, 호흡에 집중하면 개념적 잡사들이 사라지며, 정신이 집중되면서 모든 화기(火氣)들이 수그러들고 무념무상의 명경지심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선정의 경지는 몸의 한 상태일 뿐이며, 입정의 상태로써만 유지된다는 것이다. 선정을 풀고 마음이 흩어진 상태에 있으면 또 다시 잡념이 일어나고 자유롭지 못한 사태들이 끊임없이 나를 속박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꾸만 선정을 하여 심신평정의 희열을 맛보았지만, 그러한 정신적 자유를 누리고자 한다면 항상 입정(入定)의 상태로 있지 않으면 아니 된다.

 

이런 말을 하면 참으로 죄송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나는 항상 선정에 잘 들어간다는 고승들을 보면, 아편쟁이들이 아편으로 도달하는 경지나, 술꾼들이 술로써 도달하는 몽롱한 경지나, 음악가들이 음악으로써 도달하는 경지나, 장인들이 자기 공력속에서 무념의 집중으로 도달하는 경지나 도무지 별차가 없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얼굴이 뇌리끼리해져서 선방만을 쑤시고 돌아다니는 선승이나 마리화나에 얼이 빠져 항상 써클실에 쑤셔 박혀있는 떨떨한 대학생들이나 별 차이가 없게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선정은 약물을 쓰지 않을 뿐 아니라 부작용이 없는 건강한 방법이라고 하겠지만, 사실 끊임없이 아편의 연기 속에서 완벽한 정신적 자유를 구가하면서 1년을 살다 죽은 사람이나, 선방만을 전전하면서 백년을 산 사람이나, 기나긴 윤회의 고리에서 본다면 가치판단의 우열을 가릴 길이 없을 수도 있다.

 

우리가 지금 혁명코자 하는 것은 우리의 삶이다. 선정이라는 절묘하고 오묘하고 심묘한 몸의 상태가 아니다. 우리 삶의 고뇌를 벗어나고자 하는 총체적 노력은 결코 선정지상주의로써는 아뇩다라(anuttarā, 阿耨多羅)의 결실을 맺을 수 없었던 것이다.

 

 

 티벹스님들은 온몸을 땅에 깔았다가 일어나는 고행을 계속한다. 이것을 오체투지(五體投地)라고 한다. 보드가야 대탑에서.

 

 

고행이란 무엇인가?

 

 

그 다음에 고행이란 무엇인가? 여기 이 고행이라는 논의를 하기 전에, 파미르고원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남쪽으로 갈라지는 문화적 벨트의 대세를 놓고 이야기를 해보자! 중국의 황하를 중심으로 한 한자문명권의 사유 속에서는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이 육체(body)와 영혼(soul)이라는 이원론적 틀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논의가 우선 지적될 수 있을 것이다. 억지로 그 신화적 세계로부터 심층구조를 논구해 들어간다면 물론 영과 육에 해당되는 어떤 분별이 있기는 하겠지만, 중국적 사유의 대세는 애초로부터 영육의 문제를 중심으로 발전하지 않았다. 고전한문 자체가 영육이라는 이원론을 중심으로 어휘형성이 되어 있지도 않았고 또 문법적으로도 영육이원론을 뒷받침할 어떤 구조를 제시하지 않는다. (주어 중심의 주부-술부적 어법이 아니다.)

 

그런데 반하여 파미르고원의 서쪽과 남쪽으로 펼쳐지는 광막한 지역, 저 그리스나 이집트로부터 소아시아, 팔레스타인, 바빌로니아, 페르시아를 거쳐 인도문명에 이르기까지, 모두 한결같이 영육이원론의 문제를 그 종교적 과제상황의 핵심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모든 종교는 신비주의와 관련되어 있다. 모든 신비주의는 영육이원의 전제를 가지고 있다. 대체적으로, 신비주의의 열쇠는 육체가 쥐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쥔다. 우주의 신비를 푸는 열쇠가 육체에서 해방된 자유로운 영혼의 비상의 품에 안겨져 있다고 보는 것이다.

 

고행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 욕망의 본산인 육체를 학대함으로써,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육체를 죽임으로써 영혼을 해방시키는 것이다. 달타가 경험한 극단적 고행의 수련은 못이 삐쭉삐쭉한 침대 위에 사람이 드러누워 못이 점점 살 속으로 박혀 들어가 살이 썩어 들어가는 아픔 속에서도 태연한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그러한 극한적 한계상황이었다. 싯달타는 그러한 모든 극한적 고행의 체험을 감내하였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확실히 깨달아야 할 것은 모든 고행에는 영육이원론의 전제가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 오체를 투지하면서 가냘프게 흐느끼는 아리따운 수녀님의 독백 속에서도 우리는 영혼의 순결을 위하여 욕망으로 가득찬 육체의 불결을 저주하는 숨결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영혼의 자유를 위하여 육체를 저주해야만 한다면 그 극단은 육체의 소멸밖에는 없다. 육체의 소멸은 죽음이다. 영혼의 자유를 위하여 육체가 소멸해야 한다면 그러한 고행의 최선의 방법은 자살일 것이다. 라스베가스를 떠나가는 니콜라스 케이지가 택한 방법이 최선의 방법일런지도 모른다. 자살을 운운하지 않더라도 그러한 영혼의 해탈은 모든 인간에게 결국 찾아오고 만다. 모든 죽음은 무여열반이다. 무여열반은 고승들의 전유물은 아니다. 죽음이야말로 모든 것의 종말이라고 믿고 살아온 평범한 인간들의 죽음처럼 위대한 무여열반은 없을 것이다.

 

 

 인도여인의 일상적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 중의 하나는 땔감을 주어오는 것이다. 척박한 땅에서 에너지를 긁어 모으는 이 여인의 고행도 쇼펜하우어의 말대로 결국 삶의 맹목적 의지의 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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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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