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작약의 화려와 국화의 은은함
당시와 송시의 차이
송대의 유명한 화가 곽희(郭熙)는 그의 『임천고치(林泉高致)』에서 이렇게 말한다.
진짜 산수(山水)의 안개와 이내는 네 계절이 같지 않다. 봄산은 담박하고 아름다와 마치 웃는 듯하고, 여름산은 자욱이 푸르러 마치 물방울이 듣는 듯하며, 가을산은 맑고 깨끗하여 단장한 듯하고, 겨울산은 어두침침하고 엷어 마치 잠자는 듯하다.
산은 늘 그 자리에 서 있지만,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면 날마다 그 모습을 바꾼다. 봄산이 좋기는 하지만 여름산의 짙푸름은 마음을 시원하게 해준다. 가을산의 조촐함과 겨울 산의 담박함은 또 그것대로의 매력이 있다. 사람마다 기호가 같지 않으므로, 꼬집어 어느 산이 더 좋다고는 말할 수 없다.
시 또한 이와 다를 것이 없다. 당시(唐詩)를 두고 흔히 중국 고전시가의 꽃이라고 말하여 계절로 치면 봄에 해당한다고들 하고, 이에 반해 송시(宋詩)는 가을에 견주기도 한다. 또 백화난만한 고궁의 봄 뜰을 친구와 어울려 산책하는 정취를 당시(唐詩)의 세계에 견주고, 들국화 가득히 핀 가을 들판을 홀로 걸으면서 사색에 잠겨 보는 것으로 송시(宋詩)의 세계를 비유하기도 한다. 어떤 이는 당시(唐詩)는 호탕한 기개를 지닌 장부가 높은 산에 올라가서 큰 소리로 노래하는 것 같고, 송시(宋詩)는 달밤에 호수에 배 띄우고 선비가 마주 앉아 학문을 논하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한편으로 당시(唐詩)와 송시(宋詩)의 차이는 보여주기와 말하기의 차이로도 설명할 수 있다. 어떤 시인은 시 속에서 자꾸 무엇인가를 말 하고 싶어 하고, 또 어떤 시인은 가급 말하는 것을 절제하는 대신 보여주기를 좋아한다. 이때 말한다는 것의 의미는 도덕적이거나 교훈적인 메세지의 전달을 뜻한다. 시인이 독자에게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는 시는 이해가 쉬운 반면 자칫 식상감을 주거나 거부감을 일으키기 쉽다. 반면 보여주기만 하는 시는 추상의 나락으로 떨어져 버리거나, 자칫 무슨 말인지 갈피를 잡기가 쉽지 않다. 또 이 경우 시인의 의도는 단지 이미지를 통해 전달되므로 독자의 적극적인 독시(讀詩)가 요청된다. 말하는 시가 좋은지, 보여주는 시가 좋은지는 순전히 기호에 달린 것이므로 둘 사이의 우열을 갈라 말하기란 난처한 일이다. 그것은 마치 가을 산이 가장 좋다는 사람에게 겨울 산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타박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무월의 당시와 송시 평론
무월(繆鉞)은 「논송시(論宋詩)」란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당시(唐詩)는 작약(芍藥)이나 해당(海棠)처럼 짙은 꽃[婇華]과 화려한 색채[繁采]가 있다. 송시(宋詩)는 한매(寒梅)나 추국(秋菊)처럼 그윽한 운치[幽韻]와 서늘한 향기[冷香]가 있다. 당시(唐詩)는 여지를 씹는 것처럼 한 알을 입 안에 넣으면 단맛과 향기가 양 볼에 가득 찬다. 송시(宋詩)는 감람(橄欖)을 먹는 것처럼 처음엔 떠름한 맛을 느끼지만 뒷맛이 빼어나고 오래 간다. 이것을 산수(山水)에 노는 것에 비유하면 당시(唐詩)는 곧 높은 봉우리에서 원망(遠望)하여 의기(意氣)가 호연(浩然)한 것과 같고, 송시는 곧 그윽한 골짜기 냇물을 찾아 정경(情境)이 냉초(冷峭)한 것과 같다.
작약(芍藥)이나 해당화(海棠花)의 화려한 색채는 화려하게 성장(盛裝)한 미인(美人)의 우아한 자태를 연상시킨다. 이것이 당시(唐詩)이다. 반면 눈 속에 피어나는 매화(梅花)나 서리를 이겨내는 국화(菊花)의 은은하고 그윽한 향기는 화장도 하지 않고 소복을 곱게 차려 입은 여인의 얼음 같은 아름다움을 떠올린다. 이것은 송시(宋詩)이다.
