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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군대 수양록, 상병 - 02.03.08~16 FEBA 첫째 주 적응기 본문

연재/여행 속에 답이 있다

군대 수양록, 상병 - 02.03.08~16 FEBA 첫째 주 적응기

건방진방랑자 2022. 6. 30.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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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바의 첫 일주일 적응기

 

02311()~17()

 

 

타임라인

 

 

  오전 오후
03.11() 시범식 교육(위병소, 탄약고, 근무요령, 5대기 요령, 매복요령) 중대 뒷산으로 부엽토(腐葉土) 모으러 감.
03.12() 299고지, 거점 지형 방문(7R 1BN) Co 앞 뜰 족구장 정비(능력에 비해 의욕만 앞서서 암구호판 만들다 욕 먹음)
03.13() 국지도발FTX 진지 방문 축조(2Co 옆 도로 뒤) 2P 대청소, 간부 축구로 인한 자율시간(생일 PX 파티, 늦게 상남가 편지와 빵을 줌)
03.14() 우발 직계 지역 방문(동송고지, 아이스고지 후방) 도보로 2차 지연 진지 방문(19BN 후방 77포대 C3 오르기 전 진지)
의욕이 인정 받지 못함(식기, 임무 숙지 안 함, 암구호 카드)
03.15() 지뢰교육(새벽에 비가 왔다가 그쳐서인지 바람이 불고 추웠음) 부대 정비
03.16() 중대장과 사단장 정신 교육 박헌영 병장이 이규희 분대장님과 대화를 나눔
03.17() 중대 군종이 거수로 뽑힘  

 

 

 

 

 

페바 체육대회와 뒷풀이

 

02310() 화창

 

 

페바의 생활, 그건 흡사 신교대와도 비슷했다. 새벽 내내 걸어서 잠 한 숨 못 자고 이곳에 왔건만, 그래서 오후에까지 잘 수 있겠거니 기대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짐 정리를 대충 하고 벅찬 가슴을 안고 아침을 먹으러 갔지만 이제 웬일? GOP에서 밥을 먹고 싶을 때 조금만 기다리면 먹고 싶을 만큼의 밥을 먹을 수 있었기에 그게 바로 자대의 생활인 줄만 알았건만 그게 아니었다. 여기 와서 보니 신교대와 별반 다를 바 없이 팔을 휘두르며 군기왕성하게 군가를 부르며 걸어가다가 식당 앞에 도착해서 길고 긴 줄을 차례대로 기다려야 한다. 막상 차례가 오면 입장!”이라 크게 외치며 식당으로 입장해서도 거기서 한참을 기다리다가 들어가서 식기를 씻을 때에도 한참의 전쟁을 치러야 하는 완전한 율지리 신교대였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GOP가 그리울 수밖에 없다. GOP에 있을 땐 몰랐던 일들이 이곳에 오니 달리 느껴지는 부분이 당연히 있다.

 

어제 9일 토요일엔 대대 체육 대회를 하였다. ‘집단 농구’ ‘집단 축구라는 이름만 들어도 엽기적일 수밖에 없는 운동 경기다. 군대식 체육 대화를 이로써 최초로 해본 것이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되게 유쾌하고 재밌기까지 했다. 아니 어쩜 직접 하는 것보다 보는 게 훨씬 낫다고 할 정도다. 어떻게 한 경기를 하면서 40명의 인원이 모두 뛰어 다닐 수 있냐고. 역시 군대란 곳은 아무리 봐도 상상을 초월하는 조직임에 틀림없다. 난 운동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에 오로지 뒷풀이만을 기대하며 열심히 관람하고 있었는데, 아주 운 좋게도 우리 3중대가 집단 축구와 족구 두 경기에서 이기는 덕에 모두 기분 좋게 끝났다. 장하다 3중대 용사들이여!

