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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숙 - 문체반정과 열하일기 정리 본문

역사&절기/한국사

고미숙 - 문체반정과 열하일기 정리

건방진방랑자 2019. 12. 15.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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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체반정과 열하일기 정리

 

고미숙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그린비, 2010, 109~145

 

 

 

1. 문체반정의 전개

 

 

1784- 정조, 명청 문집에 대한 회의를 시작하다

 

명나라와 청나라 이래의 문장은 많이 험하고 괴상하며 가시가 돋쳐 신랄함이 많아 나는 보고 싶지가 않다. 그런데 지금 사람은 명청인의 문집 보길 좋아하니, 어떠한 재미가 있는지 알지 못하겠다. 어찌 또한 문장의 맛이 있으나 내가 그것을 맛볼 수가 없는 건가?

明淸以來, 文章多險怪尖酸, 予不欲觀. 今人好看明淸人文集, 不知何所味也. 豈亦有味, 而予不能味之耶? -弘齋全書161

 

 

1. 정조의 눈에 소품체, 소설 등의 문체가 들어가 회의감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유행함.

 

2. ‘내가 그것을 맛볼 수가 없는 건가?’라는 말을 통해 아직은 공권력적인 개입은 하지 않겠다는 걸 알 수 있음.

 

 

1785- 추조적발사건 발생

 

1. 내용: 이승훈, 정약전, 정약용, 이벽 등 남인의 자제들이 김범우 집에 모여 천주교 교리를 토론하고 의식을 거행하다가 형조의 禁吏에게 적발됨.

 

2. 조처: 중국서적 수입을 제한함 - 천주교에 대한 화풀이를 명청문집에 한 것임.

 

 

1791- 조상의 신주 불태운 사건

 

1. 내용: 진산에 사는 윤지충과 권상연이 조상의 신위를 불사름.

 

2. 조처: 청나라에서 서적 수입금지, 과거 시험 문체의 대대적인 검열

 

 

반시(성균관 선비들에게 보이던 시험)의 시험 답안지에 하나라도 패관잡기에 관계되는 문장이 있으면 비록 답안지 가득 주옥같은 문장이라도 하고를 주고, 그 이름을 밝혀내어 과거를 보지 못하게 하고 너그러이 이해하려 해선 안 된다.

泮試試券, 若有一涉於稗官雜記者, 雖滿篇珠玉, 黜置下考, 仍坼其名而停擧, 無所容貸 - 정조실록161019일 갑신

 

 

1) 이옥과 남공철이 걸렸는데 이옥의 감수성은 난세번촉지성(亂世煩促之聲)’이었기에 사육문(四六文) 50수를 짓게 했고, 남공철은 정조의 스승 남유용의 아들임에도 반성하기 전까지 경연에 나오지 말라고 함.

2) 두 번째 희생은 이상황(李相璜)김조순(金祖淳)으로 1787년에 예문관에서 당송의 소설을 보다가 걸려 질책을 받은 것을 다시 지적하며 반성문을 써서 올리라고 함.

 

3. 성균관 유생들에게 내린 전교

1) 선비들이 모이는 곳에 죄과를 쓴 판자를 매달아 둘 것.

2) 심한 자는 북을 치며 성토하게 할 것.

3) 더 심한 자는 매를 치고 사실을 기록하여 괄목할 만한 실효가 있도록 할 것.

4) 위의 사항을 대과와 소과의 과거 규정에 기록해 둘 것.

 

4. 반발

1) 부교리 이동직(李東稷)이 상소를 올려 체제공(蔡濟恭)과 이가환(李家煥)과 같은 남인은 이단사설 문장을 좋아한다고 역공을 폄.

2) 정조는 이가환이 불쌍하게 자라서 그런 것이라 측근의 편을 들어주며 상소를 기각함.

 

 

1792- 완전한 청나라 서적 금지 방침

1. 패관잡기는 물론 경전과 역사서까지 수입금지함.

