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건빵이랑 놀자

군대 수양록, 상병 - 02.03.14(목) 열정이 깡그리 무시 당한 네 가지 사건 본문

연재/여행 속에 답이 있다

군대 수양록, 상병 - 02.03.14(목) 열정이 깡그리 무시 당한 네 가지 사건

건방진방랑자 2022. 6. 30. 18:58
728x90
반응형

열정이 깡그리 무시 당한 네 가지 사건

 

02314()

 

 

오늘은 하루종일 나의 열정이 인정 받질 못했다. 아침엔 김영주 상병이 하드보드지는 냅다 던지더니, 암구호판을 다시 만들라는 것이다. 처음 만드는 것이라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이미 두 개나 만들었음에도 맘에 안 든다는 이유로 다짜고짜 또 만들라고 확 던지는 건 너무하지 않나 싶었다. 그런 상황이니 짜증이 확 날 수밖에 없었다. 더럽고도 야비하단 생각에 나의 손은 떨리고 있을 정도로 말이다. 사실 처음 만들 땐 재료도 없고 노하우도 없이 열정만 넘쳤기에 거의 이틀 동안의 자유시간을 통째로 허비하면서 만들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도 첫 작품은 되게 작았고 볼품없어 보일 지경이었다. 그런 현실이기에 이렇게밖에 못 만들 것을 왜 그리 시간을 허비하면서 만들었냐고 비아냥대며 다시 만들라고들 어수선이었다. 그땐 나 또한 그걸 인정하며 다시 만들고 싶은 의욕이 있었기 때문에 군말 없이 다시 만들었던 것이다. 열정적으로 다시 달려들어 만들었지만 역시 두 번째 작품도 어리버리 만들어져 버렸다. 생긴 건 별로였지만 그래도 암구호판 역할을 하기엔 부족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하드보드지를 들입다 던지며 다시 만들라고 하는 것이니 제정신이 박힌 인간인 이상 어찌 기분 나쁘지 않겠는가. 공손히 그냥 와서 다시 만들라고 할지라도 기분 나쁠 판에, 던지며 인격 모독적인 상황을 연출했으니 더욱 그렇다.

 

그리고 오늘 저녁 식사 시간엔 점심 때 밖에서 통배식을 했기 때문에 잘못 닦인 식기들이 많아서 식기를 분배하고 모두 씻어야 할 판이었다. 그렇지만 난 식기 세척의 번거로움을 알기에 시간이 남을 때 내가 다 씻기도 했다. 그건 나의 열정이었고 그 열정에 따라 씻고 또 씻어 최대한의 노력을 퍼부은 것이다. 하지만 그런 노력과 열정은 또 다시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비록 그렇게 한 뒤엔 스스로 뿌듯해하긴 했지만 박상호 상병님이 식기를 보시더니 씻으려면 깨끗히 좀 씻지. 이러면 다시 씻어야 하잖아!”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수고했다한마디의 말만 했어도 괜찮았을 것을 그렇게 딱 잘라 얘기하니까 정말 매정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암구호판 작업과 마찬가지로 나의 열정에 못 미치는 나의 행동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싫은 소릴 듣고 나니 왠지 모든 일에 대한 의욕이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렸다.

 

그런 맘가짐으로 소대에 오니 총기현황판이 새로 인쇄되어 올려져 있었다. 그래서 나는 자유 시간을 반납하고 총기현황판을 완성하고 그걸 작성하고 있는데 이규희 분대장님이 글씨도 잘 쓰지도 못하는 구만. 되게 정성스럽게 쓰네라고 비꼬는 게 아닌가. 나는 아무리 그래도 글씨를 못 쓰진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전혀 다른 반응을 대하고 보니 기분이 정말 나빴다.

 

그렇게 결산의 시간이 다가왔다. 그 시간에 전혀 예상치 못한 동송고지의 장애물을 체크하기 시작했다. 사실 난 별로 장애물에 신경 쓰지 않았기에 당연히 알 리가 없었다. 그런 상태에서 이병과 일병을 체크하다 말고 분대장님은 갑자기 나에게 장애물을 물어보는 것이다. 당연히 모르니 엉뚱한 대답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랬더니 댑따 짬 먹었다고 벌써부터 빠졌냐? 앞으론 짬 대우도 안 해줄 거고, 후임들에게 시키는 것도 인정하지 않겠다라고 화를 내더라. 그냥 그 한 가지 실수로 지금까지 애써왔던 열정이 무산된다는 사실이 어이가 없었다.

 

오늘 이 네 가지 사건은 열심히 하려 했지만 인정받지 못한 사례를 담고 있다. 열정적으로 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고, 처음이라 어설픈 부분도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아예 안 하려 하거나, 남에게 떠넘기려 한 것도 아닌데 이런 식의 대우를 받는 건 솔직히 억울했고 그만큼 욕이 절로 나왔다. 지금은 페바에 온 지 겨우 7일 정도 만이 지난 과도기의 상황이니 정신이 없는 까닭에 그러려니 한다. 잘 참고 이겨내야 하고 조금씩 결과적인 것에도 신경 쓰다 보면 분명히 나아질 순간도 찾아오리라.

 

 

 

 

인용

목차

사진

타임라인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