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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18.05.31(목) - 클리나멘 같은 인연 본문

연재/만남에 깃든 이야기

18.05.31(목) - 클리나멘 같은 인연

건방진방랑자 2019. 4. 30.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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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과 선은 마주쳐야 한다

 

 

리쌍의 오래된 노래 중에 우리 지금 만나당장 만나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노래가 있다. 그 노래가 나왔을 때 처절한 내용임에 비해 흥겨워 엄청 자주 들었고, 오죽했으면 2010년에 마지막 임용을 준비하면서 만든 자료집의 이름에 이 노래 제목으로 쓸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 노래에 푹 빠져 있던 때에 난 사람은 선이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누구나 알다시피 선은 어떤 것도 아니다. 그저 점과 점을 연결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어떤 지향점도, 어떤 사건도, 어떤 변화도 있지 않다. 하지만 선과 선이 마주치면 접점이 생기고, 거기에 또 다른 선까지 마주치면 삼각형이 되어 완전히 형질이 변화하게 된다. 그걸 도약이라 할 수 있고, 나라는 인간이 가진 한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계기로 들어서는 가능성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이유에서 한 사람과 다른 한 사람의 인연은 단순한 수학 공식과 같이 ‘1+1=2’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어떤 존재와 마주쳤냐에 따라 ‘1+1=인 경우도 있지만, ‘1+1=-x’가 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이 노래 정말 좋다. 흥겹고도 절절한 마음이 담겨 있는 수작이라 많이 들었다. 

 

 

 

어긋남은 축복이다

 

일찍이 에피쿠로소는 이런 이야기를 클리나멘을 통해 한 적이 있다. 그는 지구라는 어마무시한 생명체의 활동공간이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에 수직으로만 떨어지던 한 원자가 약간 사선으로 엇나가 떨어지게 되었기 때문이라 보았다. 사선으로 엇나가던 원자는 바로 옆에서 직선으로 떨어지던 원자와 마주쳐 커지고 다시 그 옆의 원자와 연쇄적으로 마주치고 마주쳐서 하나의 큰 덩어리, 즉 지구가 탄생했다고 본 것이다. 작디작은 원자 하나가 기존 법칙을 위배하고 약간 엇나갔을 뿐인데, 그게 지구 탄생의 결정적 계기였으며, 우연이 얼마나 거대한 힘을 내장하고 있는 지에 대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그건 좀 더 쉽게 말하면, 리쌍이 말한 당장 만나가 빗어낸 참극이자 희열이다. 그때 내가 어떻게 변할지, 그리고 어떤 새로운 것들이 생성될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그럼에도 분명한 건 사람이 선인 이상, 선과 선은 마주쳐야 하고, 마주쳐서 면으로, 그리고 또 다른 선과 마주쳐 다각형으로, 그러다 결국엔 원으로 형질을 끊임없이 변화시켜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말할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이란 존재는 나를 헝클어버릴 수 있는 저주가 아니라, 예전의 나와는 완전히 다른 나로 만들어가고 그렇게 이끌어줄 수 있는 축복이란 사실이다. 그러니 엇나가고 마주치고, 계획을 수시로 무너뜨려 우연의 세계를 한 없이 가볍게 내딛으면 되는 것이다.

재밌게도 5월이 거의 끝나가는 30일에 전혀 다른 두 개의 선과 마주쳤다. 지금부턴 그 두 개의 선이 나와 어떻게 마주쳤고 그게 어떤 변화들을 낳았는지 그 이야기를 풀어보도록 하겠다.

 

 

교수님 연구실에 방문하여 필요한 자료를 받아왔다. 5월은 나에게 뭉클한 한 달이었다.  

 

 

 

넘어진 그 자리에서만 일어설 수 있다

 

막상 다시 한문공부를 하겠다고 호기롭게 맘을 먹고 6년 정도 살았던 서울이란 익숙한 곳을 떠나 새로운 희망을 꿈꾸며 고향 전주에 터를 잡았다. 하지만 한문공부란 게 생각만큼 쉽지가 않더라. 더욱이 6년 정도 공부를 아예 놨던 터라 한문은 수학의 기호만큼이나 외계어로 보였고, 임고반의 자리는 면벽수행을 하는 공간만큼이나 갑갑하게만 느껴졌다.

