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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 - 교사 신뢰 서클(15.08.10~12) 본문

연재/배움과 삶

연수 - 교사 신뢰 서클(15.08.10~12)

건방진방랑자 2020. 2. 12.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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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춧돌 발견과 교사의 마음

 

학교밖 청소년 지원센터에 게시된 내용. 이 내용을 봤을 때, 편하게 책도 읽고 쉬다가 올 수 있을 줄만 알았다.

 

숙소로 배정받은 1208호다. 여기서 성미산 학교 김인호 선생님과 같이 잠을 잤다. 시설이 완전 최고죠.

 

 

한 타임은 세션으로 구분된다. 그리고 그 세션은 크게 다음의 진행 방식을 따른다.

1. 은은한 종소리와 함께 침묵을 초대(이 프로그램에선 초대라는 말을 많이 쓴다. 아마도 자발적인 참여를 강조하기 위해 쓰는 단어인 듯 하다)한다.

2. ‘여는 시를 통해 세션의 의미를 탐구하고 의미 있게 다가온 구절을 나눈다.

3. 세션에 따른 활동을 진행한다. 이 때 홀로 마음을 돌아보며 그 내용을 쓰고, 세 명(또는 두 명)이 함께 모여 자신이 쓴 내용을 공유하고, 모두 다 함께 둘러 앉아 공유된 내용 중 함께 나누고 싶은 내용을 이야기 한다.

4. ‘닫는 시를 통해 세션에서의 의미를 곱씹으며 마무리 짓는다.

 

이따금 일에 치이고, 삶의 의미가 무언지 생각조차 되지 않을 때 불연듯 떠난다. 그게 어디든, 무얼 위해서든 그렇게. 

 

 

 

세션 1: 환영과 서클 열기

 

1. 여는 시

 

우리가 서로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

우리는 동시에

자신의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고립과 외로움으로부터 치유된다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나,

자신을 아는 것은

자신을 드러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열린 마음과 가슴으로 듣는

신뢰할만한 누군가에게

자신의 삶에 대해 말하는 것을 스스로 들으면서 비롯

우리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깨닫게 된다.

Keen & Valley-Fox in your Mythic Journey

 

 

2. 세션 수행

 

신뢰서클 주춧돌 발견하기

 

깊은 내면을 봐야한다는 인식 때문인지, 서로 믿음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래서 자신을 믿기 위한, 서로를 믿기 위한 주춧돌을 쌓는다. 

 

주춧돌엔 자신을 믿기 위한 다양한 내용들이 쓰여 있다. 무엇이 내 맘을 울리는가? 아니 좀 더 의미심장하게 들리는가?

 

差異를 껴안기

말을 하다보면 차이가 나고 그 차이는 비난으로 흐른다.

차이를 인정한다는 것을 안다고 하면서도 아는 것과 현실에서의 괴리에 늘 비난이 앞서는 건, 어느 순간 자존심 싸움으로 변질되기 때문이다. 결국 차이라는 말 자체가 가지고 있는 건, ()이다

학교에서 발간하는 잡지 이름이 [다르다]지만, 여전히 다름을 틀림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많다. 어려운 일이다.

 

 

3. 닫는 시

 

그것이 무슨 인생인가, 근심으로 가득 차

잠시 멈춰 서서 바라볼 시간조차 없다면.

 

나뭇가지 아래서 양과 소의 순수한 눈길로

펼쳐진 풍경을 차분히 바라 볼 시간이 없다면.

 

숲을 지나면서 수풀 속에 도토리를 숨기는

작은 다람쥐들을 바라 볼 시간이 없다면.

 

한낮에도 마치 밤하늘처럼 반짝이는 별들을

가득 품은 시냇물을 바라볼 시간이 없다면.

 

아름다운 여인의 다정한 눈길에 고개를 돌려

춤추는 그 고운 발을 바라 볼 시간이 없다면.

 

눈가에서 시작된 그녀의 환한 미소가

입가로 번질 때까지 기다릴 시간이 없다면.

 

얼마나 가여운 인생인가, 근심으로 가득 차

잠시 멈춰 바라 볼 시간이 없다면.

- 윌리엄 헨리 데이비즈, 여유

 

어색한 사람들이 만나 자기 얘기를 한다는 게 쉬운 건 아니다. 하지만  안 해도 되니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세션 2: 교사의 마음

 

1. 여는 시

 

우리가 우리의 삶에서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ought’에만 귀를 기울인다면, 우리의 정체성과 진실성을 왜곡시키는 외부의 기대치를 따라가게 된다. 관념적, 도덕적 규범 때문에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것이 나의 진정한 직업인가? 내가 정말 재주가 있어서 그 일에 부름을 받은 것인가? 이 특정한 의무는 과연 나의 내적 자아와 외부세계가 교차하는 지점인가? 그것은 혹시 다른 사람이 설계헤 놓은 내 인생의 외관은 아닐까?

 

의무사항만 수행하다 보면 윤리적으로는 칭송받겠지만 진정한 나의 일은 하지 못하게 된다. 아무리 남들이 높은 평가해 주는 것일지라도 진정한 나의 직업이 아니면 나의 자아에 해를 입히게 된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해서, 어떤 관념적인 규범 때문에 나의 정체성과 성실성이 피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내가 나 자신을 해치면 결국에는 남까지 해치게 된다. 진정한 자신의 직업이 아닌 일을 맡는 데서 오는 고통을 학생들에게 떠넘기는 교사가 얼마나 많은가.

