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방식으로 한문의 정수를 온축하다
임용공부를 시작하려 할 때만 해도 호기로웠다. ‘그토록 원하던 공부만 할 수 있는 시간’이 기어코 왔다고 생각했으니, 그리고 글을 쓸 때에도 집에선 잘 써지지 않아 커피숍을 찾아 전전하던 것에 비해 지금은 아예 나만의 책상이 있고 맘껏 참고해볼 책들이 있는 곳에서 공부를 하고 있으니 제때를 만난 양 훨훨 날아다닐 줄만 알았다.
지난 한 달 동안 헤맸다
하지만 그런 환상과는 달리 공부를 시작하고 전태련 쌤의 교육학을 들으면서 깨달았다. 막상 공부만 해야 하는 그 시간이 나에게 얼마나 지옥 같던 시간이었는지에 대한 기억이 돌아왔던 것. 한문이 좋다고 공부를 시작했지만 6년간의 공부는 어떠한 결실도 맺지 못하고 끝이 났다. 그래서 매순간 답답함과 우울한 기분을 안은 채 버티어 갔던 것이라는 과거가 불현듯 되살아났고 ‘이번에도 또 어떤 성과도 얻지 못한 채 끝이 나면 정말 끝이다’라는 비합리적 신념에 따른 절망까지 느껴졌다.
그뿐인가 전태련 쌤의 강의는 그런 불안을 더욱 부채질했다. 전태련 쌤은 관리를 어찌나 잘 했는지 하나도 달라진 게 없더라. 10년 전의 모습 그대로 그렇게 서서 강의를 했고 객관식에서 서술식으로 변한 체제가 선생님에겐 더 안성맞춤이고 자신이 하고 싶은 강의의 표본처럼 보였다. 그래서 그 당시에도 했던 ‘전체의 줄기가 꿰어져야 한다’는 것에 덧붙여 ‘뭐라고 말하는 순간 핵심내용을 파악하고 팍하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인데, What을 통해 ‘지금 무얼 말하고 있는 거야?’라고 생각하고, Why를 통해 ‘왜 하고 있지?’ 생각해야 하고, How를 통해 ‘그럼 어떻게 할 거야?’라는 미래상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해줬다.
지금이야 한 달이 넘도록 들었으니 어느 정도 이해가 됐지만, 초반엔 ‘어떻게 언제 저렇게 체계화할 수 있을까?’란 생각에 기겁했으며 불안만 가중되고 있었다. 이제 첫 발을 내딛으며 하늘을 날길 바라고 있었으니 바보라고 밖에 할 말이 없다. 그래서 초기엔 임고반에서 제대로 공부할 수 없었고 집중도 잘 되지 않았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또한 당연한 거다. 공부를 오랫동안 하지 않다가 하는 것인데 그래서 집중도나 이해도가 현저히 떨어졌는데 공부가 잘 될 거란 게, 의자에 오래 앉아 있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이 또한 첫 술밥에 배부르길 바라는 만용이니.
▲ 이런 장면들을 다시 담을 수 있으니 좋다. 그저 좋다. 전태련 쌤 반갑습니다.
블로그와 한문공부의 질적 성장
그럼에도 한 달이란 시간이 지나며 자리를 잡았다. 그건 시간이 안겨준 축복이기도 하지만 나에게 알맞은 방법을 찾아가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 시발점은 4월 11일에 있었던 한문과 스터디다. 그때 스터디를 했고 갑작스레 그 다음 주 발표자로 결정되었다. 어찌 보면 과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바로 이게 나에겐 한 계기가 되었다. 하필 발표 주제가 한신에 대한 것이었고 그걸 해석하려면 한신을 알 필요가 있었고, 그러려면 당연히 『십팔사략』을 읽어야 했다. 그래서 읽어보니 중국사를 다시 정리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고, 그에 따라 스터디한 내용도 문서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가 블로그를 활용하여 정리한 글을 올려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처음엔 공개가 아닌 비공개로 공부한 내용을 올리고, 혼자 자료집을 만들어가잔 생각이었다. 무에 실력이 있다고 남에게 공개를 한단 말인가.
하지만 몇 개를 그렇게 올리다 보니, 이럴 때 『맹자』를 비롯한 사서도 해석본과 링크를 만들어 놓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래서 중국역사와 경서 정도는 공개글로 작성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막상 나 혼자만 볼 생각으로 정리할 땐 해석이 약간 어색하고, 한문투여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공개할 땐 그러면 안 되겠더라. 최대한 현대어로 바꿔야 했고, 그러려면 내가 좀 더 자주 읽어보고 정리하는 게 필요했다. 그러려면 당연히 한 번 대충 보고 지나갈 해석도 글을 퇴고할 때처럼 여러 번 보며 어색한 부분을 고치게 되더라. 이건 어쩔 수 없이 반복적인 학습이 되니, 나에겐 의미부여도 되고 그게 학습 자료도 되니 일석이조였다.
그리고 이렇게 할 수 있는 데엔 스마트폰이라는 신문명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한글 프로그램의 실행, 그리고 임고반 내에서 바로 타이핑과 수정이 가능한 상황, 거기에 언제든 여러 자료를 보충하여 채워 넣을 수 있는 환경까지 모든 게 예전과는 확연히 달라져 공부하기에 훨씬 편안한 조건이 갖춰졌다. 그러니 공부와 타이핑 작업이 동시에 될 수 있고 그런 만큼 여러 자료들을 한 번에 볼 수 있어 공부의 질도 대폭 상승하더라.
이런 식으로 공부하니 확실히 하는 맛이 있고 할 만하다는 생각도 들어 몇 시간이고 앉아 고전과 역사를 넘나들며 학문의 향기에 흠뻑 취할 수 있게 됐다. 이렇게 다시 공부하는 재미를 찾아가고 있다.
▲ 많이 올리는 게 목표는 아니지만, 오늘은 술도 마시지 않고 밤에 공부 정리할 수 있으니 좋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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