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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노자가 옳았다, 38장 - 뿌리를 숭상함으로 가지를 번성케 하라 본문

고전/노자

노자가 옳았다, 38장 - 뿌리를 숭상함으로 가지를 번성케 하라

건방진방랑자 2021. 5. 10.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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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上德不德, 是以有德.
상덕부덕, 시이유덕.
상덕은 덕스럽지 아니하다.
그러하므로 덕이 있다.
下德不失德, 是以無德.
하덕불실덕, 시이무덕.
하덕은 덕스러우려 애쓴다.
그러하므로 덕이 없다.
上德無爲而無以爲,
상덕무위이무이위,
상덕은 함이 없을 뿐 아니라 무엇을 가지고서 함이 없다.
下德爲之而有以爲.
하덕위지이유이위.
하덕은 함이 있으며 또 무엇을 가지고서 할려고 한다.
上仁爲之而有以爲,
상인위지이유이위,
세속에서 말하는 상인은
함이 있으되 무엇을 가지고서 할려고 하지는 않는다.
上義爲之而有以爲,
상의위지이유이위,
상의는 함이 있으며 또 무엇을 가지고서 할려고 한다.
上禮爲之而莫之應, 則攘臂而扔之.
상례위지이막지응, 칙양비이잉지.
상례는 함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자기에게 응하지 않으면
팔뚝을 낚아 억지로 끌어당겨 복속시킨다.
故失道而後德, 失德而後仁,
고실도이후덕, 실덕이후인,
그러므로 도를 잃어버린 후에나 덕을 얻는 것이요,
덕을 잃어버린 후에나 인을 얻는 것이요,
失仁而後義, 失義而後禮.
실인이후의, 실의이후례.
인을 잃어버린 후에나 의를 얻는 것이요.
의를 잃어버린 후에나 예를 얻는 것이다.
夫禮者, 忠信之薄, 而亂之首.
부례자, 충신지박, 이란지수.
대저 예법이란 것은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신뢰의 없음이요
모든 어지러움의 머리다.
前識者, 道之華而愚之始.
전식자, 도지화이우지시.
시대를 앞서간다 자처하는 자들이야말로
도의 허황된 꽃이요 모든 어리석음의 시단이다.
是以大丈夫處其厚, 不居其薄;
시이대장부처기후, 불거기박;
그러하므로 어른스러운 큰 덕의 사람은
그 도타움에 처하지 그 있음에 살지 아니한다.
處其實, 不居其華;
처기실, 불거기화;
그 열매에 처하며 그 꽃에 살지 아니한다.
故去彼取此.
고거피취차.
그러므로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한다.

 

 

1. 숭본식말(崇本息末)

 

38장 역시 매우 중요한 장이고, 덕경(德經)의 수장(首章)으로서 향후의 전개되는 장들의 성격은 규정지을 만큼 대표성이 있는 장이라고는 하나, 나의 번역문에 의거하여 그 대강을 이해하는 것으로 족한 것 같다. 사실 왕필만 해도 이 장에 대해서 가장 긴 주를 달았을 뿐 아니라 이 38장의 사상을 자기 철학의 근원으로 삼았다. 왕필의 철학은 무()의 철학이고 허()의 철학이고 본()의 철학인데, 그것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숭본이식말(崇本而息末)’이 된다. 왕필이 노자주를 달고나서 그 전체의 요지를 압축한 노자미지례략(老子微旨例略)이라는 논문이 있는데, 그 논문에 이와 같이 말하고 있다: “노자라는 책의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라 하면, ! 숭본식말 이 한마디일 것이다[老子之書, 其幾乎可一言以蔽之. ! 崇本息末而已矣.]”

 

숭본(崇本)’은 이해가 쉽다. 그 근본을 존중한다, 그 본질을 숭상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식말(息末)’이라고 하는 것을 본을 존중하고 그 말엽적인 것들을 불식시켜 버린다는 식으로 해석하면 아니 된다. ‘()’에는 휴식한다’, ‘없애 버린다는 뜻도 있지만 그 반대로 번식시킨다’, ‘잘 자라게 한다는 뜻이 있다. 우리가 원금을 위탁하고 자라나는 이자를 이식(利息)’이라고 하는데, 이 용례가 이런 뜻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숭본식말이라고 하는 것은 그 뿌리를 존중함으로써 말엽의 가지들을 번식하게 한다는 긍정적인 의미를 지니게 된다. 근본이 망각되어 가는 전란의 시대를 산 왕필삼국지의 전란이 마무리되는 시기를 살았다. 조조가 죽고 6년 후에 태어난 인을은 문명의 허세를 버리고 근원, 근본으로 돌아가자는 노자의 사상에 깊은 공감을 느꼈을 것이다.

