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단논법의 숨겨진 비밀②
그러나 사실은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오히려 사정은 정반대이지요.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는 머릿속에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라는 어떤 구체적인 생각 하나를 떠올립니다. 이것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익숙한 현상 가운데 하나이니까요. 그런데 이제 우리가 이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한다고 해봅시다. “내 생각에 소크라테스는 분명 죽을 거야.” 이 말을 들은 다른 사람이 아무런 문제도 제기하지 않고 내 주장에 동의해준다면, 우리는 더 이상 이 생각에 연연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상대방이 우리의 주장을 반박하기 때문입니다. “소크라테스가 죽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는 우리의 생각은 증명을 필요로 하는 주장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생각을 상대에게 증명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나의 생각에 의문을 제기하는 타인을 설득할 수 있을 테니까요. 사실 이로부터 우리는 생각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합니다. ‘어떻게 하면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 끝에 우리는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라는 생각과 ‘모든 사람은 죽는다’라는 생각 등에 이르게 됩니다. 만약 상대방이 이 두 가지 전제를 참이라고 받아들인다면, 그 상대방은 결국 ‘소크라테스는 죽는다’는 나의 생각과 주장을 거부할 수 없게 되겠지요.
여기서 우리는 에른스트 캅(Ernst Kapp, 1808~1896)【에른스트 캅은 기술 문명에 대한 비판적 성찰로 유명한 철학자이다. 그가 중요한 이유는 그가 자본주의 발전으로 야기된 기술 문명의 폐해에 대해 최초로 진지하게 성찰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술 문명에 대한 그의 비판은 그가 농부나 목수로 일하면서 얻었던 통찰인 까닭에 낭만적이고 목가적인 데가 있다. 주요 저서로 『기술과학 철학의 기초』, 『전통적 논리학의 그리스적 기초』 등이 있다】의 이야기를 들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논증의 순서와 사유의 순서가 반대로 되어 있다는 점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으니까요.
질문자(questioner)의 마음속에서 삼단논법을 발견하려는 사유의 방향은, 전제와 결론이라는 순서와는 사실 대립되는 것이다. (……) 다시 말해 질문자는 자신의 사유를 전제로부터 결론에 이르는 방향이 아니라, 오히려 거꾸로 결론으로부터 전제에 이르는 방향으로 진행시키기 때문이다.
『전통적 논리학의 그리스적 기초(Greek Foundations of Traditional Logicy)』
캅의 주장에 따르면 삼단논법의 순서는 우리의 사유 순서와 반대로 되어 있습니다. 살인 사건의 경우를 예로 들어볼까요? 만약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면, 사건을 담당하게 된 형사는 먼저 어디에서부터 수사를 시작할까요? 그는 아마 용의자를 찾으려고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는 살인범일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먼저 지목해본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용의자 A가 발견됩니다. 이제 이 담당 형사의 수사 방향은 다음과 같은 식으로 진행될 것입니다. ‘A가 살인 사건의 범인이다. 그렇다면 그가 범인이란 증거는 무엇인가?’ 이처럼 살인 사건을 해결하려는 형사도 삼단논법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어떤 주장을 먼저 내세우고 이어서 그 주장의 근거를 찾는다고 말할 수 있지요. 만약 특정한 사람을 용의자로 먼저 지목하지 않는다면, 그 형사는 어떻게 살인 사건을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용의자가 없어도 수사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모든 사람을 용의자로 가정한다면 아마 수사는 매우 오랫동안 더디게 진행될 것이고, 십중팔구는 영구히 미제 사건으로 남을 수밖에 없겠지요.
그렇다면 이제 이 삼단논법이란 것이 허구적이거나 완전히 관념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인상을 받았을 겁니다. 특히 삼단논법에서 중요한 것은 논증이 구성되는 순서, 즉 ‘대전제 → 소전제 → 결론’이라는 순서가 우리가 생각하는 순서와는 반대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는 어떤 무엇인가를 주장해야 합니다. 만약 누군가가 이 주장에 반론을 제기한다면, 오직 그 경우에만 우리의 사유는 대전제와 소전제로 이동하게 됩니다. 그러나 과연 우리의 사유는 대전제와 소전제에서 완전히 멈추게 될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죽는다’는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서, 우리는 ‘모든 사람은 죽는다’와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라는 전제를 내놓았습니다. 이때 상대방이 이새로운 전제를 받아들인다면, 우리의 사유는 멈출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상대방이 이 전제마저 계속 의심한다면 그땐 어떻게 될까요? 다시 말해 상대방은 우리가 하나의 근거로 제시한 ‘모든 사람은 죽는다’라는 주장마저도 의심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되면 우리는 다시 그를 설득하기 위한 또 다른 전제를 생각해내야만 합니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주장을 의심하는 상대방을 설득하겠다는 의지를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말이지요.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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