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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한글역주, 공자의 생애와 사상 - 장자와 묵자와 맹자 본문

고전/논어

논어한글역주, 공자의 생애와 사상 - 장자와 묵자와 맹자

건방진방랑자 2021. 5. 25.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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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자와 묵자와 맹자

 

 

사마천의 공자세가(孔子世家)이전의 문헌으로 우리가 공자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문헌으로 나는 묵자(墨子), 맹자(孟子), 장자(莊子), 예기이 네 개의 책을 들겠다. 이 네 개의 서물은 모두 그 나름대로 확고한 공자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다. 그런데 이중에서 내가 가장 중시하는 것은 장자(莊子)라는 서물이다. 많은 사람들이 장자(莊子)를 유가와 대립하는, 유가와 전혀 무관한 독자적인 도가적 사상체계로 생각한다. 그러나 장자(莊子)속에는 공자에 관한 수없는 알레고리가 있다. 그러한 알레고리를 통하여 반사적으로 자기의 사상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장자는 공자와 그의 제자들을 마구 희화(戱化)한다.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만큼 처참하게 초라한 모습으로 무대 위에 올려진다. 때로는 도둑놈으로, 때로는 창녀로, 때로는 겁쟁이로, 때로는 달변의 유세객으로, 때로는 진지한 구도인으로, 한없이 다양한 모습으로 둔갑된다. 그러나 나는 장자(莊子)속에 그려지고 있는 공자의 소설 속에서 매우 진실한 공자의 상을 본다. 이것은 좀 범인들이 생각키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고전의 서향(書香) 속에 좀 머리를 묵힌 자라면 수긍이 갈 수 있는 문제이다. 공자는 공자를 디펜드하려는 자들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공자는 공자의 비판자들 속에서 그 모습을 선명히 드러낸다. 안회(顔回, 옌 후에이, Yan Hui) 속에는 공자가 보이지 않는다. 공자의 모습은 오히려 자로(子路, 쯔루, Zi-lu) 속에 있다. 공자와 좀 거리감이 있는 자공(子貢, 쯔꽁, Zi-gong)이나 재여(宰予, 짜이위, Zai-yu) 속에서 공자의 모습은 더욱 선명하게 빛을 발한다.

 

묵자(墨子, 뭐쯔, Mo Zi)는 공자를 극렬하게 비판하지만 그 언설을 뒤짚고 보면 묵자야말로 공자의 충실한 후계자임이 분명해진다. 묵자는 공자의 충실한 신도였다. 공자의 집단이 성공하는 것을 보고 그것을 흉내내어 일어난 어떤 패시피스트(pacifist, 평화주의자)적인 용병집단이었다.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결코 공자의 세계에서 멀리 있었던 인물이 아니었다. 묵자가 말하는 겸애(兼愛)’절용(節用)’은 그 이데올로기적 외피를 벗기고 보면 이미 공자의 핵심적 사상에 속하는 것이다. 묵자는 공자의 핵심사상을 계승하였기 때문에, 오히려 자신의 독자성을 인정받기 위하여 공자를 가차없이 비판한다. 그러나 그들이 비판하는 공자는 모두 비판의 대상으로서 희화된 공자의 외피들이다.

 

이러한 묵자의 확고한 안티테제로서, 양묵(楊墨)에 대한 유가(儒家)의 적통성을 확립하려고 했던 맹자(孟子, 멍쯔, Meng Zi)야말로 공자의 최대의 이단일지도 모른다. 맹자가 유교(儒敎, Confucianism)의 적통일지는 모르지만, 공자의 가르침(Teachings of Historical Confucius)에 대해서는 최대 이단일 수도 있다.

 

맹자에게는 살아있는 모습 그대로의 공자가 없다. 인의(仁義)라는 도덕주의적 사상의 주체로서 추상화되어 있고 논리화되어 있고 형해화(形骸化)되어 있다. 마치 사도 바울에게 역사적 예수의 상이 없는 것과도 같다. 예수는 오직 부활이라는 자신의 케리그마를 정당화시켜 주는 이념덩어리일 뿐이다. 맹자에게도 공자는 삶의 예지의 역사적 전승이 아닌, 맹자 자신의 주장의 논리적 근거를 제시해주는 이념일 뿐이다. 맹자의 이러한 추상적ㆍ이념적 공자상은 증자(曾子, 쩡쯔, Zeng Zi)에게서 받은 것이다. 증자는 공자의 14유랑장정의 고난길에 참여한 적이 없는 후기의 어린 제자이다. 증자는 공자를 한 인간으로서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증자가 공자를 만났을 때는, 공자는 이미 한 면만 쳐다볼 수밖에 없도록 높이 솟아있는, 너무도 인간적일 수 없는, 거목이었다. 증자는 공자의 추상적 한 측면만을 인지할 수밖에 없었던 어린아이였다. 맹자는 증자를 이어받아 공자의 대설(大說)을 지으려 하였다. 그러나 맹자의 대설은 본래의 소설(小說) 정신에도 크게 못 미치는 것이다.

 

 

 

 

인용

목차

맹자한글역주

효경한글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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