 

이처럼 의무감에서 어떤 직업을 선택하게 되면 거기에는 긴장과 폭력이 뒤따르게 된다. 프레데릭 뷔흐너는 직업에 대하여 좀더 관대하고 인간적인 정의를 내렸다. “직업은 당신의 진정한 기쁨과 세상의 깊은 허기가 서로 만나는 장소이다.”

때로 일을 고통과 동일시하는 문화에서, 직업의 가장 좋은 내면적인 표시가 진정한 기쁨이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의 혁명적인 제안이다. 혁명적이지만 동시에 진실이기도 하다. 어떠한 일이 진정한 나의 것이 된다면, 그 과정이 힘들었지라도 궁극적으로는 나를 기쁘게 할 것이다. 그리고 어려운 날들도 결국에는 나를 기쁘게 한다. 왜냐하면 그 어려운 날들이 제기한 문제점 덕분에 나는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일이 나를 기쁘게 하지 않는다면, 그 일을 그만두는 문제를 진지하게 고려해 보아야 한다. 나의 정체성에서 흘러나오지 않는 어떤 것에 나 자신을 바칠 때, 그것은 나의 본성을 위반하는 것이 되고, 이 세상의 허기를 달래 주기는커녕 더욱 심화시키는 꼴이 되고 만다. 물론 보람보다는 돈 때문에 일을 해야 할 때가 있다. 또 어떤 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불쑥 회사를 그만둘 수도 없다. 그렇지만 자신의 영혼에 위배되는 일을 해서 자신은 물론 남들에게 해를 입히는 문제는 심각하게 반성해야 한다. 또 정체성을 지키려는 것이 과연 사치일까하고 회의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볼 때 어떤 결정이 우리에게 안정감을 가져다주는가? 이 일을 계속 붙잡고 있을 것인가 아니면 내 영혼을 존중할 것인가? 이런 질문을 계속 던져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내면에 있는 교사(참자아, 영혼이라고 부를 수 있는)는 양심의 소리가 아니라 정체성과 성실성의 목소리이다. 그것은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실재적인 것은 무엇인가, 우리에게 진실은 무엇인가 하고 질문을 던진다. 그것은 이렇게 말한다. “이건 당신에게 알맞지만, 저건 아니야.”, “이건 당신에게 생명을 주지만, 저건 당신의 영혼을 죽여, 당신에게 죽음의 생각만 안겨 줘.”

내면의 교사는 자아의식의 정문 앞에서 보초를 서면서, 우리의 정체성에 위배되는 것을 물리치고 정체성에 합당한 것을 받아들인다. 내면에 있는 교사의 목소리는 내가 내 인생의 역장을 헤쳐 나갈 때, 나에게 나의 진실을 상기시킨다.

 

나는 내면의 교사라는 개념이 일부 학자들에게는 낭만적인 환상으로 들린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우리의 삶에 내면의 교사에 대한 믿음이 없다고 생각해 보라. 그렇다면 교육의 목적을 강조한, 수세기에 걸친 서양의 담론은 입에 발린 말에 지나지 않게 된다.

 

고전적인 의미에서 교육은 자아의 내부에서 지혜의 핵심을 뽑아내려는노력이다. 이 지혜의 힘으로 거짓을 물리치는 힘을 갖게 되고 또 진리의 빛 속에서 살게 되는 것이다. 이때 사람들은 외부적인 규범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이성적이고 반성적인 자기결단으로 행동한다. 그러니 내면의 교사는 우리 삶의 살아 있는 핵심이며, 모든 가치 있는 교육이 지향해야 할 꼭짓점인 것이다.

-파커 파머, 가르칠 수 있는 용기

 

 

2. 세션 수행

 

내면의 교사내용으로 마음 비추기

 

內面의 교사

어려운 날들도 결국에는 나를 기쁘게 한다. 왜냐하면 그 어려운 날들이 제기한 문제점 덕분에 나는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윗 글의 내용 중 뭔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 문구를 고르라는 데, 난 이 문구가 그나마 의미심장했다. 지금 난 어려운 상황이라 그런가. 

 

 

3. 닫는 시

 

세상에 대한 절망이 내 안에서 자라고

내 삶과 아이들의 삶이 어떻게 될까 걱정스러워

한밤중에 아주 작은 소리에도 잠이 깨면

나는 야생오리들이 물 위에서 아름답게 쉬고

큰 왜가리가 거니는 곳으로 가서 누워 본다

그곳에서 나는 앞일에 대한 근심으로

미리 자신들의 삶을 힘들게 하지 않는

야생이 주는 평화에 젖어들고

고요한 물의 현존 속으로 빠져든다

그러면 낮에는 보이지 않는 별들이

내 위에서 빛을 담고 기다리고 있음을 느낀다

그렇게 잠시 세상의 은총 속에서 쉬고 나면

나는 자유롭다

-웬델 베리, 야생 속에서의 평화

 

벽에 써 있는 구절 중 맘에 든 구절인데, [논어]를 읽어봤지만 저런 구절이 있나 싶어서 찾아 봤다. 한문의 해석은 꽃 같다.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드러낼 것인가에 따라 같은 글도 전혀 다른 느낌으로 해석되니 말이다?

 

 

자장이 덕을 높이고 미혹을 분별하는 법에 대해 묻자 공자가 성실과 신뢰를 중요하게 여겨 진심으로 인의를 실천하는 것이 덕을 높이는 길이다. 사람을 사랑하면 그가 더 오래 살기를 바라고, 미워하면 빨리 죽기를 바라게 된다. 그가 살기를 바라면서 죽기도 바라는 마음이 바로 미혹이다.”라고 말했다.

