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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도마복음한글역주, 제40장 - 아버지 밖의 포도나무 본문

고전/성경

도마복음한글역주, 제40장 - 아버지 밖의 포도나무

건방진방랑자 2023. 3. 22.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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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밖의 포도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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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예수께서 가라사대, “한 그루의 포도나무가 아버지 밖에 심어졌다. 2그 나무는 견고하지 못하므로, 그것은 뿌리채 뽑힐 것이며, 멸망할 것이다.”

1Jesus said, “A grapevine has been planted outside of the father. 2Since it is not sound, it will be pulled up by its root and will perish.”

 

 

병행구가 마태복음에 있다. 그리고 그 내용적 맥락을 암시하는 구절이 요한복음에도 있다. 그리고 이사야서 5:1~7에도 포도밭의 노래가 있다. 참고할 만하다.

 

 

(15:1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께서 심지 않으신 나무는 모두 뽑힐 것이다.”

 

(15: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 하면, 잘려나간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도마의 원문을 보면 한 그루의 나무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결정할 수가 없다. 그 의미를 결정케 하는 맥락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개인일 수도 있고, 어떤 당대의 신앙공동체나 운동공동체일 수도 있다. 개인이라면 예수의 도반들을 향한 말일 것이요, 공동체라면 예수운동공동체와 비슷한 타 공동체에 대한 비판적 언급이 될 것이다.

 

영역자들은 아버지 밖에를 다음과 같이 다르게 표현했다: outside the father(B. Layton), away from the father(M. Mayer), outside of the father(T. O. Lambdin), 그런데 아버지 밖에라는 의미가 요한복음 제1장의 신화구조에 있어서처럼 이 세계(cosmos)’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타자화될 수도 없다. 유일신론을 전제로 한다 해도 이 세계가 하나님의 일 수가 없다. 이 세계야말로 하나님의 유일한 창조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 장의 아버지는 세계와 세계밖의 대립을 전제로 하는 초월적 유일신관의 주체일 수도 없다. 예수는 아버지를 말했을 뿐이다. 그것은 나 존재의 심연일 뿐이다. 그리고 아버지와 아무런 관련없이 이 세계 속에 심어지고 있는 포도나무(사람)에 대해 염려를 표현했을 뿐이다. 요한복음의 구절은 도마의 직접인용으로 볼 수는 없겠지만 그것은 분명히 상호내거(the mutual indwelling)의 논리에 의하여 초기기독교신앙 공동체의 결속을 촉구하는 언사이다.

 

마태의 구절은 명백하게 바리새인들을 지칭하는 맥락에서 쓰여지고 있다. 아버지께서 심지 않으신, 뽑혀버리고 말 수밖에 없는 모든 나무는 바리새인을 가리킨다.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으로부터 나오는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는 로기온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진다’(Q19)는 로기온 사이에 이 도마의 로기온이 삽입되어 있는데, 사실 주석가들은 이러한 로기온들을 부드럽게 연속되는 의미체계로서 해설하고 있지만, 그 로기온 파편들 사이의 단절은 양식사학적 논의를 정당하게 만든다. 전혀 관련 없는 파편들의 어색한 연접일 수가 있는 것이다. ‘입에서 나오는 것이 더럽다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심지 않은 나무는 뽑힌다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렁텅이에 빠진다가 하나의 연속된 비유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도마복음의 출현은 이러한 틈새의 짜깁기 상황을 여실하게 드러내주고 있는 것이다.

 

본 장의 전체적 의미맥락은 명료하다. 살아있는 예수의 은밀한 말씀을 해석하고 추구하는 진실한 도반들 이외의, 껍쩍대는 연약한 자들은 결코 견고하게 이 땅에 뿌리를 내릴 수 없기 때문에, 결국 패망하고 만다는 것이다. 예수의 말씀을 추구하는 자들은 아버지 밖에서 뿌리를 내려서는 아니된다. 여기 아버지는 루돌프 오토가 말하는 전적인 타자(the Wholly Other)’이며 뮈스테리움 트레멘둠(mysterium tremendum)’이다. 종교란 결국 인간의 체험의 심층차원(depth dimension)에 관한 담론이다. 그것을 살아있는 예수는 아버지라고 표현한 것이다. 아버지라는 심층차원을 확보할 때 우리는 이 세상 한가운데 확고하게 뿌리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덴데라 덴데라 하토르 신전의 일부분으로 남아 있는 기독교 성전 건물 폐허. 파코미우스 수도원 전통이 계승된 곳인데 이 유적 자체는 6세기 중엽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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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성서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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