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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논어한글역주, 공자의 생애와 사상 - 공자가문 3대 이혼설 본문

고전/논어

논어한글역주, 공자의 생애와 사상 - 공자가문 3대 이혼설

건방진방랑자 2021. 5. 25.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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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자가문 3대 이혼설

 

 

예기』 「단궁의 기록에 의하면 공짱구는 잉어를 낳은 부인 병관씨(幷官氏)와 이혼했다. 그 이혼한 부인(出母, 정확하게 내쫓긴 부인의 뜻)이 죽었을 때 일 년이 지나도록 잉어가 슬피 울었다[期而猶哭], 잉어가 그토록 슬피 운다는 소리를 듣고 공짱구는 화가 나서 너무 심하다고 소리를 질렀다. 그래서 잉어는 곡을 뚝그치고 말았다. 그뿐인가? 잉어[]는 또 그의 부인과 이혼했다잉어가 죽은 후에 재가했다는 설도 있고, 이혼설도 있다. 그 부인은 위(, 웨이, Wei)나라로 가서 서씨(庶氏, 수스, Shu-shi)와 다시 결혼했다. 그러다가 위나라에 가서 재가(再嫁)한 그 잉어의 부인, 그러니까 중용(中庸)을 지은 자사(子思)의 엄마가 되는 셈인데, 그 부인이 죽었다. 그러자 자사가 그 소식을 듣고 곡부 공씨의 사당에서 슬피 울었다[子思之母死於衛, 赴於子思. 子思哭於廟]. 그러니까 자사의 문인들이 자사에게 와서 물었다.

어찌하여 서씨의 엄마가 죽었는데 공씨의 사당에서 곡을 하십니까?[庶氏之母死, 何爲哭於孔氏之廟乎]”

그러니까 자사가 내가 잘못했다. 내가 잘못했다하면서 딴 집으로 가서 몰래 울었다는 것이다[子思曰: “吾過矣, 吾過矣.” 遂哭於他室].

그뿐인가? 자사도 또 이혼했다. 그 자사의 이혼한 부인이 죽었을 때 그 아들인 자상(子上, 쯔상, Zi-shang, 이름은 백)이 복상하지 않았다. 그래서 자사의 문인들이 와서 선대(先代)에는 출모(出母)라도 상을 입었는데 왜 선생의 아들인 자상으로 하여금 상을 못 입게 하냐고 물으니까, 자사가 골이 나서, “그년은 내 마누라가 아니니까 자상의 엄마도 아니다. 복상할 필요없다고 잘라 말하는 광경이 소상히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공씨가문에서 출모에게는 상을 입지 않는 전통이 자사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故孔氏之不喪出母, 自子思始也].

 

공씨가문의 사람들이 짱구와 잉어, 이런 천한 이름을 소지한 신분의 사람들이다. 게다가 잉어의 아들 자사(子思)까지 삼대에 걸쳐 모두 이혼한 불행한 가족사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가정중심의 도덕원리를 표방한 유교의 패러곤(paragon, 표본)들의 실상이 과연 무엇일까? 짱구에 의하여 논어가 나왔고 짱구의 손자 자사에 의하여 희대의 위대한 철학서 중용(中庸)이 나왔고, 이것들이 모노가미(일부일처제) 가족윤리의 규범을 설정했다고 한다면, 그 규범의 주인공들의 사생활이 이와 같이 개차반이었다는 이 사실을 과연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공자를 위대한 예악(禮樂)의 완성자로서 기리고자 하는 예기가 왜 이와 같은 사실을 극명하게 기록하고 있는가? 이것은 과연 사실의 투영인가? 상상의 날조인가? 사실이라면 무당동네 판자촌에서 개차반으로 산 천민들의 이그러진 삶의 실상의 고발인가? 날조라면 과연 왜, 어떠한 목적으로 날조한 것일까? 이혼한 부인이지만 생모이기에 구슬피 흐느끼는 자식의 울음마저 그치게 만드는 이 졸렬한 인간상들 앞에 우리는 과연 어떠한 경외감을 느껴야 할 것인가? 이러한 공자의 얘기들을 위대한 경전 속에서 읽고 다 알고 있으면서도 쉬쉬 덮었어야만 했을 과거 조선의 유생들은 과연 어떤 방식으로 이러한 사실들을 이해했을까?

 

 

 

 

인용

목차

맹자한글역주

효경한글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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