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건빵이랑 놀자

한시미학, 언어의 감옥, 입상진의론 - 6. 청산 위로 학이 날아간 자취 본문

책/한시(漢詩)

한시미학, 언어의 감옥, 입상진의론 - 6. 청산 위로 학이 날아간 자취

건방진방랑자 2021. 12. 5. 05:06
728x90
반응형

 6. 청산 위로 학이 날아간 자취

 

 

인종의 물음에 한시로 대답한 관사복

 

송나라 때 관사복(管師復)’은 스스로 와운선생(臥雲先生)이라 자호(自號)하며 전원에 묻혀 살았던 사람이다. 인종(仁宗)이 그를 불러, “경이 전원에 살며 얻은 것은 어떤 것인가?”하니, 그가 대답했다.

 

滿塢白雲耕不盡 둔덕 가득 흰 구름은 갈아도 끝이 없고
一潭明月釣無痕 못 속의 밝은 달은 낚아도 자취 없네.

 

언제나 흰 구름 자옥한 둔덕, 그 구름을 밭 삼아 다 갈아볼 날은 과연 언제이겠는가. 못 위에 둥두렷이 떠오는 밝은 달은 제 아무리 낚아채도 한량없는 무진장이다. 그러니 어떻다는 말인가?

 

竹影掃階塵不動 섬돌 쓰는 대 그림자, 먼지는 그대로요
月光穿沼水無痕 못을 뚫는 달빛에도 물에는 흔적 없네.

 

대나무 그림자는 바람에 일렁이며 섬돌 위를 빗질한다. 그래도 섬돌 위의 먼지는 그대로이다. 달빛은 연못 밑바닥을 뚫고 비친다. 물에는 아무런 흔적이 없다. 그래서 어쨌다는 것인가.

 

滄海難尋舟去迹 푸른 바다 배 간 자취 찾을 길 없고
靑山不見鶴飛痕 청산에는 학 난 흔적 볼 수가 없네.

 

()란 이와 같은 진공묘유(眞空妙有)’의 세계와 닿아 있다. 무언가 꼬집어 말하려 하면 사라져 버리는 느낌, 분명히 있기는 있는데 잡을 수 없는 그 무엇을 노래한다. 효용가치로 보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 그 저편으로 울려오는 떨림, 그 떨림의 미묘함을 소중히 여긴다. 그러므로 시인은, 인간에게는 단지 입상함으로써만이 진의할 수 있는 묘오(妙悟)의 세계가 있음을 믿고 있는 사람들이다.

 

 

 

은은히 보여 아름다움을 담다

 

명나라의 사진(謝榛)’은 그의 사명시화(四溟詩話)에서 이렇게 말한다.

 

 

무릇 시를 지음은 핍진(乏盡)한 것은 마땅치 않다. 마치 아침에 가서 멀리 바라보면 청산의 아름다운 빛이 은은하여 사랑스럽고, 안개와 노을은 변화무쌍하여 무어라 이름하여 설명하기 어렵다. 그러나 막상 올라가 보면 별반 기이한 경치가 아니고, 오직 돌 조각과 몇 그루 나무일뿐이다. 멀고 가까움에 본 바가 같지 않기 때문이니, ()는 어렴풋함에 있어, 그러한 속에서 비로소 솜씨가 드러나게 된다.

 

 

시에서 입상진의(立像盡意)를 귀히 여기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막상 시인이 말하고자 한 것을 일상의 언어로 풀어놓고 보면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는 몇 줄의 교훈이거나, 아니면 무어라 꼬집어 말할 수도 없는 미묘하고 추상적인 느낌의 단편뿐이다. 마치 멀리서 본 산이 아름답지만 막상 올라서서 보면 바위돌 몇 개, 나무 몇 그루뿐인 것과 같다. 그렇다고 멀리서 바라보는 산의 아름다움을 거짓이라고 거부할 일은 아니다.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에서 강촌의 온갖 꽃이 먼빛치 더옥 됴타고 노래할 줄 알았던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는 시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았던 사람이다. 소월이 말한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도 그 뜻이다. 양파의 껍질은 아무리 벗겨도 알맹이가 나오지 않는다. 시를 낱낱이 해부하여 찢어발기고 나면, 남는 것은 언어의 시체뿐이다. 멀리서 바라보이던 은은하고 아름다운 산의 모습은 간 곳이 없게 된다.

 

 

 

 

인용

목차

1. 싱거운 편지

2. 왜 사냐건 웃지요

3. 언덕에 오르려면 뗏목을 버려라

4. 내 혀가 있느냐?

5. 어부가 도롱이를 걸친다

6. 청산 위로 학이 날아간 자취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