 

저녁엔 역시 투입해야 한다는 걱정을 할 것도 없이(GOP 악순환) 파티한다는 기분으로 회식을 준비했다. 기분 좋았고 이게 바로 FEBA의 매력인가 싶었다. 저녁 회식 땐 돼지 바비큐를 먹었고 행보관님이 쏘았다면 막걸리와 함께 소대장님이 쏘신 군에선 절대 먹어볼 거라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무려 3개월 만에 맛보는 화이트 맥주를 마셨다. 마시기 전만 해도 입에 당기고 얼른 마시고 싶을 정도였는데 막상 막걸리를 엄청 마셔서인지 맥주는 그렇지 땡기지 않더라. 하지만 정말 그 시간만큼은 군대란 현실을 잊을 정도로 즐거웠고 엄청나게 색달랐다. 얼마나 재밌게 놀았던가? 우선 투입의 걱정이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놀 수 있었던 것이고 술이 들어갔다는 핑계로 정말 엽기적이면서도 활기차게 놀 수 있었다.

 

2대대 막내들의 고참 찍기(ex 못 생긴 고참)에서부터 행정반에서의 보인 분대장들의 나체쇼까지 정말 잊지 못할 그런 순간이었다. 역시 개똥에서 굴러도 폐비가 좋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렇게 토요일 밤이 깊어간다. 아직도 페바의 모든 게 어색하지만 어쨌든 이제 페바의 생활은 시작됐다. 모두 잘 해낼 것이다. 모두 화이팅!

 

 

 

 

 

 

시범식 교육과 부엽토 작업

 

02311()

 

 

드디어 페바 첫 주의 시작이다. GOP와는 달리 주말, 주일엔 철저히 자유가 보장되었다. 아무래도 페바이니 이런 자유가 없으면 안 되겠지. 이번 주부터 좀 힘들 거라고 소대장님이 벌써부터 겁을 준다. 적어도 이번 한 달 정도는 진지 파악, 구축, 대대ㆍ중대ㆍ소대 정비, 개인 임무 숙지 등을 한꺼번에 해야 하기 때문에 당연히 다시 입대한 그런 신병 같은 기분으로 지내야 한다. 그렇다면 성인이 말대로 11개월짜리 군대에 다시 입대한 기분이라고나 할까나.

 

드디어 페바 첫 일과의 시작이다. 흡사 신교대와 같이 6시에 기상하자마자 전투복을 입고서 점오를 하러 사열대 앞으로 모였다. 신교대 이후로 점오를 해본 적이 없다가 새삼 이렇게 모이려니 기분이 좀 미묘했다. 진짜 다시 입대한 기분, 색다르면서 짜증 난다고 할까? 그러고 보니깐 오늘 새벽에 첫 불침번 근무를 섰는데, 밤에 한 시간만, 그것도 따뜻한 내무실만 돌아다니며 근무를 선다는 건 무척이나 좋았다. 하지만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밤에 고이 자다가 깨어나는 게 무척이나 짜증 나긴 했다.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새벽 내내 어둠을 뚫고 빗방울이 쏟아지고 있었다. 불침번이었기에 난 비 내리는 건 전혀 신경 쓰지 않았지만, GOP에서 이 빗방울 속에 근무 서고 있을 사람들을 생각하니깐 가련한 마음과 함께 페바에 오길 잘했구나 하는 안도감이 두서없이 맴돌았다.

 

아침을 먹고서 연병장으로 모였다. 오늘은 시범식 교육을 하는 날이다. 아무래도 페바식 근무를 한 번도 서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 과정 과정을 실제적 행동 절차로 보여주는 것이다. 보고 있으니 웃겨 죽는 줄 알았다. 한편의 잘 짜여진 삼류 영화를 보는 것 같았으니 말이다. 여러 상황 상황별로 보긴 했지만 좀 지루하기도 했고 아직 적응이 안 된 탓에 잠이 쏟아졌기에 죽는 줄 알았다.