 

숭본식말은 이 장의 끝에 나오는 불거기박(不居其薄)’, ‘불거기화(不居其華)’, ‘거피취차(去彼取此)’의 논지를 자기 나름대로 표현한 것이다. 본 장의 왕필주에 이런 말이 있다: “그 어미를 지킴으로써 그 자식들을 보존하고 그 뿌리를 숭상함으로써 그 말엽의 가지들을 번성케 하면, ()과 명()이 다 함께 있어도(현실세계를 말함) 사특함이 생겨나지 않고, 하늘에 짝할 정도의 큰 아름다움이 있어도 화려한 허상이 설치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 어미는 멀리할 수 없는 것이요, 그 뿌리는 잃어버릴 수 없는 것이다[守其母以存其子, 崇本以擧其末, 則形名俱有而邪不生, 大美配天而華不作. 故母不可遠, 本不可失.].”

 

사실 이 주석만 파악해도 이 장의 요지는 대강 마무리된다. 도의 논의에 비하여 덕의 논의는 한 차원이 낮다. 왕필의 주석대로 ()’()’(얻음)이며, 개물(個物)로부터 얻어 자신의 몸속에 축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덕 또한 도를 본받는 것이므로 도의 덕성을 다 지니게 된다. 그러니까 도가 노니는 세계는 우주론적이고 인식론적이고 가치론적이라고 한다면 덕이 노니는 세계는 아무래도 개체의 삶, 즉 인생관의 문제, 또 치세(治世) 즉 정치론의 문제, 또 정치의 핵심인 전쟁의 문제 등등에 밀집되어 있다. 공자도 자기 인생을 총평하여 지어도(志於道), 거어덕(據於德)’(술이 6)이라 했다. ()를 지향하면서, ()에서 굳건히 삶의 근거를 찾는다는 뜻인데, 노자가 말하는 도덕의 의미와 대차가 없다.

 

 

2. 도덕경? 덕도경?

 

138장을 비교해보면 누구든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1장의 거대한 스케일과 오묘한 우주론과 인류의 모든 철학의 기초가 될 만한 인식론적 선포의 웅혼한 느낌과 38장의 느낌은 영다르다. 38장은 처음부터 도가 아닌, 도보다 한 단계 낮은 상덕(上德)으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그 다음에 전개되는 모든 것은 인륜사회의 도덕적 가치에 관한 것이다. 나는 스무살 때 노자를 읽으면서 38장에 전혀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 상덕(上德) 하덕(下德) 상인(上仁) 상의(上義) 상례(上禮)라는 가치의 하이어라키를 만들어놓고, 그 하이어라키에 그 덕성들의 설명을 꿰맞추는 논의방식이 영 노자답지 못하고, 좀 진부하고 구질구질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이것은 노자라는 문헌의 상층대에 속하는 장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 (), ()라는 격식화된 개념, 그리고 아닌 밤에 홍두깨식으로 불쑥 튀어나온 대장부(大丈夫)’라는 말 등등이 도무지 너무도 유가적 논의를 의식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세광이 박정희 대통령의 저격을 시도했을 즈음, 나에게는 츠앙사(長沙)로부터 소식이 들려왔다. 마왕퇴 3호 한묘(漢墓) 속에서 노자백서(帛書) 두 종이 나왔다는 것이다편의상 갑본, 을본이라고 부른다. 갑본은 에서 내음새가 좀 나는 소전체(小篆體)로 필사된 것이고, 을본은 거의 완벽한 예서로 필사된 것이다. 예서는 노예도 읽을 수 있는 서체라 하여 진시황 때 문자혁명의 한 방편으로 반포되어 동한 초에는 거의 보편화된 서체이다. 그러니까 갑본은 을본보다 초사(抄寫)된 시기가 빠르다. 아마도 갑본은 진시황 때 아니면 그 조금 이전의 책이고 을본은 유방 칭제 이후의 책이다. 을본에는 ()’이라는 글자가 휘자이기 때문에 쓰여지지 않고 있고, 그 이후 황제의 휘는 지키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정확하게 유방 시대의 초사(抄寫)작품이라고 판정된다. 갑본은 훼손이 심하고 을본은 거의 완정한 형태로 남아있었다. 그런데 또한 중요한 사실은 을본이 갑본을 초사한 것은 아니고, 그 나름대로 다른 전승을 이은 문헌이라는 것이다.