이럴 때 누군가에게 가서 힘들 줄은 알았지만 막상 해보니 상상 이상이던데요. 제가 만용이었던 걸까요?”라고 물으면, 임용을 다년간 공부했던 사람이라면 십중팔구 누구는 뭐 공부가 잘 되어서 하나요. 해야 하니까 하죠. 그러니 꾹 참고 해보세요.”라고 말할 것이다. 맞다, 다시 하겠다는 선택도 내가 했고, 결국 적응하는 문제도 나에게 달려 있으니, 이 과정을 넘어가는 것도 내가 해야 하고, 이 과정을 통해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도 내가 해야만 한다.

하지만 누군가 넘어진 그 자리에서만 일어설 수 있다라고 했듯이 내가 실패했던 바로 이 자리, 뼈저린 아픔을 간직한 이 자리에서만 일어설 수 있다. 그리고 우연처럼 그 기회는 정말 찾아왔다. 때마침 새로 오신 교수님이 산문과 한시 스터디를 진행하고 있었고 우연하게 그 사실을 알게 되어 참석하게 됐다. 오랜만에 수업을 듣게 됐고, 그리고 바로 그 다음 번에 발표까지 준비하게 되니 오래도록 잊고 있던 한문의 세계를 유영하는 재미, 깊이 연구할 때 찾아오는 흥분, 사람들과 열띠게 토론할 수 있는 희열을 맛볼 수 있다. 그래 바로 이게 한문 공부를 하는 맛이고, 모르는 걸 알게 될 때에 가슴 시려오는 맛이었다.

 

 

모처럼 발표준비를 했다. 그 과정을 통해 한문 공부를 하는 재미를 다시금 느끼게 됐다. 위의 사진은 첫 발표 자료다.  

 

 

 

2. 미니멀하지 않은 거대한 마음을 선물 받다

 

 

발표준비를 위해 자료를 찾다 보니 원문파일이 없는 게 무척이나 아쉽더라. 공부 자료를 만들려면 어떻게든 여러 자료들을 참고하고 종횡무진 누비며 이해해야만 좀 더 원 자료가 쉽게 이해가 됐으니 말이다.

 

 

 

엇나감이 만든 고마운 인연

 

그런데 이때 생각난 사람이 바로 고전번역원에 있는 후배였다. 나야 2010년 이후로 한문은 놨지만, 그 녀석은 그 후로도 더욱 발분하여 여러 번역작업에도 참여했고 꾸준히 공부를 해왔으니 말이다. 그러니 그 기간 동안 이미 나와는 넘사벽인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아주 간절하면서도, 아주 간곡한 목소리로 SOS를 외쳤던 것이다. 이럴 때 연락할 수 있는, 편하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전문가가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가(나 왜 이리 인복이 좋은 거냐^^).

바로 이 녀석과의 인연이 에피쿠로소가 말한 클리나멘에 속한다. 처음 알게 됐을 때 이 녀석은 재학생으로 이제 막 알을 깨고 나와 세상을 경이롭게 바라보며 호기심 어린 시선을 지닌 병아리 같은 존재였고, 나는 삼수생으로 임용을 준비하는 그렇고 그런 존재였다. 무엇 때문에 인사만 나누다가 말문을 트게 됐는지는 모르지만, 그 얘기를 통해 처음으로 대안학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2011년에 내가 대안학교에 취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다가 2010년에 함께 스터디를 하게 되면서 처음으로 선과 선이 마주쳐 접점이 생겼다. 거기엔 이 녀석과 친한 아이들 2명과 05학번 후배까지 총 5명이서 함께 스터디를 꾸렸다. 겨우 한 학기 정도밖에 같이 하지 않았지만, 그 시간 동안에 편안하게 하고 싶던 것을 모두 다 해봤던 것 같다.

그래도 그런 인연이 있었기에 나는 대안학교에 취직하면서 서울에 올라오게 됐고, 그 녀석은 서울에 있는 고전번역원에서 전문번역 과정을 이수하게 됨으로 자연히 서울에 올라오게 되어 10년 이후 끊겼던 관계가 14년부터 다시 시작되어 1년에 한 번씩 만나며 서로의 근황을 묻는 편한 관계가 되었다. 그리고 그건 201712월에 이사를 했다며 집들이까지 초대할 수 있을 정도로 이어졌다.

