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
Contradiction
어떤 주장이나 논리에 조리가 없고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뜻으로 흔히 모순(矛盾)이라는 말을 쓴다.
옛날 중국의 어느 장사꾼이 세상에서 가장 튼튼한 방패도 뚫을 수 있는 창(矛, 모)과 세상에서 가장 날카로운 창도 막을 수 있는 방패(盾, 순)를 함께 팔았다는 데서 나온 말이므로 모순은 그 자체로 모순적인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모순은 비록 부정적인 유래에서 비롯되었으나 반드시 부정적인 의미만 가진 것은 아니다. 일찍이 철학의 초창기에 이오니아의 철학자인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os, BC 540~480)는 대립물의 투쟁이 모순을 이루고 이 모순에서 운동이 생겨난다고 주장했다. 이후 다양한 사상이 제기된 고대, 신학적 합의를 중시하던 중세, 인식론이 초점이었던 근대를 거치는 동안 모순의 개념은 철학의 무대에서 오랫동안 퇴장해 있었다. 그러다가 19세기에 헤겔(Hegel, 1770~1831)이 다시 모순을 되살려 변증법을 구성했고,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는 그 변증법을 차용해 모순을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보았다.
마르크스가 말하는 모순의 개념은 여러 가지 형태를 취하지만 사회혁명을 낳는 근본 요인이라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대체로 일정하게 성장하는 생산력에 비해 생산관계는 특정한 기간 동안 변하지 않는 데서 모순이 생긴다. 마치 자라나는 청소년의 몸과 옷의 관계처럼 생산력이 어느 정도까지 발달하면 기존의 생산관계로 담아낼 수 없게 된다. 이때가 바로 사회혁명이 일어나는 시기다. 예를 들어 고대 노예제적 생산관계에서 생산력이 크게 발달하자 더 이상 노예제로 감당할 수 없어 중세 봉건제적 생산관계로 이행하게 되었다는 논리다.
자본주의 사회의 특유한 모순은 사회적 생산과 사적 소유의 모순이다. 자본주의적 대량생산은 분업을 통해 이루어지므로 기본적으로 집단적이고 사회적인 성격을 지닌다. 그러나 생산에 필요한 생산수단과 생산물, 즉 상품은 자본가가 독차지하므로 자본주의적 소유는 늘 사적일 수밖에 없다. 이 모순은 결국 자본주의적 경제 성장을 저해하고 이윤율을 떨어뜨려 사회주의의 집단적 소유로 이행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이 모순의 계급적 표현은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의 모순으로 나타난다.
마르크스의 모순론이 사회 분석에 치중한 데 비해, 중국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시킨 마오쩌둥(毛澤東, 1893~1976)은 『모순론』에서 모순의 개념을 실제 혁명 과정에 적용했다. 마오쩌둥은 마르크스가 분석한 자본주의 사회의 근본적 모순을 기본모순으로 규정하고, 구체적인 혁명 과정에서는 그 모순이 다른 형태를 취할 수 있다고 보았다.
20세기 초 중국의 사정은 마르크스가 살았던 19세기 유럽은 물론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던 20세기 초의 러시아와도 달랐다. 우선 중국은 노동자보다 농민이 다수이며, 중국은 선진 자본주의 국가가 아니라 일본 제국주의의 침탈을 받고 있는 반식민지 상황이었다. 이런 점을 감안해 마오쩌둥은 제국주의와 식민지의 모순을 그 단계의 주요 모순으로 설정하고, 우선은 계급투쟁보다 민족해방을 위한 투쟁에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대 철학에서 바라보는 모순의 개념은 혁명을 위한 실천보다 이론과 인식의 측면에 중점을 둔다. 전통적 형이상학에서는 늘 철학적 주체가 가정되었으며, 이 주체는 이성적이고 연속적이며 확실성과 동일성을 가진 존재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구조주의 철학자들은 자유의지를 가진 주체란 존재하지 않으며, 주체 자체를 구조의 산물로 보았다. 나아가 포스트 구조주의에서는 무의식을 강조하면서 의식적 주체의 개념을 버리고, 일관성은 환상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와 가타리(Félix Guattari, 1930~1992)는 분열증이 자본주의의 정상적인 현상이라고 보았으며,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는 인과성과 필연성을 버리고 예측 불가능성과 우연성의 관념을 이론에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실이 모순적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모순을 배제하지 않고 포용하는 시각을 가져야만 현실을 올바로 볼 수 있다. 대학입시 논술을 비롯한 일반적인 글쓰기에서는 흔히 모순이 없이 일관적으로 글을 써야 한다고 가르치지만, 데리다(Jacques Derrida, 1930~2004) 같은 사람은 모순과 불완전함이란 결함이 아니라 글 자체에 필연적으로 내포된 고유한 특성이라고 본다. 물론 데리다의 방식대로 글쓰기를 할 경우 과연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지는 또 다른 문제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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