 

오후에 FEBA 첫 작업을 했다. 바로 다른 모종을 심기 위한 밑거름 흙인 부엽토(腐葉土)를 중대 뒷산에 올라가 퍼오라는 거였다. 그래서 우린 삽 몇 자루와 마대 몇 마대를 짊어지고 뒷산에 올랐다. 전혀 색다른 장소로의 이동이었기에 가슴이 뛰었다. 거기서 보이는 경치도 장난 아니었지만 밑으로 보이는 풍경은 더욱 압권이었다. 더욱 맘에 든 것은 1년 내내 지지고 볶던 전망대가 보인다는 것이다. 늘 부대끼며 그렇게 살아가던 그곳이 이제 하나의 점처럼 보인다는 현실이 신기하기까지 했다. 시간의 여유가 좀 많았기에 쉬엄쉬엄 흙을 퍼담고 끙끙 짊어지고 내려왔다. 그렇게 끝난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흙이 아니라지 뭔가. 그래서 투덜대며 나가서 다시 모아와야 했다.

 

 

 

 

지형정찰과 우공이산

 

02312()

 

 

오늘은 우리 지역 지형 정찰이 있는 날이다. 그래서 아침부터 부랴부터 단독 군장을 하고서 60에 올랐다. 이렇게 관광용(?)으로 60을 타보는 건 오랜만이라서 기대가 되었다.

 

그렇게 장시간을 달려 장벽 폭포, 전차대대 등을 지나 7R 2BN 후문에 있는 299고지에 도착했다. 거기서부턴 우리가 알아서 지형 정찰을 하는 것이다. 훈련 뛸 때 어떻게 뛰는지에 대한 거다 명료한 해석을 하고서 좀 지친 몸을 이끌고 내려갔다. 그래서 60에 다시 타고 부대에 복귀하는 줄 알았는데 정말 맘에 안 들게도 가는 도중에 내려 285 고지까지 꽤 많이 걸어서 답사하게 된 것이다. 쉴 생각을 하던 차에 다시 한참을 걷게 되니 정말 짜증이 복받쳐 오르더라. 하지만 군대란 곳은 나의 의사가 전혀 반영되는 곳은 아니니, 맘에 안 든다고 해서 안 할 수 없잖은가? 참으며 하는 수밖에는 없다. 그렇게 짜증 나는 답사를 마치고 7R 1BN까지 걸어가서 거기 정차되어 있던 60을 타고 부대에 복귀해서 밥을 맛있게 먹었다. 역시 무지 걷도 움직인 터라 밥도 달고 맛있더라.

 

오후엔 별다른 일이 있지 않았다. 단지 중대 앞 족구장을 정비하는 일이 있을 뿐이었다. 황무지와도 같은 땅을 평탄화시키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었다. 산을 옮긴다는 말과 별반 다를 게 없는 어처구니 없는 말이지만 군대에선 불가능이란 없어서 우리 소대 전원은 거기에 달라 붙었다. 그렇게 생각했던 불가능하단 인식과는 달리 40명의 인원이 함께 달려들어 작업을 하니 땅이 평탄화되긴 하더라.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우공이산(愚公移山)이지 뭔가. 40명의 근면한 성실성이 산 하나를 긴 시간에 걸쳐 깎아내고 자갈밭의 황무지를 잘 다듬어진 평지로 만들어냈던 거다. 역시 사람의 힘은 위대하다.

 

 

 

 

생일파티

 

02313()

 

 

별 특별한 일이 없다. 단지 오늘은 민증 상 내 생일이다. 그래서 저녁 식사 시간 후에 PX에 가서 분대 회식을 했다. 그렇게 기대를 많이 했는데 별로였다. 사실 맛있게 먹었지만 그걸 준비하는 시간이 거의 한 시간 정도 걸렸기에 오히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격이라 하겠다. 차라리 이럴 바에야 과자로 배부르게 먹는 게 나을 뻔했다. 이럴 때 GOP 회식이 그립기도 하다.