이쯤에서 생각해봐도 이와 같은 인연은 놀랍기만 하다. 2008년에 처음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만 해도, 그리고 2010년에 스터디를 같이 했을 때만 해도 이렇게 긴 시간 동안 편안하게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인연일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그건 그 녀석도 마찬가지일 거다. 그건 그만큼 엇나감의 축복, 우연이란 축복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작년 12월 17일에 새롭게 이사한 집으로 아이들을 초대했다. 다들 2시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는데 냉큼 와주니 고맙더라. 

 

 

 

5월은 행복이었네

 

그 녀석은 계속 한문을 공부해왔던 전문가답게 여러 중요한 얘기들을 스스럼없이 해줬으며,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자료들을 보내주겠다고 흔쾌히 답해줬다. 어찌 보면 귀찮은 부탁, 과한 부탁일 수도 있는데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고 아주 쿨하게 받아들여줬다.

그러면서 갑자기 책을 보내줄 테니 주소를 알려달라고 한다. 성백효 선생님의 사서 번역본이 새롭게 출판되어 나왔기에 그걸 보내주겠다는 것이다. 나야 이미 예전에 나온 번역본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새롭게 살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솔직히 어떤 식으로 편집이 됐는지, 그리고 어떤 내용들이 더 첨가가 됐는지 보고 싶기는 했었다. 더욱이 최근엔 맹자를 한 편씩 올리고 있으니, 새로운 번역서를 참고할 수 있다면 번역이 더 나아질 건 뻔할 뻔자였다. 이런 상황에서 그 녀석이 먼저 내 마음을 꿰뚫어보기라도 했다는 듯이 보내주겠다고 한 것이니, 깜짝 놀란 것도 깜짝 놀란 거지만 정말로 행복해 절로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극도로 행복한 순간에 사람은 이성을 잃고 바보처럼 실실 웃는다던데, 그때 내 모습이 정말 그랬고 정말 오랜만에 살아 있어 행복하다는 느낌을 들었다(접때 한어대사전과 사고전서를 받았을 때도 이와 같은 충만감이 느껴졌다. 그러고 보면 요새 이래저래 정말 행복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 그런 상황이니 어찌 장난을 치지 않을 수 있으랴. 그래서 오늘부터 누나로 모시겠습니다~ 충성~”이란 너스레를 떨었던 거다. 도올 선생님은 대인은 반드시 유머가 있다라고 말했는데, 그 말에 백 번 동의하기에 그처럼 반응한 거다.

 

 

생각도 못했는데 책을 보내준다고 하니, 그것도 전공과 관련된 책을 보내준다고 하니 절로 좋다. 완전 조으다.

 

 

이러한 내용이 바로 저번 주 수요일인 23일에 나눈 얘기다. 책이 언제 올지 기다리고 있으니, 한문은 더욱 재밌어졌고 나날은 더욱 축복처럼 느껴졌다. 신흠이 쓴 野言중에 문을 닫고 마음 맞는 책을 보는 것과 문을 닫고 마음 맞는 친구를 맞이하는 것과 문을 나가 좋아하는 정경을 찾는 것이 바로 인간세상의 세 가지 즐거움이다(閉門閱會心書, 開門迎會心客, 門尋會心境, 此乃人間三樂.)’라는 구절을 공부하며 교수님은 “‘’, ‘’, ‘대신에 지금 자기에게 의미 있는 것을 넣어 봐도 좋을 것 같아요. 그 중 재밌는 대답 중엔 문을 열고 무척 기다려온 택배를 맞이하는 것開門迎會心宅配이란 것도 있었어요.”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걸 공부하던 순간엔 별로 공감이 되지 않았다. 하긴 요즘엔 물건을 사면서도 시들시들해져서 택배가 오길 손꼽아 기다린 적이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녀석이 보내준다던 책을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고 있으니, 위에서 말한 문을 열고 무척 기다려온 택배를 맞이하는 것이 엄청 공감되더라.

