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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3부 ‘천의 고원’을 가로지르는 유쾌한 노마드 - 3장 ‘천 개의 얼굴 천 개의 목소리’, 분출하는 은유 본문

문집/열하일기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3부 ‘천의 고원’을 가로지르는 유쾌한 노마드 - 3장 ‘천 개의 얼굴 천 개의 목소리’, 분출하는 은유

건방진방랑자 2021. 7. 9.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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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천 개의 얼굴 천 개의 목소리

 

 

분출하는 은유

 

 

열하일기곳곳에는 이국의 풍광과 정취가 매혹적으로 그려져 있다. 거대한 스케일과 무시로 변화하는 중원의 대자연을 포착하기 위해 그는 환상의 은유, 공감각, 돌연한 비약 등 화려한 수사학을 구사한다. “황대경씨의 글이 사모관대(紗帽冠帶)를 하고 패옥(佩玉)을 한 채 길가에 엎어진 시체와 같다면, 내 글은 비록 누더기를 걸쳤다 할지라도 앉아서 아침 해를 쬐고 있는 저 살아 있는 사람과 같다고 자부했던 바대로, 그는 풀잎과 새의 울음, 별과 달의 움직임까지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기꺼이 언어의 연금술사가 된다. 그 이미지들은 때론 화려한 스펙터클로, 때론 그윽한 서정으로, 때론 공포의 어조로 변주되면서 은유와 환유의 퍼레이드를 펼친다.

 

먼저 그는 해가 뜨고 지는 순간 만들어지는 빛의 미세하고도 미묘한 변화를 정밀하게 감지한다. 주로 새벽에 떠나고 달빛을 타고 움직이는 습관 때문에 일출이나 월출의 변화를 생생하게 포착할 수 있었던 것이리라. “서쪽 하늘가에 짙은 안개가 문득 트이며 한 조각 파아란 하늘이 사풋이 나타난다. 영롱하게 구멍으로 비치는 것이 마치 작은 창에 끼어 놓은 유리알 같다. 잠시 울 안에 안개는 모두 아롱진 구름으로 화하여 그 무한한 광경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돌이켜 동쪽을 바라보니, 이글이글 타는 듯한 한 덩이 붉은 해가 벌써 세 발을 올라왔다.” 안개 속에 언뜻 보이는 한 조각 파아란 하늘, 안개바다, 이글거리는 붉은 해로 이어지는 빛의 변신술.

 

해뜨는 순간의 묘사는 다음에서 더 도드라진다.

 

 

달이 막 떨어지니 온 하늘에 총총한 별들이 깜박거리고 마을 닭들이 연이어 홰를 치기 시작한다. 몇 리 못 가 안개가 뿌옇게 내리자 큰 벌판이 삽시간에 수은 바다를 이루었다. 한 떼의 의주 장사꾼들이 서로 지껄이며 지나가는데, 그 소리가 너무도 몽롱하여 마치 꿈 속 같았다. 기이한 글을 낭송하는 듯 또렷하지 않아 사람 같아 보이지도 않았다.

月初落矣 滿天星顆互瞬 村鷄迭鳴 行不數里 白霧漫漫 大野浸成水銀海 一隊灣商相語而行 矇矓如夢中讀奇書 不甚了了 而靈幻則極矣

 

잠시 뒤, 하늘이 훤해지며 길에 늘어선 버드나무에서 매미가 일제히 울기 시작한다. 매미들이 저처럼 울부짖지 않아도 한낮의 더위가 몹시 뜨거운 줄 그 누군들 모르겠는가. 들에 가득했던 안개가 차츰 걷히자 먼 마을 사당 앞에 세워둔 깃발이 마치 돛대처럼 펄럭인다. 동쪽 하늘을 돌아보니 붉은빛 구름이 이글거리더니 한 개의 불덩이가 옥수수 밭 저편에 반쯤 잠기어 일렁거리고 있다. 차츰 솟아오르면서 요동벌 전체를 부드럽게 감싸 안는다. 땅 위의 오가는 말이며, 수레며, 나무며, 집이며, 털끝같이 보이는 것들이 모두 불덩이 속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성경잡지(盛京雜誌)

少焉 天色向曙 萬柳秋蟬 一時發響 非渠來報 已知午天酷炎矣 野霧漸收 遠村廟堂前 旗竿如帆檣 回看東天 火雲滃潏 盪出一輪紅日 半湧半沉於薥黍田中 遲遲冉冉 圓滿遼東 而野地上 去馬來車 靜樹止屋 森如秋毫 皆入火輪中矣

 

 

새벽 안개가 자욱한 풍경을 ‘수은 바다에 비유하는 것도 멋지거니와, 그 아련한 풍경 속에서 들려오는 장사꾼들의 몽롱한 지껄임도 자못 신비로운 무드를 자아낸다. 거기에 취해들 즈음, 돌연 매미의 울음소리로 장면을 전환한 뒤, 곧바로 한낮의 땡볕으로 이동한다. 그러면서 붉은 불덩이가 요동벌에 쫙 퍼지는 와이드 비전이 펼쳐진다. , 붉은 광야! 이렇게 이미지들의 각축을 따라가노라면, 마치 여러 시공간이 순식간에 겹쳐지는 듯한 착각에 빠질 지경이다.

 

 

 

 

인용

목차

열하일기

문체반정

박지원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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