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의 Q와 안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르게 된다. 『논어』는 유교의 이단서이다. 『논어』야말로 성인공자의 최대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은 무엇을 뜻하는가? 『논어』가 유교의 이단이라 함은, 유교를 국가종교(state religion)로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 유교를 절대적인 권위체계로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논어』의 정직하고 비권위적이고 개방적인 성격은 이단으로서 비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논어』가 성인 공자의 걸림돌이라 함은, 공자를 성인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논어』에 비치는 너무도 인간적이고 변화무쌍한 희노애락의 공자상은 성인화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논어』에 있어서처럼 한 인간의 모습이 있는 그대로 펼쳐진 문헌은 고대세계에 그 유례가 없다. 서구문명의 고전을 이루는 대부분의 문헌이 초자연적 설화나 신화적 각색을 탈피하지 못한다. 『논어』는 인류문명사의 한 축복이다.
『논어』는 분명 공자사후에 제자들의 활약으로 분기되어나간 여러 학파들의 전승, 또 공자를 흉내내는 유사집단들에게 화제가 된 전승 등을 통하여 오랜 시간에 걸쳐 집적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존하는 『논어』 텍스트는, 공관복음서의 ‘원(原)마가자료’【Ur-Markus, 현존하는 「마가」이전의 「마가」조형으로서 공관복음서 모두에게 영향을 준 가상적 원초자료】나 ‘Q자료’【Quelle, 「마태」 「누가」에 공통되면서 「마가」에는 없는 자료, 그러니까 마태, 누가는 「마가」와 「큐」 두 자료를 보고 복음서를 집필했다. 두 자료가설, The Two-Document hypothesis[TDH]】와 같이, 어떤 공자의 생생한 모습을 전달하는 초기자료, 즉 이미 공자의 생전부터 기록되었을지도 모르는 원(原)자료들이 상당 부분 그 기저에 남아 있다고 판단되는 것이다.
공자는 천민출신의 ‘개비’적 인간이었지만, 그의 최대의 강점은 문자를 활용하는 능력과, 문헌을 다루는 실력에 있었다. 그의 제자집단(공자운동집단)이 강력한 유대감을 지닐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문자적 표현의 학습과정에서 획득되어진 것이다. 이러한 공자의 문아(文雅)한 측면을 가장 잘 계승한 제자는 ‘안회(顔回)’였다. 그러나 안회는 불행히도 장년의 나이에【나는 안회의 죽음의 나이를 30세 전후로 보지 않고, 40세 전후로 본다】, 공자보다 먼저 죽었다. 만약 안회가 공자 사후에 장시간 살아남았더라면, 오늘 『논어』의 모습은 보다 전일하고 체계적인 성격의 것이 되었을 것이다. 안회의 요절은 공자에게 저주이자 축복이었다. 안회가 요절하지 않고 오래 살아남아 공자의 말씀을 꼼꼼히 편집했더라면 『논어』는 안회의 인식의 울타리에 갇혀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안회의 요절은 공자를 안회의 인식의 울타리로부터 해방시켰다. 그러나 『논어』에는 분명 안회의 오리지날한 기록의 파편이 남아있다. 예를 들면, 공자와 자로(子路, 쯔루, Zi-lu)와의 대화는 그 생생한 캐릭터의 모습과 내면적 심성에서 북받쳐 우러나오는 진실이 가식 없이 있는 그대로 표현되어 있다. 아마도 공자와 자로의 대화는 그 상당 부분이 안회가 살아있을 때 기록해 놓은 매우 초기의 생생한 파편에 속하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
『논어』라는 텍스트의 경우 정확하게 공관복음서 문제(Synoptic Problem)와 같은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물론 같은 자료의 다른 전승이라는 비슷한 문제가 『논어』에도 개재되어 있다. 그러나 『논어』는 공자의 어록일 뿐이다. 복음서 또한 예수의 어록이지만, 『논어』와는 매우 다른 성격의 것이다. 그것은 예수의 말을 케리그마적 의미체계로 둔갑시키는 삶의 내러티브(narrative)를 전제로 해서 배열되고 있는 어록인 것이다. 그 내러티브는 당연히 예수의 삶의 일정한 시간적 서열이라는 구조를 가지게 된다. 공관복음서의 원자료라고 생각되는 「마가복음은 매우 직선적인 시간서열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1) 세례 요한의 이야기
2) 예수의 세례와 광야의 시험
3) 예수의 갈릴리 선교
4) 유대지방에로의 여행
5) 예루살렘에서의 클라이막스
6) 수난의 내러티브
7) 빈 무덤의 발견
「마가」에는 예수처녀탄생 설화나 예수의 부활이야기가 없다.
