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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스트 교육학 - 24. ③강: 앎이란 저주, 모름이란 축복 본문

연재/배움과 삶

트위스트 교육학 - 24. ③강: 앎이란 저주, 모름이란 축복

건방진방랑자 2019. 10. 22.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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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 앎이란 저주, 모름이란 축복

 

 

어느덧 트위스트 교육학 3강 여섯 번째 후기를 시작하게 됐다. 시작할 땐 언제 끝나려나 막막하지만, 그래도 시작하여 진행하다보면 내용이 하나씩 정리된다.

3강 강의 제목은 지금 왜 칭송받지 못하는 교사가 필요한가?’이지만, 그 얘기를 하기 위해서는 거쳐야할 과정이 있다. 그래서 칭송받는 교사가 필요하다라고 강의 제목을 잘못 들은 선생님의 일화를 소개하며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고 하는 인간의 한계를 인식해야 한다는 것을, 그 다음 후기에선 학교 평가의 역설을 기술하며 우리가 눈 감아 버린 현실이 어떤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귀를 활짝 열어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일지라도 들으려 하고, 왜곡된 현실이 갑갑할지라도 기술할 각오가 되어 있다면, 거기서부터 모름이야말로 축복이다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다.

 

 

에듀니티의 밤이 깊어져 가고 있다. 밖엔 비가 점차 거세지고 있다.

 

 

 

배움은 모름에 머물려는 몸부림이다

 

트위스트 교육학 9번째 후기에서 배움은 미지에의 투신이며, 무지에의 항거라고 썼었다. 하지만 강의를 들으면 들을수록 그 말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젠 배움은 미지에의 투신이며, 무지에의 항거다. 하지만 결국 지를 해체하여 모름에 머물려는 몸부림이다라고 바꾸고 싶다.

배움은 미지에의 투신이며, 무지에의 항거라고만 할 경우, 앎 또는 진리만을 추종하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이럴 경우 무지는 나쁜 것이고 앎은 좋은 것이기에, 무지에서 벗어나 앎을 추앙하라는 말이 된다. 이런 생각은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는 앎에 대한 환상을, ‘하나라도 더 배워라는 앎을 소유하려는 마인드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하지만 이에 반해 배움은 결국 지를 해체하여 모름에 머물려는 몸부림이란 말을 덧붙일 경우, 안다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폭로하고 안다는 자만심 자체를 허물어버린다. 그럼에도 알려는 강인한 마음으로 배워나가게 된다. 왜 배우게 되는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럼 알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많은 것을 알게 되는가? 하나를 알게 되면, 그와 관련된 수만 가지는 모른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앎과 모름이 공존하며 강렬히 알고자 하는 마음이 샘솟기에, 모름은 축복이고 모름은 삶에 대한 강렬한 추동력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어느 대학에 가든지 쉽게 볼 수 있는 문구.

 

 

 

모르는 자는 축복 받은 자다

 

이 얘길 잘못 들으면, 아무리 노력하고 또 노력해도 결국 모르게 된다는 사실이 비운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알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모르게 되니 말이다. 하지만 그건 저주의 말이라기보다 축복의 말이라고 해야 맞다.

그 이유는 모르기에 배우려 하고 삼라만상에 대해 궁금해 하기 때문이다. 아이는 세상 만물을 보면서 무척이나 신비해하고, 뭔가 단순한 변화가 있을 때에도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까르르 웃으며 그 신비를 관찰한다. 모르기에 알려 하고 그렇기에 궁금하게 여긴다.

하지만 온갖 개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에 익숙해진 어른은 더 이상 그런 것에 신기해하지 않는다. 개념으로 세상을 조각조각 나누어 인식하고, 그렇게 파편화된 지식들에 갇혀 더 이상 궁금해 하지 않기에, ‘자세히 보아야 예쁘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알 수 없게 된다.

안다고 생각할 때 우린 그 개념의 틀에 갇혀 머물게 되고, 모른다고 생각할 때 상황에 몸을 맡겨 나아간다. 그래서 안다고 자임할 때 결국 모든 관심의 끈을 끊고 죽음의 단계로 나아가지만, 모른다고 생각할 때 모든 소통의 통로를 활짝 열고 삶의 단계로 나아간다. 그러니 앎은 저주이고, 모름은 축복이라고 할 수 있다.

 

 

 

지식이란 단편적인 앎은 현실을 제대로 보게 하기보다, 오히려 단편적인 앎에 머무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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