 

오늘 형식적인 생일임에도 별다른 것들은 없었다. 좀 섭섭하게 그렇게 지나가나 했고 싱겁게 회식을 마치고 돌아왔다. 그런데 깜짝 놀라고 말았다. 관물대에 빵과 우유가 들어 있지 뭔가. 놀랐다. 과연 누가 이렇게 개념 있는 짓을 했을까? 궁금했다. 쪽지가 놓여져 있어서 펼쳐 보니 전혀 예상하지도 못한 내 동기 상남이었다. 군에 있기에 이것밖에 해줄 게 없어 미안하다는 마음을 전하며 먼 훗날 한 잔의 술로 넘겨버릴 수 있는 추억으로 만들자던 진심은 나에게 큰 감동이었다. 역시 넌 누가 뭐라 해도 내가 가장 믿고 의지하는 내 친구다. 넌 정말 멋생멋사(멋에 살고 멋에 죽고)를 아는 놈이다. 동기가 챙겨준 선물로 기분이 째지게 좋아졌다. 사소한 것에 감동하고 사소한 것에 실망하는 나. 군이란 폐쇄공간이 만든 행복이려니.

 

 

03년 2월에 RCT 훈련을 하며 동기 상남이와.  제대 2개월 전의 모습이다.

 

 

진지탐색 도보여행

 

02314()

 

 

오늘 역시 도보답사의 연장으로 우발 작계지역인 동송 고지에 갔다. 화요일299고지에서 285고지까지 도보로 탐사해서 가봤기 때문에 어느 정도 힘이 드는 줄 알고 있기에 이번에도 맘을 단단히 먹었다.

 

오늘도 저번처럼 차를 타고 이동한다기에 좀 수월할 거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런 예상과는 달리 도보로 가게 되었다. 실질적으로 처음부터 걸어가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좀 기대가 되었다. 대대 위병소를 나설 때 부풀었던 기대감은 이동하는 도중 더욱더 커졌다. 저번에도 말했다시피 걷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나에겐 도보여행 같은 느낌도 들고 군장은 메지 않고 맘껏 걸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밑엔 사단 전차대가 있었다. 우리 대대 앞마당을 시끄럽게 장식했던 장본인들이 바로 저녀석들이구만!

 

난 요즘 한비야씨가 쓴 책들을 보면서 그 도전적인 기상과 불굴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비록 한비야 씨와 나는 너무나도 다른 입장 차이, 한비야씨는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고 나는 그렇지 않음에도 해야 되는 입장의 차이는 있지만 그건 그저 내가 느끼는 생각의 차이일 뿐이니까 걸어 우리나라 곳곳을 다니고 싶단 마음만은 같은 셈이다. 그러므로 나 또한 한비야씨마냥 정해진 루트를 걷게 될지라도 자연을 흠뻑 만끽하며 걸어볼 거다. 그렇게 부푼 가슴으로 걷고 있노라니 자연히 자연과 동화되었다. 그럼에도 힘이 들어 어깨가 쭈욱 쳐질 때면 막상 이 길을 처음 걸을 때의 기대감을 떠올리며 즐거운 마음을 북돋으려 했던 것이다. 절로 힘이 났고 덩달아 그 기분은 좋아졌다. GOP에서처럼 전망대 부근만을 다니던 우물 안 개구리[坐井觀天]가 아닌 여행자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지금이 더 행복하다 생각했다.

 

걷다 보니 그렇게 말로만 들면 88포대, 27포대α를 볼 수 있었다. 내 신교대 동시 몇몇이 그 곳에 있고, 64초소에서 근무하던 op병 몇몇이 거기 출신이기 때문에 왠지 정감 어린 곳이다. 거기서 또 한참을 걷다보니 전방이 아님에도 방벽이 놓여져 있는 곳에 다달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곳이 바로 6검이란다. 거기에도 헌병 캡과 완장을 단 아저씨들이 근무를 서고 있었다. 바로 우리 1분대는 그 방벽에 투입해야하는 것이다. 그 방벽 너머엔 뭐가 있을까 궁금했는데 순 논밖에 없었다. 그 뒤에 동송고지가 있다. 바로 우발 작계선상에 있는 진지이다. 새삼 느끼는 거지만 철원의 전 지역은 진지화되어 있단 말이 정말이었다. 어딜 가도 여기는 접경 지역이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들도록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재배치되어 있다. 동송고지에 올라가고 나선 놀라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다. 경치가 좋아서 놀라는 건 한두 번이 아니기에 여기에 새삼 재론할 필요가 없고 바로 그 방벽 앞에 아이스 고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6검의 위치는 우리가 1년 내내 지켜왔던 GOP의 바로 후방이랑 얘기가 된다. 이렇게 직접 걸어 다니며 위치개념이 확실히 잡히니 신기하고도 재밌었다.

