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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 사회학 - 13. 글과 소통 본문

연재/배움과 삶

아마추어 사회학 - 13. 글과 소통

건방진방랑자 2019. 10. 23.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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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글과 소통

 

 

I'm back, 드디어 돌아왔다. ‘아마추어 사회학후기를 마무리 지어야 함에도 한참이나 헤매다가 이제야 돌아왔다. ‘아마추어 사회학강의는 1018일에 있었으니 거의 한 달 만에 다시 쓰게 되는 것이고, 마지막 후기는 1029일에 썼으니 20일 만에 그 흐름을 이어보려는 것이다.

 

 

6편의 후기를 써나가다가 갑자기 멈췄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후기를 쓰지 못한 이유

 

갑자기 아마추어 사회학후기를 멈추게 된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브런치북 프로젝트에 떨어지게 되면서 그 여파로 도저히 글이 써지질 않았다. 아무래도 올핸 예년보다 더 많은 글을 썼고 그것으로 나름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물론 인지도가 있지는 않으니 쉽지는 않겠지만, 그럼에도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겉으로 내색하진 않았지만, 내심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 글이 책으로 나온다. 생각만 해도 짜릿하다.  

 

 

그런데 막상 결과가 나왔음에도 어디에도 내 이름은 없었다. 꼭 그 느낌은 예전 티비에서나 보던 대학 합격자 명단을 꼼꼼히 따라 내려가 보지만 어디에도 자기 이름이 없어 낙담에 빠진 어느 수험생의 기분이었달까. 수능 세대이기에 그 기분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몇 번이고 훑으며 자기 이름을 찾아보는 심정이 이해가 될 정도로, 나도 몇 번이고 훑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고 나니 갑자기 모든 게 허무해져서 아무 것도 하기 싫었고, 글도 더 이상 써지질 않았다.

둘째는 글을 올리고 난 후의 반응이 뜨뜻미지근할 때, ‘뭐 하러 이런 고생을 하지?’라는 생각이 든다는 거다. 글을 한 편 쓰려면 여행기는 반나절 정도의 시간이면 충분하지만, 강의 후기는 하루 정도의 시간이 들어간다. 때에 따라서는 잘 써지지 않아 몇 날 며칠을 끙끙 앓기도 한다. 그렇게 힘들게 써서 공유를 할 때엔,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봐주겠지하는 기대가 어리게 마련이다. 내가 좋아서 쓴 글이지만, 여전히 누군가의 반응이, 누군가의 호응이 나를 춤추게 하니 말이다. 그런데 몇 분이 지나도록 몇 시간이 흐르도록 별다른 반응조차 없으면, ‘내가 이러려고 글을 썼나?’하는 자괴감에 빠져들 수밖에 없고, 의욕은 다 타버린 재처럼 사그라지고 만다.

이런 일들을 겪으며 한참동안 아마추어 사회학후기는 쓸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편하게 쓸 수 있는 서울숲 트래킹 후기영화 제작기, 스마트폰 바꾼 이야기 등을 쓰며 잠시 숨고르기를 했던 것이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조차 자괴감이 들 때가 있는데, 남이 대신 해준 일이라면 오죽할까~   

 

 

 

내 생각을 말하기도 벅찼다

 

그런데 이쯤에서 다시 살펴봐야 할 것은 왜 글을 쓰는가?’하는 점이다.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글(우물을 찾는 마음으로 쓴다, 살기 위해 쓴다, 현실을 살아낸 발자취를 담기 위해 쓴다)에서 밝힌 적이 있으니, 여기서는 아마추어 사회학 후기를 왜 쓰려 하는가?’를 중점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저번 후기의 말미에서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언어는 의사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란 생각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라고 쓰며 여태껏 당연히 받아들였던 언어=의사소통이 아님을 명확히 밝혔다. 어찌 보면 그 말엔 글을 쓰면서 잃어버렸던 본심이 이미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나 또한 =내가 의도한 바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한 것으로 한정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최대한 나의 생각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영화의 대사나 고전의 내용을 인용하기도 하고, 일상의 예화를 가져오기도 했던 것이다.

 

 

최근에 봤던 영화 중에 가장 가슴 뛰게 만든 영화. 언젠가는 이 영화를 인용할 때도 있을 거다. 

 

 

그런데 문제는 내 생각을 먼저 전하려다 보니, 상대방을 과소평가하게 되어 글이 지지부진하게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건 좋게 말해 상대방에 대한 배려심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그 밑바탕엔 내 말만 일방적으로 들어하는 심리가 깔려있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이 내 글을 읽으며 내 이야기만 주구장창 들어야 하니, 얼마나 답답했겠는가. 더욱이 그런 식으로 글을 쓰면 다른 생각들이 들어설 공간은 완전히 사라지고, 말과 말이 부딪히며 조금씩 위치가 이동해가는, 그래서 제삼자가 등장하는 역동성은 깔끔히 제거된다. 이건 이를 테면 박제된 동물처럼 모양은 제대로 갖췄으되 생기는 잃어버린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언어의사소통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으면서도 나는 정작 =소통이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니, 스스로 아이러니의 늪에 빠져 허우적댔던 거라 할 수 있다.

 

 

카자흐스탄 탈디코르간 박물관에 박제된 독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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