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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선생 중용강의, 18장 - 4. 서도로 버무려질 삶 본문

고전/대학&학기&중용

도올선생 중용강의, 18장 - 4. 서도로 버무려질 삶

건방진방랑자 2021. 9. 18.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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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 서도로 버무려질 삶

 

 

서도(書道)는 기본적으로 내가 콘트롤할 수 있는 부분과 그것이 불가능한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붓이 나의 몸의 연장태, 즉 나의 심성을 전달하는 주관적 도구의 세계라면, ()은 나의 통제를 벗어난 객관의 세계입니다. 붓은 내가 콘트롤하는 공부(工夫)의 세계, ()은 정글에서 벌어지는 탄소 입자들의 춤의 세계, 즉 자연의 세계지요. 그곳은 내가 끼어들 여지가 없는 재수(chance)의 오묘함이 깃든 세계입니다. 그러니까 종이 예술의 가장 위대한 점이자, 서구 예술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바로 일회성(一回性)! 개칠(改漆)이 불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서도(書道)란 단 한 번으로 끝나는 거예요. 한번 잘못하면 그냥 가는 거라고. 회복이 안 돼. 인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인 것이 친구지간에도 한번 의가 상하면 두 번 다시 개칠이 안 되거든요. 모든 인간의 감정이 다 그래요. 그런데 서양 예술은 개칠(改漆)을 잘 할수록 좋은 그림이 된다는 겁니다. 캔버스 위에 어떻게 개칠을 잘해서 아름다운 결과를 만들어 내느냐가 그들에겐 최대의 관심사거든. 그런데 동양 미술은 달라요. 개칠의 기회가 원칙적으로 봉쇄되어 있습니다. 단 한 번에 모든 승부를 걸어라! 석도가 석도화론(石濤畵論)맨 첫머리에 뭐라고 했습니까? 만법(萬法)이 일획(一劃)!

 

동양 예술은 일획(一劃)에서 시작해서 일획(一劃)으로 끝납니다. 우리의 서도(書道)에는 종이와 필묵의 자연적 특성이 그대로 배어 있어요. 그 자연에 한번 그려진 건 반드시 족적이 남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서도(書道)에는 아주 치열한 데가 있어요. 그 일회성(一回性)을 완벽하게 콘트롤하기까지 몸의 공부(工夫)가 절실히 요구되는 것입니다.

 

오늘 인사동 아무 데나(특정한 곳을 가르쳐주면 장사한다고 할 테니까) 가서 붓하고 벼루, 먹을 하나씩 장만하세요. 그래서 자꾸만 연습을 해봐요. 안진경이든 뭐든 교본 하나 놓고 그대로 그려 보라구. 그렇다고 그런 서체들을 그대로 따라 하란 말은 아니예요. 글씨란 결국 자기 개성의 표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잘 쓰냐 못 쓰냐가 문제가 아니라 달()하냐 그렇지 못하냐가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잘 쓴다, 또는 예쁜 글자[]를 쓴다고 해도 붓을 백번 그었는가, 한번 그었는가의 차이는 누가 봐도 알 수가 있고, 또 거기에는 거짓말이 통하지도 않습니다따라서 쓸 본()을 옆에 놓고서 최대한 비슷하게 써 내려가는 지겨운 반복적 흉내내기를 임서(臨書)라고 하는데, 이 임서의 최종 목적도 완벽한 카피(copy)에 있는 게 아니라, 내 손과 팔, 즉 내 몸의 상태와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 운필(運筆)의 도()와 묘()를 터득하는 것이다. 100번 반복으로 깨닫는 몸과 붓의 상감(相感)1000번 반복함으로써 깨닫고 느끼는 상감(相感)은 비교 불가능한 질적 차이를 갖는다.

 

중용(中庸) 1천하지달도야(天下之達道也)’라고 한 것처럼 체()는 없고, 오직 달()의 경지만 있을 뿐인 거예요. 안진경체가 어떻고 왕희지체가 어떻고 구양순체가 어떻고 하는 놈들은 모두 본()의 의미를 모르는 미친 놈들이야. 절대로 그런 말을 듣지 말아요. 오직 여러분 자신들의 체가 있을 뿐입니다. 글씨는 자기가 쓰고 싶은 대로 쓰면 됩니다. 그러나 그 기본 법칙만은 익혀야지. 그 다음부터 달()할 때까지 열심히 쓰면 되는 거예요. 알겠습니까?

 

이 정도 강의면 우리 도올서원 학생들에게 서도(書道)는 이제 끝난 겁니다. 도올서원 학생들은 최소한 붓을 잡을 줄은 알아야 해요. 물론 달()할 때까지 한 십년은 걸리지만, 붓을 십년도 잡지 않고 어떻게 서도(書道)했다는 말을 하겠습니까? 십년이 대단한 것 같지만 잠깐입니다. 서도(書道)란 살면서 하는 거니까. 아까도 말했듯이 모든 글씨 쓰기가 다 서도(書道)가 되는 것이니, 여러분 노트 필기하는 것 이런 것까지 다 포함해서 십년이라는 말입니다. 옛날 사람들에게는 편지 한 장 쓰는 거 이게 다 서도(書道)였어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안진경 글씨[]를 갖다 놓고 쓴 게 아니라 단지 어릴 때 자세랑 법칙 정도를 배우고 나면 그 이상은 자기가 했던 겁니다. 나도 어릴 때 어머니에게 그렇게 배웠어요.

 

서도(書道)를 익혀야 합니다. ‘아트(Art)’가 없으면 인생이 재미가 없어. 인생을 무궁무진 재밌게 살 수 있는 인간이 이 세상에 많지가 않아요. 오직 내 건강이 감당을 못해 야단이지 나는 심심해서 괴로운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그러니까 여러분도 아트(Art)’를 몸에 익히세요. 디즈니랜드 백번 가봐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한때 나도 이태원 디스코텍이다 뭐다 많이 가봤지만 그런 거 다 잠깐이예요. 그런 거 할 땐 하더라도 중요한 건 내 몸에 아트(Art)’를 축적하는 겁니다. 서도(書道)를 어려운 거라 생각하지 말고 일단은 지필묵(··)’을 항상 곁에 두십시요. 누가 와서 지필묵 있냐? 했을 때 딱 내놓을 정도는 되야지. 도대체 지필묵도 구비해놓지 않은 놈들은 지식인으로 쳐 줄 수가 없어요. 이제 서도의 원리를 알았으니까, 오늘부터 집에 앉아서 잘 쓰든 못 쓰든 하루 한 시간씩이라도 써보세요. 앉아서 한 시간을 그러고 있으면, 처음에는 어깨가 떨어져 나가는 것같이 아프지만, 하루 이틀 지나 습관이 되어서 몸에 익으면 편해집니다. 아시겠죠? 중봉(中峰)을 유지하고, 마치 지난번에 황병기 선생에게 배운 시조창을 하듯이 리드미컬하게 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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