신경준의 당시와 송시 평론
조선 후기의 학자 신경준(申景濬)은 「시칙(詩則)」이란 글에서 역대로 많은 시가 있어 왔지만, 시의 작법은 ‘영묘(影描)’와 ‘포진(鋪陳)’, 두 가지를 벗어날 수 없다고 전제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당인(唐人)은 광경을 즐겨 서술하였다. 그래서 그 시에는 영묘(影描)가 많다. 송인(宋人)은 의론 세움을 즐겨하였다. 그래서 그 시에는 포진(鋪陳)이 많다. 대저 광경을 서술함은 국풍(國風)의 나머지에서 나온 것이니 자못 참되고 두터운 맛이 적다. 의론을 세움은 양아(兩雅)의 나머지에서 나온 것으로 생각의 자취가 완전히 드러나 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당인은 시(詩)를 가지고 시(詩)를 지었고, 송인은 문(文)을 가지고 시(詩)를 지었다고 생각하여 당시(唐詩)가 송시(宋詩)보다 훨씬 뛰어나 송시(宋詩)는 당시(唐詩)에 미치지 못한다고 보았다. 이는 당시(唐詩)에는 영묘(影描)가 많고, 송시(宋詩)에는 포진(鋪陳)이 많은 까닭이다. 그러나 송시(宋詩)가 당시(唐詩)만 못한 것은 바로 기격(氣格)이 모두 밑도는 까닭이지 포진(鋪陳)이 영묘(影描)만 못하여서 그런 것은 아니다.
唐人喜述光景, 故其詩多影描; 宋人喜立議論, 故其詩多鋪陳. 大抵述光景. 出於國風之餘, 而頗小眞厚之味; 立議論, 出於兩雅之餘, 而全露勘斷之跡. 俱未始不出於三百篇之餘, 而其視三百篇, 亦遠矣. 世之人皆以爲唐人以詩爲詩, 宋人以文爲詩, 唐固勝於宋, 宋固遜於唐. 此以唐詩多影描, 宋詩多鋪陳故也. 然而宋之不如唐, 是因氣格俱下之致也, 非由於鋪陳素不如影描而然也.
대개 당시의 묘사적이고 서정적 경향과 송시의 사변적이고 설리적(說理的) 경향을 갈라 대비한 것이다. 여기서 당시(唐詩)의 특징으로 거론한 영묘(影描)란 글자 그대로 그림자를 묘사하는 것이다. 그림자는 말 그대로 그림자일 뿐 실체가 없다. 실체가 없는 것을 어떻게 묘사해낸다는 말인가. 대상과 마주하여 일어나는 시인의 감정(感情)은 실로 그림자와 같아서, 무어라고 꼭 꼬집어서 말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시는 그 무어라고 꼭 꼬집어 말할 수 없는 느낌을 언어로 옮겨내는 것이라는 말이다. 반면 포진(鋪陳)이라 함은 사실을 사실 그대로 진술한다는 의미이다. 시인은 어느 때 사실을 말하려고 하는가. 의론(議論)을 세워 자신의 주의 주장을 전달하려 할 때 포진(鋪陳)의 방법을 사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당시(唐詩)가 낭만적ㆍ감성적 취향이라면, 송시(宋詩)는 고전적ㆍ이성적 취향이다. 대개 감성의 욕구는 자칫 무절제로 흐르기 쉽고, 이성의 욕구는 흔히 논리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그러므로 한시사(漢詩史)의 전개에 있어서 당시풍(唐詩風)과 송시풍(宋詩風)의 변화 교체가 쟁점이 되어 온 것은 그 시대 문학의 풍격과 성향의 자연스런 변화와 관계된다.
