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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노자가 옳았다, 39장 - 빛나지 않고 투박하게 본문

고전/노자

노자가 옳았다, 39장 - 빛나지 않고 투박하게

건방진방랑자 2021. 5. 10.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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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昔之得一者: 天得一以淸,
석지득일자: 천득일이청,
옛날에 하나를 얻은 사람들은 그 하나로써 다음과 같은 이치에 도달했다:
하늘은 하나를 얻어 맑아지고
地得一以寧, 神得一以靈,
지득일이녕, 신득일이령,
땅은 하나를 얻어 편안하고
하늘의 신령은 하나를 얻어 영험하고
谷得一以盈, 萬物得一以生,
곡득일이영, 만물득일이생,
땅의 계곡은 하나를 얻어 빔으로 차고
만물은 하나를 얻어 생생하고
侯王得一以爲天下貞. 其致之.
후왕득일이위천하정. 기치지.
제후와 왕은 하나를 얻어 천하를 평안히 다스린다.
이는 모두 하나가 이룩하는 것이다.
天無以淸, 將恐裂;
천무이청, 장공렬;
하늘은 하나로 맑지 못하면 찢어질 것이요,
地無以寧, 將恐發;
지무이녕, 장공발;
땅은 하나로써 편안치 못하면 갈라질 것이요,
神無以靈, 將恐歇;
신무이령, 장공헐;
하늘의 신령은 하나로 영험치 못하면 가물 것이요,
谷無以盈, 將恐竭;
곡무이영, 장공갈;
땅의 계곡은 하나로써 비어 차지 못하면 마를 것이요,
萬物無以生, 將恐滅.
만물무이생, 장공멸.
만물은 하나로써 생생하지 못하면 멸할 것이요,
侯王無以貴高, 將恐蹶.
후왕무이귀고, 장공궐.
제후와 왕은 하나로서 고귀하지 못하면 실족할 것이다.
故貴以賤爲本, 高以下爲基.
고귀이천위본, 고이하위기.
그러므로 귀함은 천함으로 뿌리를 삼고, 높음은 낮음으로 바탕을 삼는다.
是以後王自謂孤不穀.
시이후왕자위고ㆍ과ㆍ불곡.
그러하므로 제후와 왕은 스스로 일컬어
고독한 사람이라 하고 부족한 사람이라 하고 불곡한 사람이라 하는 것이다.
此非以賤爲本邪? 非乎?
차비이천위본야? 비호?
이것이 바로 천함으로 뿌리를 삼는다 함이 아니겠는가? 그렇지 아니한가?
故致數輿無輿.
고치삭여무여.
그러므로 자주 화려한 수레를 타는 것은 수레를 아니 타니만 못하다.
不欲琭琭如玉, 珞珞如石.
불욕록록여옥, 락락여석.
녹록하여 옥같이 빛나기를 삼가고 낙락하여 돌같이 투박하고 견실하여라.

 

 

태일생수와 노자

 

매우 내용이 충실한 장이라 할 수 있다. 많은 것을 말해주지만, 그 대강은 이미 도경에서 충분히 토론되었다. 10포일(抱一)’, 22포일(抱一)’과 연관지어 해석할 수 있으며, 특히 이 장의 ()’태일생수태일(太一)’과 일맥상통한다. 태일생수노자라는 텍스트와 융합되어야 비로소 그 전체적 의미를 얻는다 할 수 있다. 분명 같은 저자의 작품일 것이다.

 

 

빛나지 않고 투박하게

 

()’은 시간적인 원초를 말할 수도 있지만 본원의 의미를 갖는다. ‘()’은 왕필이 수지시(數之始)’(수의 시작), 물지극(物之極)이라 했는데 참고할 만하다. 노자사상에 있어서 와 같은 맥락에서 쓰이지만 또 와 동일한 개념은 아닌 것 같다. ‘()’()’()’의 세계를 연결하는 생성의 작용이 있다. 무의 작용을 지니면서 무는 아니고, 또 유의 작용을 지니면서 또 유는 아니다. 그것은 생명의 근원이며 우주창조력(Cosmic Creativity)의 상징이다. ‘태일생수의 태일과 아주 유사하다.

 

()’는 고독하다는 의미이고, ‘()’는 과덕(寡德)하다는 의미이고 불곡(不穀)’은 만물을 생양(生養)하는 힘이 부족하다는 의미이다. 다 군주가 사용하는 겸사이다.

 

여기 수레는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타고 다니는 화려한 수레로서 고귀한 신분을 나타낸다. 수레를 자주 타는 것은 수레를 아니 탐만 못하다. 조선조의 선비들이 수레를 안 타려고 노력한 사람이 많다. 퇴계도 수레를 안 타지는 않았지만 안 타려고 노력한 사람이다.

 

마지막의 불욕녹록여옥(不欲琭琭如玉)’은 대체적으로 불욕낙락여석에까지 걸리는 것으로 읽어왔다. 나도 과거에는 이렇게 해석했다: ‘녹록하여 옥석같이 빛나기를 삼가고, 낙락하여 보석같이 빛나기를 삼가라.’

그러나 화려하고 찬란한 옥()과 빛이 없고 투박한 석()을 대비시켜 해석하는 것이 노자의 박()의 사상에 더 잘 어울린다: ‘녹록하여 옥같이 빛나기를 삼가고 낙락하여 돌같이 투박하고 견실하여라.’

 

본 장에서 매행의 끝나는 글자들을 보면 압운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청(), (), (), (), (), (), 여섯 글자가 운을 밟고 있다. 다음의 렬(), (), (), (), (), (), 여섯 글자가 운을 밝고 있다. 우리 말의 한자음이 얼마나 고대 음 체계를 잘 보존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압운의 문제는 내가 본서에서 다루지 않았으나 도덕경] 전체가 이렇게 아름답게 운을 밟고 있는 시()이다. 체계적인 철학이면서 동시에 아름다운 시, 그러면서도 헛소리가 없고 간결한 노자, 진실로 인류문현사의 진정한 관()이라 일컬을 만하지 않겠는가!

 

본 장의 (輿)’()’로 바꾸어 해석하는 주석가들도 있다. 그러면 치삭여무여(致數輿無輿자주 명예를 얻는 지경에 이르게 되면 오히려 명예가 사라진다는 뜻이 된다. 내면적 의미는 별 차이가 없다.

 

 

 

인용

목차 / 지도 / 전문 / 39 / 노자한비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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