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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스트 교육학 - 41. ④강: 온실 같은 학교 만들기 본문

연재/배움과 삶

트위스트 교육학 - 41. ④강: 온실 같은 학교 만들기

건방진방랑자 2019. 10. 22.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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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 온실 같은 학교 만들기

 

 

비니어드 섬에 사는 할머니는 청각장애인을 몇 명이나 만나봤냐는 인류학자의 질문에, “! 그들은 장애인이 아니었어요. 단지 듣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지만요.”라고 강하게 대답했다. 이건 사회의 디자인에 따라 사람이 어떤 식으로 보이는지 명확히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에듀니티에서 시작된 강의는 벌써 4강의 끝을 향해 가고 있다. 

 

 

 

비교육적이며, 성장을 방해하는 공간으로서의 학교

 

이처럼 학교도 마찬가지다. 학교의 디자인에 따라 학생에게서 가시화되는 능력은 천차만별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학교의 디자인은 어떤가?’라는 질문은 던지지 않고, 학교의 평가시스템에 따라 성적이 높게 나오는 학생을 능력 있는 학생으로 받아들이는데 전혀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일상처럼 딱 달라붙어 이미 지극한 현실이 되었기 때문이다. 내 몸 안에 있는 장기들도 아파야만 그 존재를 확연히 알 수 있듯이, 일상 또한 낯설게 보거나 의심하려 할 때에만 이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로 이와 같은 이유로 트위스트 교육학 4강의 제목은 학교를 학교적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이다. 일상처럼 너무나 굳어져 이상하게 볼 수조차 없던 학교 현장의 당연한 모습들을 낯설게 봄으로, 어디서부터 잘못되어 학교가 비교육적인 공간이 되었으며, 학생의 성장을 오히려 방해하는 공간이 되었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그래야만 학교가 생긴 원래 취지인 배움의 열정을 찾을 수 있고, ‘학생의 성장을 도모하는 공간으로 탈바꿈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근대 학교의 모습은 10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내용은 바뀌었으나 구조는 그대로다.

 

 

 

세속의 가치관만이 판을 친다

 

학교를 학교다운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은 학교를 개혁하자는 논의로 급물살을 탄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학교를 정상화하려하면 할수록 오히려 학교는 학교다워지지 않고 취업 준비기관으로 전락한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치열한 생존경쟁의 장이 되었고, 대체 가능한 인간만을 길러내는 곳이 되었다는 것을 28번째 후기에서 밝혔다.

이렇게 학교가 교육의 본질은 사라지고 상업적 요소(교육상품을 사고파는 것)만 가득해지는 현실에 대해 우치다샘은 철저히 비판하며, 지금껏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를 한다. 이 이야기를 곱씹을 수 있어야만 학교적이지 않은 학교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학교는 아이들을 바깥 세계로부터 격리해서 보호하는 것을 그 본질적인 책무로 삼아야 합니다. 학교와 바깥 세계 사이의 ’, 즉 아이들을 바깥으로부터 지키는 벽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학교는 본질적으로 온실이 되어야 합니다. 이론이 있는 분도 많겠지만-반 이상이 반대할 거라고 생각합니다만-양보할 수 없는 제 교육관입니다.

학교가 하는 일, 교사의 일은 무엇보다도 외부를 향한 욕망을 자극하는 것입니다만, 이것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세속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아이들에게 세상은 어차피 욕망으로 점철된 곳임을 가르쳐주는 것이 외부와의 회로를 만드는 일이 아닙니다. 오늘날 부모와 주위 어른, 대중매체가 선전하는 세속의 가치관과는 다른 문법으로 만들어지고, 다른 측정법으로 잴 수 있는 예지叡智의 경위涇渭가 존재한다는 것을 믿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교육의 첫 번째 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학교교육이 무너진 것은 학교와 사회를 격리해온 이 이 붕괴되었기 때문입니다. 교사도 부모도 교육행정도 그리고 아이들도 모두가 글로벌 자본주의의 신봉자가 되어버렸습니다. 일부는 스스로 알아서, 일부는 싫다고 고개를 흔들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학교의 내부와 외부 사이의 온도차가 거의 없어져 버렸습니다.

