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조삼모사에 대한 오해
내 방에 돌아왔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이들의 대화에 관심을 끊은 건 아니었다. 내용을 알고 싶다기보다, 갑자기 분위기가 싸늘해지진 않는지 멀찍이 지켜보는 것이다. 한동안 언제 싸웠나 싶게 그 나이 또래 아이들처럼 웃고 떠드는 소리가 내 방까지 들렸다.
마무리 짓지 못한 이야기
그렇게 1시간 30분정도 흘렀다. 그 때부터 분위기는 급반전되기 시작했다. 서로의 이해가 상충되는 상황에 부딪히면서 심각하게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A학생은 자신이 피해를 받은 만큼의 보상을 원했다. 에버랜드 자유이용권과 음식을 사주길 바란 것이다.
물질적인 보상을 바라는 순간, 이 문제는 감정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법적인 문제가 되어 버린다. 그러려면 무얼 얼마만큼 잘못했는지 수치화해야 하며, 그만큼 보상하라고 판결을 내려야 한다. 그건 친구끼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아닌, 사무적인 관계에서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갑자기 상황이 급반전되니, A학생을 제외한 모든 학생은 황당해 할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A학생과 가장 친한 친구조차 그 말엔 동의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A학생은 친한 친구에게 ‘궁지에 몰릴 때, 나를 도와주긴커녕 몰라라 한다’며 못마땅해 했다.
A학생은 화해가 아닌 보상을 바라며 이야기를 엉뚱한 방향으로 몰고 갔고, 우군을 적군으로 만들어 일대 다수의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자신의 주장을 전혀 굽히지 않더라. 그래서 하는 수없이 이쯤에서 대화의 시간을 끝내야 했다. 3시간동안 치열하게 얘기했고 그 속에서 조금이라도 성장한 모습을 볼 수 있으니 이 정도면 다들 최선을 다한 것이다.
조삼모사, 소통에 관한 이야기
조삼모사朝三暮四는 ‘얄팍한 속임수로 남을 속인다’라는 뜻으로 잘 알려진 사자성어이다. 출처는 『한비자』와 『장자』에서 나온다. 두 군데 책에서 쓰인 본뜻은 우리가 지금껏 알고 있던 뜻과는 상당히 다르다.
정신과 마음을 통일하려 애쓰면서도, 모든 것이 같음을 모르는 것을 조삼이라 말한다. 무엇을 조삼이라고 하는가?
勞神明爲一, 而不知其同也, 謂之朝三. 何謂朝三?
옛날에 원숭이를 기르던 사람이 원숭이들에게 도토리를 주려고 “아침에는 세 개 저녁에는 네 개를 주겠다.”라고 말하니 원숭이들이 모두 화를 내었다.
“그러면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를 주겠다.”라고 말하자 원숭이들이 모두 기뻐했다.
狙公賦芧曰: “朝三而暮四.” 衆狙皆怒; 曰: “然則朝四而暮三.” 衆狙皆悅.
명분이나 사실은 달라진 것이 없는데도 기뻐하고 성내는 반응을 보인 것도 역시 이때문이다. 그래서 성인은 모든 시비를 조화시켜 균형된 자연에 몸을 쉬는데, 이것을 일컬어 양행이라 말한다.
名實未虧而喜怒爲用, 亦因是也. 是以聖人和之以是非而休乎天釣, 是之謂兩行. -『莊子』 「齊物論」4
이 이야기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소통에 있기 때문이다. 조삼모사를 ‘소통을 하려 노력하는 사람의 이야기’로 읽어야만 본뜻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 그러려면 우린 ‘원숭이 키우는 사람狙公’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이 글을 읽어야 한다.
▲ 우리가 알고 있는 '조삼모사'는 '얄팍한 꾀로 남을 속이는 것'을 말하는데, 윗 만화가 이걸 잘 나타내준다.
소통은 상대방에 대한 이해로 시작된다
저공은 원숭이에게 도토리를 나누어주려 한다. 그런데 도토리 개수는 제한되어 있다. 원하는 만큼 줄 수 있다면야, 이런 문제는 발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니, 소통을 해야 한다.
