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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4부 범람하는 유머 열정의 패러독스, 1장 유머는 나의 생명!, 포복절도(抱腹絶倒)②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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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4부 범람하는 유머 열정의 패러독스, 1장 유머는 나의 생명!, 포복절도(抱腹絶倒)②

건방진방랑자 2021. 7. 10.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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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복절도(抱腹絶倒)

 

 

그런 예인적천재성은 필담을 할 때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먹어치우고, 태우고, 찢어버리는 등 금기의 벽에 도전하는 팽팽한 긴장 속에서도 연암은 긴장을 이완시키고, 화제를 전환하기 위해 끊임없이 유머를 구사한다.

 

 

작은 국자로 국물을 뜨기만 했다. 국자는 숟가락과 비슷하면서 자루가 없어서 술잔 같았다. 또 발이 없어서 모양은 연꽃잎 한 쪽과 흡사했다. 나는 국자를 잡아 밥을 퍼보았지만 그 밑이 깊어서 먹을 수가 없기에 학성에게 이렇게 말했다. “빨리 월나라 왕을 불러오시오.” “그게 무슨 소립니까?” “월왕의 생김새가 긴 목에, 입은 까마귀 부리처럼 길었다더군요.” 내 말을 들은 학성은 왕민호의 팔을 잡고 정신없이 웃어댄다. 웃느라 입에 들었던 밥알을 튕겨내면서 재채기를 수없이 해댄다.

時用小勺 斟羹而已 勺如匙而無柄 如爵而無足 形類蓮花一瓣 余持勺試一舀飯 深不可餂 余不覺失笑曰 忙招越王來 志亭問何爲 余曰 越王爲人長頸烏喙 志亭扶鵠汀臂 噴飯嚔嗽無數

 

간신히 웃음을 그친 다음, 이렇게 물었다. “귀국에서는 밥을 뜰 때에 뭘 씁니까?” “숟가락을 씁니다.” “모양은 어떻게 생겼나요?” “작은 가지 잎과 비슷합니다.” 나는 식탁 위에 숟가락 모양을 그려주었다. 그러자, 두 사람은 더더욱 허리가 부러져라 웃어 제낀다. 곡정필담(鵠汀筆談)

志亭問貴俗抄飯用何物 余曰 匙 志亭曰 其形如何 余曰 類小茄葉 因畵示卓面 兩人尤爲絶倒

 

 

국자와 숟가락 따위를 가지고 이렇게 즐거워하다니. 마치 사춘기 여고생들 같지 않은가? 이 정도가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기 위한 윤활유 수준이라면, 다음은 다소 무겁고 중후한 경우에 속한다.

 

 

윤공은 피곤을 못 이겨 때때로 졸다가 머리를 병풍에 부딪치곤 하였다. (중략) “저 또한 평소 저만의 독특한 견해를 가지고 있지만, 감히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해본 적이 없습니다. 혹시나 천하 사람들이 놀라고 괴이하게 여길까 두렵기 때문이지요. 그래서인지 무언가 탯덩이처럼 가슴속에 쌓여 통 내려가질 않는답니다. 특히 겨울과 여름철이 되면 더욱 괴롭기가 그지없어요. 선생의 기이한 이론도 그런 답답한 심사에서 나온 듯한데, 아닌가요?” (곡정)

公時時睡 以頭觸屛 (中略) “愚有平生獨見之語 而亦不敢向人說道 恐令海內諸公大驚小恠 因此胎得痞結伏積證 冬夏苦劇 正恐先生感成此證?”

 

하하하.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그렇다면 우리 둘 다 이 자리에서 남김없이 털어버립시다. 잘하면 몇 년 묵은 병을 약 한 첩 안 쓰고 시원하게 고칠 수 있겠는걸요.” (연암)

不如此刻道破 收幾年勿藥之效

 

 

그 정도론 설득하기 어렵다고 여겼던지, 이렇게 덧붙인다. “저는 온몸에 가려움증이 나서 배기지 못하겠어요.” 탯덩이와 가려움증! 고도의 정치적 메시지를 암시하는 블랙유머를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그의 유머는 팽팽한 긴장을 이완시키는 한편, 검열의 장벽을 넘도록 추동한다. 그럴 때, 유머는 수많은 의미들을 내뿜는 일종의 발광체가 된다.

 

그의 유머 능력은 호질(虎叱)에서 특히 돋보인다. 그는 상점의 벽 위

에 한편의 기문을 발견하고 그것을 베끼기 시작한다. 동행한 정군에게 부탁하여 그 한가운데부터 베끼게 하고 자신은 처음부터 베껴 내

려간다. 주인은 당연히 이상스럽다.

 

 

선생은 이걸 베껴 무얼 하시려는 건가요?” (주인)

先生謄此何爲?”

 

내 돌아가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한번 읽혀 모두 허리를 잡고 한바탕 크게 웃게 할 작정입니다. 아마 이 글을 보면 다들 웃느라고 입안에 든 밥알이 벌처럼 튀어나오고, 튼튼한 갓끈이라도 썩은 새끼줄처럼 툭 끊어질 겁니다.” (연암)

歸令國人一讀, 當捧腹軒渠, 嗢噱絶倒, 噴飯如飛蜂, 絶纓如拉朽.”

 

 

아니, 사람들을 포복절도하게 하려고 그런 수고를 감수하다니. 그거야말로 포복절도할 일 아닌가?

 

요즘으로 치면, 외국 가서 좀 튀는작품 하나 베껴와서 한탕하겠다는 속셈이거니 할 터이니, 연암 당시에야 아무리 많은 사람들을 웃긴다 한들 돈 한푼 안 되는 세상 아닌가. 아니, 돈이 되기는커녕 사대부로서의 체면을 완전 구길 뿐 아니라, 자칫하면 신세 망치기 십상인데.

 

그러니 이쯤 되면 우리는 머리를 갸우뚱하게 된다. 아무 생각없이 포복절도하고 넘어갈 수가 없는 것이다. 여기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웃음을 통해 그가 의도하는 바는 무엇일까? 어디까지가 그의 진실일까? 등등. 안 그래도 그동안 이 작품이 연암의 창작이냐 아니냐를 놓고 옥신각신, 왈가왈부, 중언부언해왔는데, 이쯤 되면 정말 머리가 터질 지경이다.

 

결국 이렇게 되면, 연암이 쳐놓은 그물에 영락없이 걸려든 꼴이 된다. 이렇게 헷갈리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그가 겨냥한 바일 테니. 하지만 어쩌랴. 이 유쾌한 그물망을 어떻게 외면한단 말인가. 차라리 그물 속에서 유쾌하게 놀아보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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