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세계와의 만남
이때만 해도 그렇다. 황제의 70세 잔치인 천추절 당일날 황제가 있는 곳까지 부르는 바람에 엄청난 규모의 진공(進貢)행렬을 목격하게 된 것이다. 연암이 보기에, 세계 곳곳에서 당도한 수레가 만 대는 될 듯하다. 사람은 지고, 약대는 신고, 가마에 태우고 가는데, 마치 형세가 풍우와 같았다. 거대한 바람이 움직이는 듯한 진공대열에서 연암의 눈을 사로잡은 건 억센 쇠사슬로 목을 맨 범과 표범, 그리고 길들인 사슴, 크기가 말만 하고 정강이는 학처럼 우뚝 선 악라사(鄂羅斯, 러시아의 옛이름) 개, 모양은 약대 같고 키가 서너댓 자나 되는데 하루 300리를 간다는 타계 등 기이한 금수(禽獸)들이었다.
반양(盤羊)이라는 동물도 신기하기 짝이 없다. 사슴의 몸에 가는 꼬리가 있으며, 두 뿔이 구부러졌고, 등에는 겹친 무늬가 있다. 밤이면 뿔을 나뭇가지에 걸고 자며, 떼지어 다니므로 티끌과 이슬이 서로 엉기어 뿔 위에 풀이 나기도 한다. 몽고에서 황제에게 바쳤는데 황제가 다시 판첸라마에게 공양했다고 한다.
『산해경』 혹은 『걸리버 여행기』에나 나옴직한 기이한 동물들은 그 뒤에도 자주 등장한다. 황제는 축하공연 중의 하나인 연극을 직접 관람할 기회도 주었는데, 그때 크기가 겨우 두 자에 몸빛은 황백색으로 갈기머리를 땅에 솔솔 끌면서 울고 뛰고 달리는 말을 보기도 한다. 또 행재소 문 밖에서 여관으로 돌아오다 보게 된 태평차(太平車)에서는 귀부인처럼 짙은 화장을 하고 옷을 차려입은 원숭이를, 강바닥에선 비둘기보다 작고 메추리보다는 큰데, 사람의 말을 다 알아들어 갖은 재주를 부리는 납최조(蠟嘴鳥)라는 새를 목격하기도 한다.
코끼리 또한 연암에게는 진기한 동물 중 하나였다.
만일 진기하고 괴이하며 대단하고 어마어마한 것을 볼 요량이면 먼저 선무문 안으로 가서 상방(象房)을 구경하면 될 것이다. (중략)
將爲怪特譎詭恢奇鉅偉之觀, 先之宣武門內, 觀于象房可也. (中略)
소의 몸뚱이에 나귀의 꼬리, 낙타의 무릎에 호랑이의 발, 짧은 털, 회색 빛깔, 어진 모습, 슬픈 소리를 가졌다. 귀는 구름을 드리운 듯하고, 눈은 초승달 같으며, 두 개의 어금니 크기는 두 아름이나 되고 키는 1장 남짓이나 되었다. 코는 어금니보다 길어서 자벌레처럼 구부렸다 폈다 하며 굼벵이처럼 구부러지기도 한다. 코끝은 누에의 끝부분처럼 생겼는데 거기에 족집게처럼 물건을 끼워서 둘둘 말아 입에 집어넣는다. 「상기(象記)」
牛身驢尾, 駝膝虎蹄. 淺毛灰色, 仁形悲聲, 耳若垂雲, 眼如初月. 兩牙之大二圍, 其長丈餘, 鼻長於牙, 屈伸如蠖, 卷曲如蠐. 其端如蠶尾, 挾物如鑷, 卷而納之口.
지금 우리에게 코끼리는 낯익은 존재지만, 연암에게는 생김새 하나하나가 진기하기 짝이 없었던 모양이다. 크기와 생김새를 갖가지 동물에 비유하는 어조가 아이처럼 천진난만하다. 「상기(象記)」라는 『열하일기』가 자랑하는 명문은 바로 코끼리에 대한 상상이다(그가 코끼리를 보고 무슨 상상을 했는지는 5부에서 구체적으로 펼쳐진다). 이렇듯 연암에게 열하는 가장 먼저 진기한 ‘동물의 왕국’으로 다가왔다.
물론 거기 몰려든 인간 군상들 역시 동물들 못지않게 기이하고, 다채로웠다. 그들에 대한 연암의 기록도 흥미롭다. 중앙아시아 근동의 회회교를 믿는 회회국(回回國) 사람들에 대해서는 “얼굴이 사납고, 코가 크며, 눈은 푸르고, 머리와 수염이 억세”다고 적었다. 그런가 하면,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몽고왕에 대해선 “몸을 부들부들 떨며 체 머리를 흔드는 것이 아무 보잘것이 없어 마치 장차 거꾸러지려는 썩은 나무등걸 같”다고 했다. 그밖에도 아라사, 류큐, 위구르 등 청나라를 둘러싼 주변 이민족의 왕족들이 곳곳에서 출현한다. 그들을 바라보는 연암의 시선은 꽤나 복합적이다. 진지한가 하면 장난스럽고, 깔보는 듯하면서도 예리한 통찰을 잊지 않는다. 연암의 두뇌로도 종잡기 어려울 만큼, 그들은 낯선 세계에서 온 ‘외계인’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고북구(古北口)를 지날 때는 진짜 괴상한 종족을 만나기도 한다. 그 종족은 대부분의 여인네가 목에 혹을 달고 있다. 큰 것은 거의 뒤웅박 정도의 사이즈인데, 더러는 서넛이 주렁주렁 달린 이도 있다. 말하자면, 전설의 고향에서나 나옴직한 ‘혹부리 종족’이 실제로 있었던 것이다. 연암에겐 왜 저토록 큰 혹이 달렸는지, 또 어째서 여인네들한테만 혹이 있는지 신기하기 그지 없다.
물론 연암을 비롯한 조선 사행단에게 있어 가장 ‘쇼킹’한 것은 바로 서번, 즉 티베트와의 마주침이다. 이것은 그저 호기심을 자극하는 정도가 아니라, 낯선 우주와의 충돌에 비유할 정도로 충격적인 것이었다. 더구나 그것은 그저 스쳐지나간 것이 아니라, 이 여행기 전체에 깊은 흔적을 남기게 된다. 연암이 그것과 접속하기 위해 얼마나 치열한 노력을 기울였는지는 앞에서 이미 말한 바 있다.
이렇듯 열하는 ‘천신만고’를 보상해주기라도 하듯, 온갖 퍼레이드를 펼쳐 보였다. 그리고 연암은 이 이질성의 도가니를 종횡무진 누비고 다녔다. 마치 물을 만난 고기처럼.
▲ 위구르족
열하로 가는 길목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장면이다. 위구르족은 중국에 의해 탄압 받고 있는 소수민족 중의 하나고, 노새는 자동차의 홍수 속에서도 가난한 농민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되는 이동수단이다. 둘 다 이질적이고 소수적인 존재라는 점에서 상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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