「마태」와 「누가」는 이러한 「마가」의 틀을 기본적으로 준수하고 있다. 그러면서 「마가」의 자료에다가, 앞을 서로 다른 예수탄생 설화로 장식하였고, 후미를 또 서로 다른, 부활한 예수의 현현으로 결론짓고 있다. 그리고 「마가」에 없는 어록자료 큐와 자기들만이 가지고 있었던 다른 자료들을 첨가시켰다.
그러나 『논어』는 이러한 공자의 삶의 시간서 열적 구조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 그리고 어록의 상황은 그 상황을 만들고 있는 캐릭터나 사건들에 의하여만 암시되고 있을 뿐이다. 사실 복음서에 가까운 것은 『논어』가 아니라 「공자세가(孔子世家)」다. 만약 사마천의 「공자세가(孔子世家)」와 같은 것이 동시대의 여러 사가들에 의하여 비슷한 시기에 집필되었다면 공자도 예수처럼 공관복음서문제를 지니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명료하게 인지해야 할 사실은 ‘노론(魯論)’ ‘제론(齊論)’ ‘고론(古論)’의 문제가 결코 공관복음서와 같은 문제를 제기하는 다른 전승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논어』라는 서물이 편집된(상한이 전국말) 이후에 제나라와 노나라 지역에서 각기 통용되던 약간 상이한 판본의 배리에이션 정도의 문제일 뿐이며, 편집되기까지의 다른 전통을 과시하는 전승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제론이라고 해봐야 노론에 비해 「문왕(問王)」 「지도(知道)」 두 편이 많았을 뿐이다. 그러나 그 두 편의 내용은 장후론이 성립할 때 이미 노론 체제 속에 흡수되어 장후론이 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니까 논어의 전승은 어디까지나 노론 중심일 수밖에 없다. 고론(古論)이라는 것도 많은 사람이 논어 그 자체의 옛 전승인 것처럼 착각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이것은 무지의 소치일 뿐이다. 고론은 옛 논어가 아니라 단지 금문(今文)이 아닌 고문(古文)으로 쓰여진 것으로서, 후대에 발견된 판본이라는 뜻이다. 소위 공벽(孔壁)에서 나왔다는 것인데 그 진실성 여부는 여러 가지 정황으로 분석하여 보면 허구적 풍문에 기초한 것일 수 있으며, 실체의 확인이 근본적으로 난감하다. 하여튼 삼론(三論)의 문제는 춘추전국시대의 문제가 아니라 한대(漢代)의 문제의식일 뿐이다. 그리고 삼론의 차이가 공자에 대한 이미지의 패러다임을 바꿀 만한 그러한 내용의 차이는 없다고 단정해도 좋을 것이다. 『도마복음서』나 『큐복음서』의 출현과 같은 사태를 『논어』의 판본의 세계에서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러나 『논어』의 편 사이에 있어서도 동일한 구문이 반복되고, ‘자왈(子曰)’이 「계씨」편이나 다른 곳에서 ‘공자왈(孔子曰)’로 바뀌는 등 다양한 양식적 변화가 감지되며, 1인칭, 2인칭, 조사 등의 다양한 변화가 있고, 또 각 편에 따라 특이한 주제전개방식이나 기술형식의 다양성이 있으며, 그리고 춘추전국시대의 여러 문헌에 동일한 주제가 달리 표현되고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 우리는 공관복음서에 적용되는 양식비평(Form Criticism)이나 편집비평(Redaction Criticism)과 유사한 문제의식으로 텍스트를 접근할 수도 있다. 성서의 경우는 아람어나 히브리어 자료를 희랍어로 번역하는 작업에서 이미 다른 버젼의 문제가 생겨났겠지만, 『논어』의 경우는 이러한 번역상의 문제는 별로 없었을 것이다. 제국간에 말은 달라도 문자는 어느 정도 공통되었을 것이다. 동일한 구문이 여러 텍스트에 나오고 있다는 것은 동일한 초기 파편의 유통을 말해주는 것이다. 어떤 프로토 텍스트가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결정적인 사실은 전승의 차이가 기독교복음서에 있어서처럼 근원적인 케리그마의 패러다임적 변화를 수반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새로운 자료가 발굴되어도 현행 『논어』의 보충자료가 될지언정, 현행 『논어』의 패러다임을 바꿀만한 사태는 원초적으로 불가능하다. 신화와 상식의 차이를 오가는 비약적 관점변화의 문제가 아니라, 공통된 인문학적 상식내에서의 관점의 차이 정도에 머무르는 문제일 것이다.