사람은 젊어선 당시를 하고 늙어선 송시를 짓게 된다
전종서(錢鍾書)는 『담예록(談藝錄)』에서 “사람의 일생에서 소년시절에는 재기가 발랄하여 마침내 당시(唐詩)의 기풍을 띠게 되기 마련이고, 노년시절에 이르면 사려가 깊어져서 송시(宋詩)의 기풍을 띠게 되기 마련이다”라고 한 것은 매우 시사적이다. 한 사람의 생애에 있어서도 이럴진대, 문학 환경의 변화에 따른 시풍의 변모는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다. 사실 이러한 점은 현대의 시인도 비슷하다. 젊은 시절 격동하는 감정의 분출과 화려한 비유로 독자를 사로잡던 시인도 만년에는 인생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담한 언어에 담아 노래하는 것을 흔히 보게 된다. 이로 보면 당시(唐詩)와 송시(宋詩)의 구분은 실제로는 인생을 바라보는 태도와 연관되는 것이기도 함을 알 수 있다.
다음 이수광(李晬光)의 언급은 당시와 송시를 구분하는 한 실례를 제시하고 있다. 『지봉유설(芝峯類說)』에 보인다.
당나라 사람의 시에 이르기를, “꽃 피자 나비들 가지에 가득터니, 꽃 시드니 나비는 다시금 안 보이네. 다만 저 옛 둥지의 제비만이 주인이 가난해도 돌아왔구나[花開蝶滿枝, 花謝蝶還稀. 惟有舊巢燕, 主人貧亦歸]”라 하였다.
또 송나라 사람이 길 가의 나무를 읊어 이르기를, “미친바람 뽑아서 거꾸러뜨리니, 나무는 거꾸러져 뿌리까지 드러났네. 그 위의 몇 가지 등나무 줄기, 푸릇푸릇 여태도 모르고 있네[狂風拔倒樹, 樹倒根已露. 上有數枝藤, 靑靑猶未悟].”라 하였다.
이 두 시는 구법(句法)이 서로 비슷하다. 그러나 당시와 송시의 구분 또한 뚜렷하다.
唐人詩曰: “花開蝶滿枝, 花謝蝶還稀. 惟有舊巢燕, 主人貧亦歸.”
又宋人詠路傍樹云: “狂風拔倒樹, 樹倒根已露. 上有數枝藤, 靑靑猶未悟.”
此二詩句法相似. 而唐宋之辨, 亦較然矣.
예로 든 두 시 사이의 미묘한 차이를 알겠는가? 이것이 당시와 송시의 차이다.
홍만종(洪萬宗)은 그의 「시화총림증정(詩話叢林證正)」에서 말했다.
당을 존중하는 사람은 송을 배척하여 비루하여 배울 바 못 된다 하고, 송을 배우는 사람은 당을 배척하여 나약하여 배울 것이 없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말은 모두 편벽된 언론이다. 당이 쇠퇴하였을 때에는 어찌 속된 작품이 없었겠으며, 송이 성할 때에는 또 어찌 고아한 작품이 없었겠는가. 우리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而世之言唐者, 斥宋曰卑陋不足學也; 學宋者, 斥唐曰萎弱不必學也, 玆皆偏僻之論也. 唐之衰也, 豈無俚譜; 宋之盛也, 豈無雅音? 只在吾, 自得之妙而已.
당시나 송시 어느 일방에만 흐르는 편벽된 경향을 경계하고 있다.
당시(唐詩) | 송시(宋詩) |
봄 | 가을 |
보여주기 | 말하기 |
묘사적이고 서정적 경향 | 사변적이고 說理的 경향 |
백화난만한 고궁의 봄 뜰을 친구와 어울려 산책하는 정취 | 들국화 가득히 핀 가을 들판을 홀로 걸으면서 사색에 잠겨 보는 것 |
호탕한 기개를 지닌 장부가 높은 산에 올라가서 큰 소리로 노래하는 것 | 달밤에 호수에 배 띄우고 선비가 마주 앉아 학문을 논하는 것 |
인용
5. 배 속에 넣은 먹물
'책 > 한시(漢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시미학, 보여주는 시인 당시와 말하는 시인 송시 - 4. 송조, 머리로 쓴 시 (0) | 2021.12.05 |
---|---|
한시미학, 보여주는 시인 당시와 말하는 시인 송시 - 3. 당음, 가슴으로 쓴 시 (0) | 2021.12.05 |
한시미학, 보여주는 시인 당시와 말하는 시인 송시 - 1. 꿈에 세운 시의 나라 (0) | 2021.12.05 |
한시미학, 언어의 감옥, 입상진의론 - 6. 청산 위로 학이 날아간 자취 (0) | 2021.12.05 |
한시미학, 언어의 감옥, 입상진의론 - 5. 어부가 도롱이를 걸친다 (0) | 2021.1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