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잊혀지는 걸 두려워 말라
양자운揚子雲은 옛것을 좋아하는 선비로 기이한 글자를 많이 알았다. 그때 마침 『태현경太玄經』을 초하고 있다가 정색을 하고 얼굴빛을 고치더니만 개연히 크게 탄식하며 말하였다. “아! 어찌 알리오? 돌 사람의 허풍을 들은 자는 장차 나의 『태현경』을 가지고 장독대 덮개로 덮겠구나!” 듣던 사람이 모두 크게 웃었다. 봄날 『영재집』에다 쓴다. 揚子雲好古士也, 多識奇字. 方艸太玄, 愀然變色易容, 慨然太息曰: “嗟乎! 烏爾其知之? 聞石翁仲之風者, 其將以玄覆醬瓿乎?” 聞者皆大笑. 春日書之泠齋集. |
그리고 나서 글은 한나라 때 양웅揚雄의 이야기로 불쑥 건너뛴다. 그 옛날 양웅이 난해하기 그지없는 『태현경』의 저술에 몰두하고 있을 때, 친구 하나가 와서 그 모습을 보고는 혀를 찬 일이 있었다. “여보게, 이 사람아! 요즘 세상은 『주역』조차도 어렵다고 보려고들 하지 않는데, 자네의 이 책을 이해하고 읽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훗날 장독대 덮개로나 쓰면 다행일세 그려.” 과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가운데 양웅은 그렇게 세상을 떴다. 그런데 사후에 그의 『태현경』은 베스트셀러가 되어 낙양의 지가紙價를 올렸다. 다만 양웅은 살아서 그 영예를 누리지 못했다.
연암은 왜 뚱딴지 같이 이 이야기를 『영재집』의 서문 말미에 끌어 왔을까? 안목이 없는 세상 사람들은 영재의 이 책을 장독대의 덮개로나 쓰면 다행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이 책이 먼 훗날 낙양의 지가를 올릴 만큼 훌륭한 저작이 될 것을 잘 안다. 이름이란 이렇게 허망한 것이니 집착하지 말아라. 돌에 새긴다 해도 그것은 종당에는 부뚜막의 고임돌이 될 뿐이다. 비록 당장에 장독대의 덮개로 구를지라도 훗날 세상이 아끼는 고전으로 남는 것이 길이 남는 것이 아니겠는가? 연암의 의중은 아마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돌에 이름을 새긴다 해서 그것이 오래가는 것이 아니다. 도장에 새겨 찍어둔다 해서 그 책이 흩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다. 정말 없어지지 않을 이름은 칼로는 새길 수가 없다. 이름에 집착하지 말아라. 잿밥에 마음 팔지 말아라. 잊혀지는 것은 조금도 무섭지가 않다. 정작 내 자신 앞에 내가 떳떳하지 못한 것이 부끄러울 뿐이다. 아! 그런데 세상은 반대로만 간다. 비석의 크기와 비문의 내용만을 가지고 난리를 친다. 정작 무덤 주인은 말이 없는데, 석수쟁이와 조각쟁이의 다투는 소리만 시끄럽구나.
▲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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