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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4부 범람하는 유머 열정의 패러독스, 1장 유머는 나의 생명!, 정진사와 득룡 스케치 본문

문집/열하일기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4부 범람하는 유머 열정의 패러독스, 1장 유머는 나의 생명!, 정진사와 득룡 스케치

건방진방랑자 2021. 7. 10.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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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사와 득룡 스케치

 

 

이제 독자들도 장복이와 창대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상당히 낯이 익을 것이다. 그것은 단지 그들이 연암의 시종들이라서가 아니다. 만약 연암이 그들을 그저 그림자처럼 끌고 다니기만 했다면, 장복이와 창대는 벌써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지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연암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들의 말, 행동, 생김새까지 눈에 삼삼하도록 생생한 호흡을 불어넣었다. “한참 서성거리다 몸을 돌이켜 나오는데 장복을 돌아보니 그 귀밑의 사마귀가 요즘 더 커진 듯했다.” 귀밑의 사마귀까지 캐치하는 놀라운 관찰력. 그래서 그들은 별볼일 없는 인물이지만 출현하는 장면마다 강렬한 악센트를 부여한다. 이름하여 빛나는 엑스트라.’

 

누구든 그렇다. 연암과 함께 움직이면, 혹은 연암의 시선에 나포되면 누구든지 익명의 늪에서 돌연 솟아올라 그만의 특이성을 분사한다.

 

연암이 한참 장황한 벽돌론을 설파할 때 말 위에서 졸다가 벽돌은 돌만 못하고, 돌은 잠만 못하다고 봉창 두드리는 소리를 했던 정진사, 그에 대한 이런 스케치도 참 재미있다. 관내정사(關內程史)에 나온다.

 

 

정진사는 중국말이 서투른 데다 또 이가 성기어서 달걀볶음을 매우 좋아하므로, 책문에 들어온 뒤로 하는 중국말이라고는 다만 초란 뿐이다. 그나마 혹시 말할 때 발음이 샐까, 잘못 들을까 걱정하여, 가는 곳마다 사람을 만나면 초란하고 말해보아 혀가 잘 돌아가는지를 시험한다. 그 때문에 정을 초란공이라 부르게 되었다.

鄭君漢語甚艱 且齒豁 偏嗜炒鷄卵 入柵以後 所肄漢語 只是炒卵 猶患出口齟齬 入耳聽瑩 故到處向人 輒呼炒卵二字 以試其舌頭利澀 因此號鄭爲炒卵公

 

 

이 짧은 멘트만으로도 그가 어떤 인물인지 가늠하기에 충분하다. 그는 상당히 자주 출현하는 편인데도 장복이나 창대에 비해서도 성격이 뚜렷하지 않다. 개성이 없는 게 그의 개성인 셈이다. 연암의 농담에 어리숙하게 넘어가거나, 아니면 연암의 도도한 변증에 뒷북치는 소리를 하는 게 주로 그가 맡은 역할이다.

 

득룡은 가산(嘉山) 출신으로 14살부터 북경을 드나든 지 30여 차례나 되는 인물이다. 중국어에 능통할 뿐 아니라, 수완이 뛰어나 곤란한 일을 능숙하게 처리한다. 사행이 있을 때마다 그가 중국으로 도주할까 염려하여 미리 가산에 통첩하여 그의 가속(家屬)을 감금해둘 정도로 국가적으로 공인된 수완꾼이다. 그걸 확인시켜주는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강을 건넌 뒤, 국경이 되는 책문을 통과할 때 득룡이 청인(淸人)들 과 청국관원에게 선사하는 예물을 둘러싸고 실랑이를 벌인다. 봉황성의 교활한 청인들이 가짓수를 덧붙여 뜯으려는 수작인데, 만약 이때 어설프게 처리하면 달라는 대로 줄 수밖에 없고, 다음해엔 그게 전례가 되어버린다. 사신들은 이 묘리(妙理)를 모르고 다만 책문에 들어가는 게 급해서 반드시 역관을 재촉하고 역관은 또 마두(馬頭)를 재촉하여 폐단의 유례가 굳어진 지 오래다.

 

이런 상황에서 득룡이 청인 백여 명이 둘러서 있는 한가운데로 불쑥 나서며, 다짜고짜 그중 한 명의 멱살을 움켜쥐고는 이렇게 을러댄다.

 

 

뻔뻔하고 무례한 놈 같으니라구! 지난해에는 대담하게도 이 어르신네 쥐털 목도리를 훔쳐갔지. 또 그 작년엔 이 어르신께서 주무시는 틈을 타서 내 허리에 찼던 칼을 뽑아 칼집에 달린 술()을 끊어갔었지. 게다가 내가 차고 있던 주머니를 훔치려다가 들켜 오지게 얻어터지고 얼굴이 알려지게 된 놈 아니냐!

這個潑皮好無禮 往年大膽 偸老爺鼠皮項子 又去歲 欺老爺睡了 拔俺腰刀 割取了鞘綬 又割了俺所佩的囊子 爲俺所覺送 與他一副老拳 作知面禮

 

그때 애걸복걸 싹싹 빌면서 나더러 목숨을 살려주신 부모 같은 은인이라 하더니만, 오랜만에 왔다고 이 어르신께서 네 놈의 상판을 몰라보실 줄 알았느냐? 겁대가리 없이 이 따위로 큰소리를 지르고 떠들다니. 요런 쥐 새끼 같은 놈은 대가리를 휘어잡아서 봉성장군 앞으로 끌고 가야 돼! 도강록(渡江錄)

這個萬端哀乞 喚俺再生的爺孃 今來年久 還欺老爺 不記面皮好大膽高聲大叫如此 鼠子輩拿首了鳳城將軍

 

 

그러자 여러 청인들이 모두 용서해줄 것을 권한다. 그중에서도 수염이 아름답고 옷을 깨끗이 입은 한 노인이 앞으로 나서더니, 득룡의 허리를 껴안고 형님, 화 푸세요[請大哥息怒].” 하고 사정한다. 득룡이 그제야 노여움을 풀고 빙그레 웃으면서 내가 정말 동생의 안면만 아니었다면 이 자식 쌍판을 한 방 갈겨서 저 봉황산 밖으로 내던져버렸을 거야[若不看賢弟面皮時這部 截筒鼻一拳 歪在鳳凰山外].” 한다. 복잡하게 꼬인 상황이 단방에 처리된 것이다.

 

물론 득룡의 말은 몽땅 거짓말이다. 말하자면, 청인들을 상대로 사기를 친 것이다. 이름하여 살위봉법(殺威棒法)’, 도둑의 덜미를 미리 낚아채 기세를 꺾는 것으로 중국무술 십팔기(十八技)의 하나다. 연암은 이 장면을 마치 손에 잡힐 듯 화끈하게 재현해놓았다. 이 장면 하나만으로 득룡이는 독자들의 뇌리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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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열하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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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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