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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도마복음한글역주, 제41장 - 가진 자가 더 가지게 될 뿐 본문

고전/성경

도마복음한글역주, 제41장 - 가진 자가 더 가지게 될 뿐

건방진방랑자 2023. 3. 22.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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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자가 더 가지게 될 뿐

 

 

41

1예수께서 가라사대, “손에 무엇이라도 가진 자는 더욱 받게 될 것이요, 2그리고 가지지 못한 자는 그가 조금 가지고 있는 것마저 빼앗기게 될 것이다.”

1Jesus said, “Whoever has something in hand will be given more, 2and whoever has nothing will be deprived of even the little that person has.”

 

 

공관복음서에 모두 다양한 병행구가 있다.

 

 

(13:12) 무릇 가진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가지지 못한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4:24~25) 24또 가라사대, “너희가 듣는 것을 소중히 여기라. 너희가 남을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 자신이 헤아림을 받을 뿐 아니라 더 많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다. 25가진 자는 더욱 받게 될 것이요, 그리고 가지지 못한 자는 그가 가지고 있는 것마저 빼앗기리라.”

 

(8:18) 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듣는가를 조심하라.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욱 받게 될 것이요, 그리고 가지지 못한 자는 그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

 

 

이 공관자료들은 모두 천국에 관한 말씀을 받아들이는 자에게는 그 비밀의 앎이 주어지겠지만, 그 말씀을 거부하는 자에게는 더이상 그러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뿐 아니라, 그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앎마저 빼앗기게 되리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 세 구절을 비교하면 도마에 가장 가깝게 오는 것은 막 4:25이다. 4:247:2(너희가 남을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 자신이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남을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다)와 같은 맥락으로 해석한다면 막 4:24와 막 4:25 사이에는 전혀 연접되기 어려운 의미의 단절이 있다. 4:25는 도마자료를 내면적 의미의 충분한 고려가 없이 그냥 수사학적인 외면적 구조의 유사성 때문에 병치시켜 놓은 것이다. 누가는 마가자료를 이러한 단절 때문에 더욱 애매하게 변형시켜놓고 있다.

 

이 외로도 큐복음서에 속하는 자료가 더 있다(Q82). 그 유명한 달란트의 비유" 끝머리에 나온다.

 

 

(25:29) 무릇 가진 자는 더욱 받아 풍족하게 될 것이요, 그리고 무릇 가지지 못한 자는 그가 가지고 있는 것마저 빼앗기리라.

 

(19:26) 주인이 가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릇 가진 자는 누구든지 더 받게 될 것이나, 가지지 못한 자는 그가 가지고 있는 것마저도 빼앗기리라.

 

 

하여튼 이 도마의 자료는 도마의 원자료(Ur-Thomas)이든 하나의 로기온이 얼마나 다양한 맥락에서 복음서 창작자들의 의도에 따라 제멋대로 원용되어 쓰이는지를 여실하게 엿볼 수 있다. 여기 도마의 원자료의 의미는 예수 도반들의 영적 추구에 관한 매우 상식적인 과제상황을 일깨우는 것이다. 여기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가진 자가지지 못한 자에 관한 것이다.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에 관하여 우리는 공평(fairness)을 운운한다. 인간세의 문명의 발전이란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갭을 좁히는 방향에서의 도덕의 증대를 의미하는 것이다. 인간세의 문명의 특징이 동물세계의 약육강식과 다른 것은 결국 복지라는 분배와 구휼(救恤)사업이 있다는 것이다. ‘이어오병(二魚五餠)’ 5천 명의 군중과 나누어먹는 나눔의 실천이야말로 예수의 천국운동이 소기한 바였다.

 

그러나 여기 예수는 이와 정반대의, 공평이 전적으로 무시되는 원리를 그의 도반들에게 제시하고 있다. 분배란 어디까지나 물질의 분배이다. 내가 가진 물질을 못가진 자들과 공유하는 것은 이 땅에 아버지의 지배를 가능케 하는 미덕이다. 그러나 진리를 추구하는, 살아있는 예수의 은밀한 말씀을 추구하는 영적 세계에 있어서는 가진 자가지지 못한 자사이에 어떤 정도(程度)의 연속성(gradation)이 존재할 수가 없다. ‘가짐은 전적으로 가짐이며, ‘가지지 못함은 전적으로 가지지 못함이다. 진리의 깨달음에 어떤 수준의 타협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진실하게 깨달으려고 노력하는 자에게는 더욱 더 풍요로운 깨달음이 주어질 것이며, 깨달음의 바탕이 없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상실될 것이다. 영적인 세계에 있어서는 가짐가지지 못함은 절대적 기준에 의한 실존적 선택의 결과일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일상생활의 매우 본질적 전환을 요구하는 것이다.

 

예수의 이러한 매우 상식적인 영적 비연속성의 메시지가, 종말론적 함의를 지니는, 천국의 도래를 암시하는 비밀스러운 지식의 열쇠에 관한 이야기처럼 둔갑되어 활용된 것이다. 노자의 이러한 말씀도 같이 생각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최고급의 영적 인간들은 내가 말하는 도를 들으면, 열심히 그것을 실천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중간치기 인간들은 내가 말하는 도를 들으면 긴가민가 할 것이다. 그런데 하삐리 놈들은 내가 말하는 도를 들으면 낄낄대고 웃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하삐리 놈들이 웃지 않으면 내 도는 도가 되기에는 부족한 것이다[上士聞道, 勤而行之, 中士聞道, 若存若亡, 下士聞道, 大笑之, 不笑不足以爲道].”(41)

 

여기 예수가 말하는 가지지 못한 자는 노자가 말하는 하사(下士)’가 아닐까?

 

 

가나안문명의 1번지라고 말할 수 있는 우가리트(Ugarit), 보통 라스 샴라(Ras Shamra)라고 불리운다. 싸이프러스와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를 연결하는 비옥한 지역의 항구로서 BC 2000~1800년대부터 번성하기 시작하여 BC 1450~1200년경 최전성기를 구가했다. 이집트인은 성각문자(hieroglyphics)를 발전시켰고, 메소포타미아사람들은 설형문자(cuneiform)를 발전시켰지만 우가리트사람들은 30개의 글자(한 글자 한 발음)로 구성된 설형 알파벳문자를 발전시켜 인류의 모든 알파벳문자의 조형을 창안하였다. 이우가리트 알파벳이 간략화되어 페니키아문자가 되었고(BC 13세기부터 25, 28자 체계의 알파벳사용) 그것이 희랍어와 로마자로 발전한 것이다. 우리는 가나안문명의 위대성을 재인식해야 한다. 히브리문명과는 별개의 보다 유구한 팔레스타인 토착문명으로서 인류에게 엄청난 문화유산을 남겨주었다. BC 1180년경 우가리트는 멸망하였는데 지진 탓이라는 설도 있고 바다사람(Sea People)’의 침공으로 멸절되었다는 설도 있다. 1929년부터 불란서 고고학팀에 의하여 발굴되었는데 3천년 동안 사람의 손을 타지 않았기에 그 원형이 보존되었다는 특징이 있다. 여기서 나온 방대한 점토판 문서들은 구약의 이야기들이 이미 가나안문명의 문자화된 이야기들을 원형으로 한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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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성서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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