 

동송고지에서 쉬다가 대위리 낙석으로 다시 이동했다. 처음에 쉬었던 곳에서 다시 쉬게 되었다. 이번엔 점심을 먹기 위해서 모인 것이다. 통배식이라는 걸 처음으로 해보는 것이기에 기대가 되었다. 카레밥이 점심이었는데 한 식기에 2인분을 타서 두 명이 함께 먹어야 한다. 그러니 애초에 배불리 먹는다는 게 불가능했지만 그래도 야외에서 먹는 밥은 더욱 맛있었다.

 

거기서 계속 걸어 다시 처음 위치까지 왔지만 제2차 지연진지에 가봐야 한다기에 19R 1BN으로 돌어간 부분으로 계속 나갔더니, 77포대가 나왔고 거기서 좀 더 올라가니 C3가 나왔다. 과연 그곳을 넘어가라고 하려나, 그렇지 않으려나 걱정이 되었는데, 바로 철수하라고 하더라.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이 걸어야 했기 때문에 엄청 힘들었다. 그럼에도 팔을 앞뒤로 힘차게 흔들며 패기 넘치게 다녔다.

 

 

 

 

열정이 깡그리 무시 당한 네 가지 사건

 

02314()

 

 

오늘은 하루종일 나의 열정이 인정 받질 못했다. 아침엔 김영주 상병이 하드보드지는 냅다 던지더니, 암구호판을 다시 만들라는 것이다. 처음 만드는 것이라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이미 두 개나 만들었음에도 맘에 안 든다는 이유로 다짜고짜 또 만들라고 확 던지는 건 너무하지 않나 싶었다. 그런 상황이니 짜증이 확 날 수밖에 없었다. 더럽고도 야비하단 생각에 나의 손은 떨리고 있을 정도로 말이다. 사실 처음 만들 땐 재료도 없고 노하우도 없이 열정만 넘쳤기에 거의 이틀 동안의 자유시간을 통째로 허비하면서 만들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도 첫 작품은 되게 작았고 볼품없어 보일 지경이었다. 그런 현실이기에 이렇게밖에 못 만들 것을 왜 그리 시간을 허비하면서 만들었냐고 비아냥대며 다시 만들라고들 어수선이었다. 그땐 나 또한 그걸 인정하며 다시 만들고 싶은 의욕이 있었기 때문에 군말 없이 다시 만들었던 것이다. 열정적으로 다시 달려들어 만들었지만 역시 두 번째 작품도 어리버리 만들어져 버렸다. 생긴 건 별로였지만 그래도 암구호판 역할을 하기엔 부족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하드보드지를 들입다 던지며 다시 만들라고 하는 것이니 제정신이 박힌 인간인 이상 어찌 기분 나쁘지 않겠는가. 공손히 그냥 와서 다시 만들라고 할지라도 기분 나쁠 판에, 던지며 인격 모독적인 상황을 연출했으니 더욱 그렇다.

 

그리고 오늘 저녁 식사 시간엔 점심 때 밖에서 통배식을 했기 때문에 잘못 닦인 식기들이 많아서 식기를 분배하고 모두 씻어야 할 판이었다. 그렇지만 난 식기 세척의 번거로움을 알기에 시간이 남을 때 내가 다 씻기도 했다. 그건 나의 열정이었고 그 열정에 따라 씻고 또 씻어 최대한의 노력을 퍼부은 것이다. 하지만 그런 노력과 열정은 또 다시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비록 그렇게 한 뒤엔 스스로 뿌듯해하긴 했지만 박상호 상병님이 식기를 보시더니 씻으려면 깨끗히 좀 씻지. 이러면 다시 씻어야 하잖아!”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수고했다한마디의 말만 했어도 괜찮았을 것을 그렇게 딱 잘라 얘기하니까 정말 매정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암구호판 작업과 마찬가지로 나의 열정에 못 미치는 나의 행동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싫은 소릴 듣고 나니 왠지 모든 일에 대한 의욕이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렸다.