패관잡기: 경박한 문체로 기존의 가치관 붕괴. 육경학(六經學)을 정제된 자세로 읽어야 함.
중국판 경전: 종이가 얇고 글씨가 작아 누워서 보게 되어 학문하는 자세 파괴

 

 

 오홀~ 전동성당에 있었다니.. 윤지충과 권상연은 최초의 순교자였고 그 때문에 14년 8월 16일에 시복되었다.

 

 

 

2. 소품, 소설, 고증학을 읽고 써서는 안 된다

 

 

문체와 통치

 

1. 문체(文體): 한 시대가 지니는 사유체계 및 인식론이 표현형식으로 사유가 전개되는 초험적 장. 그렇기에 체제가 지식인을 길들이는 가장 첨단의 기제임.

 

2. 올바른 표현방식: 6(六經)의 문장과 사마천과 반고로 대표되는 선진양한의 문장과 한유와 소식 등 당송팔대가의 문장으로 드러낼 것.

 

 

 이 시기엔 문장의 전범이 정해져 있었다. 문은 진한의 문체를, 시는 당송의 시체를 따라서만 써야 했다.

 

 

소품, 소설, 고증학의 문제점

 

나는 일찍이 소품의 해로움이 사학보다 심하다라고 했었는데, 사람들은 그 말이 참임을 알지 못했다.

그랬는데 저번에 일이 있었던 것이다. 대개 사학은 막아야 하고 그걸 짓는 사람은 죽여야 한다는 것을 사람들은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소품이란 것은 처음엔 시문을 짓거나 서화를 그리고 붓과 벼루와 같은 비근한 것에 불과하여 나이가 어리고 견해가 천박하며 재주가 있는 이들은 일상적인 것을 싫어하고 새로운 것만을 좋아하여 서로 다투며 모방하여, 어느 순간에 음탕한 말과 사악한 얼굴빛으로 인심을 미혹시키게 되었다. 그래서 그 폐단은 성인이 그릇되고 경서는 헛되며 인륜은 어그러졌다고 하는 뜻에 이르게 될 뿐이다. 더욱이 소품의 일종인 명물(名物)훈고(訓詁)고증(考證)의 학문은 한 번 변하면 사학으로 들어가고야 만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사학을 제거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먼저 소품을 제거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予嘗言小品之害, 甚於邪學人未知其信然.

乃有向日事矣, 蓋邪學之可闢可誅, 人皆易見. 而所謂小品, 初不過文墨筆硯間事, 年少識淺薄有才藝者, 厭常喜新, 爭相摸倣, 駸駸然如淫聲邪色之蠱人心術.

其弊至於非聖反經蔑倫悖義而後已. 况小品一種, 卽名物考證之學, 一轉而入於邪學. 予故曰: “欲祛邪學, 宜先祛小品.” -홍재전서』「日得錄4

 

 

1. 소품(小品): 가볍고 참신하여 사람에게 금방 녹아들어 오히려 이데올로기를 전면에 내세운 사학보다 폐해가 심각함. 경박한 스타일

 

2. 소설(小說): 꾸며낸 이야기이기에 일고의 가치도 없음 허구성

 

3. 고증학(考證學): 드넓던 시야가 좁아져 경서의 비의를 간과하게 됨 공부의 방법론

 

4. 해결책: 우주의 역사에 대한 원대한 사유를 하고 중후한 격식을 갖춘 문장을 써야 한다.

 

 

 금병매와 같은 소설 작품이 한 시대를 풍미했다. 그 소설로 패가망신한 사람들도 있어, 이덕무 같은 소품체에 빠진 학자도 소설은 막으려 했었다.

 

 

3. 소품체란 무엇인가?

