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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21.06.23 - 8년의 역사가 담긴 임고반을 나가며 본문

건빵/일상의 삶

21.06.23 - 8년의 역사가 담긴 임고반을 나가며

건방진방랑자 2021. 6. 23.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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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의 역사가 담긴 임고반을 나가며

 

 

당연히 임용고시 공부=임고반에서 공부를 생각했다. 예전에 공부를 할 때도 그런 생각을 하며 임고반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었고 다시 공부를 시작하게 된 2018년부터도 그 생각은 전혀 변함이 없었기에 전주에 내려와 공부하고 싶은 이유 = 임고반에서 공부할 수 있기 때문이라 생각할 정도였다. 그렇게 당연하다는 듯이 생각했던 임용고시반을 임용고시도 보기 전에 나가려는 것이니, 이제 임용공부를 더 이상 안 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무슨 사정이 생긴 것인지 의문이 따를 수밖에 없다.

 

 

 21년 3월 25일에 임고반에 입실했다. 늘 좋아하는 창가자리에 배정받아 정말 기뻤다. 

 

 

 

8년의 역사가 알알이 새겨진 장소

 

전주대 사범대에 임용고시반이 생긴 건 2005년이나 2006년쯤으로 기억한다. 5층의 강의실을 트는 공사를 하더니 그곳에 최고급 책상들이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 당시 임고반은 성적이 좋은 재학생들이 들어가 개인 공부를 할 수 있는 공간만 있었고 졸업생을 위한 공간은 없었다. 그래서 운이 좋게도 성적이 되었기에 생기자마자 바로 임용고시반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임고반과의 인연은 임용고시를 통과하지 못함에 따라 쭉 이어져 2009년까지 계속 되었다. 무려 4년 동안이나 임고반에 머물려 고시낭인(?) 생활을 했던 것이다. 물론 2009년 실시된 임용시험에서도 대차게 떨어졌기에 2010년에도 임용공부를 했지만 그땐 평생교육원에서 인턴을 6개월 하다가 임고반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빈 자리가 없다며 중앙도서관에서 공부를 해야만 했다. 마지막으로 임용시험을 보겠다며 공부를 하던 때였지만 임고반이 아닌 중앙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게 되며 자연스럽게 임용고시반을 떠나게 됐다.

 

 

 2019년 11월 19일 가을이 무르익은 전주대. 임고반에서 내려보는 광경이 이채롭다.

 

 

임용고시엔 실패했지만 대안학교에 교사로 채용되며 교사의 꿈을 접는 순간 오히려 교사가 되는아이러니를 맛볼 수 있었다. 단재학교에서 7년 간 신나게 교사생활을 하며 2017년에 그만두게 되었고 2018년부터 다시 임용시험을 볼 맘이 하나도 없었음에도 여러 클리나멘에 연달아 부딪치며 다시 이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이래서 삶은 한치 앞도 알 수 없다는 거려나.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지만 공부는 익숙한 장소에서 하고 싶었다. 운이 좋게도 그만 둔 시점이 임용고시반원을 모집하는 시기였기에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때부터 20216월인 지금까지 임고반을 떠나지 않고 공부한 셈이니 새롭게 시작한 공부하고서도 4년 가까운 시간을 이곳에서 보낸 셈이다.

이로써 무려 8년이란 시간이 임고반에 알알이 박히게 되었다. 그러니 당연히 애초의 임용공부=임고반이란 등식은 더 강화될 수밖에 없었고 지금은 아예 전주대라고 하면 한문교육과에 대한 생각보다 임용고시반이 먼저 떠오를 정도다. 얼마나 이곳에서 희노애락을 느끼며 시간을 보냈는지 여실히 알게 한다.

 

 

  2018년 4월 8일의 임고반. 다시 온 이곳이 정말 좋다.

 

 

 

과거의 임고반과 최근의 임고반

 

예전의 임고반은 전형적인 학원식 고시반 같은 느낌이었다. 빡빡한 원칙이 세워져 있고 그에 따라 그걸 지키지 않을 경우 자를 수 있었으니 말이다. 빡빡한 원칙이란 다음과 같다.

 

 

원칙
 
1. 8시 등교~10시 하교(토요일은 18시 하교, 일요일은 자율)
2. 13, 19시에도 중간 출석점검을 함
3. 자리를 비울 경우: 포스트잇으로 명시(1시간 이내) / 사유서 작성(1시간 이상)
4. 장기 미참석시: 교직지원부에 문의
 
사유없이 자리를 빌 경우, 또는 출석점검 시간에 자리에 없을 경우 벌점 1

 

 

예전에 공부할 땐 이 방식대로 그대로 적용되었기에 임고반엔 늘 사람이 꽉 차 있었고 아침에 등교하여 8시쯤 5층 로비에 나와 창을 보고 있노라면 기이한 광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어떻게든 벌점을 맞지 않기 위해 열심히 뛰어오는 학생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마치 고등학교 4학년 같은 모양새인데, 다들 임용 합격이란 목표를 위해 이곳에 온 것이니 그 광경이 낯설게 느껴지진 않았다.

