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다 꿰뚫는 창과 다 막는 방패
모순(矛盾)
或問儒者曰: “方此時也, 堯安在?” 其人曰: “堯爲天子.”
“然則, 仲尼之聖堯奈何. 聖人明察在上位, 將使天下無姦也. 今耕漁不爭, 陶器不窳, 舜又何德而化?
舜之救敗也, 則是堯有失也. 賢舜, 則去堯之明察; 聖堯, 則去舜之德化: 不可兩得也.
楚人有鬻楯與矛者, 譽之曰: ‘吾楯之堅, 物莫能陷也.’ 又譽其矛曰: ‘吾矛之利, 於物無不陷也.’ 或曰: ‘以子之矛陷子之楯, 何如?’ 其人弗能應也.
夫不可陷之楯與無不陷之矛, 不可同世而立. 今堯ㆍ舜之不可兩譽, 矛楯之說也.
且舜救敗, 朞年已一過, 三年已三過. 舜有盡, 壽有盡, 天下過無已者; 以有盡逐無已, 所止者寡矣. 賞罰, 使天下必行之. 令曰: ‘中程者賞, 弗中程者誅. ’ 令朝至暮變, 暮至朝變, 十日而海內畢矣, 奚待朞年? 舜猶不以此說堯令從己, 乃躬親, 不亦無術乎? 且夫以身爲苦而後化民者, 堯ㆍ舜之所難也: 處勢而驕下者, 庸主之所易也. 將治天下, 釋庸主之所易, 道堯ㆍ舜之所難, 未可與爲政也.”
해석
或問儒者曰: “方此時也, 堯安在?”
어떤 이가 유학자에게 “곧 이때에 요임금은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其人曰: “堯爲天子.”
그 사람이 “요임금은 천자가 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
“然則, 仲尼之聖堯奈何.
“그렇다면 중니가 요임금을 성인이라 한 것은 어째서입니까.
聖人明察在上位, 將使天下無姦也.
성인이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밝게 살피는 것은 장차 천하에 간사함이 없도록 해서입니다.
今耕漁不爭, 陶器不窳,
이제 밭 갈고 물고기 잡는데 다투지 않고 질그릇이 조악하지 않은데
舜又何德而化?
순임금은 또한 어떤 덕으로 교화시키겠습니까.
舜之救敗也, 則是堯有失也.
순임금이 황폐함을 구했다면 이것은 요임금에게 실책이 있는 것입니다.
賢舜, 則去堯之明察;
현명한 순임금이라면 요임금의 밝은 살핌을 저버리는 것이고
聖堯, 則去舜之德化: 不可兩得也.
성스러운 요임금이라면 순임금의 덕화를 저버리는 것이니 두 가지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楚人有鬻楯與矛者,
초나라에 방패와 창을 파는 사람이 있었는데
譽之曰: ‘吾楯之堅, 物莫能陷也.’
방패를 ‘내 방패의 견고함은 어떤 물건도 뚫을 수가 없네.’라고 너스레를 떨었고
又譽其矛曰: ‘吾矛之利, 於物無不陷也.’
또 창을 ‘내 창의 날카로움은 물건에 있어 뚫지 못할 게 없네.’라고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或曰: ‘以子之矛陷子之楯, 何如?’
어떤 사람이 ‘자네의 창으로 자네를 방패를 찌른다면 어떻게 되는가?’라고 말하니,
其人弗能應也.
그 사람은 응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夫不可陷之楯與無不陷之矛, 不可同世而立.
일반적으로 뚫리지 않는 방패와 뚫지 못할 창은 한 세상에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今堯ㆍ舜之不可兩譽, 矛楯之說也.
이제 요임금과 순임금을 함께 칭송할 수 없는 것은 창과 방패의 말과 같습니다.
且舜救敗, 朞年已一過, 三年已三過. 舜有盡, 壽有盡, 天下過無已者; 以有盡逐無已, 所止者寡矣. 賞罰, 使天下必行之. 令曰: ‘中程者賞, 弗中程者誅. ’ 令朝至暮變, 暮至朝變, 十日而海內畢矣, 奚待朞年? 舜猶不以此說堯令從己, 乃躬親, 不亦無術乎? 且夫以身爲苦而後化民者, 堯ㆍ舜之所難也: 處勢而驕下者, 庸主之所易也. 將治天下, 釋庸主之所易, 道堯ㆍ舜之所難, 未可與爲政也.”
인용
'고전 > 한비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비자, 오두 - 1. 수주대토(守株待兎) (0) | 2020.08.06 |
---|---|
한비자, 세림하 - 9. 양포지구(楊布之狗) (0) | 2020.08.06 |
한비자, 세림상 - 16. 노마식도(老馬識途) (0) | 2020.07.20 |
한비자, 세난 - 7. 여도지죄(餘桃之罪) (0) | 2020.06.23 |
한비자, 외저설우하 - 26. (0) | 2019.10.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