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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선생 중용강의, 18장 - 5. 심미적 감수성 본문

고전/대학&학기&중용

도올선생 중용강의, 18장 - 5. 심미적 감수성

건방진방랑자 2021. 9. 18.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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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 심미적 감수성

 

 

! 그러니까 또 생각이 나는데, 서원을 청소할 때 학생들이 하는 걸 보면 참 문제가 많아요. 한 사람도 제대로 하는 걸 못 봤습니다. 청소란 게 알고 보면 공간 처리 기술이라서 공간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하는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서원의 이 넓은 공간을 빗자루로 다 쓸자면, 먼지도 날리고 시간도 꽤 걸리기 때문에 이런 대걸레를 마련해뒀는데 이걸 쓸 줄을 몰라. 이렇게 대걸레를 잡고 구석구석을 챙겨 가면서 쫙 밀고 나가서 코일처럼 왔다 갔다 하면 금방 끝나잖아? , 주의할 점은 코너를 돌 때 걸레를 번쩍 들지 말고 그대로 바닥에 붙인 채로 돌아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야 흘려버리는 쓰레기 없이 깨끗이 청소가 되거든. 이것도 시조창이랑 마찬가지예요. 음을 쭉 늘여주잖아? 딱딱 끊어지지 않고 말이야. “동차앙”(선생께서 노래부르시며 몸소 시범을 보여주심) 두 사람도 필요 없어요. 한사람이면 충분해. 강릉 선교장같은 델 가보면 옛날 목수들이 어떻게 건물을 지었는가를 볼 수가 있는데, 잘 보면 제일 중요한 부분이 바로 이음매예요. 서까래와 대들보, 처마와 용마루가 끊기지 않고 절묘하게 이어져 있는데, 그런 게 그대로 시조창 악보란 말이야. 바로 그런 부분에서 공력(功力)이 드러나고, 멋이 나타나는 거예요.

 

매사가 인터그레이션(Integration, 융합)! 사물을 볼 때 따로따로 떼어내서 보면 핵심이 안 보입니다. 걸레질·비질·가위질·젓가락질 이런 것 모두가 중용(中庸)의 도()를 닦기 위한 내 몸의 훈련이 되는 거예요. 우리 집에 와서 내가 사는 걸 한번 보고나면 알 수가 있어요. 먹는 것부터 소제하는 것까지 하나하나 섬세한 감각이 들어 있다구. 나는 이런 생활의 감각을 어려서 붓끝에서부터 배웠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현대적 삶을 살고 있지만 어려서부터 집안에서 어머니에게 조선조의 전통적 생활 규범을 차근차근 알게 모르게 배웠거든요. 전통 문명의 훈도를 받은 마지막 세대지요.

 

그런 점에서 난 참 안타까운 게 많습니다. 요즘 사람들이 사는 걸 보면 도대체가 생활에 예술이 없어요. 난 우리 집 애들에게 연필 깎는 기계를 절대로 못쓰게 합니다. 연필은 반드시 칼로 깎아야죠. 나무를 깨끗이 칼로 밀어서 동그랗게 모양을 잡고 연필심을 고르게 깎아 내는 기예를 손에 익히는 데만도 최소한 십년 세월은 걸립니다. 이게 되야 손재주란 게 생겨요. 이런 것도 안 되는 애들이 나중에 어떻게 컴퓨터를 만지고, 무슨 좋은 예술이 나오겠어요. 연필 하나 깎는 데에도 공간 처리 기술, 심미적 감수성(Aesthetic Sensitivity)이 다 들어 있는 겁니다.

 

젓가락질도 마찬가지예요. 포오크로 푹 찌르는 것과 젓가락 두 끝을 딱 맞춰 정확히 목표물을 집어내는 것과는 천지차이야. 섬세한 감각이 필요하단 말입니다. 도올서원 학생들은 이런 걸 배워야 됩니다. 일본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에 비해 이런 예술적 감각이 평균적으로 더 발달해 있는데, 이번 코오베 지진 때만 해도 그 질서정연하게 대피하는 거라든지, 신속한 복구 작업이라든지, 이런 게 결국은 일상생활에서부터 익혀온 감각이 발현된 것이지, 그게 아무렇게나 된 게 아닙니다. 우리 조선 문명이 제대로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이렇게 아주 일상적인 문제에서부터 새로운 인식의 전환이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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