하지만 2018년에 돌아온 임고반은 달라져 있었다. 물론 조교는 여전히 원칙을 얘기하면서 강퇴 당할 수 있으니 잘 지키라는 말을 하긴 했지만 학생들끼린 그런 원칙보단 개인의 자율성에 맡기는 방식으로 운영했던 것이다. 어차피 다들 성인이고 목적의식 또한 분명하니 외부적인 강제보단 자신의 시간을 자신이 컨트롤해가며 공부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런 변화 탓에 처음엔 조금 더 원칙대로 운영하면 좋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래야만 조금은 느슨해지려는 마음을 다잡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강압이 아닌 자신의 자율성에 따라 공부를 해보니 이 또한 좋은 방법이라는 걸 알게 됐다. 자신이 공부하려 정한 시간엔 열정적으로 학문과 씨름을 하고 그렇지 않은 시간에 다음 공부 시간을 대비하여 부담 갖지 않고 푹 쉰다. 그런 다음 회복된 마음가짐을 기본 삼아 다시 맹렬히 공부하는 것이다.

 

 

  21년 4월 10일 학생회관에서 진리관으로 올라가는 길의 모습. 이 길은 신나는 길이다. 

 

 

 

예전의 방식이 도입된 임고반

 

원칙은 늘 같았지만 예전의 임고반과 최근의 임고반은 그걸 지키는 방식에 차이를 뒀던 것이다. ‘강제자율사이에서 임고반 운영자들이 나름 했던 고민들이 보이기도 한다. 예전과는 달리 임고반엔 사람들이 가득 차 있지 않다. 임용고시가 쉽지 않기 때문인지, 공부의 방식(책으로만 하는 공부 & 전자기기를 활용한 공부)이 달라졌기 때문인지 임고반이 그렇게 선호되진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임고반에서 쌓아온 추억이 있기 때문에 당연히 올해도 임고반에 들어가게 되었고 임용고시를 보기 전까진 나올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의 바람이기만 할 뿐 현실은 그러질 못했다. 임고반을 관리하는 조교와 교수가 바뀜에 따라 운영방식이 예전과 같아졌기 때문이다. 철저히 원칙대로 운영되며 벌점이 누적되면 강퇴를 당하게 된다. 그러니 엉덩이 무겁게 의자에 앉아 그 자리에서만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다.

임고반 운영방식은 철저히 FM을 따르겠다며 회귀를 했는데 나의 공부방식은 예전과는 완전히 바뀌었다는 점이다. 예전엔 당연히 의자에 앉아 여러 책을 펼쳐보며 공부를 했었지만 지금은 컴퓨터를 당연히 켜놓고 자료도 찾고 여러 타이핑도 하며 공부한 것들을 정리하는 공부를 한다. 그러니 타이핑을 쳐야 할 게 많을 땐 임고반을 나와 집에서 공부하는 게 훨씬 편하고 더 시간이 단축되기도 한다. 이전처럼 자율성에 따라 임고반이 운영되었다면 당연히 작업할 양이 많을 땐 집에서 공부하고 정신을 집중하며 공부해야 할 땐 임고반에 올라가는 식으로 공부하면 된다. 하지만 이젠 더 이상 그럴 수 없게 된 것이다. FM대로 운영하기에 임고반을 벗어나서 공부해선 안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 상황이라면 당연히 결단을 내려야만 한다.

 

 

 21년 4월 28일 불야성을 이룬 임고반의 모습. 밤에도 열심히 하는 아이들.

 

 

 

합격하며 떠나고 싶었지만

 

결론적으로 임고반을 떠나기로 했다. 임고반 시간에 맞춰 공부 스케쥴을 짜고 싶지 않았고 지금처럼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맘껏 좌충우돌하며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임고반은 임용합격이란 영예를 누리며 떠나고 싶었지만 임고반 운영 방침이 바뀜에 따라 이렇게 중도 하차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 점이 못내 맘이 아프지만 떠난 자리에 대한 미련은 버리고 지금 있는 자리에서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애를 쓰며 진심을 다해야 하는 거겠지. 두 번이나 최종 시험에서 떨어지며 합격이란 영예를 코앞에서 놓친 나의 탓이려니 해야겠지. 어차피 현실에 따른 나의 결론이 내려진 상황이니 내가 있는 자리에서 후회 없이 공부하며 올해 임용도 최선을 다해보도록 하련다. 전주대 임고반에 알알이 박힌 이야기들을 추억의 한 켠으로 보내며 그동안 즐거웠다.

 

 

멀찍이 보이는 진리관. 그리고 5층의 임고반. 안녕!

 

 

인용

지도

21년 글

임용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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