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남기려 한다면 오히려 장독 덮개로 쓰이는 게 낫다네
냉재집서(泠齋集序)
박지원(朴趾源)
돌을 깎아내는 공과 새기는 공을 다투다
匠石謂剞劂氏曰: “夫天下之物, 莫堅於石, 爰伐其堅, 斷而斲之. 螭首龜趺, 樹之神道, 永世不騫, 是我之功也.”
剞劂氏曰: “久而不磨者, 莫壽於刻. 大人有行, 君子銘之, 匪余攸工, 將焉用碑?”
잘라지는 돌, 써지는 글 그렇기에 영원할 수 없어라
遂相與訟之於馬鬣者, 馬鬣者寂然無聲, 三呼而三不應.
於是石翁仲啞然而笑曰: “子謂天下之至堅者, 莫堅乎石, 久而不磨者, 莫壽乎刻也. 雖然石果堅也, 斲而爲碑乎? 若可不磨也, 惡能刻乎? 旣得以斲而刻之, 又安知築竈者不取之, 以爲安鼎之題乎?”
揚子雲好古士也, 多識奇字. 方艸『太玄』, 愀然變色易容, 慨然太息曰: “嗟乎! 烏爾其知之? 聞石翁仲之風者, 其將以『玄』覆醬瓿乎?” 聞者皆大笑.
春日書之『泠齋集』. -『燕巖集』 卷之七
해석
돌을 깎아내는 공과 새기는 공을 다투다
匠石謂剞劂氏曰:
돌을 다듬는 사람이 돌에 글씨 새기는 사람에게 말했다.
“夫天下之物, 莫堅於石,
“대체로 천하의 사물 중에 돌보다 견고한 건 없지만
爰伐其堅, 斷而斲之.
이에 견고한 걸 쳐서 잘라내고 쪼개지.
螭首龜趺, 樹之神道,
이무기 머리와 거북 다리를 만들어 신도를 세워
永世不騫, 是我之功也.”
세상에 영원토록 손상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나의 공이네.”
剞劂氏曰: “久而不磨者, 莫壽於刻.
돌에 글씨 새기는 사람이 말했다. “오래되어도 없어지지 않는 것은 새기는 것보다 오래가는 게 없네.
大人有行, 君子銘之,
위대한 사람이 훌륭한 행적이 있어 군자가 그것을 새기더라도
匪余攸工, 將焉用碑?”
나의 공이 아니라면 장차 어디에 비석을 쓰겠는가?”
잘라지는 돌, 써지는 글 그렇기에 영원할 수 없어라
遂相與訟之於馬鬣者,
마침내 서로 무덤【마렵(馬鬣): 말갈기처럼 된 분묘(墳墓) 형태의 하나이다】에 가서 다투었지만
馬鬣者寂然無聲, 三呼而三不應.
무덤은 적막하게 소리도 없기에 세 번 불렀지만 세 번 응답하지 않았다.
於是石翁仲啞然而笑曰:
이에 두덤 앞 석상이 어안 벙벙해 하다가 웃더니 말했다.
“子謂天下之至堅者, 莫堅乎石,
“그대들은 천하에 지극히 견고한 것은 돌보다 견고한 게 없다고 말하고
久而不磨者, 莫壽乎刻也.
오래되어도 없어지지 않는 것은 새기는 것보다 오래가는 건 없다고 말했네.
雖然石果堅也, 斲而爲碑乎?
비록 그렇다 해도 돌이 과연 견고하기만 하다면 어떻게 깎아 비석을 만들겠는가?
若可不磨也, 惡能刻乎?
만약 없앨 수 없다면 어떻게 새길 수 있겠는가?
旣得以斲而刻之, 又安知築竈者不取之,
이미 깎을 수 있고 새길 수 있다면 또한 어찌 부엌을 건축하는 사람이 그것을 취해
以爲安鼎之題乎?”
솥을 올리는 이맛돌로 삼지 않을 것을 알리오.”
揚子雲好古士也, 多識奇字.
양자운은 옛 것을 좋아하는 선비로 변체【기자(奇字): 고문(古文, 孔子壁中書), 전서(篆書), 예서(隷書), 무전(繆篆), 충서(蟲書)와 함께 한자(漢字)의 육체(六體)의 하나로, 고문의 변체(變體)인데 양웅이 이를 즐겨 배웠다고 한다】를 많이 알았다.
方艸『太玄』, 愀然變色易容,
방금 『태현경』을 저술하다가 근심스레 얼굴색을 바꾸고 용모를 바꾸고서
慨然太息曰: “嗟乎! 烏爾其知之?
쓸쓸히 매우 탄식하며 말했다. “아! 오야【오(烏) : 양웅의 아들 양오(揚烏)로, 동오(童烏)라고도 한다. 문학의 신동(神童)이었으나 아홉 살로 요절했다고 한다】, 너는 그것을 아니?
聞石翁仲之風者, 其將以『玄』覆醬瓿乎?”
무덤 앞 석상의 풍자를 들은 사람들은 장차 『태현경』을 장독 덮개로 삼으리.”
聞者皆大笑.
듣는 사람들이 모두 크게 웃었다.
春日書之『泠齋集』. -『燕巖集』 卷之七
봄날에 『영재집』에 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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