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날 눈에 닿는 대로 짓다
하일즉사(夏日卽事)
이규보(李奎報)
簾幕深深樹影廻 幽人睡熟鼾成雷
日斜庭院無人到 唯有風扉自闔開
輕衫小簟臥風櫺 夢斷啼鶯三兩聲
密葉翳花春後在 薄雲漏日雨中明 『東國李相國全集』 卷第二
해석
簾幕深深樹影廻 렴막심심수영회 | 발을 치니 아득해져 나무 그림자 비끼고 |
幽人睡熟鼾成雷 유인수숙한성뢰 | 은둔한 이 꿀잠에 코고는 소리 번개 같네 |
日斜庭院無人到 일사정원무인도 | 해 비낀 정원에 이르는 사람이 없이 |
唯有風扉自闔開 유유풍비자합개 | 오직 바람만이 있어 사립문 절로 닫혔다 열렸다 |
輕衫小簟臥風櫺 경삼소점와풍령 | 가벼운 적삼에 작은 대자리 펴고 바람 난간에 누웠는데 |
夢斷啼鶯三兩聲 몽단제앵삼량성 | 꿈이 꾀꼬리 2~3번 우는 소리에 깨버렸네 |
密葉翳花春後在 밀엽예화춘후재 | 우거진 잎사귀에 가려진 꽃은 봄 갔어도 남아 있고, |
薄雲漏日雨中明 박운루일우중명 | 엷은 구름에 새어나온 햇살, 비 오는 중에도 밝구나. 『東國李相國全集』 卷第二 |
해설
어느 여름날 있었던 일을 읊은 시로, 이규보의 가운데, 많이 회자(膾炙)되는 한 편이다.
초여름 어느 날 홑적삼을 입고 바람이 부는 난간(또는 격자창)에 작은 대자리를 깔고 누워 낮잠을 자다가, 꾀꼬리 우는 소리에 잠이 깨고 말았다. 잠에서 깬 부스스한 눈으로 주위를 살펴보니, 빽빽이 우거진 잎들 사이로 꽃이 가려 있다. 봄이 지나갔는데도 꽃이 남아 있고, 엷은 구름 사이로 비가 내리는 가운데에도 햇살이 비치고 있다.
이 시는 기구와 승구에 절구(絶句)임에도 불구하고 대우(對偶)를 사용하고 있으며, 뛰어난 대우(對偶)로 칭송받고 있다.
허균(許筠)의 『성수시화(惺叟詩話)』에서는 “읽으면 상쾌함을 느낀다[讀之爽然].”라고 평하고 있다.
『동인시화(東人詩話)』에서는 “상국 이규보의 「하일즉사(夏日卽事)」와 사간 진화(諫澕)의 「야보(野步)」, 이 두 시는 청신하고 아름다우며, 한아하고 심원한 맛이 있다. 운격을 품평하자면, 마치 한 사람의 손에서 나온 듯하여 비록 작품을 평하는 데 능한 사람이라도 쉽게 우열을 가리기는 어려울 것이다(李相國詩, ‘輕杉小簟臥風欞, 夢斷啼鶯三兩聲. 密葉翳花春後在, 薄雲漏日雨中明.’ 陳司諫澕詩, ‘小梅零落柳僛垂, 閑踏淸嵐步步遲. 漁店閉門人語小, 一江春雨碧絲絲.’ 兩詩淸新幻眇閑遠有美, 品藻韻格如出一手, 雖善論者, 未易伯仲也).”라는 평이 있다.
원주용, 『고려시대 한시 읽기』, 이담, 2009년, 143~144쪽
인용
'한시놀이터 > 삼국&고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진화 - 춘만제산사(春晩題山寺) (0) | 2019.02.23 |
---|---|
이제현 - 다경루배권일재용고인운동부(多景樓陪權一齋用古人韻同賦) (0) | 2019.02.20 |
정지상 - 장원정(長遠亭) (0) | 2019.02.20 |
이규보 - 논시(論詩) (0) | 2019.02.17 |
권근 - 금강산(金剛山) (0) | 2019.0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