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암 한기 속의 꿈
2002년 1월 8일이 드디어 막을 내리기 시작했다. 정말 기나긴 하루였다. 기나긴 사색의 하루였다. 주욱 사지를 뻗고 편안케 자려는데 예상했던 대로 한기가 엄습했다. 기분나쁜 사암의 한기가 살기(殺氣)로서 뼈 속까지 쑤시고 들어오는 것이다. 몸서리쳐지는 음산한 느낌이었다. 나는 악몽에 시달렸다.
갑자기 엄마하고 마포에 새우젖을 사러갔다. 요즈음 사람들은 이런 풍경을 상상도 못할 것이다. 마포 어귀에 늘어선 새우젓 독… 뭔가 그런 몽롱한 느낌 속에 갑자기 달라이라마를 만났다. 달라이라마께서 내 손을 잡아주셨다. 나는 그의 발 밑에 두 번이나 엎드려 큰 절을 했다. 그랬더니 달라이라마께서 엎드린 나를 일으켜 세워주셨다. 난 얼굴을 치켜 들면서 달라이라마님께 여쭈었다.
“제 편지를 받아 보셨습니까?”
그랬더니 달라이라마께선 자툴 린포체 대사의 일도, 내 편지도 전혀 모르고 계셨다. 전혀 나에 관한 소식을 들은 바가 없다는 것이다. 나는 가슴이 덜컹했다. 그랬더니 달라이라마께선 ‘직지인심,’ ‘이심전심’ 그냥 마음으로 만나면 되는 것이 아니냐고, 편지가 뭔 필요가 있겠냐고 인자하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꿈속에서지만 한국사회의 문제는 티벹인민들이 겪는 고초를 통하여 드러난다고 역설했다. 이것이 정확하게 무엇을 뜻하는 말인지도 나는 몰랐지만 하여튼 꿈속에서 역설한 이 말을 정확하게 기억했고 노트에 적어놓았다. 그리곤 “가르바(garbha), 수뜨라(sūtra)” 나는 이런 말을 계속해서 주절거렸다. 가르바, 수뜨라, 가르바, 수뜨라… 뭔 암호처럼 이렇게 외치다가 나는 번쩍 눈을 떴다. 새벽 6시였다. 새벽의 청자빛 여명 속에 정각대탑의 우뚝 솟은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몸이 온통 한기에 쩔어 있었다. 목젖이 칼칼했다. 지독한 감기가 기습한 것 같았다.
나는 날이 밝자마자 남군ㆍ이군을 깨워서 빨리 보드베가스를 가자고 했다. 우선 보드베가스에 가서 한국식 국물을 주욱 들이키면 좀 살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고급호텔인데도 목욕탕의 더운물조차 센트랄 히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목욕탕에 부착된 온수기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그것도 심야전기 같은 것으로 데우는 것인데 용량이 눈꼽만 해서 조금 틀면 찬물이 되어버리곤 했다. 욕조에 받아서 하는 더운물 목욕은 하나의 꿈일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허름한 싸구려 여관이래도 좋으니까, 목조건물에 양광이 드는 남향방을 하나 찾아보자고 했다.
▲ 대각탑 탑돌이를 하면서 담소하는 티벹 여인들. 한국인의 생김새와 너무도 흡사하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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