그렇게 한 주가 흐르고 마침내 그토록 아기다리고 고기다리던 선물이 나의 손에 들어왔다. 이 행복을 무엇에 비할 수 있을까. 택배를 받고 뜯어보는 그 순간까지도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요즘 책을 사보면서 느껴본 적 없는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두근거림이었다. 포장을 다 뜯는 순간, 드디어 새로운 사서 번역본이 눈에 들어왔고 정말로 고맙고도 또 고맙다는 마음이 한가득 들었다. 이렇게까지 마음을 써줘서 고마웠고, 손수 포장하고 보내야 하는 번거로움에도 애써주니 고맙게 느껴졌다.

이제 이것으로 한문이란 바다를 재밌고 신나게 건널 수 있는 든든한 자료집으로 쓰도록 할 것이다. 이렇게 마음 써준 그 진심을 고스란히 받아 어떤 학문적인 성장을 이루어낼 수 있을지 지켜봐줬으면 좋겠고 너 또한 연구실에서 공부와 씨름하고 있을 텐데 바람도 쐬고 반가운 친구도 만나며 신나게 공부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가슴 뭉클하고 희망찬 5월을 만들어줘서 고맙다! 6월도 재미지게 살아보자.

 

 

고마운, 그리고 공부가 무척 하고 싶게 만드는 자료집이 도착했다. 기다린 만큼이나 감격스럽다. 

 

 

 

3. 건빵이란 선과 앵두란 선의 마주침

 

 

지금 한반도엔 평화의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고 있다. 다음 주면 북미정상회담을 할 것이고, 그 다음 날엔 지방선거도 할 것이다. 어쩌면 국내외적으로 많은 변화의 가능성을 담고 있는,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역동적이며 모든 희망을 한 아름 품고 있는 가능성의 시기이기도 하다.

 

 

 

남과 북이란 선이 마주치다

 

그런데 재밌는 점은 이런 분위기가 되기까지 무수한 과정들을 지나왔다는 사실이다. 일례로 12월까지만 해도 이런 분위기는 전혀 아니었다. 그때만 해도 남북의 대결모드는 계속 진행 중이었고, 머지않아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이기도 했다. 이름하야 일촉즉발의 상황, 북한은 핵실험을 포기할 생각이 없어보였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로켓맨이란 비하발언과 함께 격앙된 반응을 여지없이 보이고 있었으니 말이다. 오죽했으면 다른 나라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린다 해도 선수단을 파견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반응이 나왔겠는가.

하지만 북한의 1월 신년사에서 북한선수단과 응원단을 파견할 의사가 있음을 밝혔고, 그 논의는 아주 급속도로 진행되어 남북 단일팀 구성, 삼지연관현악단 공연, 김여정(김일성 일가 남한 최초 방문) 방문과 문대통령 회담, 판문점에서의 남북정상회담과 같은 일련의, 하지만 무엇 하나 결코 가볍지 않은 사건들이 순식간에 진행되었다.

평행선으로만 달려가던 두 개의, 그래서 영영 만나지 않을 것 같던 선이 어느 한 선이 약간 편위를 그리며 휘기 시작하여 어느 순간에 마주쳤고 그게 마주친 후엔 예상치 못한 결과를 만들며 지금의 상황에 이르게 됐던 것이다. 바로 이와 같은 변화의 과정들, 그리고 뒤섞임, 예상치 못한 상황들이 클리나멘의 한 단면이라 할만하다.

 

 

변화는 그렇게 느린 듯 빠른 듯 다가오고 있다. 

 

 

 

굳어버린 신념이 아닌, 탱탱볼 같은 열린 귀가 필요하다

 

남과 북만큼이나 후배가 보내준 전공 관련 서적은 나에게 모처럼 클리나멘이란 무엇인지 충분히 느끼게 했다. 그래서 그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하면서 첫 번째 클리나멘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부턴 두 번째 클리나멘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우선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선 단재학교에서 근무할 때로 돌아가 봐야 한다. 201110월에 단재학교에 수습교사로 첫 발을 내딛었다. 그리고 늘 내 꿈이 일도 하고 공부도 하며 모르는 것도 알아가고 사람도 알아가는 삶이었다. 다행히도 그 당시 대표교사님도 그런 생각에 동의했기에 나에게 수요일마다 오전에 공부모임이 있는데, 학교에 나오지 않아도 좋아요. 그곳에 가서 공부하도록 하세요.”라는 파격적인 제안을 했었던 것이다. 그래서 참여하게 된 모임이 민들레 읽기 모임이다.