-우치다 타츠루 저, 박동섭 역, 교사를 춤추게 하라, 민들레 출판사, 2012, pp 156~157

 

 

우치다쌤은 학교가 철저히 자본주의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자본이 쳐놓은 그물에 걸려들지 않고 예지의 경위에 대해 믿도록 하는 곳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려면 외부의 요구(기업 & 사람들의 욕망)가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지고 그걸 교육정책으로 만들어 추진하는 곳이 아닌, 외부와 완전히 차단되어 이상적인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온실과도 같은 곳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구조가 이런 식으로 되어 있기에, 학교도 사회의 요구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내가 근무했던 단재학교는 대안학교이기에,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운영자금은 학부모들의 학비에서 충당할 수밖에 없고 그로인해 학비가 비싸다. 이런 상황에서 늘 뜨거운 감자처럼 등장하는 말이 학부모의 학비로 운영되는 만큼 학부모들의 바람을 완전히 거부할 수 없다. 그러니 커리큘럼에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의 철학이나, 교사의 교육방법 등이 있지만, 그런 이상적인 것만을 추구하다가는 학부모들이 기피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아예 문을 닫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건 바로 세속의 가치관 / 예지의 경위와의 대립이라 할 수 있고, 그럴 때마다 세속의 가치관은 더욱 뿌리 깊게 커리큘럼에 파고들어 반영된다는 사실이다.

제도권 교육기관은 이런 대결구도에서 세속의 가치관에 방점을 찍는 것으며 교육을 하는 곳이 되었으나, 심지어 그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대안학교도 완전히 자유롭지만은 않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우치다쌤의 바람이 반가우면서도 결코 가볍게 들리지만은 않는다.

 

 

목공수업을 하는데, 아이들은 이런 수업을 가장 의미 없다고 생각한다. 세속의 가치가 아니면 의미없다고만 생각하는 현실이다.

 

 

 

예지의 경위를 알려줄 수 있는 곳

 

이런 현실적인 문제 외에, ‘온실이란 말은 자칫 오해를 낳을 수도 있다. 흔히 얘기하는 것처럼 학교는 사회적인 문제에 관여하지 않고, 비정치적인 교육만을 해야 한다는 말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땐, 살짝 거부감이 들었다. 지금도 주구장창 세월호 관련 계기 수업을 하거나, 까르푸 파업 이야기를 담은 송곳드라마를 보여줬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봐야 하는 세상에서, 우치다쌤의 말은 그런 세상에 대해선 학교에서 가르칠 필요 없다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온실이란 말을 오해해서 생긴 에피소드였을 뿐이었다. 나는 온실을 복잡다단한 사회의 이면을 드러내지 않아 선한 사회의 모습만을 부각시키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우치다쌤은 자본주의의 마수에서 벗어나 배움의 본질을 지키는 것이라 생각했으니 말이다. ‘온실이란 단어에 대해 오해가 풀리니, 우치다쌤의 이야기야말로 너무도 당연시하며 생각조차 하지 못한 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가치를 환기시켜주는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쩌면 학교적이지 않은 학교를 만들기 위해서는, 당연히 교육적이란 네이밍을 붙이며 추구했던 모든 활동에, 그래서 지극히 좋은 정책이라 생각했던 것에 대해 의문시하고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우치다쌤이 얘기하는 을 세울 수 있으며, 그에 따라 대체 불가능한 학생, ‘순간을 사는 아이를 길러낼 수 있는 곳으로 만들 수 있다.

 

 

작년 영화팀은 6박 7일동안 자전거여행을 했었다. 그나마 이런 여행을 통해 예지의 경위를 맛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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