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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만나기까지 - 아쇼카의 대각 본문

고전/불경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만나기까지 - 아쇼카의 대각

건방진방랑자 2022. 3. 17. 0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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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쇼카의 대각

 

 

인도최초의 전륜성왕인 아쇼카는 본시 잔인한 인물이었다. 웃자인(Ujjain)과 탁실라(Taxila, 옛 지명 Takṣaśila)지역에서 총독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던 그는 부왕 빈두사라의 신병이 위중하다는 소식을 듣고, 수도 파탈리푸트라로 달려왔는데, 잔인하게도 99명의 형제들의 목아지를 피묻은 칼날에 휘날려야 했다. 그리고 늠름하게 대관식을 거행하였던 것이다. 왕이 된 후에도 그는 마우리야 왕조의 통치를 거부하며 그 권위를 경멸하고 비양거리는 칼링가왕국의 무자비한 침략에 착수하였다. BC 261년의 일이었다(혹은 BC 258이라고도 한다). 칼링가왕국은 인도의 동쪽 벵갈만(Bay of Bengal)의 해안을 따라 있는 현재의 오리싸(Orissa) 주의 크지 않은 나라였는데 지금 가봐도 느끼지만 좀 독특한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있는 나라였다. 칼링가왕국의 저항이 세면 셀수록 아쇼카의 잔인한 본성은 더욱 들끓어 올랐고, 그의 분노는 더욱 치밀어 올랐다. 지금까지의 수모를 한꺼번에 다 갚으려는 듯 닥치는 대로 살육하였고 아쇼카의 군대가 지나간 자리에는 인혈이 거대한 강물을 이루었다. 이 처절한 상황을 아쇼카는 그의 비문에서 십만 명의 사람이 살해되고 십오만 명이 체포되었다고 쓰고 있는데, 십만이라는 숫자는 많다는 의미의 통상적인 단어이며, 실제로 그 숫자는 십만을 넘을지도 모른다. 전투를 승리로 이끈 아쇼카는 장쾌하게 희색을 만면에 띄우고 위대한 과업을 회고키 위해 적들의 시체가 널브러진 전장터를 유유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얼마를 돌아다녔을까, 별안간 그의 가슴에는 알 수 없는 공포와 회한의 정념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핏물이 강물을 이룬 사이로 팔다리 짤린 이, 창살에 가슴이 관통해 찡그리며 죽어간 이, 화살에 뚫린 목 사이로 펑펑 피를 쏟으며 신음하고 있는 이, 목과 사지, 몸통이 잘린 이들이 수없이 널브러져 있었다. 아쇼카는 번민 속에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몸을 수그렸다.

 

 

보라! 이 비참한 주검들은 과연 무엇을 위해 그들의 소중한 목숨을 바쳤는가? 정의? 진리? ? 과연 이런 것들이 그들의 목숨을 내던지게 만들었는가? 군인들은 그들의 의무 때문에 이렇게 목숨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고 치자! 그러나 분노한 나의 병사들의 눈먼 칼과 창 끝에 이유 없이 목숨을 잃어버린 뭇 백성들은 과연 전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나 했겠는가? 그들의 눈에 비친 전쟁은 단지 위정자들의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한 한 방편일 뿐이었으리! 정의와 법을 내세우는 모든 전쟁이 실제로는 소수 권력가들의 끝없는 욕망의 굴레일 뿐, 백성들은 오직 생존만이 목적이며 오직 그것을 위해 몸부림 칠 뿐이로다! ~ 끝없는 인간의 무지여!

 

 

 BC 3세기의 아쇼카 칙령(Ashoka edict)이 쓰여진 돌, 기원전 3세기 아쇼카 대왕의 생생한 기록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볼 수 있다는 것이 정말 감격스러웠다. 프린스 어브 웨일즈 박물관(Prince of Wales Museum, Mumb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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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금강경

반야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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