 

그런 맘가짐으로 소대에 오니 총기현황판이 새로 인쇄되어 올려져 있었다. 그래서 나는 자유 시간을 반납하고 총기현황판을 완성하고 그걸 작성하고 있는데 이규희 분대장님이 글씨도 잘 쓰지도 못하는 구만. 되게 정성스럽게 쓰네라고 비꼬는 게 아닌가. 나는 아무리 그래도 글씨를 못 쓰진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전혀 다른 반응을 대하고 보니 기분이 정말 나빴다.

 

그렇게 결산의 시간이 다가왔다. 그 시간에 전혀 예상치 못한 동송고지의 장애물을 체크하기 시작했다. 사실 난 별로 장애물에 신경 쓰지 않았기에 당연히 알 리가 없었다. 그런 상태에서 이병과 일병을 체크하다 말고 분대장님은 갑자기 나에게 장애물을 물어보는 것이다. 당연히 모르니 엉뚱한 대답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랬더니 댑따 짬 먹었다고 벌써부터 빠졌냐? 앞으론 짬 대우도 안 해줄 거고, 후임들에게 시키는 것도 인정하지 않겠다라고 화를 내더라. 그냥 그 한 가지 실수로 지금까지 애써왔던 열정이 무산된다는 사실이 어이가 없었다.

 

오늘 이 네 가지 사건은 열심히 하려 했지만 인정받지 못한 사례를 담고 있다. 열정적으로 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고, 처음이라 어설픈 부분도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아예 안 하려 하거나, 남에게 떠넘기려 한 것도 아닌데 이런 식의 대우를 받는 건 솔직히 억울했고 그만큼 욕이 절로 나왔다. 지금은 페바에 온 지 겨우 7일 정도 만이 지난 과도기의 상황이니 정신이 없는 까닭에 그러려니 한다. 잘 참고 이겨내야 하고 조금씩 결과적인 것에도 신경 쓰다 보면 분명히 나아질 순간도 찾아오리라.

 

 

 

 

침낭 하나가 부족하여 생긴 일

 

02315()

 

 

별 특별한 일이 없다. 단지 추운 날씨임에도 신교대 때처럼 깔판을 깔고서 지뢰 교육을 받았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인지 생각도 못할 정도로 많이 추웠다. 오전 내내 그렇게 교육을 받았다.

 

오후엔 부대 정비 및 개인 정비가 있어서 소대 정훈병으로서 여러 조사를 하고 있었으나 분대 작업이 걸리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참여하게 되었다. 작업은 작물을 키우는 데 적당한 흙을 만들기 의해 분뇨를 흙과 섞는 작업이었다. 겨울이라 냄새가 별로 심하진 않았지만 비닐하우스 안은 상당한 온도였기에 흡사 여름에 작업하는 것만큼 더웠고 힘들었다. 하지만 다 섞고 나니 틀까지 세우라고 해서 그것까지 세우고서야 오늘 하루의 일과는 끝이 났다.

 

밤에 자려는데 효근이 침낭이 없다는 거였다. 그래서 본부로 가 있는 침낭을 찾았고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그 침낭은 원래 이강석 병장님 것이였고, 이강석 병장님이 휴가를 복귀하고 난 다음엔 침낭이 없기에 김영주 상병이 모포를 덮고 잤단다. 이런 상황이었기에 침낭을 달라고 했을 때, 미처 생각지 못하고 투덜대며 그냥 줘버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생각해보니 그게 아님을 알겠더라. 막내들 침낭의 배분은 공정한 방식으로 정해진 게 아니기에 효근이만 침낭이 없다는 건 말도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침낭을 내놓으라고 강압적으로 말하며 효근이에게 죄의식을 심어주면서까지 뺏어갈 순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선 차라리 이렇게 말했다면 어땠을까? “막내들 침낭이 하나 비어 누군가 모포를 덮고 자야 하는데 이틀간은 내가 덮고 잤으니 오늘은 니가 덮고 자라

 

 

 

 

중대 군종으로 추천되다

 

02316()

 

 

토요일엔 중대장님, 사단장님 정신교육이 있었다. 사단장님 목소리는 언제 들어도 역시 걸걸하시고 위엄이 있으시다. 그런 목소리 속에서도 가끔씩 위트가 넘치는 말들이 나온다.

