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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 사회학 - 11. 조삼모사식 커뮤니케이션 본문

연재/배움과 삶

아마추어 사회학 - 11. 조삼모사식 커뮤니케이션

건방진방랑자 2019. 10. 23.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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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조삼모사식 커뮤니케이션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가 주의 깊게 봐야 할 책은 장자. 장자라는 철학자에 대해 우리는 흔히 자연주의 철학자’, ‘무정부주의 철학자정도로 알고 있지만, 실상 그는 인간 사회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그려낸,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에 대해 깊이 고민한 철학자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엔 모든 사람들이 내용은 알지만 제대로 뜻은 알지 못하는 조삼모사朝三暮四란 이야기가 실려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의미로 끊임없이 패러디 되고 있다.  

 

 

 

실패할 가능성이 있기에 커뮤니케이션은 재밌어

 

일반적으로 조삼모사의 뜻은 얄팍한 꾀로 상대방을 속이는 것이라고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의 진짜 뜻은 속임이나 농락이 아닌, ‘소통에 대한 것이다.

 

 

옛날에 원숭이를 기르던 사람이 원숭이들에게 도토리를 주려고 아침에는 세 개 저녁에는 네 개를 주겠다.”라고 말하니 원숭이들이 모두 화를 내었다. “그러면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를 주겠다.”라고 말하자 원숭이들이 모두 기뻐했다.

狙公賦芧曰朝三而暮四.” 衆狙皆怒. 然則朝四而暮三.” 衆狙皆悅. 莊子』 「齊物論4

 

 

원문만 살펴보면 우리가 아는 내용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그저 원숭이의 짧은 생각을 비웃듯 같은 양의 도토리를 주면서 호응을 얻어낸 사육사의 약삭빠른 모습만이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  조삼모사는 소통에 관한 이야기다. 그걸 알려면 소통이 실패했을 때 사육사가 어떤 마음이었는지를 알아야 한다.  

 

 

하지만 이 글을 단순히 그렇게 보아선 안 된다. 사육사는 원숭이에게 첫 번째 의견을 제시한 후에 원숭이들의 반응을 살폈고, 원숭이들이 다들 싫어하자 다른 제안을 해야만 했다. 원문엔 나오지 않지만 사육사는 현실적으로 식량을 줄여야만 했기에 이제부턴 하루에 7개의 도토리만을 줘야한다. 그렇다면 원숭이들에게 어떻게 나누어주는 게 좋을까?’를 고민하며, 무수히 많은 제안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여러 제안을 했지만, 그 제안들은 거부되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사육사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제안을 하다가, 결국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라고 외치는 순간 여태까지와는 달리 원숭이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받아들인 것이다. 이때 기뻐한 원숭이들은 결코 어리석어서도, 농락에 놀아나서도 아니다. 여러 제안 중에 가장 맘에 드는 제안을 받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니 말이다.

이처럼 커뮤니케이션은 사육사가 했던 것처럼 실패할 위험을 감내하며, 진심에서 미끄러질 위기를 감안하며 해나가야만 한다. 그럴 때 원숭이들이 화를 냈던 것처럼, 사람들도 자기 식대로 해석하고 받아들인다. 원래 커뮤니케이션이란 그런 것이기에, 그런 상황에 주눅 들지 말고 계속 전달하려 노력할 뿐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엔 미끄러질 위기 속에서도 우연처럼 마주치며, 실패할 위험 속에서도 운 좋게도 공명하여 조금이나마 전달되는 기쁨의 순간에 이른다. 원숭이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미소를 지은 사육사처럼, 우리도 그 순간 어떤 것에도 비길 수 없는 행복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 동섭쌤은 커뮤니케이션이 적절히 성립하는 것이 곤란하기 때문이야말로 우리는 커뮤니케이션의 성립을 갈망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커뮤니케이션은 미끄러질 수 있고 실패할 수 있기에, 커뮤니케이션이 성립되기를 갈망한다.   

 

 

 

돼지의 꿀꿀소리가 되느냐, 말이 되느냐

 

그래서 동섭쌤은 발신자’, ‘’, ‘수신자란 것이 원래부터 있었던 게 아니라, 어떤 말을 의미 있는 말로 받아들인 수신자가 있을 때 비로소 발신자이 동시에 생성된다고 보았다. 이건 말을 한 사람이 있기 때문에 소통이 시작된다는 일반적인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 ‘의미 있는 말로 받아들인 사람이 있기 때문에 소통이 시작된다는 생각으로 바꾸어 버린다.

사육사가 도토리를 이제부턴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 주면 어떨까?”라고 말을 했지만 원숭이들이 듣지 못했거나, 화를 낸 경우엔 발신자도 생성되지 않은 것이다. 그저 주위의 소음처럼 들렸다 사라지고 만다.

 

 

▲  '소귀에 경 읽기'라는 속담은 소통이 되지 않을 때, 말은 한낱 수많은 소음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렇듯 커뮤니케이션은 늘 실패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며 할 수밖에 없고, 이때 가장 중심이 되는 존재는 수신자라 할 수 있다. 수신자가 의미 있는 말로 받아들일 때, 공허한 울림은 말이 되고, 수많은 사람 중 하나에 불과하던 사람은 발신자가 된다.

그래서 라캉Jacques Lacan(1901~1981)돼지의 꿀꿀이라는 울음소리가 파롤이 되는 것은 그 울음소리가 무엇을 믿게 하려는 것일까라는 물음을 누군가 세울 때뿐입니다. 파롤은 누군가 그것을 파롤이라고 믿을 때에야 비로소 파롤입니다. (중략) 동물의 랑가쥬langage(소쉬르의 용어로 언어활동으로 번역함)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은 그것을 알려고 하는 사람이 있을 때야 비로소 가능한 것입니다.”라고 말한 것이다.

 

 

[김씨표류기]라는 영화를 보면 '수신자가 있을 때 말이 성립된다'는 의미를 알 수 있다. 두 김씨는 어떻게든 소통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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