子張問崇德, 辨惑. 子曰:“主忠信, 徙義, 崇德也. 愛之欲其生, 惡之欲其死. 旣欲其生, 又欲其死, 是惑也.” -논어』 「안연10

 

침묵이 흐르지만, 그렇게 시간도 흐르며 뭔가 모르게 알 것 같은 느낌이 감돈다.

 

 

 

2. 내면의 교사와 가르침에 대해

 

세션마다 여는 시와 닫는 시, 그리고 세션에 본문과도 같은 글까지. 전달해야 할 게 많다.

 

 

세션 3: 안과 밖의 연결

 

1. 여는 시

 

존재의 언어로 만나자.

부딪침과 느낌과 직감으로.

 

나는 그대를 정의하거나 분류할 필요가 없다.

그대를 겉으로만 알고 싶지 않기에.

침묵 속에서 나의 마음은

그대의 아름다움을 비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소유의 욕망을 넘어

그대를 만나고 싶은 그 마음

그 마음은

있는 그대로의 우리를 허용해 준다.

 

함께 흘러가거나 홀로 머물거나 자유다.

나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그대를 느낄 수 있으므로.

-클라크 무스타카스, 침묵의 소리

 

 

2. 세션 수행

 

안과 밖 이미지

 

두 가지 종류의 지성이 있다. 그 하나는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 책이나 교사로부터

개념을 배우고 암기를 하면서 배우는 지성.

진통으로부터 또한

새로운 학문으로부터 배우는 지성이다.

 

그러한 지성의 힘으로 너는 세상에서 일어선다.

등급에서 남을 앞서기도 하고 남에게 뒤처지기도 한다.

그 지식을 습득하는 능력에 따라.

그 지시의 장 안팎으로 드나들며,

네 안의 지식의 판에 더 많은 지식을 새긴다.

 

또 다른 종류의 지성이 있다.

네 안에 이미 완성되어 존재하는 지성,

샘에서 흘러넘치는 샘물 같은 지성.

그 신선함이 가슴 한가운데를 적신다.

이 지성은 시들지도 썩지도 않는다.

그것은 늘 흐른다.

그것은 주입식 학습의 경로를 통해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이 두 번째 지성은

샘의 근원이다.

네 안에서 밖으로 흘러넘치는.

-젤랄루딘 루미, 두 가지 지성

 

내가 고른 이미지. 왼쪽이 안의 이미지이고, 오른쪽이 바깥의 이미지다.

 

 

긴장

빼곡함에 대한 열망, 분주해야 한다는 조바심.

팽팽히 당겨진 시위, 발 디딜 틈 없는 삶.

연기는 그런 삶이 언제 폭발할지 모를 정도로

위태롭다는 걸 드러내주는 게 아닌가.

 

해질녘의 고즈넉함

인위적인 노력 없이, 애씀 없이 해가 저물면 그걸 그대로 관망한다. 더 이상 해를 끄집어 내리려, 애쓰지 않는다.

비가 내리면 비 내리는 거릴 걸어가고, 달이 뜨면 달이 뜬 길을 걷는다. 경계선이 희미한 것은 어찌보면 삶이란 게 규정된 게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경계를 불살라 대지를 박차고 나가라.

 

통찰

나의 허례허식, 뒤집으면 반대가 된다

안과 밖의 이미지에 덧칠한 나의 생각.

 

위의 설명을 듣고, 여름쌤은 가스렌지 위의 밥솥을 그려 불을 켜지 말라는 의미를 전해줬고, 유림쌤은 달과 별을 통해 여백의 미를 드러내줬다.

 

 

3. 닫는 시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 청옥산 기슭

덜렁 집 한 채 짓고 살러 들어간 제자를 찾아갔다

거기서 만들고 거기서 키웠다는

다섯 살 배기 딸 민지

민지가 아침 일찍 눈을 비비고 일어나

말없이 손을 잡아끄는 것이었다

저보다 큰 물뿌리개를 나한테 들리고

질경이 나싱개 토끼풀 억새……

이런 풀들에게 물을 주며

잘 잤니,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게 뭔데 거기다 물을 주니?

꽃이야, 하고 민지가 대답했다

그건 잡초야, 라고 말하려던 내 입이 다물어졌다

내 말은 때가 묻어 천지와 귀신을 감동시키지 못하는데

꽃이야, 하는 그 애의 말 한마디가

풀잎의 풋풋한 잠을 흔들어 깨우는 것이었다

- 정희성, 거미가 짓는 집,민지의 꽃

 

어제 책을 보다 보니 저절로 잠이 올 정도로 긴장이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숙소를 잠시 둘러봤다.

 

 

 

세션 4: 우리는 우리의 자아를 가르친다

오늘 아침 沈默會에 참석했다. 일찍 눈이 떠졌기도 하고 여기 있는 동안 충실히 참여하는 게 낫겠다고 오늘 아침에 갑자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강박일지라도 이번 연수의 글도 남길 것이다. 그것 멋내고 과하게 의미부여 하는 것이 아닌 내 자신의 삶이기 때문이다. 나를 드러내는 것에서 물러서진 않을 것이며 남에게 떠보는 것엔 궁리하리라.

 

교회의 새벽기도처럼 7시 30분엔 30분간 침묵의 시간이 있다.  어떤 느낌일까 싶어서 참석하게 되었다.

 

 

1. 여는 시

 

사람이 온다는 건

사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낼 수 있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정현종, 방문객

 

 

2. 세션 수행

 

나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나 자신을 교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르치는 즐거움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순간들도 많다. 그런가 하면 나와 내 학생들이 지도 없는 영역을 탐구할 때, 우리의 경험이 내면의 번개 같은 생명에 의해서 환히 불 밝혀질 때, 그때에는 교직이 나의 천직이 된다.