 

자아! 마왕퇴에서 노자가 나왔다! 나같은 사람의 최초의 관심은 내가 심중에서 의문시하고 있던 것을 우선 확인해보는 것이다. 마왕퇴백서에 38장이 있냐? 없냐? 와아~ 있다! 있어도 그대로 다 있다. ‘대장부도 있고, ‘전식자(前識者)’도 있고, ‘거피취차(去彼取此)’까지 다 그대로다! 그리고 더욱 놀랄 일은 덕경이 도경 앞에 있는 것이다. 출토죽간은 가죽끈이 다 사라져서 선후를 가리기가 어렵다. 그런데 백서는 비단 위에 써서 병풍처럼 포개놓은 것이기 때문에 선후차서를 정확하게 알 수 있다. 마왕퇴백서의 출현으로 갑자기 도덕경은 덕도경이 된 것이다.

 

그러나 덕도경의 문제는 이미 전공자들 사이에서는 논의가 되어 있었다. 왜냐하면 노자라는 책은 전국시대에 워낙 널리 읽힌 책이고 장자를 통하여서도 선전이 많이 되었기 때문에 법가의 대명사인 한비자가 이 서물에 대해 해로(解老)노자를 해석함, 유로(喩老)노자를 비유·이야기를 들어 설명함라는 두 편의 논문을 썼다. 그런데 이 논문 속에 나타난 노자의 모습이 배열차서상 덕경이 도경 앞에 있었던 것이다. 해로(解老)는 이렇게 시작한다: ‘()이라는 것은 내면적인 것이요, ()이라는 것은 외면적인 것이다. 상덕은 덕스럽지 아니하다라는 것은 그 신()이 밖의 요소로 인하여 오염되지 않은 것을 말한 것이다[德者, 內也; 得者, 外也. 上德不德, 言其神不淫於外也].’ 그 설며으이 정당성은 차치하고 하여튼 도가도비상도가 아니라 상덕부덕(上德不德)’으로부터 해설을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분명히 한비자가 본 노자덕도경이었던 것이다.

 

자아~ 이제 어떻게 할 것이냐? 덕도경이냐 도덕경이냐? 이 문제를 놓고 대차적인 견해는 법가계열에서 전승된 문헌은 덕도경이고, 도가계열에서 전승된 문헌은 도덕경이며, 발전순서도 덕경이 병법적인 관심에서 먼저 생겨났고, 덕경이 이론적 깊이를 더하면서 도경으로 발전했다 하는 식의 논의가 일반론인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추세였다. 과연 그럴까? 우선 이런 논의는 곽점죽간의 출현으로 무의미하게 되었다. 곽점죽간은 도경과 덕경의 확연한 구분을 거부하며, 또한 도경의 심오하고 보편적인 우주론·인식론·가치론적 논의가 초기부터 성립했다고 하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노자의 궁극적 관심은 도와 덕의 분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시원(始源)에서 도와 덕을 화해통일시키는 데 있었던 것이다.

