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초스님의 감회
탑 주변으로 높게 쌓아올린 탑돌이를 할 수 있는 4각형의 길이 있었다. 달라이라마께서 오시는 것을 준비해서였는지 어느 린포체가 무제한 촛불공양을 했다고 했다. 밤에 오는 누구든지 원하는 대로 양초를 준다. 그러면 사람들은 양초에 불을 붙여 사방에 켜놓는다. 영롱한 촛불이 서로를 비추고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상즉상입의 장엄한 인드라망의 화장세계(華藏世界)였다. 나는 순간 내가 발 딛고 있는 이곳을 방문했던 우리의 선조 혜초스님께서 남기신 5언 싯귀가 생각이 났다.
不慮菩提遠 焉將鹿苑遙 | 마하보리사를 내 이역만리가 멀다하지 않고 왔노라! 이제 저 카시에 있는 녹야원을 어찌 멀다 하리오? |
只愁懸路險 非意業風飄 | 단지 걸린 길들이 험한 것이 근심일 뿐, 가고자 하는 내 뜻은 바람에 휘날린 적이 없노라. |
八塔難誠見 參差經劫燒 | 아~아~ 팔성지의 스투파(stūpa)는 정말 보기 어렵구나! 이미 겁탈 당하고 불타버려 온전한 모습이 없네! |
何其人願滿 目覩在今朝 | 어찌 계림에서 온 이 사람의 바램이 다 성취되기를 바랄 것이랴마는 지금 내 눈에 보이는 이 모습이 그대로 부처님 모습이 아니겠누! 慧超, 『往五天竺國傳』 |
저 금강보좌 옆에는 유럽ㆍ미국에서 모여든 서양인들이 수백명이 몰려 앉아 어느 티벹스님의 설법을 듣고 있었다. 티벹스님이 영어로 강의하면 또 한 서양인이 옆에서 불어로 통역했다. 어둠을 통해 퍼져나가는 불어의 액센트는 정말 상큼하고 경쾌했다. 그리고 서양사람들이 앉아있는 모습은 참 근엄하고 진지했다. 그들은 무얼 하나 믿으면 아주 진실하게 믿는다. 그만큼 마음이 순결한 것 같다. 그런데 그 금강보좌 옆의 설법은 매우 재미난 형식을 취하고 있었다. 설교자가 한 2ㆍ3분 정도 설법하고 나면, 반드시 한 5분 정도 청중들이 다 함께 독경의 챈팅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설교와 주문이 계속 반복하는 것이다. 매우 현명한 방식이라 생각했다.
우리나라 절간에서도 배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스님들의 설법이란 필연적으로 졸리게 마련이다. 그리고 앉아있는 보살님들은 귀로 듣는 것보다 입으로 독경하는 것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지적인 설법과 감성적인 주문을 섞는 방식의 티벹승의 설교는 매우 좋았다. 듣기 좋게 아름다운 불어의 내용은 주로 밀교수행법의 기초이론을 설하고 있었다. 그리고 간간이 울려 퍼지는 대중들의 챈팅소리는 장엄하기 그지 없었다. 수없는 순례객들이 쌓아올린 작은 부도탑들 사이로 높이 솟은 마하보디 스투파(stūpa)의 모습을 더욱 신비롭게 만드는 것이었다. 티벹불교의 세계화의 현장이었다.
인용
'고전 > 불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만나기까지 - 사암 한기 속의 꿈 (0) | 2022.03.17 |
---|---|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만나기까지 - 라면이 살린 목숨 (0) | 2022.03.17 |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만나기까지 - 아쇼카와 마하보디 스투파 (0) | 2022.03.17 |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만나기까지 - 싯달타의 체취를 간직한 아쇼카 (0) | 2022.03.17 |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만나기까지 - 아쇼카의 석주 (0) | 2022.03.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