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란 무엇인가?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이성이란 ‘어떤 주장에 대해 이유나 근거를 댈 수 있는 능력’을 의미했습니다. 우리는 그의 정의를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누구에게 자신의 주장이나 근거를 제시하는가?’라는 문제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나 레셔라면 그 ‘누구’를 자신과 함께 살고 있는 공동체의 구성원, 즉 ‘우리’라는 이름에 속한 사람들이라고 보겠지요. 그렇다면 이제 그들에게 철학이란, 공동체의 삶의 규칙, 즉 일반성의 원리를 수용하는 한에서만 가능한 것이 될 겁니다. 따라서 그들은 주어진 삶의 규칙에 입각해 어떤 주장을 정당화하고 설득하는 논쟁의 기술 정도를 철학이라고 부르겠지요. 그러나 그들은 이성을 ‘공동체가 인정할 만한 주장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찾는 능력’이라고 너무 좁게 정의 내린 것은 아닐까요? 바로 이런 문제점을 숙고하다보면, 우리는 니체라는 천재적인 인물과 다시 만나게 됩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협소한 이성 개념을 근본적으로 확장시켰습니다. 니체에 따르면 참된 철학자의 주장과 근거는, 자신이 살고 있는 협소한 세계의 거주민들을 넘어서서 아직 도래하지 않은 더 넓은 세계의 시민들을 향해 제시되는 것입니다.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철학자 중 한 명이라고 할 수 있는 들뢰즈 역시 이 점에서 니체의 충실한 후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는 스스로 ‘참된 철학자’가 되어 참된 철학을 하기로 마음먹습니다. 들뢰즈를 통해서 우리는 철학에 대한 니체의 통찰력을 보다 더 심화시킬 수 있습니다.
니체를 따라 우리는 반시대성을 시간과 영원보다 훨씬 더 심오한 것으로 발견하게 된다. 즉 철학은 역사의 철학도 영원성의 철학도 아니다. 철학은 반시대적이며, 언제나 그리고 오로지 반시대적일 뿐이다. 다시 말해서 ‘내가 바라는 것은 이 시대에 반하는, 도래할 시대를 위한’ 철학이다. 새뮤엘 버틀러를 따라 우리는 에레혼(Erewhon)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원초적인 ‘부재의 장소‘를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은 위치를 바꾸고 위장하며 양상을 달리하고 언제나 새롭게 재창조되는 ‘지금-여기(now-here)’라는 것을 동시에 의미한다.
『차이와 반복(Différence et Répétition)』
예술의 나라 프랑스의 지성인이라서 그런지 들뢰즈는 풍부한 교양, 그리고 강렬하면서도 함축적인 문체로 악명이 높습니다. 그를 공부하려는 전문 철학자들이 지적인 자괴감을 겪거나 아니면 치명적인 오독을 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바로 그 때문이지요.
방금 읽은 구절을 꼼꼼하게 분석하기에 앞서, 여러분에게 하나의 사례를 통해 이 문제를 명료화해 보이는 것이 좋겠습니다.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정도로 비만한 여성이 있다고 해봅시다. 지금 그녀는 건강하고 날씬한 몸매를 꿈꾸며 열심히 운동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녀에게 있어서 비만함이 현재라면, 날씬함은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친구들은 날씬해지려는 그녀의 노력을 비웃습니다. 그녀의 엄청난 비만함은 결코 바뀔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자, 그럼 이제 문제의 상황에 좀 더 접근해봅시다. 들뢰즈는 ‘반시대성’이 ‘시간’과 ‘영원’보다 더 심오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반시대성’이 ‘시간’보다 심오한 이유를 먼저 설명하는 것이 순서이겠지요. 앞에서 살펴보았던 비만한 여성의 삶과 비교해봅시다. ‘시간’이란 특정한 시기, 즉 이 경우는 ‘그녀가 비만했던 때’를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이곳에서 니체의 반시대성이란, 그녀의 비만함이 단지 특정한 시간에만 가능했던 제한적인 것임을 폭로하고, 그녀가 날씬해질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됩니다. 그녀는 ‘날씬함’을 지향하고 그것을 실현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자신이 비만했던 ‘시간’을 이제 과거로 만들어버릴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자신의 비만함을 당당하게 거부함으로써 비만했던 때를 지나간 ‘과거’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지요. 