 

고전학, 특히 문헌학의 세계에 있어서 문헌의 성립과정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추론이며 명료한 단안을 내리기가 어렵다. 결국 그 문헌을 바라보는 학자들간에, 기본사료에 대한 통찰을 전제로, 그들이 바라보는 시각이 제출되고 있을 뿐이다. 왕필의 경우, 왕필에게 주어진 판본도 역시 덕도경체제였을 가능성이 크다. 38장의 내용이 왕필의 사상성향과 별로 교감될 건덕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토록 주력하여 주석을 달고 있는 것만 보아도 38장이 도덕경이라는 문현의 첫머리라는 문제의식이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하여튼 도경이든 덕경이든 이 두 문헌이 섞이지 않고 왕필에게 따로따로 주어졌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우리가 지금 계속 덕경이니 도경이니 하는 말을 쓰고 있지만, 왕필시대까지만 해도 그런 말은 명료하게 제목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당나라의 석도세(釋道世)가 찬()한 불교유서(佛敎類書)법원주림(法苑珠林)68에 다음과 같은 얘기가 있다: ‘한나라 경제(景帝)는 황자(黃子)니 노자(老子)니 하는 책에 체득하는 바가 깊었기 때문에 자()를 경()으로 고치게 하여 처음으로 도학(道學)을 수립하였다. 칙령을 내려 조야에서 다 그 경전을 암송케 했다[漢景帝以黃子, 老子義體尤深, 改子爲經, 始立道學, 勅令朝野悉諷誦之].’ 이 말에 따르면 노자도덕경(道德經)으로 된 것은 한나라 경제(BC 157~141년 재위) 때라는 것인데 이것도 확실하지 않다. 백서본을 보면 일체 장절의 구분이 없고, 제목도 없다. 단지 을본에만 덕경이 끝나는 곳에 德 三千卌一이라는 글자수 표시가 있고, 도경이 끝나는 곳에 道 二千四百廿六이라는 글자수 표시가 있을 뿐이다. 이것으로 미루어 우리가 그냥 덕경이니 도경이니 하는 표현을 그냥 편리하기 때문에 쓰고 있을 뿐이다.

 

왕필의 20 주에 하편(下篇)에 위학자일익(爲學者日益), 위도자일손(爲道者日損)이라는 말이 있다라고 되어 있다. 57 주에 상장운(上章云)’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것은 48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면 왕필주본은 장()의 구분이 있었고 체제는 도덕경체제였지만, 그냥 상편(上篇)’(도경), ‘하편(下篇)’(덕경)으로만 갈라져 있었던 것이다. 나는 왕필시대까지만 해도 덕도경체제가 더 보편적이었는데, 왕필이 주를 달면서 덕도경 체제를 도덕경체제로 바꾼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덕경이 앞으로 오는 체제는 현학(玄學)이 성행하는 당대의 분위기에 도무지 어필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1장의 우주론적 철학적 깊이와 38장의 윤리위계질서적 느낌은 소양지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장에서 37장에 이르는 느낌이 38장에서 81장에 이르는 느낌과는 너무도 다르다. 왕필이 주역에 주를 달면서 기존의 체제를 답습하지 않고 창조적으로 텍스트를 변화시킨 것을 생각하면 덕도경을 도덕경으로 바꾼 것은 충분히 예상될 수 있는 것이다. 왕필이 단전(彖傳), 소상(小象), 대상(大象)을 오늘의 방식으로 갈라서 경과 합했다는 것은 역경주석사의 상식이다[彖象合經, 實自王弼始. 周易鄭氏注箋釋]. 그렇다고 왕필 이전에는 도덕경체제가 없었다고 말할 수도 없다. 하여튼 도경과 덕경의 문제는 영원한 미스테리로 남을 수밖에 없다.

 

전식자(前識者)’는 왕필이 이렇게 주를 달았다. ‘전식자라고 하는 것은 남보다 먼저 안다고 까부는 자들인데, 하덕의 패거리들이다[前識者, 前人而識也, 卽下德之倫也].’ 시사프로에 나와서 혹세무민하는 자들, 예언적 통찰을 가지고 있다고 뻥치는 자들, 이들이야말로 세상을 망치는 자들이다. 도의 허황된 꽃이요, 모든 어리석음의 시단이다.

 

전식자의 반대개념으로 등장하는 말이 대장부(大丈夫)’인데, 이 말은 도덕경내에서도 여기 한 군데에만 나온다. 보통은 성인(聖人), 성왕(聖王), 선위사자(善爲士者)를 사용한다. 대장부는 장자에도 단 한 줄도 비치지 않는다. 대장부는 맹자즐겨 썼을 뿐이다. 그러나 맹자의 창작은 아니라는 것이 입증된다. 그전부터 있던 개념을 맹자는 맹자스타일로 썼고 덕경의 저자는 도가스타일로 썼다고 보아야 한다. ‘대장부는 박화(薄華)에 거하지 않고 거피취차하는 도적인 덕성을 지닌 인물이다.

