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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 사회학 - 10. 언어는 끊임없이 미끄러진다 본문

연재/배움과 삶

아마추어 사회학 - 10. 언어는 끊임없이 미끄러진다

건방진방랑자 2019. 10. 23.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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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언어는 끊임없이 미끄러진다

 

 

우리의 커뮤니케이션이 오해를 빚을 수밖에 없다는 걸 메러비안 법칙과 애매한 표현들, 그리고 이미 글자 자체에 담겨 있는 이중성의 의미를 통해 살펴봤다.

 

 

나의 생각을 내가 모르지만, 안다 해도 그건 10%만 겨우 전달될 뿐이다. 

 

 

 

내 생각은 이야기가 시작되면 사라진다

 

둘째는 내 생각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누구나 말을 하기 전부터 각자의 확고한 생각이 있다고 착각한다. 그러니 자기 생각에 따라 말을 하면서 대화를 하고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분명히 대화를 하기 전에 내가 말하려는 의도라는 게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말을 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는 말하려는 의도와는 상관없이, 전혀 다른 말이 튀어나오기도 하고,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그게 어찌 보면 대화의 본질이니 말이다.

만약 내가 말하려는 의도대로만 말을 한다고 상상해보자. 그러면 상대방의 반응, 내 생각의 변화 같은 것엔 아랑곳하지 않고 나의 의도만을 일관적으로 말한다는 것인데, 그건 대화라기보다는 독백이라고 보아야 맞다. 아래의 인용문은 우치다쌤이 교수였던 시절 면접에서의 경험담이다.

 

 

그럴 때 우리 대학을 지망한 동기는 무엇입니까?”라는 진부한 질문을 하면 질문을 하는 쪽이 매우 곤란해지기 마련입니다. 수험생들은 다름 아닌 그러한 진부한 질문에 대한 대답을 만전의 자세로 준비해서 시험장에 왔기 때문에 암기한 대답을 구두점이나 억양도 없이 단조롭게 내리 읽듯 면접관에게 들려주니까요.

() 여기서 이 학생의 말을 듣고 있는 이는 사실 누구일지라도 상관없습니다. 나일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굳이 당신일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귀에다 대고 떠들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이런 그냥 막 읊어대기같은 면접시험은 깊은 피로감을 안겨줍니다.

-스승은 있다, 우치다 타츠루 저, 박동섭 역, 민들레 출판사, 2012, 105~106

 

 

이처럼 이미 말하고 싶은 의도만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구두점이나 억양도 없이 단조롭게 내려읽는 것과 같아서, 상대방에게 굳이 나일 필요없다는 생각을 하게하고, ‘깊은 피로감만을 안겨줄 뿐이다. 그건 의사소통이 아닌 의사단절이고, 감정의 교류가 아닌 감정의 차단이다.

 

 

교장의 훈화야말로 앞의 대상이 필요 없는, 그래서 깊은 피로감만을 남겨주는 대표적인 말이다. 

 

 

그렇기에 이왕주 교수상대로부터 이야기를 들으면 나의 위치가 조금 옮겨집니다. 그건 어떤 식으로든 나의 변화를 수반하는 것이죠. 그 상태에서 나 또한 상대방에게 이야기를 던집니다. 그러면 상대방 또한 어떤 감각적인 위치가 옮겨질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렇게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위치가 옮겨지고 옮겨지다 서로 가까운 거리에 멈추든 먼 거리에 멈추든 멈추게 됩니다. 그게 바로 소통입니다. 그와는 반대로 위치가 조금도 움직여지지 않는다면, 그건 소통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죠.”라고 말함으로 대화의 본질은 확고한 내 생각을 견지하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이 희미해지는 것이라 보았으며, 우치다 타츠루 쌤대화할 때 제삼자가 말하기 시작하는 순간이 바로 대화가 가장 뜨거울 때입니다. 말할 생각도 없던 이야기들이 끝없이 분출되는 듯한, 내 것이 아닌 것 같으면서도 처음부터 형태를 갖춘 내 생각같은 미묘한 맛을 풍기는 말이 그 순간에는 넘쳐 나옵니다.”라고 말함으로 대화의 본질은 주체는 사라지고 제삼자가 등장하는 것이라 보았다.

대화를 하다 보니 내 생각이 희미해지고, 주체 또한 사라져서 제삼자까지 등장하니, ‘내 생각이라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니 내 생각을 100% 전한다는 말은 말도 안 된다.

 

 

민들레 읽기 모임 중. 이야기를 함께 하다 보면, 의도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게도 된다. 

 

 

 

언어는 행위다

 

이와 같은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통해 지금껏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언어는 의사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란 생각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언어=의사소통이 아니라고 한다면, 과연 언어란 우리에게 무엇이란 말인가?

이렇게까지 생각을 할 수 있다면, 드디어 아마추어 사회학의 핵심에 한 걸음 가까워졌다고 보면 된다. 이 강의 자체가 일상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이상한 것인지 돌아볼 수 있게 만들며,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생각들이나 말들이 누군가에겐 얼마나 폭력적이고 얼마나 차별적인지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든다. 이미 우린 일상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그런 모든 것을 바꿀 순 없다하더라도, 그런 사실을 제대로 알고 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올해 초 트위스트 교육학 강의 당시의 모습. 보드에 쓰여 있는 'speech as action'이란 말이 보인다. 

 

 

 

인용

목차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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