 

저번 설날에 동석하고서 떡국을 먹을 때 여름이면 새까맣다가 겨울이면 새하얘지는 우리들을 보고서 카멜레온이구만, 카멜레온이야!”라고 농을 치셨고 이번에 8사단 마크를 보면서 발바닥 달고 다니면 쪽팔려서 살겠어라고 농담을 거셨으며 자신의 전역한 자식을 보면서 어느 순간 갑자기 군에 간다고 울상이더만 한두 번씩 백일휴가다 뭐다 나오더니만 어느 날은 집에 갔더니 개골이 친 군모를 딱 걸어 놓고 전역했다고 하더라고라며 말씀하셨는데 그 어감이 하도 특이해서 무지 재밌었다. 최장섭 소장님 화이팅!

 

토요일 저녁에 중대 군종인 박영헌 병장님이 분대장님에게 오더니, 이러쿵 저녁쿵 얘기를 한다. 뭐 두 사람은 그래도 친분이 있는 관계이니 별다르게 보이지 않았고 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날 중대 군종 시키는 것에 대해 얘기했나 보더라. 그렇지만 분대장님은 선뜻 응해주지 않으셨나 보다. 하도 어리버리하게 찍힌 탓에 뭘 해도 달갑지가 않은 거겠지.

 

 

 

 

군종 투표에서 뽑히다

 

02317()

 

 

어제 중대 군종인 박영헌 병장님이 분대장에게 와서 이야기를 나눴고 그건 나를 중대 군종으로 추천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분대장은 수긍하지 않으며 급마무리 되었다.

 

오늘은 주일이기에 교회에 갔다. 평상시와 같이 주일답게 예배가 끝나고 상실의 시대를 읽고 있는데 박영헌 병장님이 우리 중대원들을 다 모으더니 오늘 중대 군중을 뽑을 테니 하고 싶은 사람은 손을 들어봐.”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손을 들까 말까 고민하다가 지금 안 들면 후회할 것만 같아 손을 번쩍 들었다. 민호와 나 단둘이 손을 든 것이다. 그래서 투표를 하게 되었는데 운이 좋기라도 한 것인지, 하나님이 선택해주신 덕인지 내가 선출되게 되었다. 한번 할 기회가 있으면 너무나도 하고 싶었던 것이라 이렇게 하나님이 선택해주신 게 무지 감사했고 열심히 기도하면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일로 이번 주 내내 인정도 받지 못했던 기분은 말끔히 씻겨져 어느 순간보다도 행복하더라. 하지만 왠지 분대장님에게 말하는 게 무척이나 조심스러웠다. 어제도 박영헌 병장이 직접 말했지만 승낙하지 않았으며 1월의 사건에서부터 페바에서의 생활까지 여러 가지로 찍혔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회를 봐서 신중히 말했는데 역시나 반응은 예상했던 대로다. “그렇게 혼자서 되고 싶다고 혼자서 결정하고 그럴 거면 군 생활 차라리 혼자서 다 해라. 그리고 앞으론 K-3 잡을 생각도 하지 말고.”라고 신경질적으로 말하며 쏟아부었다. 그런 상황에서 별달리 할 말이 없었다. 이 또한 시간이 어떻게든 해결해줄 테니 묵묵히 기다리며 인내할 수밖에는 없다. K-3도 그냥 잡고 싶고 이곳에서 군 생활도 그냥 하고 싶고 주님이 허락하신 군종이란 직책도 해보고 싶다. 무척 힘들고 바쁠 테지만 그런 걸 즐겨보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군종마크를 달고 다닐 수 있으니 기대도 된다. 과연 이 상황이 어떻게 결정될진 모르지만, 잘 될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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