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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도올선생 중용강의, 18장 - 3. 먹과 벼루와 종이 본문

고전/대학&학기&중용

도올선생 중용강의, 18장 - 3. 먹과 벼루와 종이

건방진방랑자 2021. 9. 18.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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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 먹과 벼루와 종이

 

 

 

먹은 서양의 잉크(Ink)에 해당되는 것이기 때문에 먹의 영어로 번역도 역시 잉크라고 합니다. 먹은 탄소(carbon)입자를 아교로 굳힌 것인데, 옛날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검댕만큼 검은 것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굴뚝 검댕이를 털어다가 먹 만드는 재료로 쓴 것입니다. 태우는 나무 종류에 따라 검댕이의 색깔이 조금씩 달라지는데, 요즘엔 나무를 태워 검댕이를 받질 않고 석유에서 나오는 카본 가루를 씁니다. 석유에서 나오는 카본 가루가 까맣긴 더 까맣지만, 고풍(古風)의 맛은 없어요. 중국에서 나오는 먹중에 아직 검댕이를 원료로 한 것이 있긴 하지만, 나무가 아니라 기름을 태워 얻은 검댕으로 만든 것입니다.

 

인간이 경험하는 색은 빛의 색과 염료의 색 두 가지가 있는데, 그 차이는 빛의 모든 색은 다 합하면 흰색이 되고 염료의 모든 색은 다 합하면 검정색이 된다는 것입니다. 즉 검정색에는 모든 색들이 녹아들어가 있고 그것을 펼치면 온갖 색이 다 나오는데, 이것이 바로 먹이라는 잉크의 매력이며, 수묵화가 가능해지는 이유인 것입니다.

 

 

 

벼루

 

어렸을 때 나는 벼루와 먹 양쪽에서 다 잉크가 생산되는 줄 알았어요. 벼루나 먹이나 모두 검정색이잖아요. 아마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 많을 겁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벼루란 게 단순한 돌멩이더라구. 물론 아무 돌멩이나 다 벼루가 되는 건 아닙니다. 벼루가 될 수 있는 돌은 두 가지 상반된 조건을 충족시켜야 되는데, 물을 흡수하지 않을 만큼 조직이 치밀하고 단단해야하면서도 먹이 곱게 잘 갈릴 정도로 거친 성질이 있어야 되거든요. 이런 조건에 맞는 돌이 많지는 않아요. 조직이 치밀하기만 하면 먹이 잘 안 갈리고, 먹이 잘 갈리게 조직이 성기고 거칠기만 하면 물을 다 빨아 먹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꼭 검정색이란 건 좋은 벼루의 조건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거예요. 오히려 좋은 벼루일수록 대개 누리끼리한 색을 띠는데, 벼루 중에 최상의 벼루라고 하는 중국에서 나오는 단계연(丹鷄硯)이라는 벼루도 마치 닭다리에 붉은 피가 묻은 것 같은 색깔을 하고 있어요. 옛날에 인조가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다 돌아온 소현세자에게 무엇을 보고 왔는지를 물었는데, 단계연이 가장 탐나더라는 대답에 노해서 세자에게 벼루를 던졌다는 일화가 있죠? 물론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벼루도 질이 상당히 좋은 것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 벼루를 사용한 뒤에는 항상 깨끗이 씻어 놓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먹이 덕지덕지 말라붙어 있는 게 좋은 줄 아는데, 그렇지 않아요. 후레시한 상태에서 먹을 갈아야 최상의 잉크가 나오지 않겠어요? 먹을 갈 때는 둥글게 원을 그리면서 갈되, 먹과 벼루가 만나는 각도가 수직이 되도록 쥐고 갈아줘야 합니다. 먹이 눕거나 하면 안 돼요. 그리고 벼루에 먹을 너무 꽉 눌러서 갈면 옷에 그 잉크가 튀는 경우가 많은데, 적당히 지그시 누르고 천천히 갈아야 합니다. 먹이 튈까 봐서 먹을 그냥 벼루 위에 얹어 놓은 듯이 슬슬 갈면 백날 갈아봐야 소용이 없거든요. 그러니까 먹 가는 것 하나에도 중용지도(中庸之道)가 필요한 거예요. 반듯하고 의젓하게 자세를 잡고 먹을 가는데, 힘을 지긋이 주되 잉크가 튀어서 주변에 하등의 피해가 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옛날 선비들은 흰 옷에 먹이 튀는 걸 엄청난 수치로 알았어요.

 

 

 

종이

 

종이는 기본적으로 나무죠? 나무를 절구에 찧어서 물을 타가지고 쫙 펴서 김처럼 말린 거니까. 그런데 이 종이를 자세히 보면 나무의 섬유질이 얼기설기 얽혀서 마치 아프리카 정글 같은 섬유질의 정글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잉크를 붓에 찍어 종이에 묻힌다고 할 때, 어떤 현상이 일어나느냐? 말하자면 섬유질의 정글에 물이 확 쏟아져 들어가는 거예요. 탄소 입자들이 둥둥 뜬 물로 홍수가 나는 거지. 이 때 잘 갈린 먹물은 물속에 탄소 입자가 아주 촘촘하게 분포되어 있는데, 이 탄소 입자가 섬유질 정글의 나뭇가지에 모두 걸리고 물만 쫙 빠져나간 경우를 번지지 않았다고 하는 겁니다. 이 정도까지 먹을 갈아야 되는 거지요. 물론 발묵(發墨)이라고 해서 일부러 번지는 효과를 이용하는 기법도 있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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