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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돌에 새긴 이름 - 5. 돌에 새겨봐야 부질없는 것을 본문

책/한문(漢文)

돌에 새긴 이름 - 5. 돌에 새겨봐야 부질없는 것을

건방진방랑자 2020. 4. 4.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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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돌에 새겨봐야 부질없는 것을

 

 

역시 돌에 이름을 새기는 일을 가지고 쓴 영재집서泠齋集序를 다시 읽어보기로 하자. 영재泠齋는 유득공柳得恭(1748-1807)의 호인데, 앞서 본 유련柳璉이 그에게는 숙부가 된다.

 

 

돌 다듬는 사람이 새기는 사람에게 말하였다.

대저 천하의 물건은 돌보다 단단한 것이 없다. 그 단단한 것을 쪼개다가 끊어서 깎고는, 용틀임을 머리에 얹고 바닥에는 거북을 받쳐, 무덤 길목에 세워 영원히 없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은 바로 나의 공로이다.”

새기는 사람이 말하였다.

오래되어도 닳아 없어지지 않기로는 새기는 것보다 오래가는 것이 없네. 훌륭한 사람이 업적이 있어 군자가 묘갈명을 짓는다 해도 내가 다듬어 새기지 않는다면 어찌 비석을 세울 수 있겠는가?”

匠石謂剞劂氏曰: “夫天下之物, 莫堅於石, 爰伐其堅, 斷而斲之. 螭首龜趺, 樹之神道, 永世不騫, 是我之功也.” 剞劂氏曰: “久而不磨者, 莫壽於刻. 大人有行, 君子銘之, 匪余攸工, 將焉用碑?”

글은 돌 다듬는 석수쟁이와 비석에 글자를 새기는 조각쟁이와의 말다툼으로 시작된다. 석수쟁이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이 아무리 훌륭한 공적을 세웠다 해도, 비석을 세우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러니 그 사람의 훌륭함 보다도 오히려 나의 공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천하에 가장 단단한 물건인 돌을 쪼개어 비석으로 세우는 나야말로 가장 위대하다. 그러자 조각쟁이가 즉각 반발한다. 웃기지 마라! 돌만 세운다고 무슨 소용이 있는가? 아무리 훌륭한 문장이 있다 해도 내가 글씨를 새기지 않고는 쓸데가 없는 것을. 돌이 오래가지만, 글자를 새겨야만 의미를 갖게 된다. 내가 더 위대하다.

 

 

마침내 함께 무덤에 가서 다투었으나 무덤은 적막하니 소리가 없고, 세 번을 불렀지만 세 번 다 응답하지 않았다. 이때 돌 사람이 기가 막히다는 듯 웃으며 말하였다.

그대들이 천하에서 가장 단단한 것으로는 돌보다 굳은 것이 없고, 오래되어도 닳지 않는 것은 새기는 것처럼 오래가는 것이 없다고 말하네 그려. 비록 그러나 돌이 과연 단단하다면 어떻게 깎아서 비석으로 만든단 말인가? 만약 닳지 않을 수 있다면 어찌 능히 새긴단 말인가? 하마 깎아서 이를 새겼으니, 또 어찌 구들장 놓는 자가 이를 가져다가 가마솥 얹는 머릿돌로 만들지 않을 줄 알겠는가?”

遂相與訟之於馬鬣者, 馬鬣者寂然無聲, 三呼而三不應. 於是石翁仲啞然而笑曰: “子謂天下之至堅者, 莫堅乎石, 久而不磨者, 莫壽乎刻也. 雖然石果堅也, 斲而爲碑乎? 若可不磨也, 惡能刻乎? 旣得以斲而刻之, 又安知築竈者不取之, 以爲安鼎之題乎?”

이렇게 싸움을 거듭하며 그들은 종내 물러서지 않았다. 좋다! 그렇다면 누가 더 훌륭한지 무덤 주인에게 가서 물어보기로 하자. 당신은 누가 더 고맙습니까? 돌을 세운 나요, 아니면 글자를 새긴 저 사람이요? 그러나 무덤은 종내 말이 없다. 그때 갑자기 무덤 앞에 서 있던 석장승이 끼어든다. “자네들 참 대단하구먼. 가장 단단한 것이 돌이라 하고, 가장 오래가는 것이 새기는 것이라고 했지? 정말 그렇게 단단하다면 어떻게 깎아 비석으로 만든단 말인가? 정말 닳지 않는다 한다면 어떻게 끌로 쪼아 새길 수 있단 말인가? 단단한 것도 깎을 수 있고 닳지 않는 것도 새길 수 있다면, 그것을 가져다 구들장 얹는데 쓸 수도 있겠네 그려.”

여기까지 읽고 나니 대뜸, 자네의 그 창으로 자네의 방패를 찌르면 어찌 되겠느냐던 모순矛盾이야기가 떠오른다. 정작 고마워해야 할 무덤 주인은 적막히 아무 대답이 없다. 비석은 이미 그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거기 적힌 내용이 그렇기도 하려니와, 설사 사실을 적었더라도 사후의 기림이 그에게 무슨 소용이 있으랴? 가장 단단하다는 돌도 쪼개어 다듬고, 가장 오래 간다는 새김도 결국은 칼을 가지고 한다. 그럴진대 단단할 것은 무엇이고 오래 갈 것은 무엇이랴. 마침내 아궁이의 구들장이 되고 말지 어찌 알겠는가?

 

 

 

 

 

 

인용

목차

원문

작가 이력 및 작품

1. 장서마다 도장을 찍어 자손에게 물려주다

2. 천자의 옥새로도 만리장성으로도 지켜지지 않네

3. 장서를 꼭꼭 감싸두려 하지 말게

4. 장서를 남기고 싶거든 친구들에게 빌려주게

5. 돌에 새겨봐야 부질없는 것을

6. 잊혀지는 걸 두려워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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