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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아마추어 사회학 - 8. 심리학, 그 너머의 커뮤니케이션 본문

연재/배움과 삶

아마추어 사회학 - 8. 심리학, 그 너머의 커뮤니케이션

건방진방랑자 2019. 10. 23.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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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심리학, 그 너머의 커뮤니케이션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여태까지와는 다르게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면, 여기서 멈추지 말고 좀 더 나의 생각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밀고 들어갈 필요가 있다.

 

 

▲ 작년 여름방학 연수로 교사 신뢰 서클이란 것을 했었다. 이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침잠하게 만들더라.

 

 

 

나를 캐어 들어가면 내가 있다?

 

누구나 그렇지만, ‘내 생각은 내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한 것을 심리학은 내 생각을 내가 잘 모른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표면화된 생각은 잘 알지만, 그 속엔 어마어마한 무의식의 생각들이 잠재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심리학에선 기본적으로 지금 너의 마음이 어떠니?”라고 자기 안으로 깊이 침잠해 들어가 자기를 표현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지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심리학은 기본적으로 확고부동한 내가 있다고 전제한다. 그러니 어떤 것에도 휩쓸리지 않는 주체가 있으며, ‘그 주체만의 오리지널한 생각이 있다고 단정 지었던 것이다. 그래서 자존감의 여섯 기둥이란 책에선 아예 그 목표는 누가 선택했습니까? 당신입니까, 아니면 당신 안에 있는 중요한 다른 사람입니까? (83)”라고 물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내면으로 파고들면 나의 진심어린 생각이 드러나고 나만의 소리가 나오기보다, 사회화된 생각이 표출되고 타인의 소리가 나오게 마련이다. 그러다 보면 헛갈리게 되는 것이 과연 어디까지가 나의 생각이고, 어디까지가 너의 생각일까?’하는 부분이다. 나누려 하면 할수록 더 깊은 늪에 빠져드는 느낌이 드니 말이다.

 

 

▲ 이 책엔 자신감은 결국 자신이 얼마나 자기에 대해 잘 알고 잘 분석하냐에 달려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게 무척이나 황당했다.

 

 

 

나를 캐어 들어가면 내가 없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우린 왜 생각에 대해, 말에 대해 나의 것과 너의 것을 나누고 쪼개려 하는 걸까? 그건 심리주의가 사회의 중심 학문이 되면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너무도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되고 말았다. 그래서 우린 굳이 심리학을 배우지 않았어도, 누구나 심리주의자라 할 수 있는 것이다.

 

 

 ▲ 우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심리주의로 세상을 보고, 사람을 판단하며, 관계를 이해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린 가장 먼저 심리주의가 남긴 해독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 당연함에 갇혀 보이지 않던 좀 더 다양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와 같이 철옹성처럼 견고하게 쌓여 있던 심리주의란 성벽에 균열을 낸 사람들로는 바흐친Bakhtin(1895~1975), 비고츠키Vygotsky(1896~1934), 우치다 타츠루內田樹(1950~), 오자와 마키코小沢牧子, 이왕주 등이 있지만, 여기서는 바흐친의 말을 통해 심리주의 너머를 생각해보기로 하자.

 

 

말 속의 말word in language’은 반은 타자의 말이다. 이것이 자신의 말이 되는 것은 화자가 그 말 속에 자신의 지향억양을 심어 말을 지배하고, 말을 자신의 의미와 표현의 지향성에 흡수할 때다. 이 수탈appropriation의 순간까지 말은 중성적이고 비인격적인 말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왜냐하면 화자는 언어를 사전에서 가져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타자의 혀 위에, 타자의 맥락 안에서, 타자의 지향에 봉사해서 존재한다. , 언어는 필연적으로 타자의 것에서 빼앗아 와서 자기의 것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Bakhtin, 1981: 293-294

 

 

심리주의자는 자신의 말이나 생각을 통해 나와 너를 끊임없이 나누고 오리지널한 자아만을 추구하려 할 때, 반심리주의자는 자신의 말이나 생각은 어쩔 수 없이 타자의 것이기에 나눌 수 없음을 분명히 한다. 그러니 오리지널한 나라는 것도, 나만의 말이란 것도 있지 않다. 그저 남의 말을 가져와서 나의 말처럼 쓰고 있을 뿐이다.

 

 

 ▲ 심리주의자들은 '주체'를 얘기할 때, 우치다쌤은 '낡은 목조건물이 나'라는 탁월한 비유를 들어줬다. 

 

 

 

커뮤니케이션은 ‘1%의 가능성에 몸을 맡기는 것

 

그러니 애초에 나의 생각을 100% 전달한다는 말은 흠칫뿡같은 말이다. 애초에 나라는 것 자체가 없으니, 나의 생각을 전달한다는 말은 거짓말이 되기 때문이다. 그저 타인의 생각을 나만의 방식으로 전달하는 것이고, 그걸 전달받는 사람 또한 타자의 혀 위에, 타자의 맥락 안에서, 타자의 지향에 봉사하며 자기 것으로 하는 과정을 거칠 뿐이다. 그런 과정들을 거치기에 1%라도 이해하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동섭쌤이 강의를 시작하면서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이유도 100%를 이해해야 한다고 부담 갖지 말고, 그저 강의의 맥락 안에서, 강의의 지향에 몸을 맡기고 1%라도 자기 것으로 하면 된다고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러니 우리는 아마추어 사회학을 들으며 어떤 내용들을 지배할 것인지, 어떤 내용들을 자기의 의미와 표현의 지향성에 흡수할 것인지 고민하기만 하면 된다. ‘1%의 가능성그것만 믿고, 재밌게 커뮤니케이션을 하면 된다.

 

 

▲  소통이란 원래 그런 것이란 걸 안다면, 잘 안 되기 때문에 하고 싶어지고, 잘 모르기 때문에 배운다는 맥락도 이해가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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