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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노자와 21세기, 37장 - 무위란 스스로 그러함을 따르는 것이다 본문

고전/노자

노자와 21세기, 37장 - 무위란 스스로 그러함을 따르는 것이다

건방진방랑자 2021. 5. 10.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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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

 

 

道常無爲,
도상무위,
도는 늘상 함이 없으면서도,
而無不爲.
이무불위.
하지 아니함이 없다.
侯王若能守之,
후왕약능수지,
제후화 제왕이 만약 이를 잘 지킨다면
萬物將自化.
만물장자화.
만물이 장차 스스로 교화될 것이다.
化而欲作,
화이욕작,
그러나 교화화 더불어 또 욕망이 치솟을 것이다.
吾將鎭之以無名之樸.
오장진지이무명지박.
그러면 나는 무명의 통나무로 그것을 누를 것이다.
無名之樸,
무명지박,
무명의 통나무는
夫亦將無欲.
부역장무욕.
대저 또한 욕망이 없을지니,
不欲以靜,
불욕이정,
욕심내지 아니하면서 고요하면,
天下將自定.
천하장자정.
천하가 스스로 질서를 찾아갈지니.

 

 

1. 무위란 스스로 그러함을 따르는 것이다(道常無爲, 而無不爲)

 

이 장이 도경(道經)의 마지막 장이다. 기나긴 도경(道經)강론의 막바지에 이른 것이다. ()의 전체적 성격을 조용히 마무리 짓고 있다. ‘무위(無爲)’, ‘무욕(無欲)’, ‘무명(無名)’ 그리고 ()’개념들이 밀집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백본(帛本)간본(簡本)에 다 실려있다.

 

무위이무불위(無爲而無不爲)’에 관한 논란은 이미 13에서 다루었다. 고명(高明)선생의 과격한 주장은 수정되어야 하지만 이 장의 경우는 무불위(無不爲)’ 부분이 백본(帛本)간본(簡本)에 다 빠져 있다.

 

 

王本 道常無爲而無不爲.
帛甲乙 道恒无名.
簡本 道恆亡爲也.

 

 

그러나 이 3개의 판본은 모두가 각기 다른 전승의 소산이며 일자에 기준하여 타자의 진위를 가릴 수 없다.

 

왕필은 무위(無爲)에 대하여 순자연야(順自然也, 무위라는 것은 스스로 그러함을 따르는 것이다)’라는 주를 달았고, 무불위(無不爲)에 대하여는 만물무불유위이치이성지야(萬物無不由爲以治以成之也, 만물이 도에 말미암아 질서가 생기고 형성되어 가지 않을 수가 없다)’라고 주를 달았다.

 

 

2. 이름 없는 통나무로 욕망을 누르다(侯王若能守之, 萬物將自化. 化而欲作, 吾將鎭之以無名之樸)

 

제후 제왕이 만약 무위하면서 무불위하는 이 도를 잘 지킨다면, 만물은 스스로 교화될 것이다.

 

자화(自化)’라는 표현은 도()의 법칙에 따라 스스로 자기 질서를 찾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여기 도덕경의 논자들은 만물(萬物)’이라는 말을 할 때, 인간세(human society)와 자연계(physical world)에 대한 확연한 구분을 전제하지 않고 그 말을 사용하고 있다. 원래 ()’라는 것은 성인의 다스림에 대해 쓰는 말이다. 그러나 요즈음과 같이 인간의 세계가 자연의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상태에서는 양자의 구분없이 사용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자화(自化)하되, ()하는 과정에서 항상 욕작(欲作)’이 있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욕작(欲作)’은 두가지로 해석 가능하다. 하나는 욕망[]이 일어난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해석은 인위적으로 작위[]를 하려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영원한 과제상황은 역시 ()’에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맥락에서는 양자의 의미내용이 일치한다. 인간의 최대의 문제는 역시 욕작(欲作)’이다.

 

 

欲作 욕망이 일어난다
인위적으로 작위를 하려 한다

 

 

욕작(欲作)’을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과연 그것이 법가적 법률(法律)로써 다 해결될 수 있을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유가적 인륜도 덕으로써 다 해결될 수 있을 것인가?

 

이에 노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이름없는[無名] 통나무[]로 그 욕망()을 누르리라[鎭之]! 이름없는 통나무의 질박함이야말로 욕망으로부터의 해방[無欲]을 의미하는 것이다.

 

 

3.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자세(無名之樸, 夫亦將無欲. 不欲以靜, 天下將自定)

 

무욕(無欲)’이란 이름없는 통나무[無名之樸]의 상태를 일컬은 것이다. ‘무욕(不欲)’이란 곧 그것을 실천하는 인간의 행위와 의지를 나타낸다.

 

()하지 않으려 함으로써 정()의 상태를 유지한다. 그리하면 천하(天下)가 장차 스스로 정()해질 것이다. 이는 역시 군왕(君王)에게 요구되는 통치철학의 명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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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서향 / 지도

노자 / 전문 / 37 / 노자한비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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