 

 

소품체가 들어오기 전의 조선 후기 문장 상황

 

我見世之人 譽人文章者 내가 보니 세상의 사람 중에 남의 문장을 기리는 이는,
文必擬兩漢 詩則盛唐也 문장은 반드시 문장은 반드시 양한을, 시는 성당을 본떠야 한다고 한다.
曰似已非眞 漢唐豈有且 비슷하단 것은 이미 참이 아니란 것이니, 한당이 어찌 또 있겠는가?
東俗喜例套 無怪其言野 조선의 풍속은 옛 투를 즐겨, 그 말이 촌스러운 데도 괴이하게 여기지 않는구나.
聽者都不覺 無人顔發赭
(下略)
듣는 이는 모두 깨닫지 못해, 얼굴이 붉어지는 이 없네. 증좌소산인(贈左蘇山人)
 

 

1. 문장은 양한(兩漢)의 사마천과 반고를, 시는 한유유종원을 본받아서 써야 한다는 풍조가 유행함.

2. 연암 역시 젊은 시기엔 이런 문체적 규범을 따라 세상 사람들의 칭찬을 받기도 했음.

3. 밀랍을 씹은 듯, 사모관대를 하고 죽은 시체 같은 듯 생기가 없었기 때문에 18세기 지식인들은 소품문을 대안으로 여김

 

 

소품문의 특징

 

1. 고문이 지닌 불필요한 긴 호흡을 한칼에 잘라 위압적인 무게를 해체해 버림.

2. 뛰어난 기지와 창발성이 받쳐 주어야 함.

3. 일상생활의 묘사, 감정의 발설, 소수적 존재를 드러냄.

4. 양명좌파의 영향을 짙게 받으므로 출현한 새로운 문체.

 

 

소품문 감상

 

1. 騷人韻士, 佳辰媚景, 詩肩聳山, 吟眸漾波. 牙頰生香, 口吻開花. 少有隱機, 大是缺典. -耳目口心書

2. 小孩兒窺鏡, 啞然而笑, 明知透底. 而然急看鏡背, 背黝矣. 又啞然而笑, 不問其何明何暗. 妙哉無礙, 堪爲師. -蟬橘堂濃笑

3. 螗琅自愛滚, 不羡驪龍之如意珠. 驪龍亦不以如意珠, 自矜驕而笑彼蜋丸. -蟬橘堂濃笑

 

 

정조가 소품을 금지한 이유

 

1. 문장이란 천상의 가치, 우주의 이치를 논하는 것으로, 이런 구질구질한 것들은 문장이 될 수 없다.

2. 소품의 유행으로 고문의 권위가 무너질 것에 대한 두려움.

3. 소품에 빠져들수록 섬세한 정감을 드러내게 하여 사람들에게 한없이 슬픔에 빠져들게 한다.

 

 

 

 

 

4. 연암체와 연암에 대한 숱한 오해

 

 

연암에게 글이란?

 

1. 고문파의 득세와 영향력 행세

1) 그 당시 고문파들은 환자들이 몸에 이로운 것을 꺼리 듯, 싱싱하게 살아서 움직이는 문장을 견디지 못했다.

2) 그런 고문파들이 기득권이 되어 영향력을 행세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문장이 그런 형식에 갇히게 됨.

 

不痛不癢, 句節汗漫, 優游不斷, 將焉用哉 -過庭錄4 3

 

文章也, 常以爲文無古無今, 不必模楷韓, 步趣馬, 矜壯自大. 低視今人也, 惟自爲吾文而已. 擧耳目之所睹聞, 而無不能曲盡其形聲, 畢究其情狀, 則文之道極也. -過庭錄4 1

 

연암을 좋아한다는 이들도 또한 그 제대로 본 건 아닙니다. 하찮은 것들을 주워 보물처럼 여겼고 우언과 웃긴 말들을 성대하게 전파하였기 때문에 이에 연암을 공격하는 이들이 더욱 많아졌습니다. 우언은 궤변으로 임기응변으로 세상을 농락한 것이고, 웃긴 말들은 실정이 아니며, 그저 공손치 못하게 희롱하는 정도입니다. 연암을 안다는 이들이나, 연암을 모른다는 이들이나 다 속마음 모르기는 한 가지였습니다.

彼好公者, 亦非其眞, 咳唾之棄, 拾以爲珍, 寓言諧笑, 盛爲播傳. 於是刺公, 益得機鋒. 寓言則詭, 捭闔牢籠, 諧笑非情, 狎玩不恭. 知我罪我, 皆莫能衷 - 이재성의 연암제문, 過庭錄1

 

 

2. 연암의 문장관

1) 연암은 소품에 능했고, 촌철살인을 즐겨 구사했다.