어떤 순간에는 교실이 너무나 생기 없고 고통스럽고 혼란스러운 공간이 되어버린다. 그리하여 나는 무기력하게도 아무런 대응도 할 수 없고 교사라는 나의 자부심은 속 들여다보이는 거짓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런 때에는 도처에서 적들이 나타난다. 화성에서 온 것 같은 학생들, 생판 처음 들어보는 것 같은 학과 내용, 교직으로 생계를 꾸려가야 하는 나의 개인적인 생활에 대한 측은한 마음 등등이 모두 적이 된다.

이 심오한 직업의 예술을 모두 이해한다고 생각했다니 나는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찻잎으로 점치는 것보다 더 어렵고 보통 인간으로서는 중간도 하기 어려운 이 직업-‘가르친다는 것’-을 말이다! 사실 이런 교사들이 어려운 날을 맞게 되는 것은 교직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너무 사랑한 것 때문에 고통을 당한다. 당신이 교직을 그토록 사랑한다면- 사실 많은 교사들이 그러하다- 문제에서 빠져나오는 유일한 방법은 문제를 좀 더 깊이 파고드는 것이다. 우리는 교직의 문제를 피할 것이 아니라 그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렇게 해야 교직의 문제를 더 잘 이해하고 슬기롭게 헤쳐 나갈 수 있으며, 또 교사로서의 사기를 진작함과 동시에 학생들에게 더 잘 봉사할 수 있다.

교사들은 세 가지 근본적인 문제를 갖고 있다. 앞의 두 가지는 평범하지만 마지막 세 번째는 좀 더 근본적이며 그동안 제대로 취급되지 않았던 것이다.

첫째, 우리가 가르치는 학과가 실제보다 더 크고 복잡하여 우리의 지식이 늘 모자라고 또 부분적이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아무리 독서와 연구를 많이 한다고 하더라도 교직은 우리가 알 수 있는 범위 이상의 것을 요구한다.

둘째, 우리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실제보다 더 크고 복잡하다는 것이다. 학생들을 분명하게 이해하고 하나의 전체로 보고, 매 순간 그들에게 현명하게 반응하려면, 프로이트와 솔로몬을 합쳐놓은 것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우리들 중에는 이런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만약 학생과 학과가 교직의 어려움을 설명하는 모든 요인이라면, 우리는 해당 학과를 열심히 연구하고 또 학생 심리를 미리 파악하는 기술을 습득하기만 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교직의 어려움을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요인이 있으니, 그것이 우리가 우리의 자아를 가르친다는 점이다.

진정한 인간의 행동이 그렇듯이, 가르치는 행위도 좋든, 나쁘든 인간의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다. 나는 가르치면서 학생, 학과, 나와 학생이 함께 엮여지는 방식에 나의 영혼을 투영한다. 내가 교실에서 경험하는 이런 엮임은 나의 내면적인 생활의 엮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가르침은 자신의 영혼에 거울을 들이대는 행위이다. 만약 내가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거기에 나타난 풍경으로부터 도망치지 않는다면, 나는 자기지식을 얻을 수 있다.

사실, 학생과 학과를 잘 이해하는 것은 자기지식에 크게 의존한다. 만약 내가 나 자신을 모른다면, 나는 내 학생이 누구인지 모르게 된다. 나는 반성 없는 생활의 그림자 속에서 검은 안경을 쓰고 학생들을 보게 된다. 학생들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면 그들을 제대로 가르칠 수 없다. 내가 나 자신을 모른다면 내 학과-구체적이고 개인적인 의미가 가미된 높은 수준의 학과-를 이해할 수 없다. 나는 멀리 떨어져서 추상적으로만 학과를 이해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것은 구체적인 현실과는 동떨어진 개념의 덩어리가 되어버린다.

나 자신을 알기위해 필요한 작업은 결코 이기적인 작업도 나르시스적인 작업도 아니다. 우리를 진정한 교사로 만들어 주는 자기지식은 우리의 학생과 학과에 도움을 줄 것이다. 훌륭한 가르침은 자기지식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훤히 보이는 곳에 감추어둔 비밀이다.

-파커 파머, 가르칠 수 있는 용기

 

 

교사가 되게 했던 결정적인 계기는?

지금 이 순간이 맹목적으로 좋다. 올여름엔 최초로 피서를 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여러 일이 겹치며 좌절했다. 그렇게 황금방학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불행 중 다행으로 여기서 피서를 하게 되었다.

무언가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속내를 이야기하는 곳이지만,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안심이 되고 맘이 놓인다.

에어컨으로 시원한 데다 끊임없이 제공되는 간식, 시원한 강의실, 시원한 잠자리 더 이상 바랄 게 하나도 없다. 푹 쉬며 몸도 맘도 릴렉스할 수 있다면 된다. 그 뿐이다.

교사가 된 결정적인 계기는 사람이 궁금해지면서.

그 전엔 그러지 못했기에

교사가 왜 되어야 겠단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되다. 예전의 고민(예전의 고민 보기)이 이은 또 다른 고민.

 

 

3. 닫는 시

 

살아오면서 가장 감동적인 선생님이

어떤 분이었는지 돌아보면

선생님들이 한 말은 기억이 안 나지만

어떤 분이었는지는 기억합니다.

그분들이 가르치는 것에 대해 열정이 있었는지,

가르치는 주제와 관련해서 여러분에게 열정이 있었는지,

여러분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었는지, 아니면

교실에 돌머리가 하나 더 않아있는 것으로 보았는지 말이죠.