 

 

3. 본문 해석

 

부례자(夫禮者), 충신지박(忠信之薄), 이란지수(而亂之首)’는 예()의 형식주의, 인성의 구속을 비판할 때 잘 인용되는 구문이다.

 

본문 중에 무이위(無以爲)’유이위(有以爲)’가 대비되고 있다. 나는 무이위(無以爲)무엇을 가지고서 함이 없다로 유이위(有以爲)무엇을 가지고서 함이 있다로 번역했다. ‘무이위는 무엇을 의도를 가지고서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자연스럽게 불면이중(不勉而中)하고 불사이득(不思而得)한다는 뜻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무상(無相), 유상(有相)과도 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유이위는 무엇이든지 의도를 가지고서 한다는 뜻이다.

 

해석이 좀 난감한 것은 상례(上禮)양비이잉지(攘臂而扔之)’인데, 보통 양비(攘臂)’팔뚝을 걷어붙인다’, ‘소매를 걷어붙인다는 뜻으로 쓰인다. 전체적인 뜻은 예의 강제성을 말한 것으로, 예는 타인이 자기 말을 듣지 않으면 자기 팔뚝을 걷어붙이고 상대방을 끌어 잡아당겨서 예를 준행하도록 복속시킨다는 뜻인데, 나는 아무래도 양비의 비가 상대방의 팔뚝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의 팔뚝을 낚아채서 그것을 끌어 잡아당긴다로 해석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69에 관련된 표현이 나온다.

 

 

이 용() 금동신발은 나주 다시면 복암리 산91번지 정촌고분(丁村古墳)에서 발굴된 것이고(2014), 금관(국보 제295)은 나주 반남면 신촌리9호분 옹관무덤에서 출토된 것이다(1917년 조선충독부의 특별조사).

옹관무덤 속에 왕관이 있었다는 것은 용관도 격이 높은 특별한 무덤양식일 수도 있다는 것이며, 또 옹관무덤의 주인이 국제사회에서 특별한 위상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이 지역 토착세력의 유니크한 주체성을 니타내는 것이다. 최치원이 마한은 고구려의 모태라고 누누이 명료하게 지적하고 있고, 심국유사에도 마한은 고조선과 동시에 존재했던 국가체제였음을 언급했다. 뿐만 아니라 삼국사기』 「고구려본기태조대왕 69, 70년초에는 고구려와 마한이 함께 현도성과 요동을 공략하는 장면이 있다. 여태까지 사학계는 이러한 문헌적 사실을 낭설이라고 일축해왔다. 그러나 진실로 마한은 영산강에서 요서지방, 중국대륙의 동해안 지역까지를 관장하던 해양세력이었으며 고구려의 성장에 큰 밑거름이 되었다. 이런 역사적 판도를 이해해야 왕건의 고려건국도 이해가 된다. 왕건은 영산강문명을 배경으로 고조선-고구려를 계승한 고려를 건국했다.

이 금동신발의 문양을 정밀하게 뜯어보면 고구려고분벽화에 나오는 대부분의 금수의 모습, 기발한 디자인의 다양한 문양, 마왕퇴 예술가들이 그리고 있는 신화적 상상력, 그리고 우리민족의 오리지날한 우주관, 내세관의 상징들이 함죽되어 있는데, 이러한 상징의 해석은 영산강문명의 고유성과 독창성과 태고성, 보편성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새롭게 시작되어야 한다.

이러한 고분의 유물을 과거 영화의 빛바랜 흔적으로 바라보아서는 아니된다. 오늘의 살아있는 원천적 힘(Macht)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 유물의 주인공들이 노자와 같은 사유를 가진 심오한 형안의 소유자였다는 전제하에서 우리가 이들의 세계 속으로 감정이입할 때만이 이 조선대륙의 역사가 비로소 우리의 역사가 될 것이다.

 

 

인용

목차 / 지도 / 전문 / 38 / 노자한비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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