저공은 원숭이의 특성도 생각하고 원숭이들의 요구도 머릿속으로 고려하며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라는 조건을 정한 것이다. 저공 스스로는 그 정도면 원숭이도 별 문제 없이 수용하리라 기대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걸 말하자마자 일거에 거절당하고 만다. 자신이 얼마나 깊은 생각을 했든, 남을 얼마나 배려했든 상관없이 타자와 의견이 충돌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우린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할까? 자신의 의견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며 관철하려 노력하지 않던가.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속마음을 몰라준다며, 타인을 비방하지 않던가. 하지만 그래서는 전혀 소통이 되지 않는다. A학생의 패착은 자신이 주장이 상대방에게 먹히지 않음에도 끝까지 고수하려 했다는 데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저공은 다시 머리를 쥐어짰다. 아마 자신이 여태껏 느껴왔던 ‘원숭이는 내가 누구보다도 잘 알아’라는 자부심에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소통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처음에 제시했던 조건은 잊고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여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라는 조건을 정한 후 제시했다. 그러자 원숭이는 받아들였고 저공과 원숭이의 소통은 이루어진 것이다. 만약 이 또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면, 받아들여지는 그 순간까지 저공은 다른 조건을 제안했을 것이다.
그래서 여기서 중요하게 봐야 할 것은 ‘양행兩行’이라는 단어다. 그걸 우리말로 풀면, ‘두 개의 길’이라는 뜻이다. 타자와 나는 전혀 같은 길로 갈 수 없다. 서로 분명히 다른 길을 만들며 가는 존재일 뿐이다. 그런데 어떻게 ‘내가 갔던 길’만을 타자에게 무작정 권하며, 윽박지를 수 있단 말인가. 애초부터 타자와의 만남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는 전혀 다른 길을 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럴 때에 타자의 진심에 가까이 다가가려 노력하게 되며, 그런 노력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는 시점에서야 소통이 어느 정도 성공하는 것이다. 저공이 끊임없이 원숭이들의 진심에 다가가려 노력했던 것처럼, 우리 또한 그래야만 비로소 소통을 할 수 있다.
그래서 2016년 현천고에서 강의를 했던 우치다타츠루 선생님은 소통에 대해 “저 사람과 나는 원래 99%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다. 겨우 1% 이해의 가능성만이 있을 뿐이기에, 그걸 단서로 삼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도록 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조금 밖에 이해를 못했다고 화를 내거나 상대방이 꽉꽉 막혔다고 비난할 게 아니라, 조금 알게 된 가능성에 만족해하면 된다”라고 말했는데, 그건 장자의 소통에 대한 생각과 상통하는 말이라 할 수 있다.
▲ 커뮤니케이션은 아예 상대방을 1%만이라도 이해할 수 있다면 다행이라는 사실에서 시작해야 한다.
실수하기에 아름답다
A학생은 전혀 소통하려는 마음이 없었다. 자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피해자’로 규정하고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소통이 되기보단 ‘하소연’이나 ‘일방적인 주장’만 나올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덧붙여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상대방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는데도, 자신의 주장을 전혀 굽히려 하지 않았다. 그러니 일이 해결되기보다 꼬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소통疏通이란 ‘트여서 통하게 한다’는 뜻이다. 물을 흐르게 하려면 막아 놓은 둑을 터야 하듯이, 말이 흐르게 하려면 나만 옳다고 주장하는 고집固執과 아집我執을 깨야 한다. 그럴 때 나의 속마음도 전해지며, 억울했던 부분도 충분히 전달되는 것이다.
오늘과 같은 경험도 소중한 경험이라 생각한다. 이런 경험들을 통해 소통의 묘미를 알게 됐을 것이고, 관계를 풀어가는 노하우도 조금이나마 쌓였을 것이다. 경험의 장 속에서 실수도 하고, 실패도 하며 그만큼 우리는 자란다.
▲ 우슈토베의 밤하늘에 뜬 별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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