 

그런 분에게 배울 수 있다는 건

학생으로서 아주 드문 경험이지요.

상상해보세요.

선생님이 온전히 자신의 존재감을 갖고,

즉 자신이 왜 거기 있는지 알고,

거기 있는 것을 사랑하면서 존재하는 모습을요.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을 사랑하면서 말이에요.

그런 선생님의 모습을 이렇게 바꾸어 말할 수 있습니다.

그분들의 행위는 그분들의 존재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존재의 영역을 계발한다는 건,

꿈적 않고 앉아만 있는 명상가가 된다든가

어떤 일도 하지 않는다든가

어떤 일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 돼버린다든가 하는데 아니고,

오히려 그 반대로,

우리의 행위가 우리의 깊은 존재를 알려주는 방식,

존재와 행위가 서로를 더 풍요롭게 하는

친밀한 방식을 배우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의 행위는

훨씬 더 깊은 곳에서 나옵니다.

그럴 때 우리의 행위는 더 창조적이며 예리한 것이 되고

훨씬 더 수월한 것이 되며, 또한 상황이 어려워질 때

도피하지 않고 그 상황과 함께 머무릅니다.

왜냐면 존재를 계발할 때 우리 행위의 동기가

우리의 존재에서 나오게 되기 때문이죠.

 

그때 우리의 행위는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 됩니다.

- 존 카밧진, 존재와 행위

 

자신의 생각이나 이미지들이 원을 그리며 쌓여 간다. 그래서 신뢰의 서클이라는 하는 것인가?

 

 

 

3. 메타포 작업과 내면의 교사에게 묻는 법

 

 

세션 6: 가르침에 있어 진실한 순간

늘 푸짐히 준비되어 있는 간식들. 당 떨어질 때마다 바로 바로 채울 수 있으니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1. 여는 시

 

우리의 마음이 고요한 수면이 될 때 비로소,

우리 옆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고요함으로 해서 잠시라도

더 명료하게 더 치열하게 살 수 있게 될지 모른다.

-윌리암 버틀러 예이츠

 

 

2. 세션 수행-메타포 작업

 

우리는 이 메타포 게임을 가지고 두 걸음 더 나아감으로써 정체성과 성실성을 좀 더 깊이 탐구할 수 있다.

첫째, 우리는 그 메타포가 드러내는 장점은 물론 그것이 드리우는 그림자도 살펴 볼 수 있다. 우리가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정체성과 성실성은 늘 밝고 환한 것만은 아니다. 나의 메타포가 제시하는 그림자는 분명하다. 나는 양떼라는 말을 나쁜 의미로 보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나는 학생들이 너무 유순하거나 바보 같거나 머리를 푹 숙이고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 화가 난다. 만약 내가 이런 그림자를 나와 학생들 사이에 끼워 넣는다면, 나는 잘 가르치지 못할 것이다. 양치기개의 메타포가 나의 그림자를 의식하게 만드는 정도에서 그친다면, 나와 학생 모두에게 좋은 일이 될 것이다.

둘째, 우리는 그 메타포를 명심하고 또 남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교실에서의 난국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방법을 찾아 낼 수 있다. 나는 이렇게 자문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양치기 개라면 어떻게 했을까?” 역서는 문제 해결과 테크닉의 차원은 잠시 접어두고 그 메타포 속에서 답을 찾으려고 애써보는 것이다.

이러한 연습은 내 정신의 저 밑바닥에 있는 이미지와 연결된 것이므로 교실에서 난국을 만날 때마다 써먹는 재빠른 기술적인 처방과는 다른 대응 방식을 생각하게 만든다. 그것은 비록 상상을 통한 것이긴 하지만 가장 심오한 처방이 발견되는 정체성과 성실성의 내적인 영역으로 나를 인도한다.

나의 경우 그런 상상에서 나온 처방은 아주 구체적이었다. 내가 그랬던 것과 다르게 양치기개는 교실이 와해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고 행동이 불량한 양을 경고하고 징벌하여 조기에 그런 행동을 막았을 것이다. 내가 그랬던 것과는 다르게 양치기개는 교실의 모든 양이 희생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고 행동이 불량한 양에게 몇 번 경고한 후에도 자꾸만 경계 밖으로 나가려 한다면 그대로 방치하여 늑대에게 잡아먹히도록 했을 것이다.

양치기개는 착한 사람노릇을 하다가 상황이 통제 불능으로 빠지는 것보다는 강인한 사랑을 실천했을 것이다. 나는 이런 메타포의 의미를 여러 종류의 실천적인 행동으로 번역해낼 수 있다. 가령 학생들의 태도 불량에 대해 직접적으로 주의를 주는 방식에서부터 행동 수정의 경고를 겸한 극단적인 학점 짜게 주기 등 다양한 행동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내게 필요한 인도력은 메타포 그 자체의 정신적인 에너지 속에 들어있다.

-파커 파머, 가르칠 수 있는 용기

 

가장 최선을 다해 가르칠 때?

나의 욕심은 내려놓고 그 아이가 할 수 있는 것을 할 때 박수쳐줄 때

순간의 감정에 휩싸이지 않고 그 아이를 이해하겠다는 마음으로 얘기 나눌 수 있을 때

내가 바라는 상으로 흐르지 않고 아이들이 바라는 상으로 흐르는 걸 인정해줄 수 있을 때

 

최선을 다해 가르칠 때 나는 그림자가 된 기분이다.

 

그림자는 존재와 떼려야 뗄 수 없다. 그렇다고 그게 존재 자체라 말할 순 없다. 존재로부터 발현되었으되 해가 사라지면 자취를 감춘다. 해가 있을 때 나타나듯 필요할 때 나타나고 해가 지면 사라지듯 필요하지 않을 때 사라지는 내꺼인 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교사

 

無爲自然, 인위는 최소한으로 자연은 최대한으로.