2) 하지만 그에게 중요한 건 그런 형식이 아니라,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을 얼마나 곡진하게, 얼마나 생의 약동하는 기운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느냐였다.

 

 

유한준과의 악연

 

1. 유한준은 소싯적부터 고문을 본뜬 글로 선배들에게 칭찬을 받았기에, 연암에게도 보여줌.

2. 연암은 문장은 참 기이하군요. 그러나 사물의 명칭에 차용어가 많고 인용한 글들이 적실하지 못하니 이것이 옥의 티인가 합니다. 만일 모든 왕조의 도읍지를 다 장안(長安)이라 부르거나 역대 삼공(三公)들을 죄다 승상이라 일컫는다면, 이름과 실상이 뒤죽박죽이 되어 도리어 비루하고 추하게 될 것이외다.”라고 하면서 못생긴 여인이 서시(西施) 흉내를 내어 얼굴을 찡그리는 것이라 평가했다.

3. 유한준은 연암의 신랄한 평가에 깊은 한을 품고 연암에 대한 비방을 일삼았고, 훗날 연암 부친의 묘를 둘러싼 산송(山訟)까지 일으킴.

 

 

연암체(燕巖體)

 

1. 이덕무가 지은 왜적에 대한 방비를 논함[備倭論]이란 글을 보고 정조는 모두 원만하고 좋다.”라고 평한 뒤에, “연암의 문체를 본떴다.”라고 말함.

2. 초정집서(楚亭集序)소단적치인(騷壇赤幟引)이란 글을 보면 소설과 소품, 고문과 변려문을 섞어 자유분방하게 글을 진행시키고 있음.

 

 

 실학 박물관에 있는 연암의 초상. 

 

 

 

5. 문제작 열하일기

 

열하일기의 탄생

 

1. 삼종형 박명원(朴明源)1780년 청나라 건륭제의 만수절(萬壽節) 사절로 북경에 갈 때 따라가서 지은 여행기.

2. 연행(燕行)에서 돌아와 3년 여에 걸쳐 퇴고함.

 

 

 원랜 북경까지 가는 일정이었지만, 북경에 도착했을 때 황제는 열하에 있어 그곳까지 가게 되었다.

 

 

열하일기가 일으킨 파란

 

1. 열하일기를 본 친구들에 의해 불온서적으로 여겨져 태워질 뻔함.

 

 

嘗從燕巖朴美仲, 會山如碧梧桐亭館, 靑莊李懋官貞蕤朴次修皆在.

時夜月明, 燕巖曼聲讀其所自著熱河記, 懋官次修環坐聽之. 山如謂燕巖曰: “先生文章雖工好, 稗官奇書, 恐自此古文不興.” 燕巖醉曰: “汝何知?” 復讀如故. 山如時亦醉, 欲執座傍燭焚其藁. 余急挽而止, 燕巖怒, 遂回身臥不起.

於是懋官畵蜘蛛一幅, 次修就屛風草書, 飮中八仙歌, 紙立盡. 余稱書畵極玅, ‘燕巖宜有一跋爲三絶’, 欲以解其意, 而燕巖愈怒愈不起.

天且曙, 燕巖旣醒, 忽整衣跪坐曰: “山如來前. 吾窮於世久矣, 欲借文章, 一瀉出傀儡不平之氣, 恣其游戲爾. 豈樂爲哉? 山如元平, 俱少年美姿質, 爲文愼勿學吾, 以興起正學爲己任. 爲他日王朝黼黻之臣也. 吾當爲諸君受罰引一酌復飮, 又勸懋官次修飮, 遂大醉懽呼. -남공철, 朴山如墓誌銘

 

1) 주변의 친구들조차 패관기서로 인식될 정도로 문제작이었음.

2) 연암은 글을 쓸 적에 삼가 나를 배우지 말고 정학을 흥기함으로 자기의 임무로 삼아라.”라며 그런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음.

