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과 무의미②
그러나 정말 그럴까요? 오히려 그 반대가 사실이 아닐까요? 애인의 눈물은 아무런 정보를 제공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많은 정보를 제공해서, ‘사랑한다’는 의미와 ‘사랑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동시에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남자를 골치 아프게 했던 것이 아닐까요? 사실 우리가 기호를 해독하려고 하는 것은, 그 기호가 극단적으로 상반되는 내용을 동시에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서 볼 때 ‘모순’이란 말처럼 ‘사건’과 ‘기호’의 논리를 잘 표현해주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A이면서 동시에 A가 아니다’라는 모순된 사태와 우리가 마주쳤다면, 그때 우리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이것은 A일까, 아니면 A가 아닐까? 도대체 이것은 무엇일까?’ ‘사건’이 우리로 하여금 생각하도록 만드는 힘을 가지게 된 것은, 이것이 바로 모순적인 방식으로 이야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흔히 ‘모순’이란 말은 ‘무의미(non-sense)’와도 연결되어 이해되곤 합니다. 우리가 아리스토텔레스와 마찬가지로 모순된 주장은 어떤 정보도 없다고 쉽게 생각해버리기 때문이죠. 그러나 사실 ‘사건’과 그것을 표현하는 ‘모순’은 어떤 의미나 정보가 부재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런 의미나 정보가 너무 많이 존재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무의미’라는 것 역시 ‘의미’가 결여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의미’가 과잉되어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들뢰즈가 알아차린 것도 바로 이 점입니다.
부조리의 철학에서 무의미란 단순히 의미와 대립하는 것이다. 그래서 언제나 부조리는 의미의 결핍, 부족함에 의해 정의된다. (……) 그러나 무의미란 의미를 지니지 않는 것이기도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의미를 주는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의미의 부재에 대립하는 것이다.
『의미의 논리(Logique du Sensu)』
들뢰즈의 말처럼 무의미는 단순히 의미를 결여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말이 아닙니다. 표면적으로 확정된 의미가 없다는 점에서는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고 볼 수 있지만, 무의미는 오히려 의미를 만들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무의미에는 다양한 의미, 모순되기까지 한 많은 의미가 공존하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서 무의미는 ‘무한한 의미’라고도 이해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어떤 기호에 하나의 의미만이 있다면 그것은 습관적으로 이해되는 것이지, 결코 우리의 생각을 강제하지는 못합니다. 사실 하나의 의미로 확정된 것은 더 이상 ‘기호’라고 부를 수도 없겠지요. 예를 들어 애인의 눈물이 분명하게 ‘이별’만을 의미한다면, 이 눈물은 우리를 직접적으로 슬프게 할 뿐, 우리로 하여금 생각하도록 강제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무의미란 마치 일종의 블랙홀과도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무의미는 바로 우리의 생각을 끌어당기는, 사건이 분출하는 기호가 가진 힘이기 때문입니다.
무의미는 우리로 하여금 의미를 채우도록 강제하는 힘, 즉 생각하도록 만드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남몰래 사랑하던 사람이 있다고 해봅시다. 그런데 그 사람이 어느 날 우리에게 알 듯 말 듯한 미소를 보냈습니다. 우리에게는 낯선 사건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 경우 그 사람의 미소는 어떤 의미도 결여하고 있다는 뜻에서 ‘무의미’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 내가 결정할 수 없는 복잡한 의미, 심지어는 모순적이기까지 한 의미를 담고 있다는 뜻에서 그 사람의 미소는 ‘무의미’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나에게 호감이 있다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가소롭다는 것인가?’ 의미를 확정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 사람의 미소 속에 어쩔 수 없이 빨려 들어가게 되는 것이죠.
이제 우리는 생각이란 것이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처음부터 세계와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 말은 우리 생각이 직접 세계를 반영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세계와 친숙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을 때, 우리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계가 낯설게 다가올 경우, 오직 이때에만 우리는 생각이란 말에 걸맞게 사유하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무수히 많은 사건과 마주치며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사건이 내뿜는 기호와 무의미 속에서 우리는 낯섦을 경험할 수밖에 없게 되지요. 이 점에서 우리의 ‘생각’은 바로 이 낯섦을 친숙한 것으로 바꾸려는 삶의 무의식적인 의지로부터 기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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