 

2015811()

건빵

파커 파머는 자신을 '양치기개'라고 했는데, 나는 '그림자'를 택했다.

 

그림자 메타포는 그 상황에 푹 빠져들 수 있는 용기이며, 지켜볼 수 있는 결단을 말한다.

 

 

3. 세션 수행-최선을 다해 가르칠 때

 

나는 최선을 다하여 가르칠 때 내가 양치기개 같다는 느낌이 든다. 덩치가 크고 털이 많은 애완견 종류가 아니라, 양털 산지에서 양떼들을 이끌고 다니는 보더 콜리견이 떠오른다.

나는 스코틀랜드의 바위가 많은 들판에서 그런 개들을 본 적이 있다. 아마 그 때 이 이미지가 내 마음속에 들어와 박혔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나는 교사가 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이 이미지의 의미를 천천히 풀어 나가면서 양치기개의 이미지가 나의 정체성과 성실성에 어떤 단서를 제공하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상상 속에서 양치기개는 네 가지 중요한 기능-실제의 전문가적 지식과는 다를 수도 있는-을 담당한다. 첫째, 양들이 방목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한다. 둘째, 옆으로 새어 나가려는 양들에게 주의를 줌으로써 양들을 그 공간 속에 유지한다. 셋째, 위험한 침입자들을 물리치기 위해 그 공간의 테두리를 경비한다. 넷째, 방목지의 풀을 다 뜯었을 때 양들과 함께 풀이 많은 다른 공간으로 이동한다.

나는 이 이미지를 탐구할 때 종착역이 어디가 될지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작업으로 도달할 곳이 어디인지 잘 알고 있다. 양치기개라는 다소 쑥스럽고 거친 이미지를 가지고 나는 더욱 세련된 교사상을 정립했다. 가르침은 진리의 커뮤니티가 실천되는 공간을 창조하는 것이다.

 

교실에서의 나의 임무는 상상 속에서 파악한 양치기개의 임무와 비슷하다. 나는 먼저 학생들에게 먹여야 한다. 즉 적극적인 학습을 유도해야 한다. 그렇게 해주자면 학생들을 음식이 있는 곳으로 데려가야 한다. 다시 말하면 좋은 텍스트, 잘 짜여진 강의안, 생산적인 질문, 절제된 대화 등을 준비해야 한다. 거기서 학생들이 배울 것을 다 배웠으면 다음의 목초지로 데려가야 한다. 나는 학생들을 그런 장소 안에 유지해야 하고 밖으로 나가려는 학생들에게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해나가는 전 과정에서 외부의 무서운 침입자(가령, 공포)로부터 학생들을 보호해야 한다.

-파커 파머, 가르칠 수 있는 용기

 

 

그림자 메타포

장점: 기다릴 줄 아는, 의욕을 가지지 않는.

단점: 어떻게 흘러가든 상관없다는 것이냐, 아무 간섭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냐?

난국을 만났을 때: 지켜볼 수 있는 용기, 적절한 타이밍에 껴들 수 있는 용기

간섭 & 처벌, 틀 지음, 수동적이지 않게 하나?

그 시간까지 과하지 않도록 같이 해줄 수 있는 용기가 필요

그림자 메타포는 어찌 보면 수동적이거나, 방관자일 수 있다는 게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에 대한 보완은 '적극적인 그림자-되기'다 

 

 

 

세션 7: 내면의 교사에게 묻는 법 1

 

오후 4시 40분쯤에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가 내리면 그 비를 하염없이 맞고 싶다(빗속 여행의 흥취보기).

 

 

1. 여는 시

 

자신에 대한 명료함을 구하십시오.

그러면 나머지 모든 것은 알아서 제자리를 찾아갑니다.

여러분의 일은,

삶에 대한 자신의 반응을 마스터하는 것입니다.

관심의 방향을 돌리십시오.

그것이 우리의 여행입니다.

우리의 여행은 거듭

내면에서 시작하여 바깥으로 나아가는 여행입니다.

더 이상, 혼란이

당신을 흔들어 두려움에 떨게 하지 마십시오.

감사하십시오.

아무리 깊고 알 수 없는 신비 가운데 있을 때에도.

아무리 깜깜한 밤을 만날지라도.

-캐롤라인 메이스

 

 

2. 세션 수행

 

'정직하고 열린 질문', 이 네이밍만으로도 어마무시한 느낌이다. '넌 착한 사람이야'라는 말처럼 중압감이 느껴지니 말이다.

 

 

3. 닫는 시

 

영혼이

우리를 이끌도록 허락할 때

어떤 곳으로

우리가 이끌림을 받을지

아는 건

불가능하다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건

우리가 바랄 수 있는 건

단지

고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

어디든

영혼이

우리를 데려가는 곳,

거기서

우리가

살 것이라는 것

-앨리스 워커, 영혼이 우리를 이끌도록 허락할 때

 

 

 

세션 8: 내면의 교사에게 묻는 법 2

 

확실히 이곳에선 얘기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 없다. 못해도 된다. 또는 이야기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막상 말하려 입을 열었을 때도 괜찮다. 처음 단재학교에서의 회의 때 공식석상에서 입을 떼었던 게 생각난다. 입은 열었는데 무슨 말을 해야 할 줄 몰라 머리가 하얘졌고, 그 후로 입을 연다는 건 그러한 과중함, 부담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곳에선 그 말이 잘해야 한다. 논리적이어야 한다라는 의식이 없으니 맘이 놓이고 편하다

말이란 게 나에겐 언제나 어려운 그 무엇이었다. 하지만 침묵이 존중되는 이곳의 분위기는 그런 부담을 느끼지 않게 한다.

