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드넓은 자연에 대비되는 하찮은 존재
이번에 읽으려는 「호곡장好哭場論」은 『열하일기』의 한 부분으로, 압록강을 건너 드넓은 요동벌과 상면하는 감격을 적은 글이다. 본래 제목이 없으나 선학先學의 명명命名을 따랐다. 1939년 경성제국대학 대륙문화연구회가 북경과 열하 일대를 답사하고 펴낸 보고서, 『북경ㆍ열하사적관견北京熱河の史的管見』에서 결론 대신 이 글을 적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문장이다.
초팔일 갑신 맑음. 정사正使와 가마를 같이 타고 삼류하三流河를 건너, 냉정冷井에서 아침밥을 먹었다. 십여리를 가서 한 줄기 산 자락을 돌아 나오자, 태복泰卜이가 갑자기 몸을 굽히고 종종걸음으로 말 머리를 지나더니 땅에 엎디어 큰 소리로 말한다. “백탑白塔 현신現身을 아뢰오.” 태복이는 정진사鄭進士의 말구종꾼이다. 산자락이 아직도 가리고 있어 백탑은 보이지 않았다. 채찍질로 서둘러 수십 보도 못가서 겨우 산자락을 벗어나자, 눈빛이 아슴아슴해지면서 갑자기 한 무리의 검은 공들이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었다. 내가 오늘에야 비로소, 인간이란 것이 본시 아무데도 기대일 곳 없이 단지 하늘을 이고 땅을 밟고서야 걸어 다닐 수 있음을 알았다. 初八日甲申晴. 與正使同轎, 渡三流河, 朝飯於冷井. 行十餘里, 轉出一派山脚, 泰卜忽鞠躬, 趨過馬首, 伏地高聲曰: “白塔現身謁矣.” 泰卜者鄭進士馬頭也. 山脚猶遮, 不見白塔. 趣鞭行不數十步, 纔脫山脚, 眼光勒勒, 忽有一團黑毬七升八落. 吾今日始知人生本無依附, 只得頂天踏地而行矣. |
새벽 먼동이 트기 전 출발한 행차는 아침부터 삼류하三流河를 건너 냉정冷井에 이르러서야 늦은 아침 식사를 했다. 그리고 다시 십 여 리를 가서 산기슭을 돌아 나오려는데, 중국 길에 익숙한 하인 녀석이 갑자기 종종걸음을 하고 말 앞으로 가더니 머리를 조아리며, “백탑 현신이요!”하는 것이다. 이제 곧 백탑이 눈앞에 그 장대한 자태를 드러내 보이리란 뜻이다. 그러나 정작 백탑은 아직도 보이지 않는다. 마음이 급해진다. 말을 채찍질하는 수고를 많이 할 것도 없이 수십 보를 지나자 그만 눈앞이 아찔해진다. 망망한 시계視界, 눈 끝 간 데를 모르게 펼쳐진 아득한 벌판, 그리고 지평선. 백리의 넓은 벌도 보기 힘든 조선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광경이다. 그냥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백탑은 그 벌판 저편에 홀로 우뚝 서 있다. 내 눈에는 마치 검은 공이 허공 중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처럼만 보인다. 홍대용洪大容이 자신의 『연기燕記』에서 “하늘과 벌판은 서로 이어져 아마득히 드넓다. 오직 요양遼陽의 백탑만이 우뚝 자욱한 구름 가운데 서 있으니 北行에 으뜸가는 장관”이라고 적은 곳이다. 이덕무도 『입연기入燕記』에서 “큰 벌판은 평평하여 눈 끝 간 데까지 가이 없고, 일행의 인마人馬는 마치 개미 떼가 땅을 기어가는 것만 같았다”고 적고 있다. 아! 그렇구나. 나는 아무데도 의지할 곳 없이 그저 하늘을 머리에 이고, 땅을 밟고서야 걸어갈 수 있는 너무도 미약한 존재로구나. 통쾌하게 뚫린 시야,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이 넓은 요동벌과 상면한 감격은 이렇게 시작된다.
▲ 전문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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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울고 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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