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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4부 범람하는 유머 열정의 패러독스, 1장 유머는 나의 생명!, ‘스마일[笑笑] 선생’ 본문

문집/열하일기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4부 범람하는 유머 열정의 패러독스, 1장 유머는 나의 생명!, ‘스마일[笑笑] 선생’

건방진방랑자 2021. 7. 10.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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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범람하는 유머 열정의 패러독스

 

 

1장 유머는 나의 생명!

 

 

스마일[笑笑] 선생

 

 

호모 루덴스가 펼치는 유머와 역설의 대향연―― 만약 열하일기를 영화로 만든다면, 나는 예고편의 컨셉을 이런 식으로 잡을 작정이다. 고전을 중후하게 다루기를 원하는 고전주의자(?)들은 마뜩잖아 할 터이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유머 없는 열하일기는 상상할 수조차 없으니. 아니, 더 솔직하게 말하면, 열하일기는 유머로 시작하여 유머로 끝난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도처에서 유머를 구사한다. 그것은 배꼽잡는 해프닝이 일어날 때만이 아니라, 중후한 어조로 이용후생을 설파할 때, 화려한 은유의 퍼레이드나 애상의 분위기를 고조시킬 때, 언제 어디서나 수반된다. 이를테면 유머는 열하일기라는 고원을 관류하는 기저음인 셈.

 

다른 한편, 유머는 익숙한 사유의 장을 비틀어버리거나 아니면 슬쩍 배치를 변환하는 담론적 전략이기도 하다. 연암 사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아이러니와 역설, 긴장과 돌출은 모두 유머러스한멜로디 속에서 산포된다. 사람들은 이 유머에 현혹되어 혹은 분노하고, 혹은 깔깔거리느라고 자신들이 이미 이전과는 전혀 다른 필드에 들어갔음을 눈치채지 못한다.

 

유머에 관한 한, 연암은 오랜 연륜을 자랑한다. 젊은 날의 우울증을 해학적인 이야기, 재치있는 이야기꾼들을 통해 치유했음을 환기하자. 청년기 이후에도 그런 습속은 고쳐지기는커녕 더더욱 심화되어 갔다.

 

 

나는 중년 이후 세상 일에 대해 마음이 재처럼 되어 점차 골계를 일삼으며 이름을 숨기고자 하는 뜻이 있었으니, 말세의 풍속이 걷잡을 수 없어 더불어 말을 할 만한 자가 없었다. 그래서 매양 사람을 대하면 우언*寓言(과 우스갯소리로 둘러대고 임기응변을 했지만, 마음은 항상 우울하여 즐겁지가 못했다.

吾中年以來, 灰心世路, 漸有滑稽逃名之意, 而末俗滔滔, 無可與語. 每對人, 輒以寓言笑談, 爲彌縫打乖之法, 而心界常鬱鬰, 無可自樂.

 

 

박종채의 과정록(過庭錄)1의 기록이다. 이런 진술에서 사람들은 흔히 천재들의 고독 혹은 시대와의 불화따위만을 감지할 터이지만, 사실 이건 정반대로 읽어야 마땅하다. 이를테면, 그는 세상에 대한 불평과 울울한 심사를 골계 혹은 우스갯소리로 드러냈던 것이다. 세상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음을 비분강개하거나 청승가련하게 표현하는 사람은 드물지 않다. 하지만 그것을 골계와 해학으로 표현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것은 역경과 굴곡을 생에 대한 능동적 발판으로 전환하는 고도의 능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연암만큼 유머를 정치적으로 잘 활용한 이도 드물다. 이미 밝혔듯이, 연암은 오십줄에 들어서야 음관(蔭官)으로 벼슬길에 나아간다. 당쟁에 연루된 사람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연암을 자기 당파에 끌어들이려고 다각도로 접근을 시도했다. 그럴 때마다 연암은 우스갯말로 얼버무리며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는 듯한 태도를 취[先君輒以笑語漫漶若未曉]”함으로써 교묘하게 그 파장으로부터 벗어나곤 했다. 만약 꼿꼿한 자세로 시비를 논하거나 아니면 반대하는 태도를 취했을 경우, 안 그래도 비방이 끊이지 않았던 그가 정치적 소용돌이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았을 터이다.

 

한 지인(知人)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연암처럼 매서운 기상과 준엄한 성격을 지닌 사람이 만일 우스갯소리를 해대며 적당히 얼버무리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 세상에 위태로움을 면하기 어려웠을 게야[以燕岩嚴厲之氣像高峻之性格, 若無誠諧一着以彌縫之, 則難乎免於今之世矣].” 그러니 유머야말로 그에게는 난공불락의 정치적 전술이었던 것이다.

 

물론 당파간 경쟁에만 그것을 활용한 건 아니다. 중요하지 않은 일인데도 서로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 힘은 들면서도 매듭짓기 어려운 경우에는 문득 우스갯소리를 하여 상황을 완화시킴으로써 분란을 풀곤 했다. 또 일반 백성들을 계발할 때, 심란해하는 친구를 위로할 때도 그는 유머를 다채롭게 구사했다.

 

언젠가 한 고을의 원님이 되었을 때, 싸움질을 일삼는 평민이 있었다. 한 아전 하나가 몽둥이를 쥐고 들어와 그 평민이 몽둥이로 자신을 죽이려 했다고 호소하자, 연암은 웃으며 각수장이를 불러오라고 한 뒤, 몽둥이에 이런 글을 새겼다.

 

 

噫巨椎 誰所作 오호라, 이 큰 몽둥이 그 누가 만들었나?
曰某甲 酗肆惡 아무개가 만들었지. 주정과 행패
出乎爾 反乎爾 너에게서 나왔으니 너에게로 돌아가야지
理莫逭 漢律疻 이 이치는 피할 길 없으니 상해죄로 다스릴 일
用之掛 里門側 이 몽둥이 걸어두세 저 마을 문 곁에다가
有不悛 人共擊 회개하지 않는다면 함께 이 몽둥이로 때려주세
官所許 證此刻 사또가 그걸 허락함을 이 글로 증명한다.

 

 

이후 그 평민이 다시는 야료를 부리지 못했다고 한다. 과정록(過庭錄)2의 이야기이다.

 

또 한번은 기민(饑民) 구제로 괴로워하는 친구에게 억지로 고충을 참으려면 미간과 이마에 () 자 ㆍ임() 를 그리게 될 터이니 그러지 말고 그 일을 차라리 즐기라고 위로해준다. 그러면서 자기 말을 들으면, “그대 또한 반드시 입에 머금은 밥알을 내뿜을 것이니, 나를 소소(笑笑)선생이라 불러도 사양하지 않겠노라고 덧붙인다. 친구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기꺼이 스마일씨()’로 자처하고 있는 것이다.

 

열하일기에서 가장 논란이 되었던 부분도, 또 가장 많이 삭제ㆍ윤색된 부분도 웃음이 터지는 대목이라는 것은 얼마나 의미심장한가. 요컨대 그에게 있어 유머는 중세적 엄숙주의를 전복하면서 매끄럽게 옮겨 다니는 유목적 특이점이자 우발점의 기법이었다.

 

 

 

 

인용

목차

열하일기

문체반정

박지원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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