 

 

1. 여는 시

 

자신이 단지 엉성한

물음의 거미줄인 것처럼 느껴질 때

너에게는

그 물음들이 주어졌다.

너의 빈손에

다른 아들의 물음이 주어졌다.

네가 따뜻하게 품어준다면

아직 알에서 부화할 수 있는 찌르레기의 알과 같은.

나비는 너의 손 안에서

날개를 폈다 접었다 한다

네가 그 반짝이는 날개의 가루를

건드리지 않으리라 믿으며.

네가 받은 것은

다른 이들의 물음

너의 모든 물음에 대한 답으로 받은, 그래 아마도.

이 선물이 너의 답일지 모른다.

-데니스 레버토프, 선물

 

 

2. 세션 수행

 

부인할 수 없게 심리학과 닮은 부분이 있다. 내면에 깊숙이 빠져보라는 것. 그리고 질문을 하되 아예 생각을 넓힐 수 있는, 다른 각도에서 생각하게 하는 질문이 아니면 틀린 것은 아니되, 안 된다는 것. 심리학의 정답을 정해 놓고, 목표를 정해놓고 하는 것과 대차 없는 생각을 넓혀주느냐에 자기 검열 후 가려서 해야 한다는 것. 그게 확실히 그렇다.

저녁 먹을 때 흐르는 물님에게 학교 다닐 땐 질문을 못하게 하는 분위기여서 질문이 없는 게 몸이 배었는데, 여기선 생각을 넓히는 질문이 아니면 할 수 없으니, 더욱 질문하기 어렵게 되었다고 말한 그대로다

이 시간엔 각자의 이슈를 듣고 질문을 만든 후, 그 질문에 대한 평가(?)를 받았다. 특이한 경험이지만 '좋은'에 대한 강압이 느껴졌다. 

 

 

3. 닫는 시

 

마음속에서 풀리지 않는

모든 물음들에 대해 인내하라.

물음 그 자체를 사랑하라.

지금 주어지지 않는

답을 구하지 말라.

지금 그대로 살 수 없는 답을,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을 살아보는 것이다.

이제 그 물음 속에 살라.

그러면 서서히,

자신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먼 어느 날 그 답을 살고 있으리라.

-라이너 마리아 릴케

 

내면의 외면화. 마음의 표면화. 주축돌을 시작으로 자신의 이미지나 바람들이 겉으로 드러난다. 

 

 

 

 

4. 학교는 어느 나무 아래에서

 

그래도 나름 친해졌다. 특히 '나우학교' 선생님들과 많이 친해졌다.

 

 

세션 9: 학교는 어느 나무 아래에서

 

난 어쩔 수 없는 시스템적인 인간이란 생각이 든다. 하기로 한 것은 그게 어떤 것이라 할지라도 하는 게 맘이 편하고 그게 최선을 다했다는 위안이 되기 때문이다. 이건 여태껏 성실성 하나로 세상을 버텨왔다는 생각과 대차 없는 행동이다.

이유를 대자면 오롯이 프로그램을 경험하고 싶었다는 게 될 테지만, 그건 어림반푼어치도 없는 얘기다. 그냥 그게 내 맘에 편하기 때문에 그런 것일 뿐, 거대담론. 그럴 듯한 해석이 들어설 공간이 하나도 없다

아침에 침묵회에 참여하여 단상을 적었다.

 

 

1. 여는 시

 

학교는 어느 나무 아래서 시작되었습니다.

 

거기에서 자신이 교사인 줄 모르는 사람이,

자신이 학생인 줄 모르는 몇몇 사람들에게

자신의 깨달음에 대해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 사이에 이루어진 이야기들에 대해 생각하고,

이 사람 앞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아이들에게도 이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마침내 바라던 공간이 건립되어 최초의 학교가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학교의 건립은 필연적인 것이었습니다.

 

최초의 학교는 우리의 내부에 있는,

즉 우리들의 바람에 내재하고 있는 어떤 것에 대한 동의인 것입니다.

그들은 서로에게 동의하고 최초의 교실을 지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학교의 시작입니다.

-루이스 칸

 

 

2. 세션 수행

 

위의 글을 읽으며 근대학교 설립이 생각나서 불편한 마음이 들었지만, 우치다의 '무인도' 얘기가 떠오르며 학교의 최초를 생각하게 되었다.

학교의 최초는 즉 '삶'과 '앎'이 일치된 현장이었던 것이고, 거기엔 살기 때문에 알고자 했던 욕구가 있었던 것이다.

 

 

무인도에 표류한 교사와 아이들이 있다고 합시다. 처음에는 야자잎으로 지붕을 만들거나 물고기를 잡겠죠. 어느 정도 입고 먹는 것이 해결되면 교사는 당연히 , 그럼 슬슬 공부를 해볼까?”하고 말을 꺼낼 겁니다. 그런 말을 안 할 리가 없습니다. 역사와 문학, 신화에 관해서 수학과 천문학, 미술과 음악에 대해 교사는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아이들에게 전달하려 하고, 아이들 또한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시험공부에 도움이 되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학력을 쌓아서 좋은 곳에 취직하기 위해서일까요?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문화자본을 체득해서 양극화 사회 상위층에 오르기 위해서일까요? 그 어느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여기는 무인도니까요. 하지만 교육하고 싶은 열정과 교육 받고 싶은 욕망은 무인도라 하더라도 아마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무인도라서 더 간절히 배움을 원하는 아이도 틀림없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것은 교육의 본질이 여기와는 다른 장소, 여기와는 다른 시간의 흐름, 여기에 있는 것과는 다른 사람들 사이를 연결해주는 회로를 뚫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교육의 본질은 외부와의 통로를 열어가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공부를 하고 있는 동안에는 무인도라는 유한한 공간에 갇혀 있다는 것을 잊고 보다 넓은 세계와 연결되는 해방감을 맛보게 됩니다.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밀실 안으로 어디에선가 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듯한 청량감을 느끼는 것이지요.