민들레는 격월간 잡지로 학력 경쟁, 성적지상주의, 교과 학습 위주로 휘몰아가는 기존의 교육을 반성하며 여러 다양한 교육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묶어 교육이란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잡지였다. 이미 그곳에는 여러 해전부터 독자들이 자발적으로 공부모임을 만들어 진행하고 있었고, 서울에선 매주 수요일 오전에 함께 모여 과월호 하나씩을 선정해 읽고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내공이 쎈~ 분들과 어우러져 굳어버릴 대로 굳어버린 내 생각을 유들유들하게 펴나가는 과정이었다.

이쯤에서 고백하자면 임용을 공부하면서, 좋은 교사상을 꿈꾸다보니, 생각은 더욱 고정되어 갔고 더욱 자임하는 마음은 커져만 갔다. ‘~~한 교사가 되어야 해라는 생각은 분명히 확고한 자신에 대한 신념이긴 했지만, 그런 생각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좋은 교사상나쁜 교사상이 있다는 생각으로 나 자신을 한계 지었으니 말이다.

바로 그런 시기에 단재학교의 교사가 되었고, 그리고 이런 모임에 참여하게 된 것이니 행운 중 행운이라 할만하다. 내공 쎈 누님들과 한바탕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면, 내가 구축한 교사상이나 교육상이란 게 얼마나 위태로운 절벽 위에 홀로 세워진, 모래 위에 아스라이 세워진 성채인 지를 여지없이 까발렸다. 즉 그 순간 느꼈던 건 확고한 신념이나, ‘내가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자임하는 마음이 아닌, 그저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배워가며 언제든 생각의 방향을 바꾸어 나갈 수 있는 열린 마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건 단재학교에서 여러 유형의 아이들을 만나는 데에 매우 많은 도움이 됐다.

 

 

운 좋게도 공부도 하고 일도 할 수 있는 곳에 들어왔다. 그래서 처음으로 들어온 곳이 민들레다.  

 

 

 

궁금하던 앵두님을 알게 되다

 

그 모임은 고작 6개월 정도를 나갔고 2012년부턴 나가지 못했다. 학교도 여러 과정들이 정해지면서 나도 영화팀 교사로 새로운 커리큘럼을 만들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멀어졌던 게 아쉬워지던 2015년에 불현듯 모임에 참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수요일에 하는 건 정기모임이고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엔 12일로 모여 단행본 하나를 정해 이야기를 나누는 단행본 읽기모임이 열리는데, 처음으로 용기를 내어 참여하기로 한 것이다.

바로 이 모임에서 앵두님을 처음으로 만났다. 앵두님이라고 하면 그저 흘러 다니는 여러 얘기를 통해 들어봤을 정도로 민들레 모임에선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고등학생 시절에 민들레에 처음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고, 지금은 어디 외국에 나가있다는 얘기들 말이다. 그런 얘길 들으면 그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늘 궁금하긴 했는데, 드디어 이 자리에서 처음으로 보게 됐던 거다. 앵두님에겐 어땠을지 몰라도 적어도 나에겐 익숙했던 그래서 한 번은 만나보고 싶었던 사람을 만난 것이어서 기억에 남는다.

그 후에도 단행본 읽기 모임에서 한 번 더 마주쳤고, 크루즈를 선원이 되어 몇 달씩 해외에 다니는 걸 보며 페북에 댓글을 남기는 수준으로 알고 지냈다. 그렇게 두 번의 크루즈 여행을 마치고 작년 어느 때엔가 드디어 한국에 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래도 아예 알지도 못할 땐 그냥 궁금하기만 했지만, 그래도 단행본 모임을 통해 알고 난 후이니 편하게 느껴지더라. 그래서 언제 시간 날 때 서울 좀 오세요. 크루즈 선원이란 게 어떤 건지?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이 어떤지도 궁금해요라고 편하게 말할 수 있을 정도가 됐으니 말이다.

그래서 올해 1월에 종로 한복판에서 정말 오랜만에 만나게 됐고 여러 희망 가득 찬 이야기(or 불안 가득 안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물론 나도 6년 간 다니던 단재학교를 그만두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을 고민하고 있던 때라 서로 더 긴밀하게 얘기할 수 있었다. 상황은 달라도 앞날이 불투명하고 지금의 현실에서 헤매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매서운 한파가 밀려온 1월에 종로 한복판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4. 앵두 그늘 아래에선 민들레 피고

 

 

종로 한복판에서 정말 오랜만에 만났을 땐 약간 다른 것을 꿈꾸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크루즈 선원이나 다른 게 아닌, 한국어교사 자격증을 취득하여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것이다.

