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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철학 삶을 만나다, 제1부 철학적 사유의 비밀 - 2장 철학적 사유와 인문학적 경험, 철학이란 무엇인가?②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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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삶을 만나다, 제1부 철학적 사유의 비밀 - 2장 철학적 사유와 인문학적 경험, 철학이란 무엇인가?②

건방진방랑자 2021. 6. 29. 0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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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란 무엇인가?

 

 

, 그럼 이제 문제의 상황에 좀 더 접근해봅시다. 들뢰즈는 반시대성시간영원보다 더 심오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반시대성시간보다 심오한 이유를 먼저 설명하는 것이 순서이겠지요. 앞에서 살펴보았던 비만한 여성의 삶과 비교해봅시다. ‘시간이란 특정한 시기, 즉 이 경우는 그녀가 비만했던 때를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이곳에서 니체의 반시대성이란, 그녀의 비만함이 단지 특정한 시간에만 가능했던 제한적인 것임을 폭로하고, 그녀가 날씬해질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됩니다. 그녀는 날씬함을 지향하고 그것을 실현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자신이 비만했던 시간을 이제 과거로 만들어버릴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자신의 비만함을 당당하게 거부함으로써 비만했던 때를 지나간 과거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지요. 이와 유사하게 들뢰즈는 반시대성시간보다 더 심오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반시대성으로 인해 오히려 과거와 현재라는 시간이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이제 들뢰즈가 왜 반시대성영원보다 심오하다고 말했는지 살펴볼 차례입니다. 반시대성은 기본적으로 특정한 시간을 극복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비만한 여성이 결국 날씬해지는 것처럼 말이지요. 이 사례에 비유해본다면, ‘영원이란 것은 두 가지 경우로 나누어 설명될 수 있습니다. 하나는 그녀의 비만함이 변화 없이 영원히 지속되리라는 믿음이고, 다른 하나는 날씬함이 불변하고 영원한 것이라고 보는 믿음입니다. 후자는 비록 그녀가 지금은 비만하지만, 그녀의 본성은 사실 날씬함이었다고 말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보면 현재 그녀의 비만함은 일시적인 것이거나 우연적인 현상에 불과한 것이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비만함을 영원으로 보는 것, 혹은 날씬함을 영원으로 보는 것 등은 모두 반시대성을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비만해진 몸을 날씬하게 만들려는 그녀의 노력이 아닐까요? 이런 노력은 그녀가 반시대적 정신을 가졌기 때문에 가능해진 것입니다. 그녀는 비만함을 극복되어야 할 하나의 문제로 보았던 것입니다.

 

반시대적인 철학은 끝없는 운동과 생성을 긍정하는 철학입니다. 생성이란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생성되기 이전의 상태나 생성된 뒤의 상태가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생성되기 이전의 상태와 생성된 뒤의 상태를 영원한 것이라고 본다면, 철학은 운동을 멈추고 하나의 종교가 되고 말 것입니다. 따라서 영원이 대두되는 순간 반시대성은 의미를 상실할 수밖에 없겠지요. 들뢰즈는 반시대성이라는 니체의 심오한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서 무척이나 공을 들입니다. ‘반시대성이란 개념은 철학의 힘을 상징할 뿐만 아니라, 참된 철학과 거짓된 철학을 구별하는 진정한 잣대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그는 에레혼(Erewhon)이라는 풍자소설로 유명한 영국 소설가, 새뮤엘 버틀러(Samuel Butler, 1835~1902)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에레혼Erewhon 이란 단어는 버틀러가 만든 조어입니다. 이 단어를 거꾸로 표기하면 노웨어(nowhere)’, 어디에도 없다는 뜻이 됩니다. 들뢰즈가 버틀러의 에레혼이란 개념을 좋아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가 생각했을 때 철학은 ‘nowhere’라는 글자가 함축하는 복잡한 뉘앙스를 가지고 있는 것이니까요. 여러분도 어디선가 들어보았겠지만, ‘nowhere’라는 표현은 ‘no-where’이지만 동시에 ‘now-here’이기도 합니다. ‘no-where’라는 것은 반시대적 철학이 아직 공동체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기에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반면 ‘now-here’라는 것은 반시대적 철학이 지금 바로 이곳을 문제 삼고 넘어서려 한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버틀러의 에레혼 개념 때문에 우리는 들뢰즈의 난해한 지적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참된 철학은 항상 반시대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것은 철학이 ‘now-here’‘no-where’라는 두 측면을 항상 동시에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자는 철학의 비판적 힘을, 후자는 철학의 상상력의 힘을 나타낸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비판은 우리 현실이 어떻게 정당화되는지, 그리고 그 정당화의 방식이 옳은지의 여부를 숙고하는 작용입니다. 반면 상상력은 그것을 통해 다른 현실, 다른 ‘now-here’를 꿈꾸는 것입니다. 앞서 들었던 비유를 다시 생각해 볼까요? 비판이란 비만한 사람이 왜 비만해졌는지를 진단하는 것을 가리키고, 상상력이란 그 사람이 비만한 상태를 넘어섰을 때의 모습을 꿈꾸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상상력과 비판의 두 측면은 반시대적 철학의 두 얼굴입니다. 그래서 이중 어느 하나가 없다면 다른 하나도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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