-우치다타츠루, 교사를 춤추게 하라, 민들레출판사, 2012, pp 42~43

 

그렇다면 현실 학교에서 교사란 결국, 벗을 지향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벗이면서 친구인, '사우'

 

 

친구가 될 수 없다면 진정한 스승이 아니다. 스승이 될 수 없다면 진정한 친구, 또한 아니다!

-이탁오, 분서

 

 

이제부턴 이틀 간의 소감을 담도록 하겠다. ‘첫 인상은 쉴 수 있고, 책도 읽을 수 있다정도였지 이곳에서 내면에 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무언가를 하게 되리란 걸 몰랐다.

하지만 막상 하고 보니, 여기서 중시하는 건 일에 치이느라, 사는 게 바쁘다 보니 놓쳐버린 나를 찾는다는 내용이었다. 맹자』 「고자11구기방심(求其放心)’이 떠올랐다. 내면을 찾는 여행은 현대인처럼 외물(外物)에 함몰된, 외적(外的) 가치에 함몰된 이들에겐 필요한 작업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게 미심쩍은 부분은 심하게 심리학적 인식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나와 환경을 철저히 나누고 오로지 내 안에서만 문제와 해결을 찾으려는 경향이다. ‘모든 문제는 내 안의 문제고, 모든 해결은 그 문제를 명확히 할 때 저절로 드러난다.’

여기선 학교의 구조적 문제, 공부의 한계, 한국 교육의 폐해 등과 같은 실제적인 환경의 미비는 결코 이야기될 수 없다. 어찌 보면 얘기할지도 모른다. ‘환경의 문제는 그런 걸 고민하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고 우린 내면의 소리에 집중하는 것에 중점을 둬서 프로그램을 짰다.’ 그래서 이곳에서 했던 일 중 가장 의미 있었던 것은 어찌 보면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는 정도이지 않을까. 그리고 무덥던 여름날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는 곳에서 이불을 덮고 자고 세 끼와 매번의 간식을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는 것

 

여기서 연수를 받으며 가장 불편하게 느껴졌던 건, 아무래도 내면에 이미 완정된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다(개체환원주의 비판보기).

  

 

맹자가 인이란 사람의 마음이고 의란 사람의 길이다. 그 길()을 버리고 가려 하지 않고 그 마음()을 잃고서도 찾을 줄을 모르니, 슬프구나!

사람이란 닭과 개를 잃어버리면 그것을 찾을 줄을 알지만, 마음을 잃고서도 찾을 줄을 모른다. 학문의 길이란 다른 게 없다. 그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것뿐이다.”라고 말했다.

孟子曰:“, 人心也; , 人路也. 舍其路而弗由, 放其心而不知求, 哀哉! 人有雞犬放, 則知求之; 有放心, 而不知求. 學問之道無他, 求其放心而已矣.” - 孟子』「告子章句上11

 

 

 

세션 10: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

 

2박 3일동안 뻔질나게 들락거린 회화나무. 지하라고 하지만 정원이 있고 지상 1층 같은 곳이었다.

 

 

1. 여는 시

 

무언가 끝나리라는 고통이

실감되면 우리는

삶을 덮어버린다.

끝나기까지는 아직

남아있는 삶을.

 

기쁨과 슬픔은

모두

이 하나에 관한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기쁨과 슬픔,

그 어느 하나라도 부정한다면

삶을 부정하는 것.

 

그렇기에

기쁨과 슬픔

모두에게

조용히 대답한다.

라고

-주디 브라운,

 

마지막으로 정리하는 시간이다. 이렇게 2박3일의 일정이 끝나간다.

 

 

2. 세션 수행

 

새 학기 교실에

지난 해의 아이들이 가고

지난 해만한 아이들이 새로 들어왔다.

 

떠들고 웃고 반짝인다.

 

이 반짝임은

지난 해 그랬고 그 지난 해도 그랬고

그 전 해 그리고 내년에도 그럴 것이다.

 

이 교실은 해마다

요만한 아이들이 앉았다 간다. 웃고 떠들고

침묵하고

흘러간다.

 

교실은 아이들이 흐르는 강이다.

 

나는 강의 한 굽이에 서서

강물의 흐름을 지켜보며 그 소리를 듣는다.

-이성선, 강물

 

 

말은 차후적으로 만들어진다. 하지만 이곳은 내면의 말, 완성된 내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 스터디를 만든 이는 말이 타인의 시선에 의해, 판단에 의해 좌우되기에 침묵의 시간을 뒀다고 했는데 일면 맞지만 일면 틀리다. 침묵으로 일관할 경우 자신의 속마음을 정말 알 수 있을까?

말과 침묵. 내면의 완정된 언어가 있는가? 아니면 사후적으로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 지는가?

 

 2박 3일동안 쌓은 건빵 내면의 외면화.

 

2박 3일동안 즐거웠습니다. 모두 각자의 현장에서 신나게 재미지게

 

 

인용

지도 /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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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sakang.tistory.com/9 [🦘 40대 캥거루족:티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