 

2. 이후에 여러 사람에게 읽히며 오랑캐 연호를 썼다.’, ‘우스갯소리로 세상을 유희했다.’ 등등의 비평을 하며 한바탕 파란을 일으킴.

 

 

 이들은 북학파이기도 하고, 백탑시파로 활동하기도 했다.

 

 

 

6. 문체반정의 결말과 열하일기간행 문제

 

 

정조, 열하일기를 문체파괴의 주범으로 지목하다

 

 

어제 경연 중에 천신에게 하교하시며 말씀하시었다. 최근 문풍이 이렇게 어지러워진 것이 이와 같으니, 그 근원을 캐어 들어가면 박지원의 죄가 아닌 게 없다. 열하일기를 내가 이미 깊이 읽어보았으니, 어찌 속이고 숨길 수 있겠느냐? 이것이야말로 법망을 피해나간 것의 큰 것이다. 열하일기가 세상에 간행된 후에 문체가 이와 같이 되었으니, 스스로 마땅히 이런 일을 벌인 자가 그것을 풀게 해야 한다.”

천신에게 이런 뜻으로 집사에게 편지를 쓰도록 하고 속히 한 부의 순정한 문장을 지어 곧바로 올려 보냄으로 열하일기의 죗값을 속죄하게 한다면, 비록 음직의 벼슬을 내린다 해도 어찌 아까울 게 있겠느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중한 죗값을 치르리라.”라고 명하시었고, 이로써 곧바로 편지를 보내라고 하교하시었다.

昨日筵中下敎于賤臣曰: “近日文風之如此, 原其本則莫非朴某之罪也. 熱河日記, 予旣熟覽焉, 敢欺隱此? 是漏網之大者. 熱河記行于世後, 文軆如此, 自當使結者解之.”

仍 命賤臣, 以此意作書. 執事, “斯速著一部純正之文, 卽卽上送, 以贖熱河記之罪, 則雖南行文任, 豈有可惜者乎? 不然則當有重罪.” 以此卽爲貽書事, 下敎矣. -燕巖集2, 答南直閣公轍書

 

 

1. 정조조차 열하일기를 지목하며 문제작이기에 순수한 글을 한 편 지어 올리라고 남공철에게 명함.

 

2. 이미 열하일기가 세상에 나온 지 10년이나 지나 찬사와 저주를 받았던 상황인데 조처가 매우 늦은 감이 있음.

 

3. 정조의 분부에 대한 연암의 반응

1) “중년 이래로 불우하고 영락하여 스스로 자중하지 못하고 글로 유희를 삼아 때때로 궁한 처지에서 나오는 근심과 게으르고 나태하여 원고를 챙기고 단속하는 일을 제대로 못한 탓에 자신과 남까지 그르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고 서두를 꺼내며, “문풍이 이 때문에 진작되지 못한다면, 자신은 문단에서 사라져야 할 존재라고 소회함.

2) 하지만 반성문 하나 제출하지 않고 어떻게든 잘 빠져나갔음.

 

4. 하지만 기어코 정조는 이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으며 1797년에 연암이 면천군수로 임명되어 정조를 알현하자 내 지난번에 문제를 고치라고 했는데 과연 고쳤느냐?”라고 말하며, 서이방익사(書李邦翼事)를 순정문체(醇正文體)로 짓게 만듦.

 

 

불온서 열하일기를 간행하라

 

1. 연암의 손자 박규수(朴珪壽)가 우의정까지 했음에도 조부의 문집을 간행할 엄두조차 내지 못함.

2. 마침내 1900년에 김택영(金澤榮)의 주도로 연암집이 간행되었고, 그 다음해에 연암속집이 간행됨. 하지만 전()이나 도강록(渡江錄)몇 편은 패관소설체로 인식되어 누락시켜 버렸다.

3. 1911년에 최남선이 고전 보급을 목적으로 만든 조선광문회에서 온전한 열하일기가 발행되었으니, 연암 사후 106년 만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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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한국사 / 비슷한 것은 가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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