 

 

 

앵두나무 밑엔 민들레가 피어오른다

 

그래서 대학원에 가는 것과 코이카에 지원하여 해외자원봉사를 2년 정도 하는 것, 여러 방향으로 고민하고 있다고 하더라. 대학원 3년에, 코이카 2년 정도의 시간을 보내면 5년이란 시간이 후딱 흐르게 된다. 함부로 섣불리 말할 수는 없지만, ‘이 사람이야말로 자기 좋아하는 것을 따라 잘도 다니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을 했고, 그 순간 왠지 모를 한파 때문인지, 인생의 서글픔 때문인지, 막막함 때문인지 비애감에 젖어 있던 나도 내가 좋아하는 게 뭘까?’하는 약간은 신선한 생각이 스칠 정도였다.

그 후로 나는 전주에 내려와 다시 터를 잡았고 몸에 적응되지도 않은 임용공부를 다시 시작하여 적응하냐, 낙오하냐 그것이 문제로다같은 주먹구구 같은 삶을 살고 있었다. 공부체질이란 게 따로 없겠지만, 막상 결과가 주어지는 공부를 하려니 좀이 쑤셨고, 7년 만에 한문을 보니 머리는 지끈지끈, 몸은 쑤셔쑤셔하는 중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다 우연하게 근황을 알게 됐고 지금은 청주에 자리를 잡고 대학원에서 할 공부를 미리 보고 있다고 하더라. 그리고 매우 놀라운 소식도 들었다. 청주에서 민들레 읽기 모임을 만들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조직을 하다 보니, 세 사람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 시작하기로 했다는 거다. 오 마이갓~ 나 같은 사람은 맘을 먹어도 미적미적대는 데 반해 이 사람은 이미 맘보다도 행동이 훨씬 민첩하고 그냥 내지르는 컨셉이지 않은가. 워낙 사람을 좋아하는 성향탓에 뭔가 할 거 같은 느낌이 들긴 했지만, 이렇게 빨리 할 줄은 몰랐다. 그래서 아주 칭찬해~’를 여러 번 날려줬다. 한시 중에 우거진 잎사귀에 꽃은 가려져 봄은 뒤에도 남아 있고(密葉翳花春後在)’라는 시가 있던데, 그 구절마냥 앵두나무 밑엔 민들레 가득 피어나네같은 느낌이더라.

 

 

오목대에 올라서 이야기를 했다. 근데 여기에 유방의 '대풍가'가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이야기란 만병통치약? 소통이란 설렘?

 

그러다 이번엔 학기가 시작하기 전에 잠시 시간을 내어 친히 전주에 행차하셨다. 이런 경우가 평행선을 그리던 선이 마주친 경우라 할 수 있는데, 이럴 때마다 자동적으로 논어벗이 있어 먼 곳에서부터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않으랴?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라는 구절이 떠오른다. 이 구절에 대해 수많은 해석이 있지만, 그 중에도 =나의 가치를 알아주기에 천리도 마다하지 않고 오는 지음이라는 해석을 가장 좋아한다. 분명 천리든 만리든 물리적인 거리이고, 지금은 공자가 살았던 당시에 비해 교통편이 발달했다 해도 맘을 먹지 않으면 쉬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물리적인 거리조차, 가볍게 여겨질 수 있는 그 마음, 바로 그 마음에 감사하게 되는 것이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직은 어색한 게 분명하다. 짐짓 쾌활한 척 연기도 하고, 때론 과장된 제스처를 취하며, 한껏 목소리 톤을 올려 이야기를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건 몇 번 만났다고 조금은 편안하게 얘기하게 됐다는 점이다. 이번 얘기를 통해 교육청에서 최저임금의 기간제 직원을 뽑는 상황에서도 세 명의 면접관이 마치 대기업 면접관처럼 매우 아주 진지하게 질문을 던지는 정식 면접을 진행한다는 것과, 충북대는 거점 대학임에도 조교가 너무 공무원적인 마인드로 일처리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거기에 덧붙여 IPC세계장애인사격선수권 대회에 자원봉사로 참여했었고 그런 인연으로 체육회 사람들을 알게 되어 그분들과 영어스터디를 시작하게 됐다는 것과 청주에 독립서점이 문을 열어 그 분에게 인사를 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려 한다는 것, 그리고 작은 상점 하나를 계약해서 그곳에서 무언가를 해볼 생각이라는 것까지 들었다.