현존하는 『논어』의 20편은 그 편제가 일찍 확정된 것이므로, 각 편마다 어떤 주제적 통일성이나 시공적 균일성이나 전승의 독자성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20편의 각 내용이 이러한 독자적 성격을 말할 수 있는 성격을 지닐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간파할 수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각 편들의 편집 시기는 각기 한 시점으로 규정할 수 있어도, 한 편의 전승의 내용의 성격은 도저히 균일한 것으로 묶기 어려운 측면이 많다. 이미 ‘학이(學而)’니 ‘술이(述而)’니 하는 식으로 의미론적 구조와 관계없이 첫 두 글자만을 따서 편명을 삼았다고 하는 사실 그 자체가, 이미 어떤 일관된 주제를 내걸기에는 너무도 그 내용이 잡(雜)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각 편의 편해에서 상술하겠지만 각 편의 이름은 우연적인 요소로만 보기에는 매우 치밀한 편집의도가 반영되어 있다. 편명이 세 글자인 경우도 두 편이 있다】.
『논어』의 모든 편의 편집시기를 세밀하게 재구성한 최근의 브룩스【E. Bruce Brooks 白牧之 and A. Taeko Brooks 白妙子】의 역작(力作), 『논어변(論語辨)』【The Original Analects: Columbia University Press, 1998】이 있다. 이 책은 매우 광범한 자료를 기초로 하여 치밀한 논리를 제시하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엄밀하게 검토하여 보면 좀 황당한 가설들에 기초하고 있다. 이 책은 그 노력의 정교함에도 불구하고 『논어』에 대한 왜곡일 수도 있다. 『논어』 각 편의 편집시기를 연도별로 세밀하게 구성한다는 것은 『논어』의 경우 많은 무리가 뒤따른다. 그리고 어느 시점에 편집되었든지 간에, 그 편집된 내용이 곧 그 편집 시점의 사실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각 편을 구성하는 어록의 파편이 공자의 삶의 역사적 전개과정에 있어서 어떠한 체험을 반영하는가 하는 것이 보다 일차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이지만, 이것도 근원적으로 정확한 논의가 불가능한 것이다. 공자의 삶의 과정 그 자체가 하나의 에니그마(enigma, 수수께끼)에 속하는 것이며, 그 자체가 불가지론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학문은 정밀성을 원칙으로 하는 것이지만, 고전 텍스트의 경우, 정밀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왜곡도가 높아질 수도 있다는 파라독스를 우리는 항상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 된다. 공자의 삶은 정밀한 분석이 불가능하다. 공자의 삶은 어차피 ‘현재’의 시점에서 끊임없이 재구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것은 마가복음의 패션 내러티브(Passion narrative, 수난 이야기)처럼 어떤 교리적 케리그마의 구조에 갇혀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단지 우리의 해석을 기다리고 있는 개방된 인문학의 장(場)이다. 『논어』 자체가 우리에게 신화적 도그마를 강요하지 않는다.
▲ 북한이 평양시 낙랑구역 한 목관묘(木槨墓, 귀틀무덤)에서 발굴했다는 사실만을 지난 1992년에 간단히 보고한 죽간논어(竹簡論語, 대나무 조각에 쓴 논어). 2009년에 비로소 실물이 공개된 이 죽간은 논어 중에서도 선진(先進)과 안연(顔淵), 두 편을 묵서(墨書)로 적은 텍스트로, 정백동(貞柏洞) 364호분이 출토지며, 정확한 출토량은 39매로 밝혀졌다. 2009.11.29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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