이와 유사하게 들뢰즈는 ‘반시대성’이 ‘시간’보다 더 심오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반시대성으로 인해 오히려 과거와 현재라는 시간이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이제 들뢰즈가 왜 ‘반시대성’이 ‘영원’보다 심오하다고 말했는지 살펴볼 차례입니다. 반시대성은 기본적으로 특정한 시간을 극복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비만한 여성이 결국 날씬해지는 것처럼 말이지요. 이 사례에 비유해본다면, ‘영원’이란 것은 두 가지 경우로 나누어 설명될 수 있습니다. 하나는 그녀의 비만함이 변화 없이 영원히 지속되리라는 믿음이고, 다른 하나는 날씬함이 불변하고 영원한 것이라고 보는 믿음입니다. 후자는 비록 그녀가 지금은 비만하지만, 그녀의 본성은 사실 날씬함이었다고 말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보면 현재 그녀의 비만함은 일시적인 것이거나 우연적인 현상에 불과한 것이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비만함을 영원으로 보는 것, 혹은 날씬함을 영원으로 보는 것 등은 모두 반시대성을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비만해진 몸을 날씬하게 만들려는 그녀의 노력이 아닐까요? 이런 노력은 그녀가 반시대적 정신을 가졌기 때문에 가능해진 것입니다. 그녀는 비만함을 극복되어야 할 하나의 문제로 보았던 것입니다.
반시대적인 철학은 끝없는 운동과 생성을 긍정하는 철학입니다. 생성이란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생성되기 이전의 상태나 생성된 뒤의 상태가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생성되기 이전의 상태와 생성된 뒤의 상태를 영원한 것이라고 본다면, 철학은 운동을 멈추고 하나의 종교가 되고 말 것입니다. 따라서 영원이 대두되는 순간 반시대성은 의미를 상실할 수밖에 없겠지요. 들뢰즈는 반시대성이라는 니체의 심오한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서 무척이나 공을 들입니다. ‘반시대성’ 이란 개념은 철학의 힘을 상징할 뿐만 아니라, 참된 철학과 거짓된 철학을 구별하는 진정한 잣대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그는 『에레혼(Erewhon)』이라는 풍자소설로 유명한 영국 소설가, 새뮤엘 버틀러(Samuel Butler, 1835~1902)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에레혼Erewhon 이란 단어는 버틀러가 만든 조어입니다. 이 단어를 거꾸로 표기하면 ‘노웨어(nowhere)’, 즉 ‘어디에도 없다’는 뜻이 됩니다. 들뢰즈가 버틀러의 에레혼이란 개념을 좋아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가 생각했을 때 철학은 ‘nowhere’라는 글자가 함축하는 복잡한 뉘앙스를 가지고 있는 것이니까요. 여러분도 어디선가 들어보았겠지만, ‘nowhere’라는 표현은 ‘no-where’이지만 동시에 ‘now-here’이기도 합니다. ‘no-where’라는 것은 반시대적 철학이 아직 공동체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기에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반면 ‘now-here’라는 것은 반시대적 철학이 ‘지금 바로 이곳’을 문제 삼고 넘어서려 한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버틀러의 에레혼 개념 때문에 우리는 들뢰즈의 난해한 지적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참된 철학은 항상 반시대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것은 철학이 ‘now-here’와 ‘no-where’라는 두 측면을 항상 동시에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자는 철학의 비판적 힘을, 후자는 철학의 상상력의 힘을 나타낸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비판은 우리 현실이 어떻게 정당화되는지, 그리고 그 정당화의 방식이 옳은지의 여부를 숙고하는 작용입니다. 반면 상상력은 그것을 통해 다른 현실, 다른 ‘now-here’를 꿈꾸는 것입니다. 앞서 들었던 비유를 다시 생각해 볼까요? 비판이란 비만한 사람이 왜 비만해졌는지를 진단하는 것을 가리키고, 상상력이란 그 사람이 비만한 상태를 넘어섰을 때의 모습을 꿈꾸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상상력과 비판의 두 측면은 반시대적 철학의 두 얼굴입니다. 그래서 이중 어느 하나가 없다면 다른 하나도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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