 

 

저돌적이다 싶게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간다. 선수권 대회에 자원봉사도, 코이카로의 도전도, 한국어교사로의 도전도.  

 

 

이것만으로도 가슴 뛰는 얘기였지만, 여기서 멈추질 않고 또 하나의 이야기를 해준다. 그건 바로 앵두님의 대학교 동기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앵두님은 경제학부를 나와 지금은 영어란 매개체로 사람을 만나는 일을 하는, 어쩌면 전공과 아무 상관없는 일을 하고 있지만, 그 동기라는 분도 학과를 졸업해선 시민활동을 하다가 지금은 인쇄소 사장이기도 하고, 지금은 일본 어딘가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온통 뒤죽박죽이라, 그게 한 사람의 이야기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앵두님만큼이나 다채로운 삶을 사는 이의 이야기였다. 그래서 앵두님은 언젠가 그 사람을 만나 어떤 인생의 스토리가 있는지, 그리고 그런 순간들에 어떤 마음가짐으로 선택을 했고, 또 어떤 계기들이 있었는지 들어보려 한다는 거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콩닥콩닥 뛰며 나도 몰래 나도 나도!”를 외치게 됐을 정도다. 역시 그 친구에 그 친구인 건가~

이럴 때면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란 시가 떠올라, 한 사람 한 사람이 우주의 비의를 한 몸 가득 안고 있는 존재들이라는 게 느껴진다. 누구 하나 가벼운 존재가 없다면, 그 존재들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 하나하나 배워가고 기록해 가고 싶다는 맘도 강렬해지고 말이다.

요즘 연암 박지원을 다시 읽고 있는데, 연암의 우울증 가득했던 20대의 순간들이 절대 남일 같이 느껴지지 않는다. 무엇이 그리도 답답했던 건지, 무에 그리 서글펐던 건지 그는 매일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며 삶의 의미를 잃어버렸다. 그랬던 그를 살린 것은 전국을 돌아다니며 여러 얘기들을 듣고 지은 기이한 사람들의 기이한 이야기였다. 그게 방경각외전의 여러 소설들로 남아 있는데, 난 그런 이야기를 듣고 그걸 기록할 당시의 연암 마음이 어땠을지 조금은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의 이야기는 기이한 이야기가 아닌, 우리네 이야기며, 나의 이야기라는 동질감이 들었을 것이고, 그걸 기록해나가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무거워질 대로 무거워진, 무의미해질 대로 무의미해진 관점을 재정립할 수 있게 됐을 것이다. 때론 만 가지 보약보다, 값비싼 명약보다 어떤 한 사람의 이야기가 나의 폐부를 찌르고 나를 일거에 바꾸기도 하고, 없던 의욕을 활활 불태우기도 한다. 바로 지금의 순간처럼 말이다.

여담이지만, ‘앵두라는 별명이 왜 생겼는지도 알게 됐다. 그건 어려서 살던 동네에 앵두나무가 있어서 늘 먹던 것이란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 댐(달방댐)이 생기면서 그 지역은 수몰되었고 앵두나무는 수몰되지 않고 있었지만, 베어버려졌다는 거다. 아마도 그런 아쉬움의 정조를 담고 있는 별명인 거 같더라.

삶에 정답이 없다면, 그런 좌충우돌, 이랬다저랬다하는 변덕 속에 희망이 있으리라 믿는다. 모처럼 임용이라는 세계에서 벗어나 가슴 뛰는 이야기, 그리고 도전 가득한 이야기, 세상 사는 이야기,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게 바로 한 권 사람책을 읽는 맛이다.

 

 

앵두나무 그늘엔 민들레 피고, 연암의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준다. 그처럼 난 무얼 할 수 있을까? 

 

 

 

 

인용

지도 / 임용 공고문 / 18년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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